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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1:53:03

김정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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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金正男 | Kim Jong Nam
파일:김정남1.jpg
<colbgcolor=#878787> 가명 김철[1]
출생 1971년 5월 10일
평양시
사망 2017년 2월 13일 (향년 45세)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세팡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국적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전주 김씨[2]
학력 제네바 대학교 (정치학 / 학사)
가족 할아버지 김일성
할머니 김정숙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배우자 신정희
자녀 김한솔, 김금솔, 김솔희, 김이순[3]
이부누나 리옥돌[4]
이복동생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제수 리설주
조카 김주애
숙부 김만일, 김평일, 김영일
고모 김경희, 김경숙, 김경진, 김백연
고모부 장성택
이모 성혜랑
사촌 김인강, 김은송, 장금송, 이한영, 이남옥

1. 개요2. 생애
2.1. 출생2.2. 유년기2.3. 그 이후2.4. 2001년 일본 추방 사태2.5. 후계자 탈락2.6. 후계 탈락 이후2.7. 대한민국 망명 시도?2.8. 박근혜 편지 사태2.9. 사망
3. 가족관계4. 기타5. 대중매체에서6.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김일성의 장손이자 김정일장남, 사생아.

김정일과 유부녀였던 성혜림[5] 사이에서 태어났다.

2. 생애

2.1. 출생

파일:1209044267975825979359_o.jpg* 1975년 1월 김정남과 외할머니 김원주의 모습.
파일:external/pds25.egloos.com/a0098697_55070fb621edd.jpg* 김정남은 봉화진료소에서 '몰래' 태어났다. 김정일은 성혜림과 김일성 몰래 동거하여 아이가 생겼는데 바로 이 아이가 김정남이다.[6] 사진은 1981년에 찍힌 김정남의 모습. 김정일 오른쪽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김정남이다.[7]

2.2. 유년기

2.3. 그 이후

2.4. 2001년 일본 추방 사태

파일:김정남도미니카공화국.jpg* 김정남은 이한영을 통한 유년기의 증언, 유년기 사진 몇 장, 고위 탈북자의 단편적인 증언 등으로밖에 증명되지 않는,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던 인물이었다. 이 와중 김정남이 북한의 후계자로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지게 된 것은 2001년 일본 밀입국 사태이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6818096.1.jpg

2.5. 후계자 탈락

2.6. 후계 탈락 이후

2.7. 대한민국 망명 시도?

2.8. 박근혜 편지 사태

2.9. 사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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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가족관계


===# 가계도 #===
한성희
홍일천
김혜경


2
신정희
(리씨)
김혜순
리혜경
김솔희
홍영숙
서영라
김이순
장길선
김영숙
김춘송
(자녀)
(부인)
(장남)

3
(셋째)
(아들)
(남편)
(딸)
(딸)
김경진
김인강
(부인)
김은송
김성강
(부인)
(자녀)
제갈순복
김송죽
김백연
김형록
김영성
(부인)
(부인)
김정현
(부인)
김원주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4. 기타

5. 대중매체에서

6. 외부 링크



[1]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생활했을 때 사용한 가명[2] 34세 혹은 35세손이라는 말이 있다.[3] 3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4] 어머니 성혜림이 첫 결혼에서 낳은 딸[5] 김정일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형수였다고 한다.[6] 이한영 수기 참조[7] 뒷줄은 왼쪽부터 성혜랑(김정일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언니), 성 씨의 자녀 이남옥, 이한영이며, 앞줄에 김정일과 김정남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신동아[8] 덕분에 성혜림의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탈북자인 김금혁의 말에 의하면 방계의 사람이 동기에 있어도 학교에서 대화하는 게 한계였고 그 방계의 사람은 학교가 마치면 고급 승용차가 와서 어디론가 말도 없이 가 버렸다고 하는 수준이었다.[9] 이한영의 원래 이름은 '리일남'이었다.[10] 당시 최은희는 김정일이 예술에 대해 견해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솔직한 비평을 해주곤 했는데 김정일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북한 간부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재주가 좋냐고 물었다고 한다.[11] 이 1975년이란 년도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 박병엽은 김정남이 1975년 5월에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박병엽은 김정남이 김일성에게 인정을 받은 시점과 진짜 생일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로열 패밀리에 대해서 대단한 지식이 없던 박병엽이 그냥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12] 다만 이한영은 정말 정상회담 중이라면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평양에 망명와 있던 노로돔 시아누크와 사적으로 만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게 아닌가 추정했다.[13] 이걸 본 김일성이 김정남을 김정일 다음의 후계자로 생각했다는 야사도 존재한다.[14]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원래는 김정남이 후계자였으며 김정은과 김정철은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유년시절에 있다.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은 김정일을 북한에서 교육시켜서 측근과 인맥을 만들게 하였고 후계자로서 노출시킴으로써 인정받게 만들었던 반면, 김정은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에 유학을 보낸 탓에 측근과 인맥을 만들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 김정일이 급사했다고는 하더라도 후계자로서 나선 지 2년만에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당시 김정남은 이미 사고를 쳐 놓은 후였다는 점이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15]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이 정말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자식들을 중립국인 스위스로 다 피난시켜 그곳에서 교육시켰다.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모두 스위스에서 학교를 나왔다.[16]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이는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되었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당시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다.[17]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사실 귀뜸한 것은 국정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김정남을 잘 감시하고 나온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국정원의 의사 표시였지만, 내각 조사실에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항 당국이 그냥 일반 밀입국자 취급을 하는 일본식 관료주의의 병크 폭발로 이 사단이 났다고 한다.[18] 출처: 아버지, 김정일과 나, 김정남 독점 고백 참조(五味洋治)[19] 실제로 김정일은 비록 권력의 후계자는 되지 못했으나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 강하고 애틋한 부성애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남이 해외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온갖 반동스러운 발언을 하고 다녀도 딱히 제지하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꾸준히 보장해준 것.[20] 월간조선 우종창[21] 가명 최순호. 유투브 링크[22] 차라리 안전 문제만 놓고 본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쪽이 더 낫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는 이미 예전부터 망명객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23] 메일 내용에서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다'는 언급에 장성택 숙청을 맞추지 못했다고 비웃는 반응이 많았는데 메일이 오간 시점 자체만 따지면 사실 용한 편이긴 하다. 이때는 2004년에 장성택의 3차 혁명화 이후 장성택이 2006년에 제1부부장에 임명되어 다시 권부에 복귀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무속이란 것을 너무 믿을 건 없지만 메일이 오간 시기만 본다면 말이 안 되는 내용은 아닌 셈이다.[24] 서영라 혹은 서영란.[25] 중국의 병아리 계획에 경계했을 가능성이 높다.[26] 홍콩은 대북제재 일환으로 북한인의 취업비자 발급을 엄금하며 단순 관광객도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는 불량국가인 데다 빈곤국이라 불법체류 위험도부터 높기 때문이다. 북한 외에는 또 다른 불량국가들인 이란, 시리아, 미얀마, 쿠바, 수단 공화국, 소말리아, 리비아 등이 취업비자 발급 금지 국가이며 중국 본토인은 홍콩이나 영미권에서 대학을 나와야 취업비자가 발급된다.[27]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강명도가 1994년 탈북 이후에 증언한 내용이며 김정남 본인은 교도통신 고미 요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28] 유년기에 거만하게 굴었다는 것과는 다른 증언인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고용희, 김옥 등에게 밀려서 쩌리가 되고 자신도 처지가 점점 나빠지면서 어느 정도 현실을 인식하고 성격에 다소 변화를 겪었던 모양이다. 사실 행실 논란이 많았던 장성택도 부하였던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 많고 기예에 능했으며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29] 한국어판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30] 정확히는 김정일의 정실 김영숙의 딸들을 제외한 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만난 사이로, 김정일의 적녀들은 당연히 공식적인 김정일의 자식으로서 김일성과 대면하고 살았다.[31] 김정일도 당시 북한의 평균 연령보다는 다소 일찍 죽은 편이며(70세), 하필 김정은이 당시 기준 늦둥이로 태어나서(1941년생, 43세 차이) 김정은이 젊을 때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일은 김씨 3대 중에서는 제일 건강 관리에 힘쓴 편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젊은 시절 빨치산 하면서 살아남는 등 나름 타고난 체력이 좋았던 김일성보다 타고난 건강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32] 딸 김주애를 10살 때부터 대외 석상에 내세우는 건 이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33] 김정남 본인이 읽고 실제와 비슷하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