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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연속 10홀드 | 2007년~2012년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
2006 | 2011 | 2012 |
2013 | 2014 | 2019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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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천 현대 유니콘스 / 16홀드 | 차명주 두산 베어스 / 18홀드 | 차명주 두산 베어스 / 17홀드 | 이상열 현대 유니콘스 / 16홀드 차명주 두산 베어스 / 16홀드 | 임경완 롯데 자이언츠 / 22홀드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이재우 두산 베어스 / 28홀드 | 권오준 삼성 라이온즈 / 32홀드 | 류택현 LG 트윈스 / 23홀드 | 정우람 SK 와이번스 / 25홀드 | 권혁 삼성 라이온즈 / 20홀드 | |
<rowcolor=#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정재훈 두산 베어스 / 23홀드 | 정우람 SK 와이번스 / 25홀드 | 박희수 SK 와이번스 / 34홀드 | 한현희 넥센 히어로즈 / 27홀드 | 한현희 넥센 히어로즈 / 31홀드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안지만 삼성 라이온즈 / 37홀드 | 이보근 넥센 히어로즈 / 25홀드 | 진해수 LG 트윈스 / 24홀드 | 오현택 롯데 자이언츠 / 25홀드 | 김상수 키움 히어로즈 / 40홀드 | |
<rowcolor=#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주권 kt wiz / 31홀드 | 장현식 KIA 타이거즈 / 34홀드 | 정우영 LG 트윈스 / 35홀드 | 박영현 kt wiz / 32홀드 | 노경은 SSG 랜더스 / 38홀드 | |
* 홀드는 2000년부터 공식적으로 집계. | }}}}}}}}} |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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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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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47번 | ||||
홍상삼 (2017~2019) | → | 권혁 (2020) | → | 곽빈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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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표팀 참가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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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權奕 | Kwon Hyuk | |
출생 | 1983년 11월 6일 ([age(1983-11-06)]세) |
대구직할시 중구 (現 대구광역시 중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대구수창초등학교 (졸업) 성광중학교 (졸업) 포철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1] |
신체 | 192cm, 100kg, O형[2] |
포지션 | 선발 투수 (2002~2004)[3] 중간 계투 (2002~2020) 마무리 투수 (2009, 2015, 2019)[4]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2002년 1차 지명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2~2014) 한화 이글스 (2015~2018) 두산 베어스 (2019~2020) |
지도자 | 김천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3~2024) |
해설위원 | SPOTV 야구 해설위원 (2022) |
병역 | 예술체육요원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
등장곡 | DVBBS & Dropgun - 〈Pyramids〉 (ft. Sanjin)[5][6] |
종교 | 불교 |
에이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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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이자 前 SPOTV 해설 위원.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으며, 포지션은 불펜 투수.
여러 팀을 거치며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삼성 시절에는 최고의 좌완 불펜이었고, 한화로 이적후에는 훌륭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성적 자체는 혹사 후유증으로 매 시즌 후반기마다 급락하는 바람에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일명 마리한화라고 불리는 인기 몰이의 핵으로서 불꽃남자라는 칭호까지 얻으며 대전에서는 아이돌급의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지나치게 무리한 나머지 부상과 재활로 힘든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2019 시즌 시작 전 한화 이글스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자, 한화 이글스 구단에 방출 요청을 한 뒤 한화를 나와 두산 베어스로 입단하게 된다. 2019년 두산 베어스에서는 좌타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했고, 좌타 상대로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어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멤버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20년에는 출발은 좋았으나 허리부상 및 어깨통증[7]등으로 인해서 한계를 느끼며 은퇴를 전격 선언하게 된다.[8]
2. 선수 경력
권혁의 선수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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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 2002년 | 2003년 | 2004년 |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
2008년 |
3. 선수 은퇴 후
용인시 수지구에 이자카야를 차렸으며, 직접 서빙도 한다고 한다.[9]2024년, 수원에 본인의 상징적인 구속인 '156k' 란 이름으로 피칭 아카데미도 직접 운용하고 있다.
3.1. 해설위원 경력
1년여에 공백기 끝에 2022 시즌 부터 스포티비의 해설위원으로 야구계에 돌아온다는 소문이 2022년 1월 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2022년 SPOTV의 해설위원으로 선임됐다.#KBS N SPORTS 해설위원으로 선임된 유희관 해설위원에 이어 2번째로 나이가 어리다.
유독 kt 경기를 중계할때 kt의 승률이 높아서, kt 팬들에게 콱혁이라고 불리고 있다.#
특이하게 KIA 타이거즈 경기를 중계한 적이 없었다.
3.2. 지도자 경력
2022년 12월 28일 창단된 김천대학교 야구부의 투수 코치로 선임되었다.#포철공고 1년 선배 박종윤이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절친한 포철공고 멤버들과 함께 의기투합했다.[10] #
4. 피칭 스타일
한창 공이 좋을 때인 2007 시즌 |
가공할 만한 공 회전력, 평균 구속 150 km/h를 웃도는 빠른 패스트볼을 던졌던 대표적인 파이어볼러. 서승화와 김광현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좌완 공인 최고 구속(156km/h)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1] 지나친 혹사 및 투구 스타일의 변화로 급격하게 구속이 줄긴 했으나 그래도 평균 구속 140km/h 중반은 꾸준히 찍었으며, 혹사와 부상이 누적된 말년에도 140km/h은 넘겼다. 좌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빠른 편이다.
제구는 데뷔 초창기 광속구를 던질 때는 그리 좋지 못했으나, 구속이 140km대로 떨어지고 나서는 어느 정도 제구도 안정되었다. 통산 K/BB는 2.03에 9이닝당 볼넷은 3.86으로 그렇게 나쁘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아무리 좌완이라지만 150을 넘기지 못하는 투수가 제구까지 폭망이었다면 필승조는 커녕 1군 등판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으로, JOKKA 라인 중 BB/K가 가장 높다.
상체 중심의 피칭을 구사했으며, 주자가 없을 때도 세트 포지션처럼 발을 빼지 않고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cm-100kg로 피지컬이 우월하고 릴리스 포인트도 높아서 구위로 타자를 찍어누르는 피칭을 했다. 구종도 패스트볼이 70% 이상이었던 전형적인 파이어볼러. 변화구는 주로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좌타자의 바깥쪽이나 우타자의 몸쪽으로 떨어질 때 효과가 상당했다. 슬라이더 이외엔 주로 커브도 실전에서 가끔 활용했고, 스플리터에 가까운 포크볼도 간간히 구사했다. 또 가끔 빠른볼 이후에 들어오는 고속 체인지업도 익혀서 간혹 실전에서 구사하기도 했지만,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편이다.
불펜투수임에도 의외로 몸이 빨리 풀리는 편은 아니었으며, 투구를 하면서 영점이 잡히는 투수였기 때문에 짧은 투구보다는 긴 투구가 오히려 권혁에게 더 알맞는 투구 스타일. 멀티이닝을 자주 소화했던 시즌은 2004년, 2007년, 2009년, 2010년, 2015년, 2016년인데 공교롭게도 저 시즌 모두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선동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측에서 많이 비판하는 내용 중 하나가 권오준과 권혁을 선발 투수로 쓰지 않고 불펜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연투를 못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선동열 감독과 김성근 감독 시절에 2연투는 기본에 3연투와 4연투마저도 꽤 있었다.
상체 위주의 투구 스타일과 잦은 연투 등에도 불구하고 무려 781경기나 출전했고, 삼성과 한화 시절 우려스러울 정도의 많은 투구[12]로 인해 혹사 논란이 있었음에도 롱런한 케이스로 내구성은 역대 KBO 선수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좋다. 2000년대부터 이미 불펜 60-80이닝을 던지는 등 혹사당했으며 팀이 강화된 왕조 시절엔 오히려 등판 기회가 50이닝 언저리로 줄어든 데 불만을 표시, 김성근 체제 한화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2년간 200이닝 넘게 던지는 충격적 혹사를 당해 사실상 선수 커리어가 끝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선수를 접은 것도 아니고 몇 년 더 프로 1군에서 뛰는 등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선수생활 막바지였던 두산 시절에는 패스트볼의 비중을 다소 줄이고 그만큼 슬라이더의 비중을 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5. 여담
- 데뷔 이후 딱히 인상적인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강렬한 이미지,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한때 강백호[13]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금방 묻혔고,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나마 팬들에게 인상 깊게 남은 별명이였다.[14] 그러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특유의 발음으로 궈낵 이라고 한게 인상깊게 들리자 궈낵으로도 불리게 된다.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엔 채르노빌, 최형우라늄, 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핵을 맡는다며, 권핵으로도 불리게 된다.[15]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팀을 구원해내자 불꽃남자로 불리며, 그 해 프로야구 최고의 핫한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외에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도 추가되었다.[16]
- 중학교 재학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키가 작았으며,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이유로 야구를 잠시 그만두고 경상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키가 부쩍 자랐고 오대석 당시 포철공고 감독에 눈에 우연히 띄게 되어[17] 포철공고로 스카웃되어 전학 가게 되면서 극적으로 다시 야구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초창기 프로필 상 키는 187cm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입단 당시의 키. 프로 입단 후에도 키가 커 지금은 192cm. 2014년에 비로소 192cm로 공식 프로필이 수정되었다.
- 2003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 때[18] 2.5m 깊이의 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수영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깊은 데로 갔다가 빠진 경우인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서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인공호흡 및 응급처치로 살아난 케이스. 정황상 권혁은 당시 그곳이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던 것 같다. 물놀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병 선수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폭포를 왕복하고 있었는데 권혁도 그렇게 하다가 빠진 것. 체격 건장한 운동선수라 물에 빠져도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데 당시 권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걸 보면 역시 물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듯. 다행히 현장에 있던 배영수와 이재국 기자[19]가 가까스로 그를 건져내서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 그리고 12년 뒤인 2015년에도 배영수와 권혁은 나란히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4년뒤, 2019년에 또 다시 둘은 두산 베어스에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후, 배영수는 한 시즌만 뛰고 은퇴했고, 권혁은 그 다음 시즌에 은퇴했으니 선수 생활을 전부 같이 보낸 셈이다.
- 상술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건을 겪은 이후로 구속이 150 km/h가 넘었다면서, 한 번 더 빠지면 160 km/h가 넘을 거라고 마해영이 방송에서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권혁은 방송에서 왜 그런 걸 말했냐며 싫어한 걸 보면 트라우마가 있는 듯하다.[20] 참조 기사
- 2009년 9월 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예정에 없던 구원등판을 하게 되었는데, 유니폼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선수 유니폼 빌려입고 나갔겠지만 하필 이 날 김응용 사장이 참관하고 있던 경기.
결국 최원제가 권혁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갖고 있던 팬[21]에게 부탁해서 유니폼을 빌려 입었는데, 그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너무 작은지라 양 옆을 좀 잘라낸 게 저 정도였다고 한다.
- 대구 팔공산 정상에 올라가면 '삼성 라이온즈 권혁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혁이 경기에서 보이지 않던 시절인 것으로 고려해 보아 2012년 5월 초쯤으로 추정된다.
- 2015년 한화의 아이콘.
6월까지 중위권을 유지해 본게 너무 오랜만인 한화 이글스인데[24], 그를 위해 박정진, 송창식과 함께 눈물 나는 투혼을 보여준 중간계투의 필승조이자 살려조이기 때문이다. 대전 구장에서 권혁의 등판 순간 제일 환호가 커지며, 유니폼도 권혁 마킹이 제일 잘 나간다. 이때 어느정도였냐면 4종류 유니폼 권혁 마킹이 죄다 동이 나는 바람에 예약까지 받는데, 예약조차 몰려서 대기자도 엄청 많다는 구단 프런트의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화 이글스 갤러리엔 이미 그의 등짝에 반한 팬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한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불꽃 투혼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애칭은 권따. 야민정음이 아니라, 2015년 청주 경기에서 '권혁 따랑해'라는 아재들의 응원 문구가 중계 영상에 잡혔는데, 이 표현이 너무 찰지게 입에 붙은 나머지 권따로 줄여 부른다. 특히 권혁이 불꽃 투구를 펼친 날에는 온갖 짤방과 움짤이 올라오고 권따 뒤에 하트를 몇 개씩 붙일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보여주었다.
- 상당히 신실한 불자로 추정된다. 모자와 글러브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고,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 선수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굉장히 심오하게 대답하는 등. 꽤 열성적인 신자로 보인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인이 올림픽 때 지리산 절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 그 마음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하기도 했다.
- 마운드에 김성근 감독이 올라갈 때 유독 스킨십이 잦은 투수. 감독의 말에 따르면 투구를 한 후 더그아웃에 있는 감독을 자주 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중계 화면을 자세히 보면 다른 투수들보다 자주 더그아웃 쪽을 힐끔거리며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2015년 저축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였다. 삼성의 도박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서 같은팀이고 같은 비슷한 또래였던 권혁에 대해서도 헛소문이 나돌았었는데, 국무총리 상으로 그러한 헛소문을 완전히 씻어버렸다. 한화 권혁, 멍든 야구계 빛낸 '국무총리 표창'.
- 2015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을 떠나지 않고 대전에 남아서 재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다. 이때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전의 영웅"이 등장하였다며 깜짝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대전의 영웅" 권혁, 예비군 훈련장 스타 된 사연. 그런데 한화로 이적하기 전에는 그동안 해외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밀린 예비군 훈련을 몇 년 치를 몰아서 하다 보니 거의 2주 가까이 훈련장에 모습을 나타내서 나중엔 다들 군대에서 사는줄 알았다고 한다.
-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이다. 올라온 후기들에 "얼굴만 보면 무서운 인상[25]이라서 팬서비스를 잘 안 해줄 것 같지만 막상 사인을 부탁하면 친절하게 잘 해준다"는 얘기가 많이 적혀있다. 일화 다만 공이나 종이에 싸인을 해 달라면 흔쾌히 해주는 편인데, 슈베카 등 자신의 사진이 나온 야구 카드에다가 해 달라고 하면 거절한다고 한다. 이것은 선수들이 제일 꺼린다는 일종의 징크스로 보인다.
- FA 자격을 얻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기 전인 2014년에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정근우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적이 있으며, 이적 후 정근우가 그때의 일로 놀린다고 한다. 그 이전에 2011시즌 카림 가르시아가 한 시즌 끝내기 홈런 2번을 달성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오상민이 언급하기를 권혁이 투구 와인드업을 하려고 할 때 권혁이 들릴락 말락 할 정도의 애매한 크기로 "어어어~으으으" 이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서 방해하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진다고 한다.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 오상민이 저 장난을 치자 볼넷 2개를 허용하고 강판당했고, 다음날 오상민을 찾아가서 "선배님 제발 그거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 슬하에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1남 2녀)을 두고 있다.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이기도 한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벗어나 KBO FA 제도 외부 영입을 원했던 이유 중 하나가 '큰딸이 TV중계에서 내 모습을 자주 보고 싶어한다. 많이 등판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였다. 은퇴 후 그동안 못해줬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26]
- 선수시절 47번을 상징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베이징 올림픽때는 강민호조차 밀어내고 47번을 달았다.[27] 유일하게 47번을 못 단 적이 2019년 두산으로 이적할 때인데, 당시 홍상삼이 47번을 달고 있었기에 기존 선수 번호를 뺏기보다는 그냥 비어있는 번호를 쓰겠다고 해서 8번을 쓰게 되었다.[28][29][30] 다만, 홍상삼이 KIA로 이적한 2020 시즌엔 다시 47번을 달면서 47번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 19시즌의 긴 선수생활 동안 개인적인 문제를 일으킨적이 단 한번도 없을 만큼 깔끔하다.
- 온라인 야구게임 최고 스타로 등극한적이 있다. #
- 2017년 더그아웃매거진에 나왔다. #
- 기이하게도 두 번이나 팀을 옮겼는데, 매 시즌마다 배영수와 같은 팀이다. 삼성에서 한화로의 이적도, 한화에서 두산으로의 이적도 모두 같이 해서 배영수가 은퇴한 후인 2020년을 제외하곤 매년 배영수와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 KBO 올스타전에 2007년"야구 팬들 사이에서 그 유명한 '인사이드 파크 호텔' 당시의 투수였다[31]], 2010년, 2015년까지 총 3차례 선정되었다.
- 2012년, KBO 역대 최소 경기 100홀드 기록을 달성했다. #
- 2012년, KBO 최초로 6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 기록을 달성했다. #
- 2014년,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는 최초로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
- 2019년, KBO 역사상 좌완투수로는 최초로 150홀드를 기록했다. #
- 2024년 7월, 한일 드림 플레이어즈 게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경기에도 출전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6. 수상 경력
6.1. KBO
| |
권혁의 KBO 수상 경력 | |
2006 | 한국시리즈 우승 |
2007 |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
2009 | 홀드 1위 |
2010 |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
2011 | 한국시리즈 우승 |
2012 | 한국시리즈 우승 |
2013 | 한국시리즈 우승 |
2014 | 한국시리즈 우승 |
2015 | 나눔 올스타(베스트12) |
2019 | 한국시리즈 우승 |
6.2. 국가대표
권혁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 |
2008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7.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권혁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02 | 삼성 | 2 | 0 | 1 | 0 | 0 | 4 | 13.50 | 11 | 2 | 0.000 | 0 | 1 | 2.75 | 32.0 | -0.26 |
2003 | 23 | 3 | 2 | 0 | 2 | 39⅓ | 5.26 | 40 | 5 | 0.600 | 21 | 26 | 1.55 | 82.9 | 0.35 | |
2004 | 37 | 3 | 3 | 0 | 3 | 81 | 4.78 | 80 | 12 | 0.500 | 42 | 78 | 1.46 | 90.8 | 1.23 | |
2005 | 1군 기록 없음 | |||||||||||||||
2006 | 12 | 0 | 0 | 0 | 2 | 8 | 4.50 | 8 | 1 | - | 6 | 6 | 1.75 | 80.4 | 0.06 | |
2007 | 60 | 7 | 1 | 0 | 19 (3위) | 77⅔ | 2.79 | 47 | 2 | 0.875 | 42 | 100 | 1.11 | 140.3 | 2.84 | |
2008 | 43 | 6 | 0 | 0 | 15 (4위) | 47⅔ | 1.32 | 36 | 2 | 1.000 | 23 | 37 | 1.22 | 314.1 | 1.81 | |
2009 | 63 | 5 | 7 | 6 | 21 (1위) | 80⅔ | 2.90 | 64 | 10 | 0.417 | 46 | 76 | 1.31 | 168.2 | 2.51 | |
2010 | 60 | 7 | 1 | 4 | 10 | 73⅓ | 2.09 | 54 | 6 | 0.875 | 21 | 73 | 1.00 | 221.0 | 3.04 | |
2011 | 58 | 1 | 3 | 0 | 19 (4위) | 48⅓ | 2.79 | 38 | 2 | 0.250 | 24 | 27 | 1.24 | 149.3 | 1.08 | |
2012 | 64 | 2 | 3 | 1 | 18 (5위) | 49⅓ | 3.10 | 48 | 2 | 0.400 | 21 | 38 | 1.38 | 123.1 | 1.32 | |
2013 | 52 | 0 | 1 | 0 | 3 | 36⅓ | 3.96 | 35 | 5 | 0.000 | 17 | 41 | 1.40 | 108.1 | 0.68 | |
2014 | 38 | 3 | 2 | 0 | 1 | 34⅔ | 2.86 | 27 | 4 | 0.600 | 11 | 38 | 1.10 | 185.2 | 1.18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15 | 한화 | 78 (2위) | 9 | 13 | 17 | 6 | 112 | 4.98 | 124 | 15 | 0.409 | 58 | 88 | 1.58 | 100.0 | 0.87 |
2016 | 66 | 6 | 2 | 3 | 13 | 95⅓ | 3.87 | 93 | 5 | 0.750 | 49 | 77 | 1.42 | 135.7 | 2.79 | |
2017 | 37 | 1 | 3 | 0 | 11 | 31⅓ | 6.32 | 39 | 6 | 0.250 | 14 | 17 | 1.53 | 79.6 | 0.01 | |
2018 | 16 | 1 | 1 | 0 | 3 | 11 | 4.91 | 9 | 2 | 0.500 | 4 | 11 | 1.18 | 107.9 | 0.22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승률 | 4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19 | 두산 | 57 | 2 | 2 | 1 | 11 | 36⅔ | 4.91 | 36 | 3 | 0.500 | 9 | 21 | 1.17 | 83.6 | -0.21 |
2020 | 15 | 2 | 2 | 0 | 2 | 7⅔ | 9.39 | 11 | 0 | 0.500 | 4 | 7 | 1.96 | 49.3 | -0.36 | |
KBO 통산 (18시즌) | 781 | 58 | 47 | 32 | 159 (2위) | 874 | 3.79 | 800 | 84 | 0.552 | 412 | 762 | 1.34 | 120.4 | 19.18 |
권혁의 역대 KBO 타자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WAR* |
2015 | 한화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 | -0.16 |
KBO 통산 (1시즌)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 | -0.16 |
8. 관련 문서
[1] 고2때 경상공업고등학교에서 전학[2] #[3] 데뷔 초기엔 선발투수로 육성되면서 선발투수로도 등판했다. 특히, 2년차이던 2003년과 3년차이던 2004년엔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상에서 복귀 한 2007시즌에도 선발투수로 준비되었지만, 당시 팀 사정상 셋업맨으로 완전히 고정 되게 되었고, 선발투수 경력은 여기서 끝이 났다.[4] 2009년엔 오승환이 부진과 부상으로 이탈하자 정현욱과 팀의 더블 스토퍼로도 활약했다. 2015년엔 선발 투수를 제외한 모든 보직을 담당했지만, 주로 팀의 마무리로 나왔다. 2019년엔 팀의 마무리였던 함덕주 대신 임시 마무리를 맡은적이 있다.[5] 2015시즌엔 마리아노 리베라의 현역 시절 등장곡이었던 메탈리카 - 〈Enter Sandman〉을 사용했다.[6] 삼성 시절엔 터보의 검은 고양이를 썼다.[7] https://www.mbn.co.kr/news/sports/4335708[8] 프로야구에서 18시즌 동안 활약[9] 가게명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운영중이라고 한다[10] 타격 인스트럭터로 포철공고 야구부 출신인 최준석을 영입하였다.[11] 2004년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기록.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는 157 km/h를 찍기도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중이 아니라서 시즌 정식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12] 삼성 땐 선동열 감독, 한화 땐 김성근 감독[13] 그리고 훗날 KBO에 진짜 강백호가 등장한다.[14] 07/08 시즌에는 강력한 커브로 불펜에서 활약했던 권오원까지 합쳐서 KKK 트리오로 불렸으며, 세 선수가 연달아 나온 적도 있다.[15]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이었고, 오래 전엔 실제로 이런 의미의 기사가 나온적도 있다.[16] 18.10.13 한화 이글스 포스트 시즌 출정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권혁 선수 소개 시 함성이 다른 선수의 3~4배였다고 한다.[17] http://news.imaeil.com/page/view/2007051109123879213[18] 2006년이라고 잘못 기재했었는데, 이건 아마 사진을 2003년에 촬영한 뒤 2006년에 블로그에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로그를 보면 이승엽과 틸슨 브리또, 김진웅, 이정호가 삼성에 있었고 손혁과 차명주가 두산 베어스 소속인 상태이다. 당시 권혁은 입단 2년 차였다.[19] 당시 스포츠서울 소속. 현재는 스포츠동아로 옮긴 상태이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의 주 패널로 잘 알려져 있다.[20] 자칫 목숨을 잃을뻔했던 일을 농담삼아 내뱉으면 누구든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21] 유니폼 사이즈로보면 여성 팬.[22] 오케스트라 악단에서 일했던 연주자 출신이다.[23]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oid=109&aid=0002061127[24] 근데 삼성 라이온즈는 오히려 중위권에 위치해있으면 이상한 팀이다.[25] 그런데 막상 프로필 사진이나 방송에 나온 모습들을 보면 무서운 인상의 얼굴은 절대 아니다. 은근히 미남 속성을 갖고 있으며 동안 속성도 좀 있다.[26] 이글스 TV에 나온 한화 선수들의 자녀들 영상[27] 물론 당시 강민호는 1군 붙박이가 된지 얼마 안 된 신인급 포수였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두 선수는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이며, 먼 훗날 강민호는 삼성으로 이적해 권혁이 달았던 등번호를 그대로 달게 된다.[28] https://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3176[29] 8번은 오뚜기란 뜻과 8회를 책임진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30] 다만, 시즌도중에 8번은 외자 이름인데다가 워낙 피지컬이 커서 뭔가 허전해보여서 두자릿수 번호인 19으로 교체했다.[31] 정면 플라이볼 타구였지만, 우익수가 순간적인 라이트 탓에 못잡은 수비의 실책으로 벌어진 나비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