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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개국공신 문평공(文平公) 조박 趙璞 | |
출생 | 1356년(공민왕 5) |
사망 | 1408년(태종 9) |
봉호 | |
시호 | 문평(文平) |
본관 | 평양 조씨 |
자 | 안석(安石) |
호 | 우정(雨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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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말선초의 문신. 민제의 사위이자 태종의 동서로 조선의 전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이다.[1]뛰어난 몽골어 실력으로 원나라에 자주 오가며 외교 활동을 하여 출세한 조인규의 손자 조충신의 손자이다 ; 조인규-조연수-조충신-조사겸-조박 / 조인규-조련-조덕유-조준
조박보다 10살 연상인 송당 조준은 조인규의 증손자이므로 조준은 조박의 숙부뻘 항렬이다.
조박보다 10살 연상인 송당 조준은 조인규의 증손자이므로 조준은 조박의 숙부뻘 항렬이다.
2. 생애
우왕 2년에 이어 우왕 8년에 동진사 6위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삼사좌윤에 이르게 되는데, 이후 상술했듯 장인 민제의 또 다른 사위이자 친했던 동서인 이방원과 더불어 이성계를 따르게 되었고, 공양왕 즉위 초에는 이색, 조민수 등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정몽주에 의해 청주목사로 내보내지게 되고, 얼마 안 있어 정몽주가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었던 정도전, 조준, 남은, 윤소종, 남재를 탄핵하여 유배보낸 후 제거하려 했을 때 그들과 같이 위기에 빠질 뻔 했으나 이를 알고 피하여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몽주가 사망한 후 다른 이들과 더불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결국 개국공신 1등의 명예를 얻게 된다. 동시에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동서인 태종의 편에서 서서 이거이 부자와 더불어 도당에서 의견을 모아 도성을 떠나는 이방석을 죽게 만드는데, 그로 인해 정사공신 1등에까지도 이르게 된다.그런데 정종이 즉위한 이후부터 이런저런 묘한 행적들을 남기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본인의 친척 동생이자 정종이 즉위하기 전의 첩이었던 유씨와 그녀의 아들 불노가 죽주에 있음을 정종에게 알린 것[2]으로, 이후 왕명으로 유씨와 불노는 입궁하여 각각 가의옹주와 원자로 불리게 된다. 이 기록에 태종과 이숙번이 나눈 대화가 덧붙여져 있는데, 조박의 행동에 대해서 이숙번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선 상당히 예상 밖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상중이었던 아들 조신언과 훗날 태종과 2차 왕자의 난으로 대립하는 이방간의 딸인 성혜옹주를 혼인시킨 것[3]인데, 이 사례같은 경우는 정종이 대간의 반발을 무릅쓰고 벌인 것으로 되어있긴 하다.
셋째로는 이방석을 죽일 때 같이 협력했던 이거이 부자와 갈등한 것으로, 정종 때 조박이 대사헌으로 있었을 당시 사헌부의 관원들이 이거이와 그의 아들인 이저가 무인정사 직후 이방석과 이방번의 기생첩을 취한 것을 문제삼고자 했는데, 왜냐하면 이저가 취한 기생이 과거 이거이와 관계한 바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탄핵하려고 했던 것이 당시 관원들의 입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퍼졌고, 결국 이저의 귀에 들어가서 그가 울면서 정종에게 호소하자 오히려 사헌부의 관원들이 순군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들을 통해 그 문제를 처음 발의한 자가 바로 조박임이 드러나 본인이 택한 모친이 있는 이천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4]
그러다 얼마 안 있어서 경상도 도관찰사로 복직하는데, 이후 이거이의 형인 이거인이 그를 무고하려 했다가 들켜서 유배를 가게 되었고[5], 이어서 조박이 계림부윤으로 온 이거이와 사병혁파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을 지합주사였던 권진이란 이에게 얘기하는데, 곧 권진이 간의대부로 임명되어 상경한 뒤 이를 부풀려 얘기하여 그 대화에 언급된 조준이 순군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하고, 조준이 결백을 주장하자 이거이와 조박까지 불려와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거이가 조박과의 대화 내용을 부정하면서 조박의 잘못임이 드러나 다시금 이천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6]
다행히 또다시 얼마 안 돼서 복직하여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좌명공신 4등에 봉해지게 되는 등 관직 생활을 유지하던 중 태종 7년에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과 명나라 황녀 간의 혼인을 추진하려는 이들에게 동조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긍정적이었으나 생각을 바뀌어서 세자를 김한로의 딸과 혼인시키려 했던 태종이 이를 듣고 분노하여 조박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순금사에 가두었고 조박은 이후 양주로 내쫓기게 된다. 그러다 태종의 명으로 다시 복직하는데, 얼마 안 있어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과 연관되어 위기에 맞을 뻔하다가 태종의 보호로 무사하게 되고, 관직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태종 8년 12월에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사후에 불노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되는데, 태종이 세자가 된 후 정종에 의해 그의 아들이 아니라하여 쫓겨난 불노가 성장한 뒤 다시 논란이 되자, 그의 존재를 정종에게 알려 그가 원자가 되는 데 일조한 조박이 죄인으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조박의 공신직이 전부 박탈된 것에 이어 그 후손들까지 금고형에 처해지게 됨으로서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된다.[7]
3. 대중매체
- 용의 눈물에서 배우 안대용이 연기했다.
[1] 이렇게 삼 공신에 이름을 올린 이는 조선 왕실과 연결된 이지란, 이화, 조온을 제외하면 조영무와 그가 유이하다.[2] 태조 7년 11월 7일 기묘 1번째기사[3] 정종 1년 1월 9일 경진 15번째기사[4] 정종 1년 5월 16일 을유 2번째기사 근데 이 사건에 숨은 비밀이 하나가 있었으니, 조박도 무인정사 직후 방석의 첩을 취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인도 이거이 부자에게 뭐라 하긴 애매했다는 것.[5] 정종 1년 8월 29일 병인 3번째기사[6] 정종 2년 8월 1일 계사 2번째기사[7] 태종 9년 12월 19일 병진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