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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31:45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련 뉴스
6.25 전쟁 대남 도발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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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간별 진행상황
2.1. 북한의 위협2.2. 남한의 대응2.3. 미국의 대응2.4. 다른 나라의 반응2.5. 익명 단체의 반응
3.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
3.1. 북한의 주장3.2. 김정은 체제 강화설3.3. 군부 강경파 권력 장악설3.4. 북미수교 노림수설3.5. 음모론
4. 평가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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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2월~5월 북한한국미국을 향한 전쟁 위협 내용을 정리한 문서.

2. 시간별 진행상황

2.1. 북한의 위협

2.2. 남한의 대응

2.3. 미국의 대응

미국 본토 시각과 한국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과제

CNN 기사 인용

2.4. 다른 나라의 반응

2.5. 익명 단체의 반응

3.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

각종 전문가와 언론들은 유례가 없는 북한의 전쟁 위협에 대해 각종 분석을 쏟아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곳은 철저한 통제 국가이고 정보가 거의 없어 신형 무기 하나를 도입하더라도 이것의 정체를 알아 내는 데 수 개월 이상이 걸리는 인외마경이기 때문에 이들 분석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는 없으므로 참고 수준으로 읽기 바람.

3.1. 북한의 주장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강대국과 대등한 핵무기 보유국 임을 인정하여 '압살조치'를 그만두고, 체고저놈'최고존엄'(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지칭)에 대한 모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미 본토를 타격하겠다고 하는 등의 위협을 가하는 중.[3]

즉, 핵무기로 협박해서 전 세계를 김씨 일가에게 복종시키고 조공을 받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전쟁 위협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현재 보이는 수준은 과대망상을 넘어선 양판소에도 등장하기 힘든 설정 수준이라 세계적인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황당무계한 주장이지만, 더 무서운 건 '이게 진심'일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는 것이 김정은 체제 북한이다.[4]

3.2. 김정은 체제 강화설

현재 김정은 체제가 내부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고, 이를 강화하기 위하여 벌이는 일종의 쇼라는 분석이다. 현재 북한 당국은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로 경제적으로 만성적 기아 상태에 시달린 지가 20년이 넘어가고, 대한민국의 발전상 등이 삼엄한 통제를 뚫고 북한 내부에도 퍼지면서 3대 세습 왕조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추측에서 비롯된 분석. 또한 전통적으로 북한은 내부적인 권력 다툼이나 심각한 체제 붕괴 위기가 찾아 올 때마다 외부에 대한 도발을 자행해 왔고, 이번 일 역시 이러한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단순 체제 강화 용도로 보기에는 도발의 강도가 유례없이 거세고 실질적인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원래 북한의 전쟁 위협은 주로 실무층이 주도적으로 보이는게 일반적이었으나 현재의 위협은 김정은이 직접 주도하는지라 김씨일가가 신격화된 북한에서 감히 김정은의 행동을 까내리기 어려워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정기적으로 북한이 땡깡을 부리는 것의 일반적인 연장선상이라는 설과도 연결되는데, 지난 3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위협 자체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정기적인 땡깡질의 일환이라는 설이다. 사실 북한은 지금까지 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훈련을 하는 도중에는 항상 연락을 단절하거나 공식적인 소식통으로 비난을 퍼부어 왔고, 이번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나 17대 정권부터 한국이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서기 시작하면서 북한의 땡깡 강도도 점차 높아졌다는 것.

3.3. 군부 강경파 권력 장악설

북한은 지난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군부 및 당 인사에 대한 상당한 규모의 숙청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때 군부 강경파의 핵심 인사 중 1인인 리영호 차수가 숙청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김정은 체제는 전통적 사회주의인 당 중심 체제로 운영되지 않겠느냐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것이 뒤집어졌다는 분석. 3차 핵실험에 대해 북한의 생각보다 국제 사회에서 훨씬 더 강도 높은 제재가 들어갔고, 심지어 중국조차 이에 동조하게 되면서 내부적으로 강경파가 힘을 얻게 되지 않았냐는 추측에서 나온 분석이다. 특히 온건파로 분류되었던 김양건 대남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강경한 발언이 나온 것이 그 증거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례에서도 고립된 환경에서는 온건파보다 강경파가 득세하고 온건파들은 숙청당하거나 잠수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뒷받침된다. 그러나 아직 북한 권력 핵심층 내부의 권력 역학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지켜 보아야 하는 의견.

3.4. 북미수교 노림수설

김일성 시절부터 북한의 워너비(...)였던 북미대화 및 수교를 실현시키기 위해 남한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을 간접적으로 찔러 본다는 분석. 북한 군부가 정보 누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략로케트군 미 본토 타격 계획>을 일부러 노출시킨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북미수교를 바탕으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위치를 획득하려 한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대로 미국이 북미수교에 나서 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지적이 있고, 북한의 공식적인 핵보유국 지위 확보는 결국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의지에 불을 붙일것이기에 미국이 제정신 박혀있다면 꿈에서라도 불가능한 이야기. 단순히 3차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제재를 완화해 달라는 땡깡을 부리는 것으로 축소해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제재는 금융거래를 통으로 막아 버리는 등 상당히 강도가 높고, 중국 역시 끽소리 못하고 제재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북한 내부적으로는 갈수록 위협의 강도를 높여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재 북한의 경우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눈도 깜짝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3.5. 음모론

북한의 도발 위협이 미국과 짜고 친 것이라는 음모론. 미국입장에서 볼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중국이다. 중국은 영토는 넓지만 바다는 오른쪽에 있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 홍콩, 대만등 중요한 거점들도 대부분 오른쪽에 위치해있다.[5]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괌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했지만 명분이 없어 중국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북한이 대남도발을 시작했고, 중국이 그만하라고 만류했음에도 오히려 북한은 말을 듣지않고, 위협수준을 점점 높여갔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을 견제한다는 명분하에 서둘러 괌에 미사일방어시스템을 구축했다. 물론, 괌에서의 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북한이 사정거리에 있다는 말은 중국의 동쪽지방도 사정거리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때문에 중국은 북한에 불쾌한 모습을 내비췄고, 언론사에서도 중국과 북한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기사가 나올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때문에 북한이 중국눈치를 안보고 막나가는 모습이 미국과 모종의 거래가 있는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잠깐 일어나기도 했다.

4. 평가

국내외적으로 위협이 되긴 하였지만, 애시당초 진짜 전쟁을 염두에 두고 벌인 활동이 아니었다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에게 말로 협박을 했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이는 전세계적인 상식으로 볼 때, 북한. 최소한 주체교단이 한국, 미국을 대상으로 말로만 하는 도발이 아닌 진짜 무력적인 도발을 실행했다가 살아남을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도끼 하나 잘못 놀려서 지도에서 사라질 뻔 했는데... 핵은 아직 갖추지 못했고 생화학무기는 이미 어느 정도 대책이 세워진 상태이며 재래식 무기는 아예 개전 초 한방의 타격을 어느 정도 줄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쓸모가 전혀 없다. 좀 심하게 말해서 미국 입장에서는 개전 초 한국이 입을 다소의 피해[6]만 각오하면 북한을 제2의 이라크로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오히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 상대하는 것보다 더 쉽다.

그렇다고 남한만 가지고 전쟁을 할 목적이었다고 할 경우 사정이 좀 낫느냐 하면 그것도 회의적이다. 차라리 협박없이 기습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북한의 전쟁수행능력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리는 길이다. 애초에 6.25 전쟁때에도 북한은 쳐들어온다고 협박한 후 쳐들어온게 아니라 남한 장병들이 다 휴가나가 있을 때[7] 기습으로 쳐들어왔다. 당시 북한군이 남한군보다 월등히 강했는데도 말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 점을 근거로 들어 북한이 실제론 물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즉, 협박을 이 정도로 크게 벌여놨다는 것은 실제 싸울 생각이 없으니 일단 소리라도 크게 내자는 의도로 그런 것이라는 것. 물론 미래에는 국가부채 300%도 거론되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 상황 및 인구 구조가 전쟁 수행에 있어 그리 큰 문제는 없는 상태고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며[8] 1994년의 핵 위기와는 달리 한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반면 북한은 그 반대로 급격히 약화된지라 간단한 무력도발도차 한-미의 판단에 따라서는 북의 증발을 가져올 게 뻔한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군 vs 북한군을 보자.

다만 그 의도에 대해서는 대내적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 대외적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2013년 4월 14일 현재로서는 대내적인 효과를 노린 목적이 크다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딱히 대외적인 회담 제의나, 남한의 대화 요청에도 가부자체를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대외적인 효과를 노린 목적은 없거나 적었다고 예측된다.

하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전쟁 위협은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가 필요한 대내적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추측하기로는 김정은의 군부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군의 불만 해소 차원에서 군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런 퍼포먼스로 군의 위상을 드높혀서 군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나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그 정도로 군부의 불만이 커져있다라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군부의 위협에 대해서 군의 장악에 있어서 안정적이지 않고 위태롭다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 일본 관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국에서 일어난 대지진 등의 사건/사고가 잇달아 벌어지며 국제사회 화제의 중심에서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전쟁 협박도 2013년 여름에 들어가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5월 7일 시행한 1호조치 해제도 너무 조용히 뜬금없이 해제 후 미사일 철수를 하는 바람에 역으로 보는 사람이 어리둥절-비웃음 트리를 타게 만들 정도. 김정일 시절에는 말을 들어줘도 어떻게든 한번은 쏘아댔는데 이제는 아예 그냥 안들어주고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봐.' 하고 놔주니까 가만 있는 행태가 아주 가관이다.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북한이 이제는 군사적 도발도 자기 맘대로 못하는 상황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으로 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노만 더 늘리는 것은 물론 오히려 국지도발에 동원되어 어느 정도 지원을 받았을 부대조차도 제대로 된 장비와 탄약이 없는 건 물론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확인됨으로써 북한군의 실상만 털리는 꼴이 됐고,[9] 이미 병사는 쪽수만 많고 실상 보면 거의 다 영양실조에 절여져 실제 전투 임무 수행이 가능할까 의문일 정도의 부실병사가 대부분에 무기라는 것도 40년 전에나 쓰던 박물관급 물건을 적당히 개조해서 열병식이라는 이름의 허세밖에 못하는, 그야말로 중동전쟁 당시의 중동 연합군만도 못한 군대가 되어버린 게 현재의 조선인민군 상태. 그나마도 강산이 한번 바뀔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핵을 개발했다고 해도 너무 많이 늦은 감이 들 정도다.

이로부터 10년도 더 뒤인 2023년 김정은이 대놓고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운운하며 과거에 있던 유사 발언으로써 이 시기의 발언들이 재조명될 법 한데도 이 일들이 유사 사례로써 언론에 언급되는 사례는 별로 없는 것을 보면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은 사실상 완전히 잊혀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5. 기타



[1] 3차 핵실험이 그로부터 8일 전에 있었다.[2] 인도양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또다른 항공모함이 인도양으로 출항했다. 이건 뭐 이라크전 직전도 아니고...[3] 미 본토도 아니고 진주만 하나 타격한 구 일본 제국이 무슨 꼴이 났는지, 미국 본토 한복판을 때린 알 카에다가 얼마나 박살났는지 생각해보자.[4]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북한은 로동신문땅울림 비스무리한(...) 드립을 친 바가 있다.[5] 미국이 한미동맹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한반도의 위치가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에 좋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사시 한반도가 없으면 미국은 중국을 점령하느라 엄청난 출혈을 감수할수밖에 없는 구도로 되어있다.[6] 휴전선 전방 부대의 사상자와 민간인 피해 합쳐 최소 1~2만에서 많게는 10만. 경제적 피해 수백억 달러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수도권이 경계 바로 남쪽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인명피해와 심리적 부담이 문제다.[7] 6월 25일은 초여름인 6월이 끝나고 본 여름인 7월로 들어가는 시기인데, 이 시기는 매우 덥고 습하고 기온이 높아 병사도 기기도 열로 인해 쉽게 뻗는 등 전투력 손실이 꽤 심해서 여러모로 전쟁 치르기에 좋은 시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여름에 전쟁을 개시한 까닭은 우선 1차적으로는 김일성의 계산으로는 단 두달이면 남한 정복이 가능하다 판단되어서 그런 것인데 6월로 부터 2달 후라면 8월, 즉 광복절이 낀 달이다. 따라서 광복절에 한반도 통일을 완수하고픈 김일성 개인의 명예 욕망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2차적으로는 이 때가 바로 농번기, 즉 논밭에 일손이 많이 부족할 시기인지라 이 시기에 몸 좋은 장병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집안 농사를 돕기 위해 휴가를 많이 가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집안 농사일 돕겠다고 여름에 휴가가는 장병은 많지 않겠지만 당시엔 국가 주력 산업이 농업이다보니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8] 미국의 경제 상황이 막장이긴 하지만 이는 공화당 측의 노골적인 비협조와 세금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레드넥들의 비현실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실 이걸 내버려둔다는 것 자체가 아직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이야기지만.[9] 숫자만 가지고 객관적으로 보자. 섬 하나를 완전히 작살을 내버렸는데도 사망자+부상자가 군인과 민간인 다 포함해도 20명이 안넘는다. 엄밀히 말해서 그렇게 완전 무방비였던 민간인 구역에 기습적으로 170발 넘게 부었는데도 피해자가 20명도 안된다는 건 결국 정예로 붙는 실전 전투력은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의미다. 덤으로 그렇게 부었음에도 거기에 배치되어 파편에 맞아서 고장나는 등의 온갖 페널티는 다 끌어안고 대응한 K-9 한대조차 제대로 못 부쉈다는건 생각보다 얘들의 훈련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방증.[참고자료]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