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05-12 17:56:48

한화 이글스

파일:Semi_protect1.png   로그인 후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2021년 시즌에 대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21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2021시즌 5월 현황에 대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21년/5월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61731> 파일:KBO 리그 로고.svg KBO 리그
소속 구단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iki style="color:#18181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파일:kt wiz 엠블럼.svg 파일:LG_Twins_emblem.png 파일:키움 히어로즈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kt
wiz
LG
트윈스
파일:KIA_Tigers_2021_CI.png 파일:Lotte_Giants_newlogo.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SSG_Landers_emblem.pn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SSG
랜더스
한화
이글스
▶︎ 해체된 구단 보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관련 문서
}}} ||
{{{#!wiki style="color: #FFFFF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ff6600; margin:-6px -1px -11px"
2021 시즌 한화 이글스/2021년 | 스토브리그 | 스프링캠프 | 시범경기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2021 시즌 주요인물 수베로 감독 | 노수광 주장 | 정민철 단장
구단 기본 정보 한화그룹 | 한화 이글스 | 빙그레 이글스
구단 역사 정보 우승 1999년 한국시리즈
영구결번 35 장종훈 | 21 송진우 | 23 정민철
구단 역사 | 한화 이글스/2군 | 역대 트레이드 | 사건사고 | 암흑기
구단 주요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스타 플레이어 | 등번호 | 유니폼 | 팀 응원가 | 선수 응원가 | 응원단장 | 치어리더 | 육성응원 | 구단 공식 SNS
경기장 관련 정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 서산 야구장 | 대전 베이스볼드림파크
지역 연고 학교 북일고등학교 | 대전제일고등학교 | 공주고등학교 | 한국K-POP고등학교 | 대전고등학교 | 세광고등학교 | 청주고등학교 | 강원고등학교 | 원주고등학교
기타 정보 행복수비 | 나는 행복합니다 | 김고추정이 | 마리한화 | 수리 | 한화 이글스 갤러리 | 치고바꼬
파일:21한화슬로건.png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width=350]]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법인 설립 1985년 3월 11일 ([age(1985-03-11)]주년)
창단 1986년 3월 8일 ([age(1986-03-08)]주년)
팀명 변경 1993년 11월 1일 ([age(1993-11-01)]주년)
법인명 ㈜한화이글스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 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373 (부사동)[1]
구단명 빙그레 이글스 (1986~1993)
한화 이글스 (1994~)
모기업 파일:한화 로고.svg
연고지 충청남도 대전시
대전직할시
파일:대전광역시 휘장.svg 대전광역시 (1986~)[2]
충청남도 / 충청북도 (1986~1999)[3]
구단주 김승연
구단주 대행 박찬혁
대표이사
단장 정민철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
주장 노수광
영구결번 21 송진우 23 정민철 35 장종훈
홈구장 파일:Daejeon_Hanwha_Life_Eagles_Park_Logo.png
(1986~2024(예정) / 14,500석)[4]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1986~ / 10,500석)
2군 구장 서산 야구장
마스코트 파일:HanwhaEagles_Mascotlogo.png
위니, 비니, 수리[5]
킷 스폰서 파일:위팬골드.jpg[6], 파일:뉴에라 로고.png[7]
워드마크 파일:HanwhaEagles_Brandlogo1.png[8]
사이트 파일:HanwhaEagles_Brandsymbol1.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로고.pn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공식 앱 파일:Google Play 아이콘.svg | 파일:external/www.34windsorst.com/AppStore-icon-HighRes.png

최종 우승 (1회)
파일:Eagles_Champion_v1.png
1999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2회)
단일 리그 1989년, 1992년
포스트시즌 진출 (13회)
한국시리즈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1999년, 2006년
플레이오프 1988년, 1991년, 1994년, 1999년, 2005년, 2006년, 2007년
준플레이오프 1990년, 1994년, 1996년, 2001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8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f6600> 최고 승률 .651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저 승률 .290
1986년 108경기 31승 76패 1무
최다 승 81승
1992년 126경기 81승 43패 2무
최다 패 95패
2020년 144경기 46승 95패 3무
최다 관중 734,110명
2018년[9]
최소 관중 128,387명
2004년[10][11]
타자 FA 최고액 4년 84억원[12]
김태균
투수 FA 최고액 4년 84억원[13]
정우람
}}}}}}}}} ||

1. 개요2. 구단 소개3. 역사4. 역대 BI
4.1. 색상 일람
5. 홈구장6. 신인 드래프트7. 영구결번
7.1. No.35 장종훈7.2. No.23 정민철7.3. No.21 송진우
8. 임시결번
8.1. No.99 류현진8.2. No.52 김태균
9. 이글스의 스타들10. 은퇴식11. 응원
11.1. 응원단11.2. 마스코트11.3. 구단 SNS
12. 인기와 팬덤
12.1. 유명인 팬
13. 여담14. 관련 기록
14.1. 역대 대표이사14.2. 역대 단장14.3. 역대 감독14.4. 역대 성적14.5. 역대 개인 성적(통산)14.6. 역대 개인 성적(단일시즌)14.7.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5. 지역 연고 학교16. 사건 사고1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wiki style="margin: -5px -15px; padding: 5px 15px;
[youtube(3dGkNgwTKtI)]
#!wiki style="margin: -5px -15px; padding: 5px 15px;
[youtube(3-dkJAIJ7z0)]
한화그룹 광고 - 한화 이글스편
불꽃 한화, 투혼 이글스!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연고지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충청도이며, 홈구장은 중구 부사동에 위치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다. 제2구장으로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사용 중이다. 2군은 서산 야구장을 사용하는 중이다. 모기업은 한화그룹이다.

2. 구단 소개

1986년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KBO의 제7구단으로 창단했다. 이글스라는 팀명은 일반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의 사망으로 인한 2세 승계 과정에서 차남 김호연의 몫으로 한화그룹의 식품 계열사 빙그레가 분할되어 빙그레 이글스는 구단명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참고로 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2년차에 탈꼴찌에 성공하고, 3년차에는 정규리그 2위, 4년차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거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파일:external/www.ggilbo.com/204309_148804_525.jpg
대전광역시를 대표하는 브랜드 3위에 뽑힌 한화 이글스 #[14]

연고지는 대전광역시이며 홈구장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이다. 이 구장은 원래 작은 편이었으나 2012년 시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외야 펜스를 뒤로 밀었다. 부연고지는 청주시이며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제2 홈구장이다. 2015년 시즌부터 강원도 춘천시의암 야구장제3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한 여건이 충분치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제2홈구장인 청주구장은 워낙 작아서 투수들의 무덤[15]으로 악명이 높다. 일명 한국의 쿠어스 필드.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은 서산 야구장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1999년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유일하다[16].

2015년 기준으로 팀 컬러는 일명 "마리한화"로 대표되는,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막상 안 보기에도 뭐하고,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고 이기고 있어도 왠지 질 것 같은 마약야구, 이겨도 뭔가 불안하게 이기는 야구가 팀 컬러가 되었다. 이 팀 컬러는 2018 시즌 한용덕 감독이 부임하면서 암흑기 동안 한화 팬임을 숨기던 팬들까지 다시 합세하게 만들 정도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야구로 다시 한 번 변모하게 된다.

이 성적 때문에 가을야구 진출 횟수도 적다고 생각하는데 통산 5위다. 어쩌면 10년 비밀번호만 없었어도 이렇게 약팀 취급은 받지 않을 것이다.

3.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역대 BI

역대 한화 이글스 BI
파일:binggrea.png 파일:Hanwha_Eagles_Logo_1994.pn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1986~1993 1994~2006 2007~

팀의 상징색은 주황색(빙그레 이글스 시절) - 빨강색(팀명 변경인 1994년부터 2007년 시범경기까지) - 주황색(한화그룹 CI 변경 후) 순으로 바뀌어 왔다.

1993년을 끝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변경 되면서 기존의 엠블럼을 다듬은 로고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한화그룹의 CI 변경과 함께 한화 이글스도 BI 변경 작업에 들어갔고 2007년 KBO 시범경기 직후 변경된 엠블럼을 발표했다.

파일:haoyo_logo.jpg
"Zhejiang Haoyu Industry & Trade Co.,Ltd(浙江昊宇工贸有限公司)"라는 중국 측량기계 생산 회사에서 한화 이글스의 2번째로 사용했던 로고를 무단 도용해서 사용중이다. 이 회사는 2004년에 만들어진 회사이므로, 이 회사에서 무단 도용한 것이 맞다.

4.1. 색상 일람

파일:한화구단공식색상표.png

5. 홈구장

한화 이글스 홈구장
홈구장 제 2구장 2군 구장 신축 예정 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서산 야구장 대전 베이스볼드림파크

5.1.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Daejeon_Hanwha_Life_Eagles_Park_Logo.png
파일:2018051001000548200000001.jpg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Daejeon Hanwha Life Eagles Park)

5.2.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청주구장이.jpg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Cheongju Baseball Stadium)

5.3. 서산 야구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산 야구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서산구장.jpg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서산전용연습구장
(Seosan Baseball Training Center)

6. 신인 드래프트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역대 신인 드래프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지명권 양도
1985 민문식 | 이상군 | 전대영 | 황종선 - 임순태
1986 곽영진 | 김상국 | 김수길 | 김현택 | 유해덕
윤홍식 | 이원일 | 이효봉 | 한연대 | 한희민
김연철 | 김정태 | 김종수 | 박재찬 | 박춘석
송영수 | 윤종오 | 이강호 | 이군노 | 이연수
이강돈 | 강정길
1987 김대중 | 이중화 | 안성수 이동석 | 이정훈 | 정상진 | 이상철 | 이규황 | 곽경탁 조용호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1988 송진우 | 장정순 | 조양근 김용민 | 곽동열 | 윤영환 | 오효근 | 김광윤 | 조상헌 | 정영진
1989 진정필 | 황대연 | 강석천 김락기 | 이종호 | 박선일 | 성군철 | 손경호 | 김성재
1990 김성한 | 지화동 진상봉 | 박상익
1991 양용모 김인권 | 임주택 | 김기열 | 김석연
조은상 | 박승국 | 이재근 | 신현대 | 이경진
1992 지연규 김재성 | 김홍집 | 김일혁 | 신일호 | 장명덕 | 서석기
1993 구대성 허준 | 지화선 | 이민호 | 권오영 | 고기성 | 원현식 | 김성열
1994 길배진 정진식 | 신진수 | 전형도 | 최호원
1995 신재웅 최명진 | 정의성 | 염규빈 | 이재형 | 신정균 | 강인권

연도 1차 지명 고졸 우선 지명 2차 지명
1996 홍원기 심광호
이상열
조성희
오중석 | 이영우 | 송지만 | 엄종수
김수연 | 김대헌 | 정영환 | 장재혁
김태형 | 조효상 | 임수민 | 서도원
이권철 | 조준혁 | 이덕영 | 박성진
김신완 | 유진호 | 이정선 | 주영대
하수성 | 천용호 | 양세규
1997 이성갑 고상천
오주상
지승민
백재호 | 고영준 | 강대호 | 최웅연
김동율 | 김대원 | 노상진 | 서성환
김해님 | 장순재 | 김준태 | 이동욱
1998 김민규 김재현
임광규
조현수
신경현 | 김장백 | 김기성 | 정주용
채상병 | 심재윤 | 김도윤 | 김기연
이용섭 | 마정길 | 박성창 | 최동연
1999 박정진 문용민 황우구 | 윤근주 | 신민기 | 전경일
곽주섭 | 한상훈 | 고영민 | 정병현
양재만 | 조용수 | 강정원 | 이양기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2000 조규수 이범호 | 전난수 | 권영근 | 고동진 | 조문기 | 조영민
허진석 | 김상엽 | 이창훈 | 방진호 | 조윤채 | 이상현
2001 김태균 김백만 | 유영민 | 서창호 | 박정근 | 백승룡 | 이화준
최대곤 | 한정석 | 김현우 | 이규민 | 최준원 | 오승택
2002 신주영 유혜정 | 정병희 | 정구연 | 임재청 | 송혁 | 최주녕
김경선 | 김태완 | 변정민 | 송광민 | 안영진 | 연경흠
2003 안영명 장순천 | 윤규진 | 맹진국 | 최민준 | 박성덕
김동훈 | 양승아 | 박대원 | 정민혁
2004 김창훈 송창식 | 최진행 | 박노민 | 정종민 | 김용국
2005 윤근영 양훈 | 전현태 | 윤현민 | 김동영
2006 유원상 류현진 | 양승진 | 정범모 | 신해수 | 장병탁 | 임기범 | 김성환
2007 장필준 | 최진호 김혁민 | 최연오 | 김강 | 김경택 | 서정 | 손재윤 | 장동웅 | 경정수
2008 박상규 윤기호 | 이희근 | 조성우 | 오선진 | 정대훈
2009 김회성 구본범 | 허유강 | 장민제 | 박성호 | 황재규 | 김강석

연도 전면 드래프트
2010 김용주 | 김재우 | 안승민 | 이상훈 | 이태양 | 김동빈 | 김경태 | 김경도 | 유재상 | 이성곤
2011 유창식 | 강경학 | 나성용 | 이영기 | 김용호 | 박병우 | 임신호 | 오준혁 | 문재현 | 박건우
2012 하주석 | 임기영 | 최우석 | 양성우 | 장철희 | 엄태용 | 김원석 | 김병근 | 공민호 | 윤승열
2013 조지훈 | 김강래 | 한승택 | 이충호 | 조정원 | 장운호 | 권시훈 | 김종수 | 이석현 | 김승현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2014 황영국 최영환 | 김민수 | 박준혁 | 박한길 | 조영우 | 정광운 | 이창열 | 서균 | 정우석 | 노태형
2015 김범수 김민우 | 김정민 | 이도윤 | 임석현 | 박준범 | 신세진 | 주현상 | 윤보성 | 김정호 | 박윤철
2016 김주현 김재영 | 이동훈 | 권용우 | 장진혁 | 염진우 | 김태연 | 김찬균 | 박상언 | 방윤준 | 강상원
2017 김병현 김진영 | 김성훈 | 박상원 | 원혁재 | 여인태 | 김지훈 | 박진수 | 김기탁 | 이주형 | 김명서
2018 성시헌 이승관 | 박주홍 | 정은원 | 이원석 | 임지훈 | 이성원 | 김민기 | 양경민 | 정문근 | 김진욱
2019 변우혁 노시환 | 유장혁 | 정이황 | 김이환 | 김현민 | 오동욱 | 김민석 | 조한민 | 허관회 | 박윤철
2020 신지후 남지민 | 한승주 | 임종찬 | 강재민 | 장웅정 | 최인호 | 최이경 | 박정현 | 김범준 | 김승일
2021 정민규 김기중 | 송호정 | 조은 | 장규현 | 배동현 | 조현진 | 이준기 | 김규연 | 안진 | 문승진

}}} ||

대전팜은 북일고, 대전고, 공주고, 청주고, 세광고 정도밖에 없어서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연고지역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고졸우선지명은 1999년 지명을 마지막으로 폐지, 연고 1차 지명도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가 부활했지만 22년부터 다시 폐지가 예정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었다는 점.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배출되었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게 되었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를 지명하였다. 22년도 역시 북일고의 1학년들 중 투수 최대어이자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힐 수준의 투수 유망주로 기대되는 심준석의 뒤에 지명받을만한 타자 최대어인 양재호가 있어, 심준석이 메이저로 직행하고 한화가 혹여나 꼴지를 하지 않으면 역사가 반복될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팜에서 특이점으로는 북일고가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는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돼서 1차지명 부활 후 비 북일출신 1차지명이 청주고 출신 황영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기에 반발도 많다.

이 때문에 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이 팀 내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거의 신인 픽의 방침은 하드웨어. 유난히 선수가 가진 하드웨어에 집중하여 뽑는 경향이 강했으며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무조건 떡대를 보고 픽하곤 했다.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가 오승환을 거르고 뽑았던 양훈. 투수진은 물론이고 야수진도 대체로 떡대를 우선적으로 봤는데 이 덕분에 떡대가 있기 좋은 코너 포지션의 거포 유망주는 항상 쌓아놓고 있었고, 10년대 후반 들어 팀 타선이 심각하게 막장화가 되기 이전까지 팀 내 주포역할을 해줄 장타능력을 갖춘 타자는 항상 한명씩은 데리고 있었다. 19시즌 이전 최악의 시즌이었던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반대로 야구 센스와 스킬을 장기로 삼는 작은 쌕쌕이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때문에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와 사이즈가 작아야 하는 내야 센터 라인의 선수들은 꾸준히 기근을 겪었다. 99년대 후반부터 장기간 1번타자로 뛰었던 이영우조차도 쌕쌕이 타입은 아니였다. 이영우가 군 입대후 커리어가 꺽인 뒤 강동우가 이 자리를 메꾸다가 결국 2013년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하면서 메꿧다. 이상할정도로 포수 자원을 수집하는 경향도 있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 그러나 지명 빈도와 투자에 비하면 육성능력 부족으로 결과물은 그러 그랬고 결국 포수도 트레이드로 틈을 메꿨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00년대 시즌 중반까지의 일반적인 픽 경향. 04년 이후 09시즌까지 신인 픽을 굉장히 개판으로 해왔으며 한화 이글스의 가장 큰 몰락 원인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신인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04년에 한화는 야구단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는 선수를 줄이는게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04년 5명 지명을 시작으로 하위 지명에서 대학에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뽑는 등 정식 계약을 해야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썻는데, 육성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몰락의 시작이 됬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지역 안배를 해준다고 지역출신에 실링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뽑았다가 역시나 별 성과를 못 내고 은퇴하는 것을 반복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첫 번째 실책은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혹사로 매년 필승계투 한두명을 갈아먹으면서 시즌을 보냈던 시절 그 갈아먹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투수픽에 픽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이었다. 이러한 발픽의 최고 절정은 2009년 지명이었다. 이 해에 7명 중 5명이 투수, 대졸로 상위를 다 채우는 노골적인 즉전감 불펜 수집을 시도한 것. 프로야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년대 이후로는 대졸 선수는 고교 때 프로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프로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화는 아예 작정하고 고졸로만 채워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위지명에서 포텐을 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것도 아니고 픽을 포기해버렸다. 결국 장기간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고졸 장민재였다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근시안적인 픽이 얼마나 팀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였다.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뽑기도 했지만, 육성 파트에서도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아줫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했다. 김혁민이나 유원상, 허유강황재규 등 짧은 기간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도 존재하긴 했으나 몇몇은 가능성만 보여줬고 몇몇은 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고, 최진호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이 시기에 야수쪽에 픽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그나마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에 집중하면서 픽을 했다. 1차 지명인 박상규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 박상규와 김회성이 붕괴한 지역 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픽한 자원임을 고려하면 정말로 제대로 상위에서 지명한 아수는 김강과 오선진 단 두사람인 것. 하위 픽을 한 선수도 몇 명 없었으며 당연히 오래 못가 방출되었다.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때웠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한화 프런트는 2010년에 들어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허둥지둥 드랩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된다. 10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으로 2지명 김재우를 지명하고 4지명 이상훈을 데려오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이러한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았지만, 트레이드 된 오준혁이나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경학을 제외하면 전부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아예 전체 1픽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에 사용하면서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떡대와 하드웨어를 보고 픽하는 경향을 버리고 쌕쌕이 위주로 픽을 하였다. 양성우같은 선수들이 대표적. 10지명에서 1차 지명으로 라이트팬 조차도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평가받던 북일고의 에이스 김용주를 1지명하는 등 지역 안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임기영, 이태양, 오준혁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한 해에 하나 둘 씩은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오랜 드래프트에서의 삽질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한화의 편이 아니였다.

하필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던 그 때 신생팀들이 창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기에 언급된 하주석도 NC가 우선지명으로 두명의 선수를 데려가고 남은 선수였고, 1년뒤에는 지역고교인 북일고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인 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wiz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뿐이었다. 이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4년에도 kt wiz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이자 조선족이라 군면제가 기존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

게다가 김응룡-김성근 감독 시기에 한 해에 한두명씩 주웠던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이 시기에 다수 유출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건 각 감독의 항목으로 넘기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출들이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 타선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하필 김원석같이 재능은 보였으나 사고를 치고 은퇴한 선수들이 있었다는 점도 불운 중 하나였다.

원인이 뭐였던 간에 10년대 초반의 픽은 결과적으로 몇년에 걸쳐 실패를 겪었고, 이 시기에 배출한 주전은 하주석과 이태양 단 두명이며 이태양은 18년 이후로 하락세 후 트레이드, 하주석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기간 2군에서 육성자원으로 분류되면서 팀에 잔류하고 있던 어린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점이 위안거리.

04년~09년, 10년~15년까지의 두 시기에 이어 세번째 시기는 김민우-김범수라는 두 선발 유망주를 동시에 배출해낸 15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16시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5시즌만 하더라도 지역안배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했으나 이 이후로는 기존 드랩 기조를 완전히 버렸다. 지역안배를 완전히 버렸으며 투수진도 하드웨어와 제구를 중점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구위를 위주로 보고 있으며, 야수의 경우에는 매년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보강하는 식으로 픽하고 있다. 이 이후의 신인 픽들은 전처럼 발픽은 절대로 아니고, 아직 온전히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지나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다.

투수쪽의 경우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꾸준히 한두명씩 패전처리라도 할만한 선수를 뽑아내면서 픽도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육성 시스템도 마침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투수진이 무너진 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투수층이 생기고 있다. 특히 18년도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박상원을 제외하면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하게 1군에서 버텨줄만한 선수들은 정말 오랫만에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필승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어린 투수들이라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 고무적.

야수진은 아직도 애매. 18년에 역대 한화 내야 센터라인 신인 중 가장 좋은 페이스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정은원을 뽑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선수들은 전부 큰 결점을 보이면서 1군에 적응하는데 실패, 특히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야수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 20시즌 야수진 대붕괴의 원인. 이 때문에 18시즌 정도부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과감하게 상위 드랩권을 전부 야수에 몰빵한 19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장타력을 갖춘 야수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시작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이런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2군 북부리그에서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최종적인 결과는 좀 더 시간을 보고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육성쪽으로 공을 넘길 정도의 성과는 내는 중.

7. 영구결번

한화 이글스 영구결번
파일:35장종훈.png 파일:23정민철1.jpg 파일:21송진우1.jpg
장종훈
(2005.09.15)
정민철
(2009.09.12)
송진우
(2009.09.23)

KBO 소속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17]와 함께 가장 많은 수인 3개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신용과 의리'를 그룹 이념으로 하는 구단답게 프랜차이즈 스타는 확실히 챙겨주는 한화의 팀 컬러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구결번 지정된 순서대로 쓰면 아래 하위 문서의 순서와 같다.[18]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3명 모두 이글스의 연고지역인 충청권 출신이자[19] 원 클럽 플레이어다.[20]

영구결번 지정순서대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3루 측 상단 관중석 하단에 기념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21]

2018 시즌에는 35번21번의 주인이 코치로 돌아오며 본인의 영구결번을 재사용했으나 2020 시즌 두 사람이 다시 이글스를 떠나면서 영구결번으로 남게 됐다.

송진우 이후의 영구결번 후보로는 김태균류현진이 유력하다.[22] 류현진은 한국과 미국의 커리어를 합한다면 역대 한국야구 사상 최고 투수의 반열에 올랐고, 김태균은 현역 선수 가운데 최고의 KBO리그 커리어 비율, 누적 스탯을 기록하며 타 구단의 영구결번급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커리어를 보유했고, 둘 다 20대 초반부터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팀의 마지막 전성기와 암흑기를 지탱한 선수들이다. 더구나 이병규박용택처럼 우승 커리어가 없어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 일이 있는 만큼 영구결번에 대한 논란도 없을 듯하다. 일단 김태균은 2020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2021 시즌 중 은퇴식 거행 가능성이 큰 만큼 2009년 이후 12년 만에 네 번째 영구결번이 탄생할 수도 있다.

7.1. No.35 장종훈

파일:장종훈선수 장전드.png
No.35 한화 이글스
장종훈
(張鍾熏 / Jong-hoon Ja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유격수 홈런왕 (1990)
KBO리그 최초의 시즌 40홈런 타자 (1992)

7.2. No.23 정민철

파일:external/file.mk.co.kr/20110112aa001.jpg
No.23 한화 이글스
정민철
(鄭珉哲 / Min-Chul Jung)
주요 기록
최연소 100승 달성 (1999)[23]
다승, 탈삼진, 이닝, 평균자책점, WHIP, 완투, 완봉승 1위 (1992-1999)

전성기 시절 55번을 사용했지만 2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여 논란이 있었다. 은퇴 당시 프런트에서 영구 결번으로 55번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지만, 그 경우 후배에게 물려준 번호를 뺏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정민철 스스로 포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정민철 기타 문단확인.

7.3. No.21 송진우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209271104761006120.jpg
No.21 한화 이글스
송진우
(宋津宇 / Jin-woo Song)
주요 기록
유일무이 200승 투수 (2006)
유일무이 2,000탈삼진 투수 (2008)
유일무이 3,000이닝 투수 (2009)

8. 임시결번

8.1. No.99 류현진

파일:7040F253-8335-4CAF-B047-E6AE8C43FB17.jpg
No.99 한화 이글스
류현진
(柳賢振 / Hyun-Jin Ryu)

6년째 임시결번 '99', 류현진 향한 한화의 예우

99번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이 2006년 한화 입단 후 2012년까지 7년간 사용했던 등번호이다. 류현진은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에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99번을 달고 뛰었다. 만약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로 복귀한다면 99번을 다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24]

8.2. No.52 김태균

2020년 김태균의 은퇴발표 이후 새로 맞이하는 시즌인 2021년 등번호에 52번이 제외되었다.

9. 이글스의 스타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스타 플레이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 은퇴식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한화 이글스 역대 은퇴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이름 활약 기간[25] 날짜 비고
이강돈 1985년 ~ 1997년 1997년 8월 31일 최초의 은퇴식
이상군 1985년 ~ 1996년, 1998년 ~ 2001년 2001년 5월 31일
강석천 1989년 ~ 2003년 2003년 9월 20일
한용덕 1987년 ~ 2004년 2005년 4월 5일
장종훈 1986년 ~ 2005년 2005년 9월 15일 영구결번
정민철 1992년 ~ 2009년 2009년 9월 12일 영구결번
송진우 1989~2009년 2009년 9월 23일 영구결번
김민재 2006년 ~ 2009년 2010년 8월 6일 [26]
구대성 1993년 ~ 2000년, 2006~2010년 2010년 9월 3일
이영우 1996년 ~ 2010년 2010년 9월 18일
신경현 1998년 ~ 2013년 2013년 9월 14일
박찬호 2012년 2014년 7월 18일
송창식 2004년 ~ 2020년 미정
김태균 2001~2009년, 2012~2020년 미정
}}}}}}}}} ||

은퇴식을 잘 열어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의리와 신용'을 한화 그룹의 슬로건으로 삼은 김종희김승연의 철학 때문. 그래서인지 전 구단에서 3번째로 은퇴식이 많은 구단이다(1위는 LG 16회, 2위는 SK 13회)

영구결번 2명[27] 외에 구대성, 이영우까지 포함 2009~2010년 사이 무려 4명의 레전드가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송진우정민철의 은퇴식은 2주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은퇴식은 2014년 7월 18일 올스타전의 식전 행사로 열린 박찬호의 은퇴식이다.[28]

11. 응원

11.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역대 응원단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1대
조지훈
(2001)
2대
남성훈
(2002~2003)
3대
원명호
(2004)
4대
조성재
(2005)
5대
홍창화
(2006~2007)
6대
박홍구
(2008)
7대
홍창화
(2009~)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2021
응원단
}}} ||
{{{#!wiki style="margin: 0 -10px"
{{{#!wiki style="color:#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응원단장 장내 아나운서
홍창화 박준호
치어리더
김연정, 김유나, 김해리, 박소영, 박재령, 박지민, 서유림, 이소림 }}}}}}}}}

2021 한화 이글스 응원단
파일:2021 한화 이글스 응원단.jpg
홍창화^(응원단장)^, 박준호^(장내 아나운서)^, 김해리, 김유나, 김연정
박소영, 박재령, 이소림, 서유림, 박지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치어리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ff6600> 2021 시즌 한화 이글스 응원단
응원단장 홍창화
장내 아나운서 박준호
치어리더 팀장 김연정
치어리더 김연정, 김유나, 김해리, 박소영, 박재령, 박지민, 서유림, 이소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응원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1.2. 마스코트

한화 이글스 마스코트
파일:위니.jpg 파일:비니.jpg 파일:수리.png
좌측부터 위니 / 비니 / 수리이다.

위니와 비니가 결혼하여 낳은 자녀가 수리이며, 수리는 2016년생이다.

現 대표이사 박찬혁이 마케팅 팀장 시절에 수리를 만들었다.

11.3. 구단 SNS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공식 SNS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2. 인기와 팬덤

파일:한화팬들.jpg
파일:대전팬들.jpg
파일:이글스팬들.jpg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

광역연고 개념으로 보면 연고지인 대전과 제2연고지인 청주를 비롯한 충청권 전역이 한화 이글스의 연고 지역이다. 팬 밀집지를 들자면 대전제2 홈구장이 있는 청주, 한화 전통의 팜 북일고가 있는 천안, 2012년 최저연봉으로 한화에 입단한 MLB 124승 투수의 고향 공주, 그리고 한화 이글스 팜의 야구부가 있는 홍성군과 새로이 생겨난 대한민국 최고의 신도시 세종시 등의 인구 밀집지를 들 수 있다. 다른 도와 달리 매우 성장하고 있는 충청도와 함께 발맞춰 팬도 많아지고 있다. 잠실, 문학, 고척, 수원 원정경기를 매진시키는 것을 보면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를 포함해서 경기도 등 수도권에도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29][30]

팀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기나긴 암흑기를 겪었지만 이전부터 한화 팬덤은 조용하지만 탄탄했다. 대전, 충청 전역을 위시해 충북 대다수 지역들이 한화의 지지기반 지역이다.[31]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한화 팬덤은 잘 나갈때 보다도 오히려 암흑기 때 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의 대상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놀림들과 나는 행복합니다부처님 탈을 쓰고 목탁을 든 팬 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런 개그 짤들로 한화 이글스를 알게 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비록 약팀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하면서도 늘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착한 팬덤이라는 이미지가 감동적으로 보인 덕분에 높은 인기를 구사하게 되었다는 점이 팬 증가의 이유로 흔히 지목된다.

이처럼 #나는_행복합니다, #오늘도_졌다, #보살, #부처, #해탈, #한화는_못말려 등등의 한화를 대표하는 어구나 단어들은 해시태그로 쓰기 좋다는 점이 SNS를 주로 하는 여성들한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는지 여성 팬들의 유입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검색 결과는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에 비해서 월등히 많다. 이는 카프조시라고 불리는 히로시마의 여성 팬들과 암흑기에 유입된 점, 연고지와 관련이 없지만 팬이 된 점, 응원 방식에 재미를 느껴서 팬이 된 점 등등이 상당히 유사하다.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남성들 사이에서도 한화의 인기는 증가했다. 여성들이 착한 팬덤에 끌린 것과는 정 반대로 이쪽은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칰칼코마니, 핫도그녀 등등 개그 구단의 이미지에 끌린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에서는 한화팬이라는게 자학개그성 드립에 용이하기도 하고,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화는 알기 때문에 이걸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며[32] 관심 끌기도 좋은 이유 덕분에 BJ, 스트리머, 유튜버, 페북스타, 트위터리안 등등 인터넷 유명인들 중에는 한화팬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더구나 김성근이 감독으로 오면서 노리타들의 유입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근성있는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으며 성적도 예년에 비해 상승하여 이것이 호재로 작용해 2015년부터는 평균 시청률도 KBO 1위를 하는 등 점점 더 팬덤이 견고해지고 있다. 비록 2016년에 다시 성적이 하락했지만, 2017년에는 김성근을 경질하며 한화 팬덤의 암적 존재인 노리타들도 숙청해내는 등의 성과도 있었고, 새로이 주류를 차지한 팬들은 성적을 보고 이 팀을 응원한게 아니라서 그런지 여전히 충성스러운 팬심을 자랑한다. 2018년엔 큰 논란 없이 흥행하는 성과를 보이면서 대전구장은 연일 매진에 원정구장까지 수많은 팬들이 찾아가 구장을 매진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33]

한화 이글스 말고 한화 팬덤 자체도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은데 앞서 말한 부처님 탈을 쓴 팬, 목탁을 치던 팬 외에도 핫도그녀, 해탈한 표정의 어린이 팬 등등의 짤들이 유행했다..

원래부터 골수 한화팬들 중에는 유입 팬들의 이런 면[34]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그런 감정은 좀 누그러진 편.

물론 대다수 팬들은 이러한 면을 보고 팬이 된 라이트 팬들과 다르게 보살드립을 싫어하는건 확실히 맞다. 한화의 인기를 상승 시키는데 보살드립이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구단 자체가 희화화 되었고 팬들 또한 승리를 위해 한화를 응원함에도 패배 자체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프레임이 생겨났기 때문. 애초에 이런 프레임 자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딨을까(...). 라이트 팬층에선 여전히 한화팬과 결혼하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 같은 보살드립의 파생형들을 두고 즐기고 있으나 이런 라이트 팬들이 점점 빠져들어 헤비 팬이 되고나면 이들도 이랬던 과거를 부정하고 보살드립을 싫어하게 된다. 당장 유병재가 2018년에 한화 구단에서 시구를 했을때 나왔던 반응은, "팬들과 한화 선수들을 희화화 해놓고 어딜 시구하러 등장하냐"는 반응이 주를 이뤄 유병재를 비판 했었다.[35] 즉, 유병재만 해도 본인이 밝힌 것처럼 그간 한화팬이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라이트 하게 야구를 보며 보살드립을 하고 다니던 과거 모습에서 시간이 지나며 시구까지 하게 될 정도로 한화팬이 된 상태에선 보살드립들을 일절 언급을 하지 않으며 이를 배척하는 팬으로 발전 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시구 과정에서 크게 까인거 때문에 안하는걸수도 있다.

이러한 한화의 인기를 부정하는 측에선 한화의 최다 관중 수(문서 상단의 프랜차이즈 기록 참고)가 타 팀보다 현저히 적은 것을 근거로 삼는데 이는 홈구장인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청주구장의 총 관중수를 합해도 23,500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36][37] 그렇기 때문에 한화로썬 1년에 있는 대전 홈경기를 모두 매진 시켜도 936,000명 밖에 채우지 못 한다. 청주경기가 모두 매진 된다는 가정하에 합하면 겨우 100만명이 넘어가는 수준. 그런 상황에서 70만명을 초과해 최다 관중을 찍었는데도 한화가 비인기 구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홈구장이 아닌 잠실, 문학 같은 대형구장에서 원정 경기가 열려도 한화팬들이 3루를 꽉 채우는 상황이 늘 연출된다. 아예 2018년 원정구단 관중수 통계에서 전통적으로 원정팀의 팬수 덕에 인기팀 반열에 오른 KIA, 롯데를 꺾고 1등을 차지하여 한화가 인기팀이라는 수식어를 다는데 문제 없게 되었다.

또한 인기의 척도로 떠오르고 있는 케이블 시청률 면에서도 한화는 전국구 인기팀인 KIA-롯데 다음급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KBO리그 시청률 TOP10 리스트를 보면 2018년에는 한화의 경기가 5경기로 KIA-롯데에 이어 세 번째, 2019년에는 6경기로 KIA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올라가 있다. 2018년 KBO리그 시청률 TOP10, 2019년 KBO리그 시청률 TOP10 한국갤럽이 매년 조사하는 프로야구 선호도 조사에서도 한화는 2015년부터 KIA-롯데-삼성에 이어 4위를 꾸준히 마크하고 있다. 각종 데이터 측면에서 적어도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한화가 명실상부 KBO 인기 구단 반열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2020년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 한화 이글스를 좋아한다는 응답이 10개 구단 중 5위이며, 특히 18-29세 연령대에서는 11%로 전체 1등을 차지하며 젊은층의 높은 팬심이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노시환, 정은원, 김민우, 강재민, 김범수 등 젊은 피들이 점차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수베로 감독 등 외국인 코칭스태프 사단의 부임 역시 젊은 팬들의 유입에 긍정적인 요소다.

네이버 스포츠 MY팀에서도 한화 이글스를 관심 팀으로 설정해놓은 사람이 KBO 타 구단보다 많다. 2020년 6월 기준, 한화 이글스가 약 33만명, 그 뒤를 32만명의 KIA 타이거즈가 쫓고 있다. 의외로 팬덤이 크기로 유명한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는 20만명대.

여전히 80~90년대에 날렸던 아재 팬덤이 많은 기아, 롯데, 삼성과는 달리,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50대 이상의 직관이 줄어들고 20~40대가 다수를 차지하게 됨으로서 관람객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38]

인기가 많은 구단인 것과는 별개로,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악성 훌리건도 많았던 구단이다[39]. 구단 측에서 관람석 보안 관리를 빡세게 한 이후로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세대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에게는 훌리건 문화가 세습되었는지[40] 관람석에서 몰지각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어쨌든 높은 젊은층의 인기와 KBO리그 자체의 높은 인기덕에 한화 구단과 일반 대중 브랜드와의 일명 콜라보레이션으로 불리는 협업 기획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일반 기성복 브랜드이자, 콜라보 상품이 주력 상품인 스파오, 슈펜과 협력하여 팀 콜라보 의류 및 신발을 출시하기도 했었는데, 2019년엔 슈펜에서 KIA와 함께 진행했고, 2020년엔 스파오에서 LG와 함께 진행했다. 또한 식품 업체인 풀무원, CJ제일제당, 하림과도 프로야구팀 최초로 콜라보 식품을 내놓기도 했는데, 2019년엔 풀무원과 "이글이글 마라탕면"이라는 라면 제품을 출시 했고, 2020년엔 CJ제일제당과 "이글이글 왕교자"라는 만두 제품을 출시했다. 또한 같은 해에 하림의 계열사인 선진포크와 "불꽃삼겹"이라는 간편식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때문에 위의 콜라보 의류나 콜라보 식품들이 유통되었던 기간에는 야구장과 관련 판매점이 아닌 일반 인터넷 쇼핑몰과 번화가에 있는 의류 판매점, 대형마트, 백화점 그리고 동네에 있는 평범한 마트나 슈퍼에서 한화 이글스의 로고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21년 시즌에는 왓챠와의 합작으로 한 시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국내 스포츠 팀 최초로 제작할 예정이다.[41] 이 소식을 들은 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인데, 죽어도 이글스 드립이 나오기도 하는 등 낮은 성적 때문에 내용이 좋지 않게 될까봐 우려를 하는 팬들이 많을 정도.[42]

12.1. 유명인 팬

대체적으로 개그맨들이 많은 것이 특징(#)[43]. 한화 이글스 지역 연고 출신(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광역시)인 경우도 있고(★),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가 한화팬이거나 혹은 계열사에서 일해 유입된 경우도 있다(☆).

13. 여담

14. 관련 기록

14.1. 역대 대표이사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
역대 이름 재임기간 비고
초대 노정호 1985년 8월 27일 ~ 1988년 7월 20일 구단 초대 사장
2대 김영규 1988년 7월 21일 ~ 1989년 8월 30일 한화 계열사[62] 대표이사 겸임
3대 정인현 1999년 8월 31일 ~ 1995년 12월 21일 한화그룹 비서실장 겸임
4대 옥종석 1996년 1월 3일 ~ 1996년 12월 15일 한화그룹 회장실 전무 겸임
5대 이남헌 1996 12월 16일 ~ 2002년 11월 25일
6대 이경재 2002년 11월 26일 ~ 2010년 8월 11일 구단주 대행[63]
7대 김관수 2010년 8월 12일 ~ 2011년 5월 15일
8대 정승진 2011년 5월 17일 ~ 2014년 11월 10일
9대 김충범 2014년 11월 11일 ~ 2015년 3월 2일
10대 김신연 2015년 3월 3일 ~ 2018년 11월 9일
11대 박정규 2018년 11월 12일 ~ 2020년 9월 3일
12대 박찬혁 2020년 11월 10일 ~ 구단주 대행[64]

이경재 대표이사 시기부터 직함이 사장에서 대표이사로 변경 되었다. 그룹 내에선 부사장 대우를 받는다.

14.2. 역대 단장

한화 이글스 단장
역대 이름 재임기간 비고
초대 노진호 1985년 8월 27일 ~ 1994년 1월 4일 구단 초대 단장
2대 김광식 1994년 1월 24일 ~ 1995년 12월 21일
3대 김진경 1996년 1월 11일 ~ 1997년 10월 17일
4대 황경연 1997년 10월 18일 ~ 2004년 2월 1일
5대 송규수 2004년 3월 1일 ~ 2007년 12월 13일 부단장 출신
6대 윤종화 2007년 12월 28일 ~ 2011년 5월 15일 부단장 출신
7대 노재덕 2011년 5월 17일 ~ 2015년 5월 10일
8대 박정규 2015년 5월 11일 ~ 2016년 11월 2일
9대 박종훈 2016년 11월 3일 ~ 2019년 10월 4일 구단 최초 야구인 단장
10대 정민철 2019년 10월 8일 ~ 구단 최초 선수 출신 단장

그룹 내에서 상무 대우를 받는다.

14.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6600><tablebg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역대 감독
(빙그레 시절 포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대 2대 3대 4대
배성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1987)
김영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1993)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1998)
감독대행
이희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이희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0)
5대 6대 7대 8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2)
유승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4)
김인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09)
한대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2)
감독대행
한용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9대 10대 11대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4)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7)
감독대행
이상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
한용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20)
감독대행
최원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12대 파일:HanwhaEagles_Brandlogo1.png
수베로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021~)
}}}}}}}}} ||

한화 이글스 감독
역대 이름 재임기간 성적 비고
초대 배성서 1986.03.01~1987.10.13 216전 78승 133패 5무 승률 0.370 최초의 이글스 감독
2대 김영덕 1987.10.14~1993.11.23 726전 415승 294패 17무 승률 0.585 한국시리즈 총 4회 진출[65]
3대 강병철 1993.11.23~1998.07.07 568전 270승 291패 7무 승률 0.481
4대 이희수 1998.07.08~2000.11.08 327전 148승 169패 10무 승률 0.467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5대 이광환 2000.11.09~2002.10.31 266전 120승 137패 9무 승률 0.467
6대 유승안 2002.10.31~2004.11.13 266전 116승 139패 11무 승률 0.455 최초의 이글스 선수 출신 감독
7대 김인식 2004.11.14~2009.09.25 637전 308승 321패 8무 승률 0.490
8대 한대화 2009.09.26~2012.08.27 371전 147승 218패 6무 승률 0.403 최초의 충청도 태생 감독[66][67]
감독대행 한용덕 2012.08.27~2012.10.14 28전 14승 13패 1무 승률 0.519 최초의 이글스 감독대행
9대 김응용 2012.10.15~2014.10.24 256전 91승 162패 3무 승률 0.360 역대 이글스 감독 최저 승률
10대 김성근 2014.10.25~2017.05.22 331전 152승 176패 3무 승률 0.463
감독대행 이상군 2017.05.23~2017.10.29 101전 43승 56패 2무 승률 0.434 역대 최장기 감독대행
11대 한용덕 2017.10.30~2020.06.07 312전 142승 170패 0무 승률 0.455 최초의 한화 감독대행 출신 감독
감독대행 최원호 2020.06.08~2020.11.26 114전 39승 3무 72패 승률 0.351 최초의 해설위원 출신 감독대행
12대 카를로스 수베로 2020.11.27~ 최초의 외국인 감독
역대 감독 목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에서 굵직한 기록을 세웠던 노장 축에 속하는 감독들(김영덕, 강병철, 이광환,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이 이글스를 거쳤던 적이 있다. 이 중 김영덕,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의 마지막 1군 감독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이른바 KBO에서 자신만의 일가를 이뤘다고 하는 대감독 3명(이광환, 김응룡, 김성근)이 거쳐갔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것은 이광환 감독밖에 없고[68] 김응룡, 김성근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모두 실패하였다.

특히 이런 감독 특성은 한화 이글스 팬덤이 혹사에 다른 팬덤 이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는데, 김영덕 감독의 중무리 야구, 최동원염종석 등 롯데 시절 혹사로 유명한 강병철 감독[69]을 빙그레 시절 이미 경험했다. 게다가 쓰는 선수만 쓰는 김인식 감독,[70] 해태 타이거즈 시절 습관을 전혀 버리지 못한 김응룡 감독 등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감독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여기에 2015년 김성근 감독의 희대의 혹사를 만났으니, 팬덤이 폭발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

그 길고 길었던 암흑기가 한화로 돌아온 한용덕 감독의 첫 해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바로 깨졌다. 그러나 20시즌 창단 이래 최다연패 14연패를 기록하면서 한용덕 감독은 자진사퇴를 했다.

한용덕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2군 감독이였던 최원호 감독이 감독대행으로 등록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로 물갈이를 시전, 코칭 스탭과 선수 대부분을 말소 및 등록했다. 그러나 연패는 계속 되었고 결국 KBO리그 최다 연패를 기록한 삼미 슈퍼스타즈와 같은 기록인 18연패를 달성했으나 2020년 6월 12일 두산을 상대로 연패를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14.4. 역대 성적

우승
­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한화 이글스 역대 성적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구단명 경기수 승률
1986 7위/7팀[71] <colbgcolor=#0066b3> 7위 빙그레 이글스 108 31 76 1 0.290
1987 6위/7팀[72] 6위 108 47 57 4 0.454
1988 2위/7팀[73] 준우승 108 62 45 1 0.579
1989 1위/7팀 준우승 120 71 46 3 0.604
1990 3위/7팀 3위 120 68 50 2 0.575
1991 2위/8팀 준우승 126 72 49 5 0.591
1992 1위/8팀 준우승 126 81 43 2 0.651
1993 5위/8팀 5위 126 61 61 4 0.50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구단명 경기수 승률
1994 3위/8팀 3위 한화 이글스 126 65 59 2 0.524
1995 6위/8팀 6위 126 55 71 0 0.437
1996 3위/8팀 4위 126 70 55 1 0.560
1997 7위/8팀 7위 126 51 73 2 0.413
1998 7위/8팀 7위 126 55 66 5 0.455
1999 매직 2[74]/4팀 우승 132 72 58 2 0.554
2000 매직 3위/4팀 3위[75] 133 50 78 5 0.391
2001 4위/8위 4위 133 61 68 4 0.473
2002 7위/8팀 7위 133 59 69 5 0.461
2003 5위/8팀 5위 133 63 65 5 0.492
2004 7위/8팀 7위 133 53 74 6 0.417
2005 4위/8팀 4위 126 64 61 1 0.512
2006 3위/8팀 준우승 126 67 57 2 0.54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수 승률
2007 3위/8팀 3위 126 67 57 2 0.540
2008 5위/8팀 5위 126 64 62 0 0.508
2009 8위/8팀 8위 133 46 84 3 0.346
2010 8위/8팀 8위 133 49 82 2 0.368
2011 6위/8팀 6위 133 59 72 2 0.450
2012 8위/8팀 8위 133 53 77 3 0.408
2013 9위/9팀 9위 128 42 85 1 0.331
2014 9위/9팀 9위 128 49 77 2 0.389
2015 6위/10팀 6위 144 68 76 0 0.476
2016 7위/10팀 7위 144 66 75 3 0.468
2017 8위/10팀 8위 144 61 81 2 0.430
2018 3위/10팀 3위 144 77 67 0 0.535
2019 9위/10팀 9위 144 58 86 0 0.403
2020 10위/10팀 10위 144 46 95 3 0.326
KBO 통산 34시즌 V1 4525 2083 2357 85 0.469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는 리그에서 손 꼽히는 강팀이었지만, 한화 이글스로 팀 명을 바꾼 이후에는 모 팀에 가려서 그렇지 S급 스타가 많은 것에 비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일례로, 한화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정규시즌 승률 1위, 2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 게다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야구 붐이 일어난 이후인 2008년부터 급속도로 팀 전력의 막장화가 이어졌었고, 암흑기 시절 롯데, LG 뺨치는 KBO 역사에 남을 암흑기를 보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유입된 야구팬들에게는 KBO의 대표적인 약체 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2017년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LG 트윈스만이 가지고 있던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에 타이 기록을 세운 후 2018년에 드디어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11년만에 맞이하는 포스트시즌에서 코치진들의 경험부족 및 선수들의 긴장감 등이 겹치면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내어주며 포스트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14.5. 역대 개인 성적(통산)

진하게 표시된 것은 역대 기록 1위
한화 이글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빙그레-한화 소속 기간
등판경기 박정진 691경기 1999~2018
선발등판 송진우 377경기 1989~2009
완투 송진우 64완투 1989~2009
완봉 정민철 20완봉 1992~1999, 2002~2009
승리 송진우 210승 1989~2009
패전 송진우 153패 1989~2009
세이브 구대성 214세이브 1993~2000, 2006~2010
홀드 박정진 96홀드 1999~2018
이닝 송진우 3003이닝 1989~2009
탈삼진 송진우 2048개 1989~2009
피안타 송진우 2718개 1989~2009
피홈런 송진우 272개 1989~2009
볼넷 송진우 1155개 1989~2009
사구 한용덕 119개 1987~2004
한화 이글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빙그레-한화 소속 기간
출장경기 장종훈 1950경기 1986~2005
타석 김태균 7971타석 2001~2009, 2012~2020
타수 김태균 6681타수 2001~2009, 2012~2020
타율 김태균 0.323 2001~2009, 2012~2020
출루율 김태균 0.424 2001~2009, 2012~2020
장타율 제이 데이비스 0.533 1999~2002, 2004~2006
안타 김태균 2161안타 2001~2009, 2012~2020
2루타 김태균 388개 2001~2009, 2012~2020
3루타 이강돈 38개 1985~1997
홈런 장종훈 340개 1986~2005
타점 김태균 1329타점 2001~2009, 2012~2020
득점 장종훈 1043득점 1986~2005
도루 강석천 192도루 1989~2003
볼넷 김태균 1111개 2001~2009, 2012~2020
사구 장종훈 131개 1986~2005
삼진 장종훈 1354개 1986~2005

14.6. 역대 개인 성적(단일시즌)

한화 이글스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권혁 78경기 2015
선발등판 서폴드 31경기 2019
완투 이상군 24완투 1987
완봉 이상군 4완봉 1986
한희민 1988
한용덕 1991
정민철 1994
1996
1997
승리 송진우 19승 1992
패전 장명부 18패 1986
세이브 구대성 37세이브 2006
홀드 박정진 16홀드 2011
이닝 이상군 246.2이닝 1987
탈삼진 류현진 210개 2012
피안타 이상군 233개 1987
피홈런 안영명 34개 2009
볼넷 세드릭 바워스 104개 2007
사구 김인권 19개 1991
한화 이글스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시즌
타율 김태균 0.365 2014
출루율 김태균 0.476 2016
장타율 윌린 로사리오 0.661 2017
타석 김태균 652타석 2016
타수 정근우 575타수 2016
안타 김태균 193안타 2016
2루타 제라드 호잉 47개 2018
3루타 이정훈 12개 1991
홈런 댄 로마이어 45개 1999
타점 김태균 136타점 2016
득점 정근우 121득점 2016
도루 김수연 42도루 2001
볼넷 김태균 108개 2016
사구 송지만 19개 1998
삼진 이성열 143개 2018

14.7.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88PO: 3승
90준PO: 2패
91PO: 3승 1패
06KS: 1승 1무 4패
07준PO: 2승 1패
준PO 1승 1패, PO 2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9승 1무 8패
KIA 타이거즈 88KS: 2승 4패
89KS: 1승 4패
91KS: 4패
94준PO: 2승
06준PO: 2승 1패
준PO 2승,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7승 13패
롯데 자이언츠 92KS: 1승 4패
99KS: 4승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5패
현대 유니콘스 94PO: 3패
96준PO: 2패
06PO: 3승 1패
준PO 1패,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6패
두산 베어스 99PO: 4승
01준PO: 2패
05PO: 3패
07PO: 3패
준PO 1패, PO 1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SK 와이번스 05준PO: 3승 2패 준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키움 히어로즈 18준PO: 1승 3패 준PO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1승 3패

15. 지역 연고 학교

1차 드래프트에서 가장 이득을 보지 못한 팀중 한팀이며, 1차 지명자를 방출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부실한 연고지 팜으로 유명하다. 암흑기가 시작되자 신생팀 창단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드래프트 픽에서 손해를 많이 보기도 했다.

16. 사건 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KBO 리그 로고.svgKBO 리그
역대 우승팀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e5e5e5
연도 우승팀 우승 횟수
1982 파일:attachment/OB_Bears.png OB 베어스
1회
1983 파일:k-2_rh123456k.gif 해태 타이거즈
1회
1984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롯데 자이언츠
1회
1985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 삼성 라이온즈
1회
1986 파일:k-2_rh123456k.gif 해태 타이거즈
5회
1987
1988
1989
1990 파일:LGTwins_1990.png LG 트윈스
1회
1991 파일:k-2_rh123456k.gif 해태 타이거즈
6회
1992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롯데 자이언츠
2회
1993 파일:k-2_rh123456k.gif 해태 타이거즈
7회
1994 파일:LGTwins_1990.png LG 트윈스
2회
1995 파일:attachment/OB_Bears.png OB 베어스
2회
1996 파일:32zZQzk.png 해태 타이거즈
9회
1997
1998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현대 유니콘스
1회
1999 파일:Hanwha_Eagles_Logo_1994.png 한화 이글스
1회
2000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현대 유니콘스
2회
2001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png 두산 베어스
3회
2002 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 삼성 라이온즈
2회
2003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현대 유니콘스
4회
2004
2005 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 삼성 라이온즈
4회
2006
2007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2회
2008
2009 파일:external/s20.postimg.org/KIAtigersold.png KIA 타이거즈
10회
2010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3회
201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8회
2012
2013
2014
2015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5회
2016
2017 파일:KIATIGERS_1.png KIA 타이거즈
11회
2018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SK 와이번스
4회
2019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6회
2020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1회
}}}}}}}}}}}}}}} ||


파일:한화로고.png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f1592a> 계열사
방산 (주)한화(화약·방산 | 무역 | 기계) ·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디펜스 | 한화시스템 | 한화테크윈 | 한화정밀기계)
화학 한화솔루션(갤러리아백화점 | 타임월드) · 한화종합화학 · 한화토탈 · 여천NCC
에너지 한화파워시스템 · 한화에너지
금융 한화생명 · 한화손해보험 · 한화투자증권 · 한화자산운용 · 한화저축은행 · 캐롯손해보험
서비스 한화건설 · 한화호텔&리조트 · 한화63시티 · 한화역사
학교법인 북일학원 북일고등학교 · 북일여자고등학교
스포츠 부문 한화 이글스 · 한화생명e스포츠(카트라이더 · 리그 오브 레전드) · 한화큐셀 골프단 · 한화갤러리아 승마단
}}}}}}}}} ||

{{{#!wiki style="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tablebordercolor=#00ae4d><tablewidth=250><tablebgcolor=#00ae4d>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KBO리그 K리그2 남자프로배구 여자프로배구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 파일:DHFC_basiclogo.png 파일:Bluepangs_Logo.png 파일:KGC_Volleyball.png
한화 이글스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대전 KGC인삼공사
대전광역시 연고 기타 구단 보기
}}}}}}}}} ||



[1]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2]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 그 뒤, 1995년에 대전광역시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3]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연고지 제도가 광역 연고지에서 도시 연고지로 개편되며 표기에서 제외된 것일 뿐 1차 지명권이 박탈되거나 한 건 아니다. 대전엔 1차지명 고교가 1곳이지만 충청남북도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충남 - 공주고등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홍성광천고등학교 / 충북 - 청주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강원도 영서 지역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1차 지명할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지역 연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4] 신축 야구장인 대전 베이스볼드림파크 사용 예정[5] 남성형 마스코트인 위니와 여성형 마스코트인 비니가 있고, 이 둘의 자식이란 설정의 수리가 추가되었다. 기타 항목 참조.[6] 2021년부터 각종 구단 의류와 키트에서 위팬 소유의 골드 로고를 볼 수 있다.[7] 2021년부터 모자를 뉴에라에서 제공받는다.[8] 파일:HanwhaEagles_Brandsymbol2.png
Eagles를 E로 줄인 엠블럼도 사용한다.
[9]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0,196명[10]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916명[1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가 일부 진행된 2020년부터는 제외함[12] 2016-2019년, 계약금 20억, 연봉 16억[13] 2016-2019년, 계약금 36억원, 연봉 12억[14] 참고로 이 조사는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였던 2014년 조사이다.[15] 2011년 9월 16일 당시에는 정규 이닝만으로도 홈런이 무려 7개나 나왔다.[16] 그래도 일본의 인기구단 한신보단 양반이다.[17] 이만수의 22번, 양준혁의 10번, 이승엽의 36번이 영구결번이다. 2017년 이승엽의 은퇴로 동률을 이루게 됐다.[18] 구대성의 15번은 당시 형편없던 프런트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의지가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은퇴식 당일,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이 그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기사도 있다.[19] 정민철만 대전 출신이고 장종훈송진우는 충북 출신이다.[20] 다만 정민철은 중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다가 돌아왔다.[21] 기존의 영구결번은 우측 외야에 큼지막하게 있었으나 구장 리모델링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22] 류현진이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함에 따라 등번호였던 99번은 현재 임시결번 상태로 사실상 영구결번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봐도 좋다.[23] 27세 3개월 2일, 그 후 NPB로 진출[24] 류현진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한화 복귀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류현진 "올해는 20승…언젠가 한화 100% 복귀"[25] 현역으로 이글스에서 뛰었던 연도만 기록.[26] 사실 김민재의 커리어를 보면 한화는 선수 말년에 온 곳이지, 전성기를 보낸 구단이 아니다. 오히려 전성기를 보낸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 1992년 우승 당시 박정태와 키스톤을 이룰만큼, 롯데의 주축 선수였다. 최동원과 더불어 한화가 타팀 선수들에게도 얼마가 관대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27] 장종훈의 경우는 2005년에 은퇴식이 거행되었으니 제외.[28] 만약 송창식과 김태균의 은퇴식 일정이 확정되면 박찬호가 아니라 송창식과 김태균이다.[29] 지리적으로도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이니만큼 수도권 지역에서도 팬층이 형성되는 요건은 충분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호남 상경민들과 영남 상경민들에게 가려져서 그럴뿐, 수도권에는 충청에서 올라온 상경민들과 그들의 자녀들도 상당히 많다.[30] 인천의 경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지인 중 충청권 출신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문학에서 KIA팬 다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한화팬이다.[31] 지금도 한화가 주말 경기를 하고 나면 KTX가 지나는 경부고속선 포함 경부선, 장항선, 충북선 열차와 당진영덕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의 휴게소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32]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한화팬이라는 글을 쓰면, 격려, 위로의 말부터 나는 행복합니다, 최강한화 등 같은 한화팬들이 덧글을 달아주는 등의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롯데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이런 반응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엠팍, 야갤과 같은 야구 전문 커뮤니티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야구 팬들 중 한화팬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다.[33] 2018년에는 팀 최고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덕에 감독님 덕에 인기 많아졌네 하는 노리타들의 헛소리들도 퇴치 되었다. 여러모로 한화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2018년이었다.[34] 지나칠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응원하는 등의 행동. 한화 이글스 갤러리같은 강성 팬덤에서는 야알못들이 한화에는 하나도 관심없으면서 인스타에 지들 보살 이미지 만들려고 한화팬인 척 해서 꼴보기 싫다는 식의 글들도 자주 올라왔었다. 물론 이런 글들은 바로 욕먹고 삭제되기 마련이었지만.[35] 특히 보살드립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SNS와 커뮤니티에서 주로 비판 여론이 나왔다.[36]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는 24,000석으로 대전과 청주를 합한 수보다 많다.[37] 참고로 무등 구장을 사용하던 시절의 KIA도 비슷한 논리로 비인기 구단 드립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챔필로 옮겨간 현재는 그런 주장은 사라진 상태.[38] 굳이 추론하자면 우승 기록이 단 한번밖에 없다는 한탄, 오랜 암흑기로 인한 불만,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점잖은 충청의 지역 성향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여 대전아재들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리고 포기하면 편해로 바뀐것일지도 모른다.[39] 대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문화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즐길거리가 있는 야구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정작 우승은 단 한 번 밖에 못한데다가 암흑기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훌리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40] 앞에서도 언급했듯 야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대전의 부실한 문화적 환경 + 비수도권 광역 도시 연고 구단들중에서 가장 우승 횟수가 적고 전력도 약했던 한화의 부진이 원인이다.[41] 넷플릭스에서 해외의 유수 스포츠 구단들과 촬영한 팀 다큐멘터리 같은 개념이다.[42] 대표적으로 한화팬들이 불쾌해 하는 보살드립 등이 있다.[43] 개그맨 중에서 충청도 출신 비율이 높다. 관련기사[44] 다만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시이다.[45] 정확히 말하면 원년 OB 베어스 팬이었는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새로 자리잡은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46] 마침 스페셜 DJ로 나온 날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최재훈이 게스트로 나오는 수요일이었다.[47] 당시 강인과 함께 야구장에 찾았는데 인터뷰에서 백현이 강인 덕분에 야구와 한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48] 2018년 준플레이오프는 99한화 우승을 이끈 이희수 전 감독, 구대성이 시구를 하였다.[49] 원래는 둘이 동명이인인데다 친분도 있는점 때문에 LG시절부터 포수 조인성이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왔으나 배우 조인성이 한화팬이라는 이유로 계속 고사해오다가 포수 조인성이 한화로 이적해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이 경기도 시구가 끝난 후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를 계속 보고 간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50] 힙합 그룹 M.I.B의 리더 출신,당시 쓰던 예명은 '오직'[51] 재밌는점은 허각이 마구마구 광고를 나왔을 당시에는 본인이 인천 출신이라 베이직팀으로 SK 와이번스를 골랐다. 물론 광고인지라 설정일수도 있고, 당시는 야구를 안 봤다는 등 이유는 있을수 있고 자세한건 불명이다.[52] 여담으로 등번호도 2번으로 달고 나왔다.[53] 빙그레 전성기에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렸다. 1991-1992년이 가장 강했으며 주요 타자로 1번 중견수 이정훈과 3번 1루수 장종훈이 있다. 이정훈은 2년 연속 타격왕(.348 .36)이었으며 장종훈은 3년 연속 홈런+타점 2관왕(35 41홈런 114 119타점)에 올랐다. 1992년에 팀 144개 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54] 파일:attachment/한화이글스/삼국전투기.jpg[55] 실제로 SK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인데도 SK 시절 염■■을 디스하는 야구팬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은 SK 와이번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것이다.[56] 당시 이글스 파크의 분위기는 흡사 가을야구 진출권을 두고 대결중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경기중계를 맡은 MBC 방송 카메라가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응원을 하던 모습을 캡쳐한 장면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르고도 남았다.[57] 다만 현해탄 건너의 인기구단 한신 타이거스와 같은 1회 우승팀과 비교하면 따끈따끈한 편인데 그쪽은 거의 30년을 넘겼다면 여긴 이제 막 20년을 바라보고 있다.[58] 2014.04.19. 고동진 끝내기 안타, 2014.09.07. 최진행 끝내기 홈런, 2015.04.07. 모건 끝내기 안타, 2015.04.09. LG 내야진 끝내기 실책, 2016.06.10. 정근우 끝내기 안타, 2016.06.12. 양성우 끝내기 희비, 2017.04.18. LG 투수 끝내기 악송구, 2018.05.21. 지성준 끝내기 안타, 2018.06.21. 송광민 끝내기 홈런, 2019.04.04. 정은원 끝내기 안타, 2020.09.15 정진호 끝내기 사구[59] 그러나 키움 팬덤은 LG보다는 SK 와이번스 팬덤과의 라이벌리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포스트시즌에서 자주 마주치고 있으며, 문학과 고척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있고, 염경엽 감독 관련, 현대 유니콘스 관련 논란 등등.[60] 일방적 라이벌은 아니다. 대전 역시 '내가 수원팬을 하느니 자살하겠다'는 걸개까지 내걸며 서로 라이벌이라고는 인정하고 있다.[61] 삼성 못지않게 한화도 우승을 많이 대줬다. 두 팀 다 한국시리즈에서 KIA를 세 번 만나 모두 졌다.[62] 태평개발, 서울프라자호텔, 서울청량리역[63] 2010년 1월 26일 ~ 2010년 8월 11일[64] 2020년 11월 10일 ~[65] 88년, 89년, 91년, 92년.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앞의 세 번은 모두 해태 타이거즈에게 물먹은 결과다.[66] 대전광역시 출신이지만 이글스에서 뛴 경력은 없다. 다만 OB 베어스가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던 시절 베어스 선수였다.[67] 한대화 이전의 감독들의 출신지는 모두 충청지역과 무관하다. 배성서는 평안도 출신, 김영덕은 재일교포, 강병철이희수는 부산 출신, 이광환은 대구 출신, 유승안김인식은 서울 출신이다.[68] 그마저도 최하위인 롯데와 고작 2게임차였다.[69] 한화 시기에도 이러한 특성은 바뀌지 않았다. 투수 운용에서 구대성을 과하게 혹사시켜 18승 3패 24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게 해 구원 투수이면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독식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세웠다.[70] 믿음의 야구, 재활 공장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한화 이글스 시절 2차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특성은 팀의 노령화와 특정 투수의 혹사로 이어졌다. 당시 혹사당한 선수로는 양훈, 황재규, 허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71] 전기 7위, 후기 6위[72] 전기 6위, 후기 공동 5위.[73] 전기 2위, 후기 3위[74] 전체 4위[75] 전체 7위[76] 한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한화 이글스 2군 유스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77] 한국K-POP고(舊, 광천고)가 위치한 홍성군에는 한화 이글스와 지자체가 합작하여 지은 정규 규격 야구장이 하나 있다. 실제 광천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훈련을 진행하기도 한다.[78] 구 청주고 야구부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던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다시 청주고등학교로 이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