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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리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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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리아군
الجيش السوري الحر
Free Syrian Army (F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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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 상징
<colbgcolor=#007a3b> 창설일 2011년 7월 29일
창설자 리야드 알아사드
참전 시리아 내전

1. 개요2. 역사3. 주요 반군
3.1. 남부 전선3.2. 마그하웨이 알타우라3.3. 시리아 국민군3.4. 시리아 민주군3.5. 그 외
3.5.1. 소멸&전향한 반군
4. 전쟁범죄5. 관련 기사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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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리아 내전에서 활동하는 반군들의 연합체이다.

2. 역사

아랍의 봄의 여파로 2011년 3월부터 촉발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민간인 학살·고문 행위에 분노하여 탈영했던 군인들과 지역 주민들이 각지에서 민병대 조직을 결성해나가기 시작했다.[1] 과거 리비아처럼 정부 각료들이 우수수 빠져나가기를 바랐던 아랍 국가들은 생각보다 이탈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 불만을 가졌으나 마침 시리아 공군(SAAF) 대령이었던 리야드 알아사드(Riad al-Asaad)가[2] 탈영하여 반군 측에 합류하였다. 리야드 알 아사드는 터키의 후원을 받아 2011년 7월 28일에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내지는 시리아 자유군(Syria Free Army)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으며, 시리아 전역의 반 아사드 저항군임을 홍보했다.

이 조직은 시리아 반군을 대표하지도 않았고, 6~7000명 정도의 세력을 갖춘 조금 큰 조직에 불과했으나 수많은 반군 분파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통합된 소통 창구를 원했던 서방 세력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튀르키예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시리아 반정부군의 대표로 선전되었다.

서구와 아랍국가들은 즉시 자유 시리아군이 시리아 야권연대가 선출한 임시 정부 휘하의 정규 군대임을 인정하였으며 지원 창구가 마련됨에 따라 마침 각개격파당하기 쉬운 점조직 형태에 불과했던 반정부 민병대들은 자유 시리아군에 가입하고 '최고군사회의(Supreme Military Council)'의 통제를 받을 것을 의결했다. 현 시리아 정부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하페즈 알 아사드의 쿠테타 집권 이전에 사용하던 녹 백 흑과 별 세개의 시리아 국기를 사용했다.

전국의 반군조직이 가입하면서 10~15만명의 군세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서방국가들에게 아사드와 대등한 군사력을 갖춘 시리아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구의 기대와는 달리 지역주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깡패 범죄자나 지역 유지들의 마을 군대등이 잡다하게 모여있어 성향이 제각각이었고, 아사드 축출에는 뜻을 같이하였으나 이후 노선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들 달랐다. 명목상으로 최고군사회의가 존재하긴 했으나, 각지에 흩어진 분파들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사상이나 기득권을 놓고 반군 조직들끼리 점차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2012년부터 다양한 전쟁범죄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실추되었다. 2012년 7월의 국경초소 점령 후 22명의 정부군의 팔다리를 절단하고 처형한 것이나, 7월 21일 터키인의 트럭을 탈취하고 짐을 팔아버린 다음 차를 중고시장에 넘긴 것, 9월 9일에는 알 하야트 알레포 중앙병원에 차량폭탄테러를 가해 30여명을 폭살시키고 점령한 것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망친 계기는 2013년 5월 오마리 알 파루크 여단 소속의 아부 사카르(abu sakkar)[3]가 정부군을 죽이고 배를 갈라 심장과 간을 씹어먹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유포시킨 것이 서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4][5]

자유 시리아군 참모총장은 이 사건을 비난했고 반정부 조직 시리아 국민연합은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등 시리아 내부적으로도 동요가 일었다. 반군 최고 군사 위원회가 아부 사카르를 죽던지 살던지 체포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제재가 가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2013년부터 자유 시리아군의 본질적인 취약함이 서구 관찰자들에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2년 들어 정부군의 반격이 거세지고 처음에 합류했던 이슬람 반군세력들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전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국내 이슬람 반군그룹은 2012년 이미 내부 동맹조직인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를 결성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다가 2013년 갈등이 격화됨과 동시에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을 결성하고 탈퇴해 버렸다. 이들은 독자적인 인맥을 통해 사우디, 카타르의 압도적인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동부 고타를 거점으로 삼은 자이쉬 알 이슬람을 주로 지원했고, 이에 힘입어 자이쉬 알 이슬람은 각지에 지부까지 개설한 거대 조직이 될 수 있었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친밀했으며 시리아의 무슬림형제단 계열 조직을 주로 지원했고, 이들이 주류를 이룬 이슬람 전선의 주요 스폰서가 되었다.

종교원리주의 성향이 없는 평범한 반군 단체들은 지역 방어에 기반하고 있어 대규모 조직을 형성하기도 힘들었고 원정 능력이 없었는데, 원정 능력을 갖춘 종교원리주의 반군들이 자유시리아군을 탈퇴하면서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2013년부터 이라크에서 IS가 시리아 내부로 진입해오고 정부군이 강력한 반격을 개시하며 헤즈볼라가 참전하면서 알레포 시 주변을 상실하고 주요 보급루트인 레바논 국경지대가 닫히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터키, 카타르, 사우디 같은 스폰서들이 점차 발을 빼기 시작했고 이에 노선 차이와 더불어 한정된 무기와 자원을 놓고 2013년 후반에는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전선, ISIS사이에 광범위한 반군들끼리의 내전이 발발했다. 이와 함께 자유 시리아군의 전력은 크게 쪼그라들었고 4~6만여명 정도로 관측되었다.

시리아에서 알 누스라, ISIS와 같은 알카에다 계열이 반군의 주도권을 차지하여 반군의 승리가 우방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미국은 통제력이 없는 시리아야권정부 최고군사회의를 무시하고 CIA를 통해 직접 시리아 내부의 반군 단체들에게 TOW 대전차미사일을 비롯한 무기와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세속적이고 온건한 반군을 선별하여 대전차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여 그들을 키움으로써 원리주의자들의 대항마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으나, 반대로 통제력이 부족했던 최고군사회의는 이 CIA개입으로 완전히 아무 의미 없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세속주의 반군단체들은 자유시리아군에 가맹된 상태였음에도, '시리아 혁명전선(Syrian Revolutionary Front)', '남부전선(Southern Front)' 등의 별도의 반군연합체를 결성하는 등 자유시리아군의 중앙지휘부인 '최고군사회의(Supreme Military Council)'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앞서 언급한 자유시리아군 태생의 특성도 있겠으나, 개별 파벌들 입장에서는 무기를 받기 위해 자유시리아군에 합류한 것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도 CIA가 알아서 무기를 가져다주니 최고군사회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통합된 반정부군으로써의 자유시리아군은 이 시점에서 이미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이후 반군 조직들은 지역별로 이슬람 반군들과 협력하여 지역 작전실을 만들어 통제를 받거나, 반군연합체에 가입하여 알카에다의 지휘를 받는 등 사실상 원리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투쟁에 협력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일부는 시리아 정부군에 항복하고 정부군으로 재입대하거나,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시리아 민주군(SDF)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자유 시리아군의 이름이 매스미디어에서 언급되었는데, 지나치게 복잡한 현지 상황과 수백개에 달하는 조직들을 설명하기보다는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이름이 알기도 쉬웠고, 독재자 아사드에 대항하는 민주 시리아의 정규군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에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구 자유시리아군 계열 그룹들이 제법 남아 있었으나, 2018년 수도 다마스쿠스의 동부 고타 함락을 시작으로 홈스 주 알 라스탄 지역, 그리고 최대의 반정부 거점이었던 남부 다라 주가 정부군의 작전에 통째로 함락되면서 최대의 마지막 자유시리아군 연합체 "남부전선"이 완전히 소멸했다. 일부 조직은 정부군에 항복하고 현지 경찰로 전향했거나 군대에 재입대했고, 항복을 받아들이지 못한 반군들은 정부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반군이 장악한 이들리브 주와 알레포 주 북부로 떠났다.

현재 자유 시리아군의 깃발은 터키가 후원하는 괴뢰 정부 시리아 임시정부와, 그곳의 정규군을 표방하며 터키에 의해 통합군으로 재배치된 이른바 ‘시리아 국군’이[6]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국군의 구성 그룹들은 자이쉬 알 이슬람, 함자 사단, 술탄 무라드 사단과 같은 구 이슬람 전선의 원리주의 계열 그룹들이기 때문에, 더이상 세속주의 자유시리아군은 완전히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아 국군의 경우 시리아 내전이 큰 전투가 없는 소강 상태에 접어듬에 따라 사실상 터키의 대외 개입용 용병 수급처로 그 역할이 바뀐지 오래다. 그 시작이었던 리비아 내전에서는 GNA를 지원하기 위해 3천명 이상이 참전해 311명이 전사했으며,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군 진영에 1천 2백명 이상이 참전해 최소한 64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반 후티 정당인 알-이슬라당을 지원하기 위해 예멘 내전에도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지만 파키스탄군을 지원하기 위해 카슈미르 분쟁에도 참전할 수 있다는 관측 역시 제기되기 시작했다.[7] 2024년 1월부터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저지 명목으로 니제르로 1천명 가량이 파병되는 등 튀르키예의 대리전용 용병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한 2015년 이후 위기를 겪었고 특히 2018-2019년엔 주요 지도부가 요르단으로 망명을 가고 남은 병력들은 아사드 정부군에 흡수되는 루트를 타거나 IS, HTS, 시리아 국민군, 시리아 자유군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을 맞이했다. 이후 시리아 국민군이 터키 지원을 받아 그래도 존재감이 있는 세력으로 남았고 시리아 자유군은 동남부에서 미국 지원을 받고 명목만 있는 상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2024년 12월 시리아 반군 연합들의 북부 공세 속에서 다라 등 남부에 은거하며 정부군에 속해 있거나 비밀 단체로 남아있던 옛 자유시리아군 남부전선 병력들이 다라 등 남부 도시에서 일제히 봉기를 시작했고 결국 주요 도시들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남동부에 있던 시리아 자유군도 동시에 북진해 서로 병력을 연결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새로 부활한 남부 작전실(구 남부전선)과 시리아 자유군이 합공작전으로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는데 성공하며 2011년 내전이 시작된 지 13년, 아사드 왕조가 처음 세워진 기준으로는 53년 만에 아사드 왕조는 종말을 맞이한다.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세운 시리아 구국정부가 과도정부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3. 주요 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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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남부 전선

3.2. 마그하웨이 알타우라

시리아 동남부 알탄프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반군 그룹. 로자바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이들은 CIA 공작원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차이점이다. 주적은 시리아 아랍군(구 정부군)과 IS, 알 카에다.

마그하웨이 알타우라(جيش مغاوير الثورة)는 '혁명 코만도군'의 아랍어 명칭이다.

3.3. 시리아 국민군

영명은 Syrian National Army, 약칭은 SNA.
튀르키예의 사실상 괴뢰 정권인 시리아 임시정부 소속 군대이다. 시리아 반군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과 협력 관계이며, 2024년 알레포 전투 당시 이들과 협공하여 알레포를 함락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3.4. 시리아 민주군

영명은 Syrian Democratic Forces, 약칭은 SDF. IS알누스라 전선에 대항하여 2015년 10월 10일에 설립된 아랍인,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투르크멘, 체르케스인, 체첸인 민병대들의 연합조직이다. SDF의 목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참된 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적이고 상호의무적인 시리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2015년 12월 10일 이틀간의 회의 끝에 SDF는 시리아 민주평의회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대IS 군사 개입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원과 훈련을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미군과 협력하고 있다.

3.5. 그 외

3.5.1. 소멸&전향한 반군

4. 전쟁범죄

시리아 내전에서 전쟁범죄는 시리아군만의 문제가 아니며 IS같은 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반군 역시 시리아군과 다를 것 없는 잔혹한 형태로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독가스는 반군도 정부 지배 지역 시민들을 상대로 헬캐논을[10] 날려서 살포하고 있다.반군이 알레포 시내에 살포한 독가스로 입원한 환자들 시아파나 기독교도는 포로로 잡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안전을 보장하고 항복한 정부군을 학대하고 총살하는 사례를 너무나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알 킨디 병원에서 항복한 정부군을 학살하는 자유시리아군도 있고 자유시리아군을 자처하는 누르 알 딘 알 젠키 운동이 2016년 팔레스타인 12살 소년을 참수한 사례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정부측의 주장이 아니라 반군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올린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반군의 행동 중 대놓고 연극을 한 사례들도 있다. 2012년 12월, 오바마가 시리아가 독가스를 쓴다면 개입하겠다고 말하자마자 홈스 알 오바이디 지역에서 반군이 정부군이 독가스를 살포하여 7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자작극으로 의심하여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내전이 발발한지 12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자유시리아군의 전쟁범죄 등의 문제를 평가하자면 이들에게 있어 불행은 미국과 유럽이 넒게 보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좁게 보면 리비아 내전 이전의 미국과 유럽이 아니었다는데 있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미국 정부와 CIA는 전폭적인 소련 견제를 위해 미래에 북부동맹, 알 카에다, 탈레반으로 분화되는 무자헤딘 그룹들을 무장시키고 자금을 지원했고, 소련군 철수 이후에도 나지불라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계속 자금과 물자, 무기를 댔었다. 이 당시에도 무자헤딘과 정부군, 소련군 사이의 전쟁에서 전쟁범죄나 민간인 학살 등이 자행되었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결국 소련의 아프간 전쟁은 무자헤딘의 승리로 끝났고 아프간에 무자헤딘으로 참전한 오사마 빈 라덴 등의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9.11 테러를 자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미군이 알 카에다와 10년이 넘는 혈전을 벌이던 와중에 폭발한 리비아 내전 때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위시한 NATO 국가들은 알 카에다나 무슬림 형제단 등의 테러리스트 조직들과 무관한 리비아 시민들의 자발적 봉기라는 반군의 주장을 믿고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지지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카다피 정권 종식 이후 리비아에서 무슬림 형제단 계열 정부가 투표로 들어서고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들이 미 대사관을 습격하거나 이슬람주의 정부에 반발한 세속주의자들과 내전을 벌이는 등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곧이어 폭발한 시리아 내전 때는 2011년 시점에서도 이미 10년째에 근접해가는 중동 개입과 중동전쟁에 환멸을 느끼는 여론이 미국과 유럽에서 급성장했다. 당사자인 시리아 반군 역시 미국과 NATO의 비공식적인 무기 지원과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도 공공연하게 내전 승리 시 이스라엘을 다음 목표로 삼겠다는 주장을 하거나, 알 누스라 등의 알 카에다나 무슬림 형제단 등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무장조직들과 연대를 끝까지 놓지 못하면서 전쟁 범죄 연루로 욕을 먹는 등 서방을 제대로 실망시킨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래도 끝까지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지 못하면서도[11] 이슬람주의 테러조직들과 연대하는 시리아 수니파 아랍인 반군의 대안을 절실히 찾게 된다. 그렇게 선택된 세력이 시리아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로자바의 무력집단인 인민방위대였다. 인민방비대는 최소한 이슬람주의 테러조직들과 같이 작전을 수행하거나 미국이 원조한 물자를 팔아넘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전 초반부터 자유시리아군을 지원하던 튀르키예는 자국 내 반란세력인 쿠르디스탄 노동자당과 로자바의 밀착 관계 때문에 미국의 결정에 격노해 후원하던 자유시리아군 그룹들을 고용해 인민방위대에 적대하고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시사하는 등 나토 진영에 큰 균열을 일으킨다. 이렇게 이슬람주의건 아니건 자유시리아군의 가장 큰 목표였던 조속한 아사드 정권 붕괴는 물건너가고 분화되어 있던 자유시리아군 그룹들도 성향과 상황에 따라 정부군에 귀순하거나 튀르키예의 용병이 되거나 인민방위대 산하로 들어가는 등 불행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5. 관련 기사

이 반군도, 저 반군도. 시리아 시민 편은 아니었다.

2019년 말에 나온 시리아 반군의 실태를 폭로한 한국일보 기사.

학살을 거부한 자유시리아군의 탄생

2021년 기준으로 5년 정도 된 오래된 기사에 저자가 대체로 반정부세력에 우호적인 기조를 취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징병제 국가인 시리아군의 특성상 군 전역자들이 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2] 한편 자유 시리아군 창설자인 리야드 알아사드는 터키 정보부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지내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자기를 암살할 거라는 과대 망상에 빠져 자유 시리아군의 어떤 직위도 맡지 않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자유시리아군에 회의적인 관찰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2015년 정부군 이들리브 대패 때 이들리브 시를 직접 방문하여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키려는 터키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였으나, 역시 그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하며 어떤 직위도 맡지 않고 도망다니고 있다. 이후로는 알 누스라 전선 계열 반군동맹체가 주도중인 반군 자치정부 시리아 구국정부에 가담해 고위직을 역임중이다.[3] 본명은 칼리드 알 하마드(Khalid al-Hamad)[4] 이 사람은 오마리 알 파루크 여단을 탈퇴하고 알 누스라 전선으로 옯겨서 전선 사령관으로 재직하다가 2016년 4월 정부군의 매복작전에 걸려들어서 사살당했다.[5]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시신 절단과 장기 섭취를 자행한 아부 사카르 본인은 생전에 살해한 병사의 핸드폰에서 그 병사가 여성 한 명과 두 딸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발견하고 격분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이다.[6] 관찰자들에게는 터키 지원 자유 시리아군 TFSA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7] 에르도안 정부의 막대한 후원을 받는 터키 PMC SADAT이 시리아 반군들을 고용해 국외로 파병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한 세계 각지의 이슬람주의 반군들의 현대화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8] 자유 시리아군(FSA)와는 다르다. FSA는 IS와 시리아 구국정부를 제외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던 모든 반군 연합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9] 마찬가지로 미국에게서 TOW대전차미사일을 지원받았다. 자유시리아군 최고군사회의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10] 가스통에 날개를 붙이고 대형 파이프 포신으로 발사하는 사제무기[11] 크림 위기, 돈바스 전쟁, 예멘 내전 등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내전에 개입한 또다른 세력인 러시아이란을 견제할 필요 때문에라도 시리아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계속 지원했다.[12] 당장 창설자인 리야드 알 아사드 대령부터가 자살폭탄 테러를 시리아 혁명과 자유시리아군 투쟁의 필수불가결한 혁명적 요소라고 찬양할 정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다. 참조 실제로도 리야드 알 아사드는 무슬림 형제단과 연이 있었다. 내전 초반부터 실질적으로 전투를 이끌고 유의미한 전투력을 보여주던 그룹들은 무슬림 형제단 시리아 지부 출신이거나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잦았다. 가자 지구의 하마스 역시 2011년 이전까지는 시리아 정부의 지원과 후원을 받았음에도 시리아 정부와의 우호관계를 정리하고 자유시리아군 지지를 선언했다. 하마스도 무슬림 형제단 계열 조직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널리 반군이 구축한 지하 땅굴의 노하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게 전수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