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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7:11:06

한국프로야구/2003년/신인 드래프트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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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차 지명3. 2차 지명
3.1. 지명방식3.2. 지명 결과
4. 드래프트 평가5. 이모저모

1. 개요

2003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200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2002년 6월 6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1차 지명자 계약금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노경은 (성남고, 투수) 3.5억 원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김형근 (대구고, 투수) 1.3억 원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1] -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안영명 (북일고, 투수) 1.8억 원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3).svg 고우석 (광주일고, 투수) 2.5억 원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박경수 (성남고, 내야수) 4.3억 원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송은범 (동산고, 투수) 4억 원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 박정준 (경남고, 외야수) 2.1억 원

3. 2차 지명

2002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롯데호텔 서울 벨뷰룸에서 개최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642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2]

3.1. 지명방식

전년도까지 12라운드까지 치렀던 것이 9라운드로 줄어들어,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각 라운드마다 전년도 순위의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볼드 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들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롯데 SK LG KIA 한화 현대 삼성 두산
1 김대우
(광주일고,
투수)
정정호
(인천고,
투수)
이성열
(효천고,
포수)
서동욱
(경기고,
내야수)
장순천
(부천고-제주산업정보대,
투수)
지석훈
(휘문고,
내야수)
강명구
(진흥고-탐라대,
내야수)
전병두
(부산고,
투수)
2 김휘곤
(서울고,
투수)
양승학
(북일고,
외야수)
이대형
(광주일고,
외야수)
임준혁
(동산고,
포수)
윤규진
(대전고,
투수)
류상문
(신일고,
투수)
곽용섭
(청원고,
내야수)
나주환
(북일고,
내야수)
3 양성제
(부산고-동의대,
투수)
김재천
(진흥고,
외야수)
우규민
(휘문고,
투수)
김주호
(광주일고,
내야수)
맹진국
(영흥고,
내야수)
노환수
(부산고,
투수)
김문수
(경주고-계명대,
투수)
김만윤
(서울고,
외야수)
4 정형순[A]
(대전고,
투수)
심장용
(성남서고,
투수)
이경민
(마산고,
투수)
최건호
(덕수정보고,
투수)
최민준
(경주고,
외야수)
김한상
(덕수정보고,
외야수)
[4]
김영복
(서울고,
포수)
김영준
(부산고,
투수)
5 박찬혁
(공주고,
내야수)
구본원
(안산공고,
내야수)
※@
박우상
(배명고,
외야수)
※@
이정상
(인창고,
외야수)
박성덕
(인창고,
투수)
이유섭
(휘문고,
내야수)
이상민
(공주고,
투수)
[5]
김승회
(배명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투수)
6 박민철
(인창고,
포수)
남상준
(북일고,
외야수)
박노산
(인창고,
내야수)
최재익
(선린정보고-한양대,
투수)
김동훈
(덕수정보고,
내야수)
최창우
(경남상고,
내야수)
장진석
(대구고,
투수)
김영진
(신일고,
외야수)
※@
7 김이슬
(효천고,
투수)
이장환
(배재고,
투수)
윤성길
(효천고,
투수)
조동현
(경남고,
내야수)
양승아
(배재고,
투수)
정재엽
(선린인고,
포수)
곽동현
(대구상고,
포수)
허도환
(서울고,
포수)
8 이인구
(배재고-동아대,
외야수)
강승훈
(부산고,
내야수)
김성대
(마산고,
투수)
이인철
(배명고,
내야수)
박대원
(충암고,
외야수)
박재완
(덕수정보고,
투수)
김형준
(대구상고,
투수)
[6]
최영주
(경기고,
투수)
9 이창석
(광주일고,
외야수)
조권성
(제물포고,
포수)
김준호
(효천고,
외야수)
유왕식
(군산상고-동국대,
투수)
정민혁
(대전고,
투수)
권영석
(충암고,
내야수)
윤석현
(신일고,
투수)
오재원
(야탑고,
내야수)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롯데 자이언츠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
롯데 자이언츠
RD 지명자 평가
1차 박정준
(경남고 / 외야수)
2차 1RD 1번 김대우
(광주일고 / 투수)
지명 후 고려대에 진학했지만 2학년을 마친 뒤 갑작스럽게 상무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지만 잘 풀리지 않자 대만 리그에 진출을 시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와 계약했으나 투수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12년 타자로 전향. 2013년 상반기 딱 반년 반짝 후에 만년 유망주로 남는 듯 했으나 2017년 투수로 재전향했고, 2020년과 2021년 괜찮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여기까지였다. 2022 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2차 2RD 9번 김휘곤
(서울고 / 투수)
고교 투수 탑5라고 불릴 정도였으나, 부상 여파인지 순위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 롯데가 지명할 수 있었다. 입단 이후 부상으로 제대로 던지지 못하다 2008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2군을 폭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다시 부상이 재발하며 은퇴했다.
2차 3RD 17번 양성제
(부산고-동의대 / 투수)
2차 4RD 25번 정형순[A]
(대전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2007년 한화 신고선수 입단)
2차 5RD 33번 박찬혁
(공주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6RD 41번 박민철
(인창고 / 포수)
2차 7RD 49번 김이슬
(효천고 / 투수)
2차 8RD 57번 이인구
(배재고-동아대 / 외야수)
2차 9RD 65번 이창석
(광주일고 / 외야수)

4.1.2. SK 와이번스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SK 와이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송은범
(동산고 / 투수)
SK에서 스윙맨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고 2009년에는 선발로 규정이닝을 달성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3년 김상현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입단했으나 활약은 좋지 않았고 FA로 이적한 한화에서도 초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마당쇠 노릇을 하며 부활에 성공했고 이후 재차 트레이드로 LG에 이적,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으나 말년에 구단과 연봉 협상 문제로 잡음을 일으키며 비호감으로 낙인찍혔고, 결국 2023시즌 종료 후 방출, 이후 1년 가까이 무적으로 있다가 2024시즌 하반기에 불펜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삼성에 입단했다.
2차 1RD 2번 정정호
(인천고 / 투수)
송은범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좌완투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1군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차 2RD 10번 양승학
(북일고 / 외야수)
SK에서는 2군 붙박이로 있다가 방출되었고 한화에 입단해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으로 1년만에 방출되었다.
2차 3RD 18번 김재천
(진흥고 / 외야수)
2차 4RD 26번 심장용
(성남서고 / 투수)
2차 5RD 34번 구본원
(안산공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6RD 42번 남상준
(북일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7RD 50번 이장환
(배재고 / 투수)
2차 8RD 58번 강승훈
(부산고 / 내야수)
2차 9RD 66번 조권성
(제물포고 / 포수)
지명 후, 미 입단

4.1.3. LG 트윈스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RD 지명자 평가
1차 박경수
(성남고 / 내야수)
하단에 서술될 두산과의 스카우트 싸움에서 승리해 LG가 지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통 터지질 않아 LG팬들의 속을 답답하게 했고, FA로 KT로 이적한 뒤에야 그 포텐이 터졌다.
2차 1RD 3번 이성열
(효천고 / 포수)
처음엔 포수로 입단하였으나 이후 외야수로 전향, LG에선 그저 그런 선수였으나 2008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기량이 만개해 주요 타자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넥센-한화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2차 2RD 11번 이대형
(광주일고 / 외야수)
여러 면으로 KBO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타자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던만큼 발 하나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였다. 2013년 종료 후 KIA로 FA를 통해 이적, 그리고 2014년 종료 후 KT로 20인 외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하는 두 번의 이적 과정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으며, 특유의 독특한 타격 폼이 유명하기도 했다. 2017년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선수생활 기로에 놓일 만한 큰 부상을 당한 뒤에 반등하지 못해 2019 시즌 종료 후 방출됐고, 2020년 은퇴했다.
2차 3RD 19번 우규민
(휘문고 / 투수)
마무리 투수를 맡기도 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잡았지만 2008년, 2009년에는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며 불규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경찰청 전역 후 반등에 성공해 5년 연속으로 LG의 선발을 꿰찼다. 2016 시즌 종료 후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삼성이 기대했던 선발 기대치에 전혀 부응하지 못해 먹튀 오명을 뒤집어 썼고, 불펜으로 전향한 뒤 어느 정도 먹튀 행각을 날리는 데 성공했다. 2023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로 kt로 이적했다.
2차 4RD 27번 이경민
(마산고 / 투수)
2차 5RD 35번 박우상
(배명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6RD 43번 박노산
(인창고 / 내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7RD 51번 윤성길
(효천고 / 투수)
2차 8RD 59번 김성대
(마산고 / 투수)
2차 9RD 67번 김준호
(효천고 / 외야수)
LG 시절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한화로 이적한 후 전설의 꽈당사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2011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되었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4.1.4. KIA 타이거즈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3).svg
KIA 타이거즈
RD 지명자 평가
1차 고우석
(광주일고 / 투수)
입단 첫 해 활약한 걸 빼면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방출 후 광주 소재의 조직폭력배가 되며 기아의 1차지명 잔혹사에 이름을 올렸다.
2차 1RD 4번 서동욱
(경기고 / 내야수)
당해 유격수 4대 천왕으로 꼽힐 만큼 큰 기대를 받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LG와 넥센을 거치며 오히려 대수비 전문 요원으로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2016년에 친정팀인 KIA로 돌아와 입단 초기의 기대했던 포텐을 뒤늦게서야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2017년 마지막 불꽃을 태운 후 부상으로 2019년 종료 후 은퇴.
2차 2RD 12번 임준혁
(동산고 / 포수)
투수로 전향 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5 시즌 선발진에 합류해 터지는듯 했으나 다음 시즌에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고 고향팀 SK로 트레이드 되었다. 트레이드 이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8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된 후 은퇴했다.
2차 3RD 20번 김주호
(광주일고 / 내야수)
2차 4RD 28번 최건호
(덕수정보고 / 투수)
2차 5RD 36번 이정상
(인창고 / 외야수)
2차 6RD 44번 최재익
(선린정보고-한양대 / 투수)
2차 7RD 52번 조동현
(경남고 / 내야수)
2차 8RD 60번 이인철
(배명고 / 내야수)
고려대 졸업 후 2007년 1월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2008년 10월에 방출되었고, 2009년 1월 신변 비관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차 9RD 68번 유왕식
(군산상고-동국대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4.1.5. 한화 이글스

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안영명
(북일고 / 투수)
2003년부터 2020년까지 한화 선수였고 중간 2010년도 6월에 KIA를 잠시 다녀왔다. (6월8일 트레이드, 시즌 후 FA 보상선수 지명) 2020시즌 종료 후 웨이버 공시되었으나 kt에서 데려갔고, 2022시즌 6월 경 은퇴하였다. 한화에서만 거의 900~1000이닝 가까이 소화하였다.
2차 1RD 5번 장순천
(부천고-제주산업정보대 / 투수)
지명 이후 호주 마무리캠프 참가, 귀국 후 4차례에 걸친 무단 이탈 등으로 말썽을 일으켜 시즌 시작 전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2차 2RD 13번 윤규진
(대전고 / 투수)
고졸 루키로서 원클럽맨, 당해부터 경기에 투입되어 2020시즌 은퇴하기까지 한화 마운드를 지켜낸 선수이다. 지금은 투수코치를 맡고있다.
2차 3RD 21번 맹진국
(영흥고 / 내야수)
2004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차 4RD 29번 최민준
(경주고 / 외야수)
2차 5RD 37번 박성덕
(인창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6RD 45번 김동훈
(덕수정보고 / 내야수)
2차 7RD 53번 양승아
(배재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단국대 진학.
2차 8RD 61번 박대원
(충암고 / 외야수)
2차 9RD 69번 정민혁
(대전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연세대 진학, 졸업 후 2007시즌 입단, 2015시즌 중 방출되었으며, 2018시즌부터 스카우트팀에 재직중이다.

4.1.6. 현대 유니콘스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RD 지명자 평가
1차 연고지 이전 문제로 인한 1차 지명 불가(2003~2008)
2차 1RD 6번 지석훈
(휘문고 / 내야수)
서동욱과 마찬가지로 당해 유격수 4대 천왕으로 꼽힐 만큼 큰 기대를 받았으나, 프로 입단 후 2003시즌 1군 경기 없이 다음 해인 2004년 1군 승격 후, 타격 부진으로 헤메는 동안 강정호, 황재균 등에 밀렸고 상무에 다녀온 뒤에도 타격은 개선되지 않아 결국 NC에 트레이드되었다. NC에서는 내야 유틸리티로 자리를 잡았고,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차 2RD 14번 류상문
(신일고 / 투수)
2차 3RD 22번 노환수
(부산고 / 투수)
2차 4RD 30번 김한상
(덕수정보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5RD 38번 이유섭
(휘문고 / 내야수)
2차 6RD 46번 최창우
(경남상고 / 내야수)
2차 7RD 54번 정재엽
(선린인고 / 포수)
2차 8RD 62번 박재완
(덕수정보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9RD 70번 권영석
(충암고 / 내야수)

4.1.7. 삼성 라이온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RD 지명자 평가
1차 김형근
(대구고 / 투수)
2차 1RD 7번 강명구
(진흥고-탐라대 / 내야수)
일명 "전설의 대주자". 2군에서 준수한 성적을 낸 것에 비해 1군에서는 대주자로만 기용되었다. 하지만 한 점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 있었기에 대주자로만 뛰며 연봉 1억원 달성과 우승반지 5개를 끼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은퇴, 삼성의 1루 주루코치로 부임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이 해의 유일한 성공픽.
2차 2RD 15번 곽용섭
(청원고 / 내야수)
2차 3RD 23번 김문수
(경주고-계명대 / 투수)
2차 4RD 31번 김영복
(서울고 / 포수)
2차 5RD 39번 이상민
(공주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6RD 47번 장진석
(대구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7RD 55번 곽동현
(대구상고 / 포수)
2차 8RD 63번 김형준
(대구상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9RD 71번 윤석현
(신일고 / 투수)

4.1.8. 두산 베어스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화이트).svg
두산 베어스
RD 지명자 평가
1차 노경은
(성남고 / 투수)
2012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으나 2014 시즌부터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부진하던 중 2015 시즌 가을에 활약으로 우승도 경험했지만 그 활약을 다음 시즌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롯데에 트레이드 되었다. 롯데에서는 그럭저럭 활약을 했으나 2021 시즌 후 방출되었으며 이후 SSG에 입단 후 화려하게 부활했고 다시 한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2차 1RD 8번 전병두
(부산고 / 투수)
별다른 활약 없이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KIA 시절에 2006 WBC 대표에 뽑히기도 했으나 소속팀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SK로 트레이드되었다. SK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동시에 엄청난 혹사로 인해 어깨 부상을 당하며 2011년부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갔다. 무려 5년간 재활에 매진했으나 다시 마운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2016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경기를 가지고 은퇴했다.
2차 2RD 16번 나주환
(북일고 / 내야수)
두산 시절에는 주전과 백업을 오갔으나 SK로 트레이드된 뒤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며 SK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군복무 후에는 주전은 아니지만 내야 전천후 백업으로 준주전 위치로 자리잡으며 2017, 2018 두 시즌은 반등에 성공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KIA에 무상 트레이드로 이적해 2년 동안 더 뛰다 2021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차 3RD 24번 김만윤
(서울고 / 외야수)
2차 4RD 32번 김영준
(부산고 / 투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5RD 40번 김승회
(배명고-제주산업정보대-탐라대 / 투수)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하다가 2012 시즌 후 홍성흔의 보상선수 지명으로 롯데로 이적했다. 롯데에서는 불펜으로 활약했다가 2015 시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시즌 종료 후 윤길현의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SK로 이적했으나, SK에서는 별다른 활약 없이 1년만에 방출되었고 다시 두산으로 돌아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2020 시즌 후 은퇴했다.
2차 6RD 48번 김영진
(신일고 / 외야수)
지명 후, 미 입단
2차 7RD 56번 허도환
(서울고 / 포수)
지명 후 단국대 입학, 2007년 입단. 지명받은 두산에서는 대주자로서 1군 단 한 경기만 뛰고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방출됐고, 수술 및 재활과 동시에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넥센 히어로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다시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히어로즈의 주전 포수가 박동원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뒤에는 저니맨 신세가 됐으나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리그 유일 통신 3사 소속 우승 경험자라는 기록까지 써 냈다. 가늘고 길게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듯 했으나 2024년 현재까지 박경수와 함께 현역인 둘 뿐인 야수로 결과적으로는 굵직하고 긴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2차 8RD 64번 최영주
(경기고 / 투수)
2차 9RD 72번 오재원
(야탑고 / 내야수)
지명 후 경희대 입학, 2007년 입단. 그야말로 전체 마지막 픽의 역대급 반란으로 한 마디 요약이 가능하며, 고영민 다음 두산의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차 FA에서의 먹튀 행각 및 은퇴 전후 좋지 않은 언행으로 이미지가 하락했다. 급기야는 2024년,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등 흉흉한 소리만 전해지고 있다.

4.2. 팀별 총평

5. 이모저모



[1] 연고지 문제로 이 해부터 2008년 드래프트까지 1차 지명에서 제외되었다.[2]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A] 정현석으로 개명[4] 경희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경찰청 전역 후 넥센 히어로즈에 신고선수로 입단. 現 KBO 심판.[5] 대학 중퇴 후 2006년 신고선수 입단.[6] 아래 설명 참조.[A] 정현석으로 개명[8] 사실 2000년대 들어 대구-경북 지역 팜이 전반적으로 흉작이었다. 대성공 사례인 2002년 권혁, 2004년 박석민, 2009년 김상수가 있긴 한데, 나머지는 아예 1군에서 제대로 뛴 적조차 없는 실패사례들 뿐이다. 대구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2007년 2차 1라운드에서 지명된 백정현도 있긴 하다.[9] 2000년 시즌 초 현대는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연고권을 버리고 서울특별시연고지 이전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 연고권을 구입한 SK 와이번스로부터 보상금 54억원을 받았고 원래 이 돈을 27억원씩 갈라서 LG 트윈스두산 베어스에 나눠줬어야 하지만 유니콘스 구단 모기업인 현대전자가 이 돈을 중간에 가로채서 회사 운영비로 써먹는 바람에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원 야구장을 임차해서 눌러앉게 됐다. 결국 서울 입성 비용을 내지 못했기에 서울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고 인천 연고권은 이미 SK에게 팔았기 때문에 현대의 실질적 연고지는 없는 상태였다. 2001년과 2002년까지는 한시적으로 SK와 인천-경기-강원팜을 공유했으나 이 해부터는 서울팜, 인천팜 어디에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기에 1차 지명권을 박탈당했다.[10] 당시 롯데는 계약금으로 4억 5000만원을 제시했지만 김대우 측은 무려 5억+@를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이 일찌감치 결렬됐다. 참고로 김대우의 고교 동기이자 KIA의 1차 지명을 받은 고우석이 받은 계약금은 2억 5000만원으로 김대우가 롯데에서 제의받은 액수보다 무려 2억이나 적었는데, 이 말은 즉슨 애초에 김대우가 당시 롯데에 입단할 마음이 1도 없었다는 뜻이다.[11] 이 당시 상무에서 전역한 김대우는 고려대 감독이었넌 양승호에게 복학할 때니 미국 진출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양승호 감독은 미국 진출은 졸업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면서 김대우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12] 엄밀히 말하면 공주고에서 전학한 선수다.[13] 광주일고의 김주호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14] 그나마도 14시즌부터는 2루수로 전향했다.[15] 손시헌은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나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FA로 4년 30억 계약까지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