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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우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
2002 | 2005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 ||
2015 | 2016 | 2019 |
2009 일구상 의지노력상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 ||||
김영진 (1995~1997) | → | <colbgcolor=#228b22><colcolor=#fff> 강동우 (1998~1999) | → | 진갑용 (2000~2015)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번 | ||||
류중일 (1987~1999) | → | 강동우 (2000~2005) | → | 강봉규 (2006)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4번 | ||||
강봉규 (2004~2005) | → | 강동우 (2006) | → | 이승엽 (2007)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1번 | ||||
이승엽 (2006) | → | 강동우 (2007) | → | 이윤학 (2008)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번 | ||||
박경진 (2007) | → | 강동우 (2008) | → | 신종길 (2009~2018)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 ||||
한상훈 (2006~2008) | → | 강동우 (2009~2013) | → | 한상훈 (2014~2015) |
두산 베어스 등번호 81번 | ||||
김우열 (2012~2013) | → | 강동우 (2014~2022) | → | 정수성 (2023) |
한화 이글스 등번호 70번 | ||||
로사도 (2021~2023.5.11) | → | 강동우 (2023.7.21.~2024) | → |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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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우 姜東佑 | Kang Dong-Woo | |
출생 | 1975년 4월 20일[1] ([age(1975-04-20)]세) |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現 대구광역시 북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칠성초 - 경상중 - 경북고 - 단국대[2] |
신체 | 177cm, 78kg, O형 |
포지션 | 외야수[3]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98년 1차 지명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8~2005) 두산 베어스 (2006~2007) KIA 타이거즈 (2008) 한화 이글스 (2009~2013) |
지도자 |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4) 두산 베어스 2군 주루코치 (2015)[4]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15~2017)[5]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8)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9)[6]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9~2022)[7] 한화 이글스 잔류군 야수총괄코치 (2023)[8]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2024)[9]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24)[10] |
해설위원 | TBC Dream FM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23) |
병역 | 전시근로역[11] |
등장곡 |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
응원가 | 한화 이글스 시절 동요 - <연날리기>[12], 정형돈 - <이러고 있다>[13][14] 삼성, 두산 시절 [15] 현숙 - <정말로>[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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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한화 이글스 코치.데뷔 첫해부터 주전으로 인상깊은 활약[17]을 보이며 향후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할 촉망받는 유망주이자 로컬보이로 꼽혔으나 당해 플레이오프에서 큰 부상을 입고 커리어가 꼬이게 되며 부침을 겪는다. 부상 이후 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고, 후엔 트레이드로 팀을 전전하던 중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비운의 선수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말년에 부활에 성공하기도 하며 귀감이 되었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강동우/선수 경력 | |||
삼성 시절 | 두산 시절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3. 지도자 경력
3.1. 두산 베어스
은퇴를 선언한 후 2014년 1월 두산 베어스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 4월에 결혼하여 뒤늦게 품절남이 되었다.
2015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시즌 개막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동력 강화 차원에서 4월 7일에 1군 1루 주루코치로 콜업되었다. 이 때 팀 코칭스태프 개편이 대대적으로 있었는데, 타격 부문은 기존의 장원진 코치를 말소한 뒤 박철우 타격코치가 단독으로 맡게 되었다. 또한 1루 주루코치와 수비코치를 겸하던 강석천 코치는 강동우 코치 콜업에 따라 수비코치만 맡는다. 장원진 코치는 1군에서 말소되었지만 박철우 타격코치를 보조하기로 했다.
2018년 시즌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새로온 고토 코지 코치와 함께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듯 하다.
2019 시즌은 정경배, 이도형 코치가 영입됨에 따라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변경해 시즌을 시작했다. 베어스 파크에서 쌀벌레들을 단련 시키던중, 7월 26일 팀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1군 타격코치로 콜업됐다. # 이도형 코치와 함께 타격 부분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타격코치로의 팬들의 평가는 꽤 괜찮은 편. 7월 19일 먼저 콜업된 강석천 수석코치와의 시너지 효과가 났는지, 강동우 코치 콜업 이후 타자들의 타격감이 반등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게 되었고,[18] 두산은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이 덕분인지 일부 팬들은 이도형 코치를 2군으로 내리고 강동우 코치가 단독으로 메인 타격코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2021 시즌 종료 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의 1군 타격코치로 옮겨간다는 썰이 돌았지만 홍준학 삼성 단장이 직접 외부 코칭스태프 영입은 없다고 밝힌 데다 김종훈 2군 타격코치를 1군으로 올리면서 2022년에도 두산 타격코치로 활동하는 게 확정됐다.
현재 두산 타선 꼬라지가 최악인 이도형 때문에 강동우를 메인 타격코치로 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한다.
2022 시즌 후 그의 중,고교 1년 후배인 이승엽이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입지가 좀 애매해졌다. 하지만 대다수 팬들은 강동우 아닌 이도형이 나가길 강하게 바라고 있다.
결국 10월 17일 박철우, 김지훈 코치와 함께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며 팀을 떠났다. 그러나 능력은 나름 검증되었기 때문에 타 팀의 오퍼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도형 대신 멀쩡한 코치를 잘랐으니 팬들은 아쉬움과 분노가 차올랐다. 이후 한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두산 팬들은 강동우를 그리워하는 중이다.
3.2. 한화 이글스
2023년 7월 21일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한화 전담 기자인 이상학의 취재에 의하면 단국대 선배인 최원호 감독이 직접 연락해 영입했다고. 보직은 잔류군 야수 총괄코치로 작전, 주루, 수비 등을 총괄한다. 이로써 지난 2013년 은퇴한 이후 10년만에 한화로 돌아왔다. 등번호는 70번.2024년부터는 2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한편 시즌 초반 기준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망주 임종찬의 타격폼 수정에 적극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평받고 있다.
그러다가 팀 타선 부진의 여파로 인해 4월 27일부로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다. 이날 타순은 최원호 감독이 강동우 코치의 건의를 수렴해 짰다고 한다. 황영묵을 2번으로 올리고 페라자와 노시환을 각각 3, 4번 타순에 배치하는 타순이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테이블 세터들이 꼬박꼬박 출루하고 중심타선이 귀신같이 맹타를 휘두르며 10:5로 승리하였다. 이정도면 강동우 코치가 승요 아니냐는 반응도 등장했다.
한편 자신을 한화로 데려온 최원호 감독이 자진사퇴한 뒤 후임 감독으로 김경문이 취임했는데, 마침 강동우 본인이 두산 베어스에서 뛰던 시절 감독이 김경문이었다 보니 17년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온 뒤 팬들 사이에서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 일단 두산 타격코치 시절에도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았던 편이었고, 팀 타격 사이클이 올라오면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또 단순 타격 지도뿐만 아니라 경기 중 덕아웃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면서 선수들에게 계속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등 참된 코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
작년 시즌까지 만루 상황이 되면 상위·하위 타선 상관없이 누가 올라와도 점수를 낼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었으나 2024 시즌에서는 하위 타선에서도 최대 안타·최소 희생 플라이라도 해낸다는 기대를 할 수 있는 타선이 되었다며, 타격코치가 정말 고생이 많았을 거라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정규시즌 종료 후 사의를 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팀을 떠났다. 정황상 전임 감독 라인으로 들어온 코치인데다, 김경문 감독 체제로 바뀐 뒤 코칭스태프 역시 개편이 예고됐기 때문에 더 이상 한화에서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사의를 표한 듯 하다. 팬들은 대체로 강동우가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온 이후 팀 타선이 어느 정도 살아나는 등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중이다. 더군다나 강동우가 팀을 떠나며 공석이 된 1군 타격코치 자리에는 김민호 전 롯데 코치가 들어왔는데, 하필 롯데 코치 시절 평가가 나빴던 사람이라 이러한 코칭스태프 인선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이후 강동우가 한화에 나오면서 두산 팬덤에선 지금이라도 이도형을 내치고 강동우를 다시 모시자고 하는 여론도 몇몇 있다.
4. 해설위원 경력
2023년부터 최경환의[19]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중계하는 TBC 드림FM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었다. 4월 1일부터 김대진 캐스터와 함께 중계를 맡으면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그러다가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합류하는 게 확정되면서 7월 9일 NC 다이노스전 중계를 끝으로 고별 방송을 하면서 해설위원 자리에서 하차했다.# 후임 해설위원으로는 삼성 코치 출신인 김용국 전 경주고 감독이 선임되었다.
5. 여담
-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다만 20대 중반이었던 신인 시절에는 앳된 외모에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고, 데뷔 첫 해부터 여성 팬이 많은 편이었다.
-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 2012년 말 암 투병 중이었던 후배 야구선수 이두환에게 후원금을 전달해 스토브리그를 훈훈하게 달구었다.
- 2014년 1월에 현역에서 은퇴한 뒤, 그의 생일인 4월 20일에 결혼하여 노총각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축 동우햄 결혼
-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전까지 무려 17년간 마지막 신인 정규타석 3할 타자였으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 구자욱이 .349를 기록하면서 갱신되었다. 다만 구자욱의 경우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중고 신인이기 때문에 데뷔시즌 마지막 3할타자 기록은 아직도 강동우가 가지고 있는 셈. 하지만 2017년 고졸 신인 이정후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하면서 최후의 데뷔시즌 3할타자 타이틀도 물려주게 됐다.[20]
- 별명 또는 애칭 비슷하게 '동우햄'이라 불린다.
- 현재 대졸 선수들 중 첫 해에 규정타석 진입과 3할(정확히는 0.300)+두 자릿수 홈런(10개)을 때려낸 선수는 아직도 강동우 이 후 나타나지 않고 있다.
6. 관련 문서
[1] 네이버 등에는 1974년 4월 20일생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본인이 말하기를 호적상 오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 밝혔다. 그래서 학교도 1975년생들이랑 다니는 등 제 나이에 다녔고,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모시고 1975년생인 조인성, 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심정수와도 동갑내기이며 삼성 시절 때 짧게나마 한솥밥을 먹기도 하였다.[2] 1994학번[3] 신인 시절 포지션은 중견수였으나 부상 이후 우익수로 전향했다가 한화 이적 후 다시 중견수로 뛰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간간히 좌익수로 나오기도 했다.[4] ~4월 6일[5] 4월 7일~[6] ~7월 24일[7] 7월 25일~[8] 7월 21일~[9] ~4월 26일[10] 4월 27일~[11] 후술할 1998년의 부상으로 인해 면제.[12] 에헤야디야~ 날려보자~ 동우야 날려보자~ ×2[13]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2[14] 이전 가사는 '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상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영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15] 2001년부터 사용[16] 안타를 쳐주세요 강동우(헤이) 안타를 쳐주세요 강동우(헤이) 안타 안타 안타 강동우(안타!)[17] 중견수로 출전하며규정타석 3할과 10홈런 20도루를 달성하였고 세이버메트릭스로 봐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신인 규정타석 3할은 2015년 구자욱이 달성하기 전까지 17년간 전무했고, 이에 최후의 신인 3할이라는 별명이 오랜기간 있었다. 아직까지도 대졸 신인 3할 기록은 강동우 이후론 없다.[18] 스탯티즈 기준. 후반기 타율1위(0.294), OPS 1위(0.761)를 기록했다.[19] 공교롭게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같이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로 일한 바 있다.[20] 여담으로 강동우의 데뷔 시즌인 1998년은 이정후가 태어난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