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7:54:41
홈스 는 역사적으로 시리아 중서부의 요충지로써, 기원전 1274년의 카데시 전투 에서 2014년 홈스 포위까지 레반트 지역의 패권을 두고 충돌이 수없이 벌어졌다. 이들 중 역사적으로 추적 가능한 것들을 모아본다. 홈스의 과거 지명은 에메사이다. 자세한 내용은 카데시 전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홈스 서남쪽 평원에서 이집트 신왕국 과 히타이트 제국 이 벌인 전투 2.2. 에메사 전투 (274년)로마 재통합 전쟁 중 아우렐리아누스 의 로마 제국 군이 제노비아 의 팔미라 제국 군을 격파한 전투. # 2.3. 에메사 전투 (635-636년)이슬람 정복 중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 의 이슬람 제국 군이 에메사를 6개월간 포위, 동로마 수비대를 끌어내어 섬멸하자 도시는 항복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 은 에메사 수복을 위해 대군을 파견했으나 야르무크 전투 에서 대패하고 시리아를 결국 포기하였다.2.4. 홈스 공방전 (745-746년)우마이야 왕조 말엽 3차 피트나 당시 홈스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10개월의 포위 끝에 마르완 2세 에 의해 진압되었다. 다만 그동안 힘을 키운 압바시야 혁명군은 3년 후 압바스 왕조 를 개창하여 우마이야 조를 대체한다. 2.5. 홈스 공방전 (854-855년) 9세기 중반 홈스에 배치된 튀르크 군인들에 대해 기독교도와 유력층 주민들이 봉기, 도시를 장악했으나 알 무타와킬 에 유혈 진압되었다. 2.6. 홈스 공방전 (864년) 주민들이 압바스 당국의 총독 파즐을 죽이고 반란, 튀르크 장군 무사 이븐 부가에 의해 진압되었다. 2.7. 몽골-맘루크 전쟁일 칸국 의 시리아 정복 시도로 인해 맘루크 왕조 와 촉발된, 양국 간에 벌어진 반세기 간의 충돌. 아인잘루트, 1-3차 홈스, 엘비스탄, 마르즈 앗사파르 전투의 6대 대전투 중 3번이 홈스에서 벌어졌다. 이를 1차 ~ 3차 홈스 전투로 통칭한다. 2.7.1. 1차 홈스 전투 (1260년)아인잘루트 전투 직후 술탄 쿠투즈 에서 그를 암살한 바이바르스 로의 권력 교체를 노리고 바이다르 휘하 몽골군이 재차 침공했으나 홈스 왕공 알 아슈라프 무사와 하마 왕공 알 만수르 무함마드가 이끄는 시리아 귀족 연합군이 격파함. 몽골 무적 신화 다시금 깨는 승전보. 2.7.2. 2차 홈스 전투 (1281년)파일:홈스 이란.jpg 술탄 칼라운 집권기의 혼란을 틈타 아바카 칸 은 망구테무르 휘하 8만의 몽골-십자군을 파견했으나 홈스 북쪽에서 칼라운 휘하 맘루크 군대가 결사 저항하여 격퇴, 충격을 받은 아바카 칸은 쓰러져 곧 사망. 이후 한동안 전선은 소강 상태에 접어듦. 2.7.3. 3차 홈스 전투 (1299년) 내전을 정리한 가잔 칸 이 몽골-십자군을 이끌고 친정, 내분을 겪던 맘루크 군을 홈스 동북쪽의 와디 알-카잔다르에서 격파. 그 직후 홈스 및 다마스쿠스가 항복하며 일 칸국의 시리아 정복이 현실화 된듯 했지만, 이듬해 2월 가잔 칸은 차가타이 칸국 및 킵차크 칸국 의 후방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철수. 이후 맘루크 조는 시리아 수복, 1303년 쿠틀루그샤의 몽골-십자군이 재침하나 마르즈 앗-사파르 전투에서 패배하여 시리아 정복은 결국 실패함.2.8.1. 홈스 전투 (2011-14년) 내전 초엽 시리아 반군 이 홈스의 도심부를 장악했으나 2012년 홈스 공세로 반격에 나선 정부군과 러시아 군의 지속적인 폭격과 포위로 인해 결국 2014년 5월, 구도심에 남아있던 반군이 항복하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으로 종결되었다.2.8.2. 홈스 전투 (2024년) 2024년 12월, 시리아 구국정부 가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 로 알레포 , 하마 를 점령함에 따라 홈스까지 진격하였고 홈스도 반군의 손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