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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10만호 건설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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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문제점4. 결말5. 재개(?) - 평양 5만세대 건설사업6. 남한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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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8년에서 2012년까지 벌어진, 북한의 건설사업.

2. 상세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이 처음으로 관측된 것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2008년 1월 18일 보도이다.기사 이 기사에서 북한은 2012년까지 5년 이내에 10만 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원래에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 주도로 평양시 용성ㆍ서포ㆍ역포 지구에 3만 5천 세대, 2011년 말까지 만경대지구 3만 세대,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 4월까지 만경대지구 3만 5천 세대 등 총 10만 세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기사

2009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은 전형적인 북한식 속도전 방식으로 무작정 사람들을 동원해서 닥치는 대로 세우고 있다. 이것도 원래는 평양에 흔히 지어지던 저층 아파트 식으로 건설을 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정일이 2010년 5월 방중 이후 '평양의 중심거리가 이렇게 한심하니 좀 잘 건설합시다' '평양을 상하이처럼 만들라' 는 지시를 내려서 40여 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감한 계획이 되었고, 2011년 10월 10일 당 창건일까지 모두 건설을 완료하려는 무리한 지시까지 내려왔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3. 문제점

4. 결말

5. 재개(?) - 평양 5만세대 건설사업

이후 이 기획은 김정은[2] 집권 10년차인 2021년 평양 5만세대 건설사업으로 다시 실현되게 되었다. 첫 목표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로 떨어지긴 했어도 10만호 건설사업은 이로써 10여년만에 재개되었다.

이전에도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신도시처럼 평양의 신시가지[3]를 만들었던 김정은은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평양에 해마다 1만 세대씩 모두 5만 호의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고, 이 일환으로 2022년 송신·송화지구, 2023년 화성지구 1단계가 완공되었으며, 2024년 화성지구 2단계가 완공될 예정이고, 서포지구도 2024년 완공될 가능성이 높다.

이 건설을 위해 평양시에 있던 논밭 174헥타르(약 53만 평)[4]을 뒤엎었다고 한다.[5] #

2021년 3월 23일 송신·송화지구 착공식에 참석한 김정은의 연설에 따르면 이 사업은 '수도 시민들에게 보다 안정된 생활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벼르고 준비해 온 숙원 사업'이며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 최중대 과업으로 간주된다'고 말했고, '이 막중한 과제를 어떤 불리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감당해야 할 혁명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

2021년 4월 11일 조선신보는 평야 5만세대 건설사업에 대해 '도시 구획을 동서방향과 북쪽방향으로 넓히면서 대규모의 현대적인 새 거리들을 일떠세우는 역사적인 건설사업'이라고 언급했으며, 평양 외곽 지역의 5만 호 외에도 중구역 승리거리에도 고층 살림집을 위시해 1만 6천 세대가 세로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신보에서는 5만 호가 들어설 구역으로 송신지구, 송화지구, 금천지구[6], 9.9절거리지구[7], 서포지구[8]를 언급하고 있는데, 송신지구와 송화지구는 '송신·송화지구'로 합쳐지며 완공되고 서포지구는 그대로 건설 중이며 9.9절거리지구는 화성지구로 이름이 변경된 후 1만 세대씩 2단계로 나누어 건설 중이다. # 다만 2024년 1월 23일 화성지구 3단계 착공식이 진행되고 2024년 4월 6일 로동신문 기사에서도 "올해 건설을 시작한 화성지구 3단계, 다음해에 예정되여있는 화성지구 4단계 전망계획"이란 식으로 언급되었다. #

이러한 건설 사업은 김정은 집권기 들어 중간에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는 사업 중 민간 분야에선 사실상 유일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정권 차원 정도가 아니라 김정은이 직접 이 사업 추진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집을 빨리 대충 건설한다 해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할텐데도 이 사업이 지속되는 것은, 북한 당국의 평양 인구 통제에도 불구하고 주택 수요 압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지방 주민들은 평양 주택 건설을 위해 한 세대당 5000원(약 0.6달러)[9]과 함께 노동자들의 먹을 음식과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평양에 바쳐야 한다고 한다. #

6. 남한과의 비교

남한은 북한보다 20년도 더 전에 10만 호를 넘어 백만 단위 호 건설 계획을 세웠으며, 둘 다 백만 단위의 집을 짓는 데에 성공했다.

더구나 북한의 '평양 5만세대 건설사업'보다 30년 앞서 건설된 분당신도시만 해도 1991~1996년까지 5년 동안 10만 가구가 건설되었다.[10] 북한은 '최중대 과업'으로 간주하는 것조차 30년 전의 남한보다도 훨씬 열악한 수준인 셈이다.
[1] 예술인 아파트 2개동(23층) 200세대, 해방산구역 간부 아파트 7개동(9~14층) 300세대.[2] 아이러니하게도 10만세대 건설사업의 주도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인물이기도 하다.[3] 사실 신시가지라고는 해도 남한 기준으로 보면 규모가 대규모 아파트단지 수준이다. 창전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는 3000세대에도 못 미치고 려명거리신도시도 5000세대 가량에 불과하니...[4] 여의도 면적의 약 60%나 되는 규모다.[5] 사족으로 이만한 논에서는 5천 명이 1년 동안 먹을 쌀/1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6] 만경대구역 남서쪽에 위치한 금천동에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이후 금천동에서 대평동으로 위치가 변경되며, 금천지구에서 대평지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7] 1998년 개통된 거리, 금수산태양궁전과 잇닿은 림흥 로타리로부터 형제산구역 신미동까지 약 8km 길이의 거리다.[8] 평양 중심부로부터 북쪽방향 평양 비행장으로 향하는 길 도중 형제산구역 내에 있으며 신미동에 위치하고 있다.[9]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 6~12달러 내외다.[10] 1년 동안 지은 가구 수만 해도 북한의 2배에 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