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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 부분}}}}}}}}}|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 | ||||
| 허삼영 (2020~2022) | → | 박진만 (2023~) | → | 현역 |
| | |||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감독#s-2| ★ ]] | |||
| 박진만 朴鎭萬 | Park Jin-man | |||
| 출생 | 1976년 11월 30일 ([age(1976-11-30)]세) | ||
| 경기도 인천시 남구 (現 인천광역시 남동구)[1] | |||
| 국적 | | ||
| 학력 | 인천서화초[2] - 상인천중 - 인천고[3] - (경기대)[4] | ||
| 신체 | 178cm[5], 82kg, B형[6] | ||
| 포지션 | 유격수[7] | ||
| 투타 | 우투우타 | ||
| 프로 입단 | 1996년 고졸우선지명 (현대) | ||
| 소속팀 | 현대 유니콘스 (1996~2004) 삼성 라이온즈 (2005~2010) SK 와이번스 (2011~2015) | ||
| 지도자 |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17)[8]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7~2018)[9]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작전코치 (2018)[10]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9)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코치 (2020~2021)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22)[11]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 (2022)[12]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23~) | ||
| 병역 | 예술체육요원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부문) | ||
| 계약 | 2026 - 2028 / 23억 원[13] | ||
| 연봉 | 2026 / 5억 원 |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가족 | <colcolor=#373a3c,#ddd>배우자 고영미(1977년생) 아들 박지후(2007년생) 아들 박건우(2011년생) | |
| 등장곡 | 현대 유니콘스 시절 Jamelia - 〈Superstar〉 SK 와이번스 시절 Maroon 5 - 〈Payphone〉[14] | ||
| 응원가 |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요 - 〈우리 모두 다같이〉 삼성 라이온즈 시절
SK 와이번스 시절 비스트 - 〈Beautiful〉[SK] | }}}}}}}}} | |
| | |||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現 삼성 라이온즈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수비력에 일발 장타까지 겸하여 KBO 리그 역사상 150홈런을 쳐낸 최초의 유격수[26]이다. 베이징 올림픽 등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다수 활약하였으며 번호는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SK에서 은퇴할 때까지 줄곧 7번을 달았다.[27]
2023년 기준으로 KBO 리그 최연소 1군 감독이었으나[28] 2024년 KIA 타이거즈의 새 감독으로 1981년생 이범호 감독이 취임하며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 통합 선수 경력: 박진만/선수 경력 | |||
| | |||
| 현대 시절 | 삼성 시절 | 2011년 | 2012년 |
| 2013년 | 2014년 | 2015년 | 은퇴 |
| | |||
| 2000년 | 2002년 | 2003년 | 2006 WBC |
| 2006 AG | 2007년 | 2008 OQT | 2008 OLY |
| 아마추어 시절 | |||
3. 플레이 스타일
김태균: 유격수 쪽으로 공이 가면 아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수비를 했어요. 수비로서는 대한민국 최고이지 않았나...
수비로서의 기여가 컸던 선수로, 당시의 수비수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기에 WAR에서 손해를 보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신뢰도가 높다고 여겨지진 않지만, 개편 이후 스탯티즈 통산 WAR에서 역대 유격수 2위에 위치해 있다. 연평균 WAR로 산정시 김재박, 류지현, 강정호, 김하성 등 연평균 WAR이 박진만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있으나, 박진만의 진정한 진가는 20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매 시즌 주전 유격수로 나온 내구력과 수비력이라고 할 수 있다. KBO 리그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90년대 중반부터 커리어 말까지 유격수로서 안정감 있는 수비력을 보이며 팀에 기여하였다.[29]
또한 기존의 우수한 수비력에 2000년부터 타격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박진만은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명실상부 2000년대 KBO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는다. 단일 시즌으로 유격수로서 최상위권의 공격력을 보이기도 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종합적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를 꼽을 때 김재박, 이종범, 강정호, 김하성, 류지현과 함께 자주 언급되며 이들 중 KBO에서 유격수로 뛴 기간이 짧았던 강정호, 김하성, 이종범[30]을 빼면 역대 세 손가락에 꼽히기도 한다.
2024년 기준 현역 시절 박진만과 가장 툴,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선수는 박진만의 팀 핵심 유망주이자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재현이다. 물론 이재현은 아직 3년차이기에 박진만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평가. 박진만은 이재현을 두고 동나이대의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극찬[31]하였으며,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도 이재현이 박진만처럼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날씨가 더워지면 강해지는 선수였다. 이건 서비스 타임을 보내던 현대 시절은 물론 여름성 시절에도 그랬고, 노쇠화한 이후에도 여름 기간의 성적이 더 좋은 편이다.[32]
3.1. 수비
발은 타 유격수에 비해서 느린 편이었지만 타구 판단 능력이 뛰어나 수비 범위가 매우 넓었고, 어깨 역시 강견으로 김재박과 이종범이 던지는 유형의 빨랫줄 송구와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33] 15년 가까이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능력을 보였으나 2010년을 기점으로 글러브질에서 조금씩 노쇠화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34] 때문에 포구할 때의 자세가 많이 불안해졌다. 2010년 잦은 수비 실책의 원인도 이 무릎 부상.[35]수비 스타일은 김재박, 이종범의 사기적인 수비 범위와 당대 리그 최고의 송구 속도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수비와는 다른 특유의 안정감을 주는 수비를 하였다. 김재박과 이종범이 야수들 중 최고수준의 신체능력을 앞세운 수비라면 박진만은 본인의 비교적 평범한 운동능력과 신체협응력을 최대한 이용한 기술적인 수비에 가깝다. 수비기술로만 치면 역대 가장 뛰어난 수비기술을 가진 선수로 보기도 한다. 독보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은 공을 잡고 빼내는 글러브질이며, 공을 던지는 후속 동작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역시 역대 최고로 평가 받는다. 어떤 자세나 상황에도 공을 잡으면 아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며, 공을 잡을 때도 여유 있는 느낌으로 전해진다. 또한 어떤 자세로 송구를 하게 되어도 송구 정확도가 높았다. 참고로 초대 WBC에 참가했을 당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이 가장 놀랐던 선수로 한국의 박진만을 뽑았으며, 이유로 그의 수비를 뽑았다.[36]
3.2. 타격
수비로 유명한 선수이나 평균은 하는 컨택, 나쁘지 않은 선구안과 유격수답지 않은 일발 장타력[37]으로 유격수 중에서 상당히 우수한 타격 생산성을 올린 선수이다.데뷔 시즌인 1996년에는 20세 신인 유격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상당히 우수한 타격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1997년부터 소포모어 징크스가 시작되며 3년 동안은 몹시 좋지 않은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1997년은 2022년 김헌곤 수준으로 타격에서의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절치부심하고 타격에 눈을 뜬 2000년 이후로는 굳이 수비를 제하고 타격 생산성으로만 보아도 꾸준히 평균 이상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2000년대 10개 시즌 중 6개 시즌에서 wRC+가 양수이며, 2002시즌과 노쇠화한 2009시즌을 빼면 모두 wRC+ 90 이상을 기록, 유격수 중 상위권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유격수 기간 동안 올타임급 퍼포먼스를 보였던 이종범이나 40홈런 유격수인 강정호엔 미치지 못하지만 통산 wRC+가 95.2, 뉴탯티즈 기준 100.1로 평균 수준이기에 보통 평균 wRC+가 90 정도쯤 되는 유격수치고는 상당히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었으며, 이것도 말년 들어서 아주 심하게 깎아먹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성기의 박진만은 포지션을 불문하고 리그 상위권의 공격력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인 2001 시즌에는 3할에 20홈런을, 삼성 라이온즈 시절인 2006, 2007 시즌에는 2년 연속으로 wRC+ 140 이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몬스터 시즌으로 명실공히 평가받는 2015년 야마이코 나바로나 역시나 엄청난 타격 성적으로 눈도장을 찍은 구자욱의 데뷔 1-2년차와 비슷한 타격 생산성을 올린 것이다.[38] 특히 화룡점정인 2007년에는 wRC+가 무려 154.5로, 이는 대충 역대 3루수 시즌 중 손에 꼽는 2015년 박석민,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2년간의 김하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뉴탯티즈 기준 통산 wRC+인 100.1은 통산 기록이 집계되는 3000타석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9위에 해당하며[39] 박진만의 통산 oWAR는 유격수 역대 5위에 해당한다. 즉 타격으로만 봐도 역대 유격수 중 최상위권이다.
3.3. 주루
일반 야수들과 비교하면 평균을 살짝 넘은 정도의 주력을 가졌다. 도루의 경우 데뷔 시즌인 1996년과 삼성 이적 후인 2006년엔 두 자릿수 도루를 하긴 했지만, 커리어 전반적으로 성공률이 높지 않았고 도루 시도가 20번을 넘은 시즌이 없다. 주자로서는 단점이었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박진만의 수비센스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워낙 타구 판단 능력이 뛰어났고 타자의 타격 유형을 보고 예측 수비를 했기에 스타트가 좋아서 부족한 주력을 커버했다.[40][41]4.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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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박진만/지도자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1. 지도자 성적
| |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정규시즌 | 포스트시즌 |
| 2022 | 삼성 | 50[42] | 28 | 0 | 22 | .560 | 7위 | - |
| 2023 | 144 | 61 | 1 | 82 | .427 | 8위 | - | |
| 2024 | 144 | 78 | 2 | 64 | .549 | 2위 | 준우승 | |
| 2025 | 144 | 74 | 2 | 68 | .521 | 4위 | 4위[43] | |
| 2026 | 144 | 83 | 3 | 58 | .589 | 2위 | ||
| KBO 통산 (5시즌) | 626 | 324 | 8 | 294 | .524 | 준우승 1회 | ||
5. 여담
5.1. 별명
박진만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만두이다. 뜻을 궁금해하는 야구팬도 있는데 현대 시절 순수하게 이름에서 따온 것(박진만 → 진만 → 찐만두)이다. 친구 이승엽은 오래전에 인터뷰에서 '은퇴하면 만두집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기도(...) 그래서인지 삼성 감독 취임식 때도 구단에서 만두를 준비해 나눠줬다. 오승환은 식사 메뉴로 만두가 나올 때마다 박진만을 의식하는 모습. 이 만두라는 별명은 응용하기도 쉬워 만두신, 명인만두를 거쳐 SK와의 계약으로 탄생한 고향만두, 화나면 김치만두나 불닭만두, 물을 맞으면 물만두, 이병규와 있으면 만두라면, 무언가 잘못하면 터진 만두에 잘할 때는 대왕만두가 된다. 김헌곤 유니버스의 등장 이후로는 비비곤이라는 별명도 탄생했다. 그 외에도 수비만, 삐삐밴드[44]가 있고 중계진이나 언론에선 주로 '명품 유격수'라는 별명을 사용해 그의 수비를 칭찬했다.2023년 삼성 감독을 맡으면서 김헌곤과 비슷하게 부정적 별명들이 우후죽순 붙었다. 감독대행 시절 좋은 성적으로 호평받았으나 2023년 5월부터 루징시리즈를 반복하고 한 달 반의 짧은 기간 동안 승패마진 -10을 달성하자 루징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외에도 데이터를 전혀 보지 않는 감야구를 통한 투수 교체를 한다는 점에서 다트야구, 성급한 교체판단에 따른 조급만, 심판의 오심에 대한 부족한 항의라는 점에서 박수만, 인터뷰로 선수 탓만 한다고 남탓만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비시즌에는 위르겐 클린스만의 클린스만호가 아시안컵에서 막장 경기력으로 4강 탈락하자 박진스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근에는 딱히 부정적 별명으로 불리지 않고 까여도 그냥 만두, 돌진만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5 시즌 들어 어느 선수와 면담을 가지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며 면담만, 더 미팅, 만두의 위클래스 등 상담 전문가의 이미지가 생겼다.
언론의 헤드라인에서는 "국민 유격수"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만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기에는 가벼운 표현이고, 박진만의 현역 시절을 요약하는 단어인 국민 유격수가 대표로 쓰이는 듯하다.
5.2. 인천의 아들
FA로 삼성 라이온즈로의 이적과 감독직까지 맡은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FA로 이적하기 전까진 고교 선배 김경기와 함께 인천 야구의 대표적인 로컬 보이 중 하나로 꼽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중·고교를 모두 인천에서 졸업한 뒤 인천 연고팀에 바로 입단하였기에 인천야구의 확실한 성골로 간주되었다.[45] 당연히 인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눈웃음이 매력적인 귀여운 외모는 덤. 이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올드 팬들은 집안의 막내아들 내지는 손자가 커가는 것처럼 생각하면 박진만을 응원했다.애초부터 안정적이었던 수비에 절망적이었던 타격 실력까지 급성장하며, 당시 박진만 팬들의 지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천 팬들로부터 모진 질타를 받은 바 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정민태와 함께 "서울로 가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 때문. 그런데 무려 14년 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를 기념한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진만은 "당시 수원으로 가면서 한편으론 상당히 아쉬웠다."라며 "인천에서 경기하면 편안했는데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며 안정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인천 토박이로서 인천을 위해 꾸준히 야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포부까지 전하면서 오랜 루머의 종지부를 찍은 셈.
2024시즌 초, 삼성이 SSG전에서 부진하자 '나는 인천 사람이니까...'와 같은 식으로 박진만을 놀리는 밈이 생겼다. 그러나 이후 SSG전 5연승을 달성하자 어느 정도는 사장되었다. 그리고 2025년 7연승 도전이었던 5월 1일 SSG경기에서 희대의 이해하지 못할 경기 운영과 작전, 대타를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고향사랑을 시전한다. 2025 준플레이오프에서는 SSG를 업셋으로 잡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고향사랑 이야기는 사장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참고할 것은 SSG에 약한 것은 원정 경기인 인천에서만 그 모습을 보인다. 홈 경기인 대구 경기에서는, 인천에서의 모습은 어디 가고 없고 오히려 SSG를 압도하면서 경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2026시즌부터는 아직 시즌 초반이기도 하고 부상 악재가 있긴 하지만 대구에서도 인천의 아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SSG의 전반기 투수진 붕괴로 문학구장에서 6승 1패를 달리는 등 오히려 인천킬러로 변모중이다. 그러다 가끔씩 SSG 경기에서 납득하기 힘든 투수 운용이 나오면 또 '내 고향 인천' 나왔다고 말하는 밈이 생겼다.
5.3. 유관기운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우승반지를 6개[46] 받았다. 특히 2003년과 2004년에 현대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하고 삼성으로 이적해 2005년과 2006년에 또다시 2년 연속 우승반지를 가져가면서 4년 연속으로 우승반지를 껴봤다.다만 이 기록은 삼성 왕조의 등장으로 아주 희귀한 기록은 아니게 되었는데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반지 6개만 되어도 충분히 반지캡터라 부를 수 있었다.[47] 그런데 2011~2014년, 삼성이 4연패를 하면서 배영수, 박한이, 진갑용 등 삼성에서 10년 이상 뛰었던 선수들이 대거 6~7개의 반지를 갖게 되니 숫자만 놓고 보면 박진만의 기록은 다소 평범해졌다. 특히 배영수가 2019년 두산에서 마지막으로 8번째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하면서 2개 팀 출신으로 반지 최다도 아니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반지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 삼성, SK로 이어지는 커리어 동안 '우승팀의 핵심 전력으로 뛰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이 현대의 핵심 전력이었던 박진만과 심정수를 데려온 것은 2000년대 초반 돈성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그 흐로 한참 시간이 흐른 감독 취임 때에도, 박진만은 자신이 상위권 팀에서만 뛴 사실을 언급하며 '삼성의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0년 삼성의 준우승까지 함께하고 SK로 이적하자마자 2011년부터 삼성 왕조가 개막하여 4년 연속으로 반지를 가져가면서 1년 일찍 이적했으면 반지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었고 4년 더 버텼으면 반지를 4개 더 얻을 수 있었을 무관 기운이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왕조의 성골 유격수가 나타나면서 삼성을 떠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5.4. 그 외
- 군 문제와 관련하여 2000년에 아버지가 병역비리를 위해 브로커에게 면제청탁을 부탁하며 뇌물을 건네 구속되었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그 해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아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다.[48]
- 탤런트 박민영이 시구할 때 2010년 10월 18일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의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 2011년 10월 19일 SK 와이번스-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3차전 두 번 모두 박진만의 소속팀 유니폼, 그것도 박진만의 등번호인 7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 오지환이 삼진 1,005개를 기록하기 이전에 유격수 중에서 통산 삼진이 1,003개로 1위였다.[49] 박진만은 20시즌이나 뛰었다 보니 그만큼 누적 기록도 높을 수밖에 없고, 적게 나온 시즌을 감안해도 대략 한 시즌당 60~70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삼진이 많은 타입은 아니다.
- 가톨릭 신자였다는 말이 있다. 마침 후임 유격수 김상수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 아무튼 이 사실 때문에 불암콩콩코믹스에서 (가톨릭 신자라) 예배를 안 나왔다는 이유로 이만수가 박진만을 향해 총을 쏴서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이외에도 플옵 편에서 스파이라고 하면서 총을 쏴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 처가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위치해 있고, 장인어른이 고계추 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사장이라고 한다. 2006년 7월 18일~20일 오라야구장에서 열린 제주 경기에서 고계추 사장이 오라야구장을 방문해 삼성 선수단과 선동열 감독에게 삼다수 50박스 등을 전달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 LG 이병규와 국대를 자주 가고 야구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여 친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식이 겹칠 뻔했는데 다행히 이병규의 결혼식 다음 날 결혼했다고. 감독이 되면서 이병규를 수석코치로 데려왔다. 2024년에는 이병규와 같이 항의하러 나오는 모습이 쓸데없이 칼군무라 화제가 되었다. 패트와 매트 실사판이라는 반응.#
- 야구를 시작하기 전 어렸을 때의 장래희망은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 숭의야구장에서 마지막으로 홈런을 기록한 타자이다.
- 동갑내기 이승엽과 친구이며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나이에 데뷔했지만 이쪽은 고등학교 때 1년 유급을 하여 데뷔가 1년 늦었다. 선수 시절 때는 서로 삼성과 현대의 대표 선수로 경쟁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국가대표로 같이 뛰기도 했고, 서로 내야 수비를 보는 상황에서 베이스로 출루를 하면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아쉽게도 박진만이 삼성에서 활약했을 때 이승엽은 일본에서 뛰었고 이승엽이 국내 복귀를 했을 때의 박진만은 이미 SK 선수로 활동 중이라, 한 팀에서 뛰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이승엽이 커리어 말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박진만이 팀의 코치가 되어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긴 했다.
이후 이승엽은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박진만은 삼성의 정식 감독이 되어 2023 시즌부터는 한 팀의 감독으로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 둘은 리그에서 가장 극도의 올드스쿨형 감독에 훈련을 중시해 각 팀 선수들에게 지독한 특훈을 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50] 재미있게도 이승엽은 대구 야구의 상징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구단인 두산의 감독이고, 박진만은 삼성 선수 경력이 있긴 하지만 인천 야구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대구 구단인 삼성의 감독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감독 자리에 오르자 이 둘과 거의 비슷한 성향의 김성근 감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2024년에는 둘 다 자신의 모체 팀에게 친정사랑을 시전[51]하고 있어 스파이 밈이 퍼지고 있다. 그나마 박진만은 SSG전 5연승을 달리며 친정팀과의 상성 문제를 극복한 모습이지만, 이승엽은 이미 기록한 성적부터가 2승 10패(...)라 이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으려면 남은 경기를 다 이겨야 한다. 그러나 박진만은 202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내는 등 서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 유격수 출신 감독이라 그런지 내야수들에게 수비 훈련을 많이 시키고, 선수들도 실제로 성장한 모습이라 수비 면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가 펑고치는 모습을 직접 보자. 박진만은 프로 초년병 시절 김재박 감독의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펑고를 많이 받았으며 그 결과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한 유격수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김재박이 박재홍의 유튜브 채널에서 술회하기를 한 단계 더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박진만의 성격이 온순하고 느긋하여 안주하는 듯 보이자, 본인이 직접 맹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 2022년 8월 18일 한화전에서 원형탈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카메라로 보여주었다.[52] 탈모가 있는 것치고는 동안인데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주름이 없고 매끈해서 모자를 쓰면 선수 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이다. 다만 현역 때보다 살집이 붙긴 했다.
- 배우 허정도와 닮았다. 야구 선수 중엔 최정, 젊은 시절엔 삼성의 이재현이 보인다는 의견도 꽤 있다.
- 눈웃음이 매력적인 점에 착안하여 프로미스나인의 백지헌과도 비교되고 있다.[53] 여기에서 나온 별명이 투교미스나인.
- 팬 서비스는 매우 좋은 편. 사람도 좋고 야구도 잘한다는 말을 듣던 선수 시절에는[54] 매우 좋았고, 감독으로서 평가가 극심하게 떨어지고 비호감 행동을 반복해 민심을 잃었던 2023년 시점에서도 팬 서비스는 상당히 좋았다. 특히 2025년 가을야구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 #
- 리더십이 좋은 편인지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삼성과 SK에서 주장직을 역임했다. 삼성과의 재계약 당시에는 아예 차기 감독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2008년 기사인데 정확히 15년이 지나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 감독으로서 인터뷰 시 말을 저는 등 언변은 좋지 못하다. 그와 별개로 선수들과의 소통은 원활한 편인지 그와의 면담을 통해 부진에서 벗어난 선수가 많다. 대표적으로 상반기 부진에 시달리다가 1:1 면담을 거치고 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로 거듭난 르윈 디아즈가 있고 김영웅, 박승규 등도 박진만의 미팅이 도움이 됐다고 감사를 표한 바 있으며, 2025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선발을 앞두고 면담을 받은 최원태가 가을역적에서 미스터 옥토버로 초각성했다. 최원태가 밝히길 시즌 중에 사직에서도 한번 미팅을 가졌는데 그 이후로 계속 이겼다고.#
- 선수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자제하려고, 기분 좋을 때는 감독실에 들어가서 점프를 한다고 한다.
점핑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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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 / 태평양 | OF / 현대 | OF / 현대 | ||
| SS / 현대 | 2B / 청보 | |||
| 3B / 태평양 | ''' ''' LHP / SK RHP / 현대 | 1B / 현대 | ||
| '''''' DH / SK | '''''' C / 현대 | |||
| OF / SSG | OF / SK | OF / SK | ||
| SS / SK | 2B / S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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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H / SK | '''''' C / SK | '''''' RP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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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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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F8B01><colcolor=#F8D1A6> 연도 | <colbgcolor=#F8D1A6><colcolor=#EF8B01> 2005년 |
| 이름 | 박진만 |
| 분야 | 스포츠 |
| 사유 | 체육발전유공 |
| 체육훈장거상장(3등급) | |
| 보유 기록 | |
| 통산 최다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55] | 5개 |
| 박진만의 역임 직책 / 이전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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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환 (1993~1995) | → | 박진만 (1996~2004) | → | 차화준 (2005~20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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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걸 (2001~2004) | → | <colbgcolor=#c0c0c0><colcolor=#074ca1> 박진만 (2005~2010) | → | 김상수 (2011~2022) | ||||||||||||||||||||||||||||||||||||||||||||||||||||||||||||||||||||||||||||||||||||||||||||||||||||||||||||||||||||||||||||||||||||||||||||||||||||||||||||||||||||||||||||||||||||||||||||||||||||||||||||||||||||||||||||||||||||||||||||||||||||||||||||
| 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 ||||||||||||||||||||||||||||||||||||||||||||||||||||||||||||||||||||||||||||||||||||||||||||||||||||||||||||||||||||||||||||||||||||||||||||||||||||||||||||||||||||||||||||||||||||||||||||||||||||||||||||||||||||||||||||||||||||||||||||||||||||||||||||||||
| 김재현 (2005~2010) | → | 박진만 (2011~2015) | → | 박재상 (2016~2017) | ||||||||||||||||||||||||||||||||||||||||||||||||||||||||||||||||||||||||||||||||||||||||||||||||||||||||||||||||||||||||||||||||||||||||||||||||||||||||||||||||||||||||||||||||||||||||||||||||||||||||||||||||||||||||||||||||||||||||||||||||||||||||||||
| SK 와이번스 등번호 74번 | ||||||||||||||||||||||||||||||||||||||||||||||||||||||||||||||||||||||||||||||||||||||||||||||||||||||||||||||||||||||||||||||||||||||||||||||||||||||||||||||||||||||||||||||||||||||||||||||||||||||||||||||||||||||||||||||||||||||||||||||||||||||||||||||||
| 조원우 (2014~2015) | → | 박진만 (2016) | → | 최상덕 (2017~2020) |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 | ||||||||||||||||||||||||||||||||||||||||||||||||||||||||||||||||||||||||||||||||||||||||||||||||||||||||||||||||||||||||||||||||||||||||||||||||||||||||||||||||||||||||||||||||||||||||||||||||||||||||||||||||||||||||||||||||||||||||||||||||||||||||||||||||
| 이종두 (2013~2016) | → | 박진만 (2017~2022) | → | 이병규 (2023) | }}} | |||||||||||||||||||||||||||||||||||||||||||||||||||||||||||||||||||||||||||||||||||||||||||||||||||||||||||||||||||||||||||||||||||||||||||||||||||||||||||||||||||||||||||||||||||||||||||||||||||||||||||||||||||||||||||||||||||||||||||||||||||||||||||
| A대표팀 참가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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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된 것은 박진만 출생 이후인 1981년이며, 남동구가 남구에서 분구된 건 1988년이고, 모체였던 남구는 2018년에 미추홀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중 박진만이 태어난 곳은 그가 태어날 당시엔 남구였으나 현재는 분구되어 남동구가 된 곳이다.[2] 인천청천초 축구부로 뛰다가 4학년 때 전학.[3] 인천고 2학년 시절 무릎 부상으로 1년 유급.[4] 프로생활 중에 입학했으며 졸업여부는 불명이다. 기사 다만 포털 프로필에는 경기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학사로 등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졸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5] 현역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오승환과 큰 차이가 없다.[6] #[7] 20년의 선수 생활 중 마지막 시즌인 2015년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을 유격수로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왔고, 마지막 시즌에도 유격수로 150이닝 가까이 소화했다. 데뷔 시즌인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거의 15년간 통산 1993경기 중 1861경기를 유격수로 출전했다.[8] ~4월 27일[9] 2017년 4월 28일~2018년 6월 25일[10] 6월 26일~[11] ~7월 31일[12] 8월 1일~[13] 2+1년 / 계약금 5억 원 / 연봉 5억 원 / 연산 인센티브 1억 원 등. #[14] I'm at a payphone trying to call home All of my change I've spent on you (SK! 박진만!)
Where are the times gone baby It's all wrong, where are the plans we made for two (SK! 박진만!)[SL1] 박진만을~ (박진만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삼성의 박진만~ 사랑해요~ x4[16] 가사 때문에 삼성 팬들 사이에서도 김용일의 최악의 응원가로 손꼽히는 노래이기도 하다.[17] 앞에 2번은 음원, 뒤에 2번은 육성으로 불렀다.[18] 2009~2010 정규시즌에 사용되었으나, 응원가가 하도 비판을 받았는지 김용일이 2010 시즌 중간에 쓰다가 조용히 사장시켰다. 이후 박진만 타석엔 타자 공통 응원가만 사용되었다.[SL2]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박진만 x2[20] 2005~2007년까지 사용.[21] 한화 이글스 정현석의 응원가와 같다.[SL3]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워오오오~ ×2[23] 2008년,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사용.[24] 박기혁의 과거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이지영의 응원가와 같다.[SK]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26] 이종범과 장종훈이 유격수 출신이긴 하지만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유격수로서 쳐낸 홈런은 150홈런에 미치지 못한다. 대형 유격수라 불렸던 홍세완은 무릎부상으로 인한 짧은 커리어로 인해, 김하성과 강정호는 해외진출로 인해 달성하지 못하였다. 오지환이 2024 시즌 역대 두 번째 유격수 150홈런을 달성하였다.[27] 이 7번은 삼성에서 역시나 유격수인 김상수-이재현이 차례로 물려받았다.[28] 동갑인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보다 50일 늦게 태어났다.[29] 팬들이 덕아웃에 있지 말고 나와서 수비하라는 플랜카드를 만들어 올 정도. #[30] 다들 해외진출 경력이 있으며 리턴한 이종범은 2기부터는 외야수로 변신했다.[31] 물론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타격은 일단 더 빨리 성장하고 있기는 하다. 박진만의 경우 데뷔 초기에는 타격이 잘 되지 않았고 수비 실수도 있어서 마음고생을 겪었으며, 김재박의 특훈 끝에 수비가 안정화되었고 2000년 즈음부터 공격까지 살아나며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32]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으로서는 여름만 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2023년 6월 팀의 부진과 더불어 2023년 8월에는 지나치게 선수를 혹사시켰으며, 혹사가 줄어든 2024년에도 6월 초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 여럿 나오고 있고 6월 말~7월까지 여러 문제점이 터지며 팀이 부진하기도 했다. 2025 시즌에도 6~7월까지 경기 운영 문제로 부진했지만 8월 이후부터는 귀신같이 상승세를 타서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감독되니 늦여름에만 강한 듯[33] 신인 시절 송구는 이종범과 같은 류의 빨랫줄송구를 보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가 붙는다.[34] 이는 본인의 노쇠화도 있지만 그가 뛰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옛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그라운드에 악명 높은 카페트식 인조잔디가 깔렸던 것도 한몫했다. 당시 대구 시민야구장은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과 더불어 최악의 야구장이라고 까였다. 박진만과 같은 시대에 공수겸장 유격수로 평가 받았던 홍세완도 2004년 무등경기장 그라운드가 인조잔디로 바뀐 후 고질적 무릎 부상이 심해졌고 결국 그 여파로 빨리 은퇴하게 되었다.[35] 박진만의 현역 시절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던 현대 시절 홈 그라운드는 모두 흙바닥 내야였다. 신인 시절 뛰던 숭의야구장은 한신 고시엔 구장처럼 내야 전체가 흙으로만 이뤄진 구조였고 삼성 이적 전까지 뛰던 수원야구장은 외야와 내야 가운데에 천연잔디가 깔린 야구장이었다.[36] 2회 맷 홀리데이의 유격수 키를 넘어갈 수도 있는 강습 타구를 팔을 뻗어 잡아냈고, 5회 치퍼 존스의 강습 타구 역시 엉덩방아 찍으며 몸으로 막은 후 2루 송구를 해 병살타를 이끌어 냈으며, 9회 체이스 어틀리의 위험한 슬라이딩이 없었다면 또 병살을 잡을 뻔하는 등 안정적이고 뛰어난 내야 수비를 선보였다.[37] 정확히는 커리어 평균을 내보면 박진만은 주력을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서의 김하성과 느낌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KBO 시절 김하성과 비교하면 장타력은 김하성이 압도 우위이나, 박진만은 투신타병 시대였던 2006-2007년에 좋은 출루율을 찍으며 김하성의 KBO 시절 전성기와 비슷한 타격지표를 기록했다.[38] 다만 팀 내에 쟁쟁한 타자들이 많았고, 포지션이 체력 소모가 심한 유격수였기에 주로 하위타선, 그 중에도 9번 타자에 배치되곤 했다. 타격에서의 전성기였던 삼성 시절엔 간혹 5번에 위치했던 적도 있다.[39] KBO에서 지금까지 3000타석을 채운 유격수가 22명에 불과하다는 통계의 한계는 있다. 다만 이것은 유격수라는 포지션에서 롱런한 선수 자체가 얼마 없다는 뜻이므로 박진만을 평가절하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기준 타석을 1000타석으로 내려도 박진만의 wRC+은 14위다.[40] 데뷔 시절 현대 감독이었던 김재박 전 감독이 박진만의 느린 발 때문에 프로의 빠른 타구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경기가 끝나고 밤마다 펑고를 시켜 타구 반응 속도를 높이려 했다.[41] 비슷하게 수비력이 좋은 유격수이지만 주력이 느린 사례로 손시헌이 있다.[42] 허삼영 감독 사퇴 후 잔여 경기 감독 대행[43] WC, 준PO에서 승리하였으나 PO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배하면서 KS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최종 4위[44] 신인 시절 수비와 더불어 2할8푼을 치는 준수한 활약으로 당시 신인왕을 수상해 차기 프랜차이즈로 거론되던 박재홍과 엮어 만든 별명. 둘 다 박씨라 이니셜의 P를 딴 것이다.[45] 이후 선수생활 현역인 2003년에 입학하긴 했지만, 대학교도 인천 지역으로 진학하였다. 역대 인천 연고팀을 빛냈던 스타 중에는 인천 출신 스타들이 많았지만 대학교까지 인천에서 나온 선수는 흔치 않았다. '미스터 인천'이라고 불리던 김경기도 대학은 서울(고려대)에서 나왔다. 물론, 당시엔 대졸 야구선수가 대다수였고, 야구 명문은 대부분 서울에 있었기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긴 하다. 그 외 양승관, 김동기, 위재영, 박민호가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부 인천에서 졸업하였다.[46] 권혁, 선동열, 조동찬과 우승반지 개수가 동일. 참고로 이 분야 최강은 해태의 김정수로 해태에서 8번 진출하여 8번 우승반지를 꼈다. 뒤이어 배영수도 삼성 7회, 두산 1회로 총 8개의 우승반지를 달성하고 은퇴. 그다음으로 역시 해태의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그리고 삼성의 진갑용, 박한이의 7개다.[47] 8개 1명, 7개 3명, 6개 2명(박진만 포함)[48] 박진만 외에 이때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손민한, 정수근, 장성호, 이승호(SK)가 있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였던 정대현은 이미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병역특례와는 무관하다. 당시의 몇몇 기사에서는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나온 것도 있으나 이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기사가 전혀 없었다. 당시 기자들이 유일한 아마추어 팀 소속 선수이니 미필이겠지 지레짐작한 것이 컸다. 나중에는 김수경도 병역특례가 아니라고 나온다.[49] 다만 오지환은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하는 데다 겨우 10시즌만 뛰고 박진만의 통산 삼진 기록을 넘겨버렸다.[50] 실제로 두 선수 모두 우수한 재능과 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깨버릴 정도로 지독한 노력으로 크게 성장한 면이 있는데, 이승엽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명언을 남기며 훈련과 노력을 중시하는 대표적 선수였고 박진만은 현대 시절 김재박의 특훈으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51] 박진만은 SSG에 약하고, 현대의 선수단을 계승했던 키움에도 약하다. 마찬가지로 이승엽은 삼성에 약하다.[52] 다만 현역 선수 시절부터 탈모의 기미는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은퇴 후 코치 시절이던 2020년의 모습을 보면 탈모가 꽤나 진행됐다는 게 느껴질 정도.#[53] 여담으로 백지헌은 KIA 타이거즈 팬이다.[54]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가 박진만 감독에 대해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언급한 적 있다.[55] 김재박과 타이 기록이다.
Where are the times gone baby It's all wrong, where are the plans we made for two (SK! 박진만!)[SL1] 박진만을~ (박진만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삼성의 박진만~ 사랑해요~ x4[16] 가사 때문에 삼성 팬들 사이에서도 김용일의 최악의 응원가로 손꼽히는 노래이기도 하다.[17] 앞에 2번은 음원, 뒤에 2번은 육성으로 불렀다.[18] 2009~2010 정규시즌에 사용되었으나, 응원가가 하도 비판을 받았는지 김용일이 2010 시즌 중간에 쓰다가 조용히 사장시켰다. 이후 박진만 타석엔 타자 공통 응원가만 사용되었다.[SL2]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박진만 x2[20] 2005~2007년까지 사용.[21] 한화 이글스 정현석의 응원가와 같다.[SL3]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워오오오~ ×2[23] 2008년,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사용.[24] 박기혁의 과거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이지영의 응원가와 같다.[SK]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26] 이종범과 장종훈이 유격수 출신이긴 하지만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유격수로서 쳐낸 홈런은 150홈런에 미치지 못한다. 대형 유격수라 불렸던 홍세완은 무릎부상으로 인한 짧은 커리어로 인해, 김하성과 강정호는 해외진출로 인해 달성하지 못하였다. 오지환이 2024 시즌 역대 두 번째 유격수 150홈런을 달성하였다.[27] 이 7번은 삼성에서 역시나 유격수인 김상수-이재현이 차례로 물려받았다.[28] 동갑인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보다 50일 늦게 태어났다.[29] 팬들이 덕아웃에 있지 말고 나와서 수비하라는 플랜카드를 만들어 올 정도. #[30] 다들 해외진출 경력이 있으며 리턴한 이종범은 2기부터는 외야수로 변신했다.[31] 물론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타격은 일단 더 빨리 성장하고 있기는 하다. 박진만의 경우 데뷔 초기에는 타격이 잘 되지 않았고 수비 실수도 있어서 마음고생을 겪었으며, 김재박의 특훈 끝에 수비가 안정화되었고 2000년 즈음부터 공격까지 살아나며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32]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으로서는 여름만 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2023년 6월 팀의 부진과 더불어 2023년 8월에는 지나치게 선수를 혹사시켰으며, 혹사가 줄어든 2024년에도 6월 초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 여럿 나오고 있고 6월 말~7월까지 여러 문제점이 터지며 팀이 부진하기도 했다. 2025 시즌에도 6~7월까지 경기 운영 문제로 부진했지만 8월 이후부터는 귀신같이 상승세를 타서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분류
- 박진만
- 병역특례자/야구
- 1996년 데뷔
-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선수
-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감독
- 1976년 출생
- 2015년 은퇴
- 남동구 출신 인물
- 인천서화초등학교 출신
- 상인천중학교 출신
- 인천고등학교 출신
- 내야수
- 우투우타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은퇴, 이적
- 삼성 라이온즈/은퇴, 이적
-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은퇴, 이적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KBO 페어플레이상
- KBO 골든글러브/역대 수상자/내야수
- 삼성 라이온즈/역대 감독
- 감독 대행/야구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
- KBO 한국시리즈 MVP
- 대한민국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 삼성 라이온즈/코칭스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