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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00:10:33

김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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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증 요동백
조선 증 영의정
충무공(忠武公)
김응하
金應河
파일:1000116506.jpg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580년
조선 강원도 철원군 갈원동 하갈리
(現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
사망 1619년 (향년 39세)
후금 사르후 부차벌판[1]
경의(景義)
추증 요동백(遼東伯)
시호 충무(忠武)
본관 안동 김씨[2]
부모 부친 - 김지사(金地四)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의 무신.

2. 생애

김방경의 후손으로 25세 때인 1604년(선조 37) 무과에 발탁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평소 김응하의 무장적인 재능을 아끼던 박승종이 병조판서가 되자 비로소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여러 사람의 질시를 받아 파직당하였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박승종이 전라관찰사로 나가자 다시 기용되어 비장이 되었다.

1610년에 다시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며, 영의정 이항복에 의해 경원판관으로 발탁된 뒤 삼수군수, 북우후를 역임하였다. 선천군수로 있던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해오자, 부원수 김경서의 휘하에 좌영장으로 있다가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유정은 총사령관인 양호와 사이가 좋지 못해 요청했던 병력과 장비를 받지 못하고 조선군에 의존하려는 성향과 패배감에 시달리며 사기가 흔들렸다.

전초전인 심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사르후 인근 부차벌판까지 진군했다. 이때 명, 조선은 부대를 나눴고 도원수 강홍립은 좌영을 중군의 엄호를 맡도록 언덕에 배치했다. 하지만 진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명나라 군이 대패하고 유정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기습적인 후금의 역습을 당했다. 3,000명의 휘하군사로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조총사격으로 1차 돌격을 격퇴했으나 모래바람으로 시계가 흔들리고 시간차로 들어오는 2차 돌격에 부대가 무너졌다.

김응하도 버드나무에 의지해서 수없이 화살을 쏘아서 적을 쓰러뜨렸다. 자신도 수없이 화살을 맞았으나 갑옷 덕택에 화살이 몸 안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후금병의 창에 등을 찔려 전사했다.

이듬해 명신종 만력제는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으며, 처자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다. 조정에서도 전사를 가상히 여겨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3. 여담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든 단편 전쟁 영화인 사르후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동생인 김응해는 병자호란당시 청군을 기습해 승리를 거둔 전적이 있다.


[1]랴오닝성 푸순시인근[2] 이후 후손들이 김응하를 시조로 한 철원 김씨로 분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