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6 19:13:45

조박(조선)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개국공신
문평공(文平公)
조박
趙璞
출생 1356년(공민왕 5)
사망 1408년(태종 9)
봉호 평원군(平原君)1409년(태종 9) 추탈
시호 문평(文平)
본관 평양 조씨
안석(安石)
우정(雨亭)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4. 둘러보기

1. 개요

여말선초의 문신. 민제의 큰사위이고, 원경왕후의 형부이자 태종의 동서로 조선의 전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이다.[1]

2. 생애

뛰어난 몽골어 실력으로 원나라에 자주 오가며 외교 활동을 하여 출세한 조인규의 손자 조충신의 손자이다.[2] 조박보다 10살 연상인 조준은 조인규의 증손자이므로 조준은 조박의 숙부뻘 항렬이다.

우왕 2년에 이어 우왕 8년에 동진사 6위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삼사좌윤에 이르게 되는데, 이후 상술했듯 장인 민제의 또 다른 사위이자 친했던 동서인 이방원과 더불어 이성계를 따르게 되었고, 공양왕 즉위 초에는 이색, 조민수 등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정몽주에 의해 청주목사로 내보내지게 되고, 얼마 안 있어 정몽주가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었던 조준, 남은, 남재, 정도전, 윤소종을 탄핵하여 유배보낸 후 제거하려 했을 때 그들과 같이 위기에 빠질 뻔 했으나 이를 알고 피하여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몽주가 사망한 후 다른 이들과 더불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결국 개국공신 1등의 명예를 얻게 된다. 동시에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동서인 태종의 편에서 서서 이거이 부자와 더불어 도당에서 의견을 모아 도성을 떠나는 이방석을 죽게 만드는데, 그로 인해 정사공신 1등에까지도 이르게 된다.

그런데 정종이 즉위한 이후부터 이런저런 묘한 행적들을 남기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본인의 친척 동생이자 정종이 즉위하기 전의 첩이었던 유씨와 그녀의 아들 불노가 죽주에 있음을 정종에게 알린 것[3]으로, 이후 왕명으로 유씨와 불노는 입궁하여 각각 가의옹주와 원자로 불리게 된다. 이 기록에 태종과 이숙번이 나눈 대화가 덧붙여져 있는데, 조박의 행동에 대해서 이숙번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선 상당히 예상 밖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상중이었던 아들 조신언과 훗날 태종과 2차 왕자의 난으로 대립하는 이방간의 딸인 성혜옹주를 혼인시킨 것[4]인데, 이 사례같은 경우는 정종이 대간의 반발을 무릅쓰고 벌인 것으로 되어있긴 하다.

셋째로는 이방석을 죽일 때 같이 협력했던 이거이 부자와 갈등한 것으로, 정종 때 조박이 대사헌으로 있었을 당시 사헌부의 관원들이 이거이와 그의 아들인 이저가 무인정사 직후 이방석과 이방번의 기생첩을 취한 것을 문제삼고자 했는데, 왜냐하면 이저가 취한 기생이 과거 이거이와 관계한 바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탄핵하려고 했던 것이 당시 관원들의 입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퍼졌고, 결국 이저의 귀에 들어가서 그가 울면서 정종에게 호소하자 오히려 사헌부의 관원들이 순군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들을 통해 그 문제를 처음 발의한 자가 바로 조박임이 드러나 본인이 택한 모친이 있는 이천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5]

그러다 얼마 안 있어서 경상도 도관찰사로 복직하는데, 이후 이거이의 형인 이거인이 그를 무고하려 했다가 들켜서 유배를 가게 되었고[6], 이어서 조박이 계림부윤으로 온 이거이와 사병혁파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을 지합주사였던 권진이란 이에게 얘기하는데, 곧 권진이 간의대부로 임명되어 상경한 뒤 이를 부풀려 얘기하여 그 대화에 언급된 조준이 순군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하고, 조준이 결백을 주장하자 이거이와 조박까지 불려와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거이가 조박과의 대화 내용을 부정하면서 조박의 잘못임이 드러나 다시금 이천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7]

다행히 또다시 얼마 안 돼서 복직하여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좌명공신 4등에 봉해지게 되는 등 관직 생활을 유지하던 중 태종 7년에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과 명나라 황녀 간의 혼인을 추진하려는 이들에게 동조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긍정적이었으나 생각을 바뀌어서 세자를 김한로의 딸과 혼인시키려 했던 태종이 이를 듣고 분노하여 조박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순금사에 가두었고 조박은 이후 양주로 내쫓기게 된다. 그러다 태종의 명으로 다시 복직하는데, 얼마 안 있어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과 연관되어 위기에 맞을 뻔하다가 태종의 보호로 무사하게 되고, 관직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태종 8년 12월에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사후에 불노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되는데, 태종이 세자가 된 후 정종에 의해 그의 아들이 아니라하여 쫓겨난 불노가 성장한 뒤 다시 논란이 되자, 그의 존재를 정종에게 알려 그가 원자가 되는 데 일조한 조박이 죄인으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조박의 공신직이 전부 박탈된 것에 이어 그 후손들까지 금고형에 처해지게 됨으로서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된다.[8]

3. 대중매체

4. 둘러보기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개국공신
{{{#!wiki style="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392년 8월 20일 태조에 의해 책록
좌명개국공신 (1등)
김사형 남은 남재 배극렴
오몽을 이제 이지란 이화
장사길 정도전 정총 정탁
정희계 조박 조인옥 조준
김인찬 이방간 이방원 이방의 }}}
{{{#!wiki style="margin: -32px -1px -11px"
협찬개국공신 (2등)
정지 유창 윤호 이민도
황희석 정용수 조기 조반
조영규 조온 홍길민 조견
박포 장담
익대개국공신 (3등)
고여 김균 김로 손흥종
심효생 안경공 오사충 유원정
이근 이백유 이부 이서
이직 장지화 함부림 황거정
민여익 임언충 장사정 조영무
한상경 한충 }}}}}}}}}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ruby(정, ruby=定)][ruby(사, ruby=社)][ruby(공, ruby=功)][ruby(신, ruby=臣)]
{{{#!wiki style="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398년 9월 17일 태조에 의해 책록
정사일등공신 (1등)
김사형 이거이 이무 이방간
이방원 이방의 이애 이화
조박 조영무 조준 하륜 }}}
{{{#!wiki style="margin: -32px -1px -11px"
정사이등공신 (2등)
김로 민무구 민무질 박포
신극례 심종 이복근 이숙번
이양우 이지란 이천우 장담
장사길 장사정 장철 정탁
조온
}}}}}}}}} ||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좌명공신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401년 1월 15일 태종에 의해 책록
진충좌명공신 (1등)
민무구1 민무질1 신극례 이거이2 이무3
이숙번4 이애 조영무 하륜
익대좌명공신 (2등)
이래 이천우 이화
익대좌명공신 (3등)
김영렬 류기 마천목 박석명
박은 성석린 윤곤 윤저
이숙 이지란 조희민 황거정5
익대좌명공신 (4등)
권근 김승주 김우 김정경
류량 문빈 서유 서익
송거신 심구령 연사종 윤목
윤자당 이승상 이원6 이응
이종무 이직7 조경 조박8
조온 한규 홍서
1 1407년 민무구, 민무질의 옥으로 인한 제명
2 1404년 태종의 왕자들을 죽이고 상왕 정종을 섬기려 한 혐의로 제명
3 1409년 민무구, 민무질의 옥으로 인한 제명, 후에 신원
4 1416년 불충, 불경죄로 인한 제명
5 1411년 이숭인, 이종학을 죽임 혐의로 인한 제명
6 1426년 노비 불법 모집 혐의로 인한 제명, 1456년 세조 때 복권
7 1415년 민무회, 민무휼의 옥으로 인한 제명, 1422년 세종 때 복권
8 1409년 친척의 아들을 정종의 아들로 속인 혐의로 인한 제명
}}}}}}}}} ||
<colcolor=#fff,#fff>
조선 사헌부 대사헌
태조 ~ 연산군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00d45, #c00d45 20%, #c00d45 80%, #c00d45); min-height: calc(1.5em + 9.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초대

남재
제2대

안경공
제3대

이근
제4대

이서
제5대

박경
제6대

신효창
제7대

민여익
제8대

이직
제9대

성석룡
제10대

조박
제11대

전백영
제12대

권근
제13대

최이
제14대

정구
제15대

김약채
제16대

이지
제17대

김약채
제18대

류관
제19대

이원
제20대

이지
제21대

박신
제22대

이첨
제23대

이문화
제24대

최유경
제25대

김희선
제26대

류양
제27대

함부림
제28대

이래
제29대

김첨
제30대

박신
제31대

허응
제32대

박석명
제33대

한상경
제34대

이원
제35대

민무질
제36대

성석인
제37대

권진
제38대

김희선
제39대

윤향
제40대

안원
제41대

이직
제42대

남재
제43대

박은
제44대

맹사성
제45·46대

류양
제47대

이문화
제48대

김한로
제49대

황희
제50대

박은
제51대

박경
제52대

류정현
제53대

정역
제54대

안성
제55대

윤향
제56대

안등
제57대

류관
제58·59대

이은
제60대

이발
제61대

이원
제62대

김여지
제63대

박습
제64대

허지
제65대

신상
제66대

김자지
제67대

홍여방
제67대

성엄
제68대

원숙
제69대

하연
제70대

류영
제71대

이지강
제72대

이명덕
제73대

황희
제74대

김익정
제75대

권도
제76대

최사강
제77대

이맹균
제78대

이맹성
제79대

최부
제80대

조계생
제81·82대

조치
제83대

김효손
제84대

이승직
제85대

정흠지
제86대

신개
제87대

오승
제88대

허성
제89·90대

신개
제91대

하연
제92·93대

노환
제94대

이숙치
제95대

김효정
제96대

안숭선
제97대

최윤덕
제98대

남지
제99대

윤번
제100대

박안신
제101대

정갑손
제102대

민신
제103대

권맹손
제104대

이견기
제105대

허후
제106대

강석덕
제107대

이계린
제108대

윤형
제109대

조구량
제110대

이승손
제111대

안완경
제112대

정창손
제113대

성봉조
제114대

한확
제115·116대

이인손
제117·118대

기건
제119대

박중림
제120대

권준
제121대

최항
제121대

최항
제122대

노숙동
제123대

황수신
제124대

강맹경
제125대

신숙주
제126대

신석조
제127대

안숭효
제128대

김순
제129대

한명회
제130대

김연지
제131대

김세민
제132대

민건
제133대

어효첨
제134대

민건
제135대

윤사윤
제136·137대

조효문
제138대

함우치
제139대

조석문
제140대

김광수
제141대

윤자운
제142대

박원형
제143대

구치관
제144대

권반
제145대

김길통
제146대

김예몽
제147대

이교연
제148대

정식
제149대

이석형
제150대

이효장
제151대

함우치
제152대

유자환
제153대

서거정
제154대

김종순
제156대

양성지
제157대

홍윤성
제158대

허종
제159대

오백창
제160대

이극돈
제161대

윤필상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162대

한치영
제163대

김지경
제164대

노사신
제165대

신승선
제166대

권감
제167대

서거정
제168대

이예
제169대

이서장
제170대

윤계겸
제171대

김영유
제167대

서거정
제168대

이예
제169대

이서장
제170대

윤계겸
제171대

김영유
제172대

현석규
제173대

이숭원
제174대

양성지
제175대

이계손
제176대

유지
제177대

김유
제178대

이극기
제179대

어세겸
제180대

박숙진
제181대

김양경
제182대

정괄
제183대

조간
제184대

이봉
제185대

이극돈
제186대

김승경
제187대

채수
제188대

어세겸
제189대

이철견
제190대

손순효
제191대

이덕량
제192대

노공필
제193대

이극균
제194대

류순
제195대

이세좌
제196대

이경동
제197대

박건
제198대

김승경
제199대

이세필
제200대

상건
제201대

권건
제대

박안성
제202대

성건
제203대

권건
제204대

이칙
제205대

홍귀달
제206대

송영
제207대

박건
제208대

조익정
제209대

이세좌
제210대

권정
제211대

류순
제212대

박숭질
제213대

이계동
제214대

조익정
제215대

신종호
제216대

이유인
제217대

김여석
제218대

김승경
제219대

김제신
제220대

이세좌
제221대

성현
제222대

허침
제223대

정경조
제224대

이집
제225대

황사효
제226대

김극검
제227대

이의
제228대

정미수
제229대

이손
}}}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230대

한치영
제231대

권경희
제232대

이집
제233대

윤민
제234대

김심
제235대

김제신
제236대

구치곤
제237대

홍헌
제238대

이집
제239대

권경우
제240대

신준
제241대

강귀손
제242대

김영정
제243대

김심
제244대

안침
제245대

양희지
제246대

한사문
제247대

이인형
제248대

성현
제249대

한사문
제250대

김영정
제251대

최한원
제252·253대

홍자아
제254대

성세명
}}}
}}}}}}}}}

[1] 이렇게 삼 공신에 이름을 올린 이는 조선 왕실과 연결된 이지란, 이화, 조온을 제외하면 조영무와 그가 유이하다.[2] 조인규-조연수-조충신-조사겸-조박[3] 태조 7년 11월 7일 기묘 1번째기사[4] 정종 1년 1월 9일 경진 15번째기사[5] 정종 1년 5월 16일 을유 2번째기사 근데 이 사건에 숨은 비밀이 하나가 있었으니, 조박도 무인정사 직후 방석의 첩을 취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인도 이거이 부자에게 뭐라 하긴 애매했다는 것.[6] 정종 1년 8월 29일 병인 3번째기사[7] 정종 2년 8월 1일 계사 2번째기사[8] 태종 9년 12월 19일 병진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