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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13 22:37:43

조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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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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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 김성현 · 70 조동화 · 71 이숭용 [[틀:SSG 랜더스 감독|
]] · 72 조동찬
· 73 오준혁 · 74 경헌호 · 82 세리자와 · 83 임훈
· 86 윤재국 · 88 송신영 · 91 이승호'''
2군
'''75 손용석 · 76 [[박정권|박정권
]] · 77 이명기 · 78 이윤재
· 79 이영욱 · 80 봉중근 · 85 나경민 · 89 류택현'''
육성군
81 배영수 · 87 박재상 · 93 김수윤 · 94 류효용 · 95 이지태
육성 파트
121 곽현희 · 130 스티브 홍
컨디셔닝 파트
1군 122 고윤형 · 123 길강남 · 125 김상용 · 127 김대권
2군 120 이형삼 · 124 김기태 · 126 임석훈 · 128 오신영
스트렝스 파트
1군 132 김태호 · 131 박재영
2군 133 한지훈 · 134 박정욱 · 135 최원준
프런트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타 KBO 리그 구단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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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등번호 72번
강병식
(2024~2025)
조동찬
(2026~)
현역
파일:조동찬 2026 프로필.jpg
<colbgcolor=#ce0e2d><colcolor=#fff> SSG 랜더스 No.72
조동찬
趙東贊 | Cho Dong-Chan
출생 1983년 9월 4일[1] ([age(1983-09-04)]세)
충청남도 공주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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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공주중동초 - 공주중 - 공주고
신체 180cm, 80kg
포지션 유틸리티 플레이어(3루수, 2루수, 유격수)[2][3][4][5]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2~2018)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수비코치 (2019)[6]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19)[7]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20~2022)[8]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22~2023)[9]
삼성 라이온즈 2군 작전·외야코치 (2024)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총괄·수비코치 (2025)[10]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내야수비코치 (2025)[11]
SSG 랜더스 1군 수비코치 (2026~)
병역 예술체육요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등장곡 박상민 - 〈너에게로 가는 길
응원가 Village Stompers - 〈Washington Square[12][13]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14][15]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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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0e2d><colcolor=#fff> 가족 <colbgcolor=#ce0e2d><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조동화
사촌 사촌 동생 조용근
배우자 김하연
자녀 아들 조부건, 딸 조서윤, 조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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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삼성 라이온즈3.2. SSG 랜더스
4. 플레이 스타일5. 응원가6. 여담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SSG 랜더스 1군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16][17]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손에 꼽히는 툴 플레이어였으나 극심한 유리몸 기질로 인해 주전급 기량에 비해 충분히 경기를 나오지 못했고, 결국 가진 재능에 비해 아쉬운 통산 성적을 남겼다. 통산 wRC+는 약 90에 WAR은 거의 매년 양수를 찍을 정도로 내야 백업으로서는 매우 준수했고, 커리어 하이 시절에는 웬만한 주전 선수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대체선수에 가까웠던 형 조동화보다는 훨씬 급이 높은 선수였다.[18] 하지만 당시 강팀이었던 삼성의 내야 사정상 많은 출전을 보장받지 못했고 기회가 생겨도 부상으로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전 자체를 많이 하지 못했을 뿐 실력은 충분했기에 전성기 시절에는 박석민이 각성한 왕조 시절 이전까지는 건강하기만 하다면 무리 없이 주전을 잡을 수 있었다. 왕조 시기 이후에도 내야 제1백업으로 활동했으며 이는 왕조 시절을 지탱하는 큰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무릎 부상 이후에도 최우선 백업으로 뛰다 커리어를 마쳤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조동찬/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2년 2003년 2004~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2006년 2010년


3. 지도자 경력

3.1. 삼성 라이온즈

은퇴 후 곧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육성군 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엔 여전히 육성군 수비코치로 나와있지만, 어째서인지 6월쯤부터 계속 1군 선수단과 동행하고 있다. 그러던 중 7월 17일부로 강봉규 타격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군 타격코치가 오지 않고 조동찬 코치를 타격코치로 기용한 것에 대해 김한수 감독은 분위기 전환 차원이라고 밝혔다. # 이에 대해 이영수 코치와 메인/보조 구분 없이 남은 시즌 타격 파트를 맡을 것이라고...

2020년에는 김용달 타격코치가 영입됨에 따라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옮겼다.

수비코치로서의 평가는 그냥 무난하다는 평. 특히 2020년 9월 3일 대구 두산전 8대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중간에 선수단을 집합시키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그 경기는 결국 10대 1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심지어, 이후 3연승을 하고 있다.

이후 종종 선수단을 집합을 시키곤 하는데 집합하고 나서 경기력이 좋아지는 경우가 빈번해서 의외의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2022년 7월 10일 손주인과 보직을 맞바꿔 2군으로 내려갔다.

2025년에는 육성군 총괄 겸 수비코치를 맡고 있다.

7월 4일 강명구 코치가 본인이 맡던 육성군 총괄 겸 수비코치를 맡게 되자 공석이 된 2군 1루 주루 겸 내야수비코치[19]를 맡았다.

3.2. SSG 랜더스

2026 시즌 SSG 랜더스의 1군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24년 동안 입었던 삼성 유니폼을 벗고 처음으로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보게 되었다.

동시에 형 조동화와 함께 SSG에서 1군 코칭스태프로 활동하게 됐는데, 이는 KBO 역사상 최초로 형제가 같은 팀 1군에서 코치로 일하게 된 사례라고 한다.[20]#

다만 조동화의 잦은 주루 판단 미스로 본인의 평가도 좋지 않은 상황에 왜 동생까지 데려오냐는 비판이 많다.

발표 당시 조동찬은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코치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발표가 난 다음날인 10월 29일에 미야자키를 떠나 SSG의 가고시마 유망주 마무리캠프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엄청난 실책 개수로 인해 왜 삼성에서 2군 코치 생활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수비 시프트도 자주 거는 편인데 거는 족족 공이 반대로 빠져나가며 욕을 먹고있다.

이후로도 수비 실책으로 자멸하는 경기가 많아지자 랜더스 팬들의 여론은 크게 악화된 상태이며, SSG 팬들은 차라리 전임 수비코치인 손지환손시헌이라도 다시 데리고와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21]하물며 그 손시헌도 1군 수비코치로써 평이 좋진않았는데[22] 다시 데려오라할 정도면 조동찬이 얼마나 심각한지 증명이된다.

4. 플레이 스타일

삼성의 대표적인 툴가이형 선수로, 출루 능력은 아쉽지만 주력, 파워 등의 운동능력이 좋고 수비력도 준수하다. 즉 하비에르 바에즈와도 유사한데, 여기에 유리몸도 갖춘 선수이다. 사실상 김영웅이 있기 이전에 조동찬이 있었다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23]

무릎 부상 이전에는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낼 수 있는 펀치력과 압도적인 주력을 뽐내는 호타준족형 선수였으며, 이로 인하여 부상만 없다면 주전급으로 항상 중용되었던 선수였다. 하필 팀 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채최박이 터져버리고 본인도 30세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 바람에 재능에 비해 통산 성적이 매우 아쉬운 케이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 주전~1호 백업으로 뛰어난 통산 성적을 올렸다.[24]

뜬금포를 자주 때려주는 경향이 있어 류중일 감독이 주전으로 꽤 애용했다. 타율 또한 3할을 넘긴 시즌은 한 번도 없으나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 떨어지는 타격 능력을 잘 커버했다. 거기에 포수를 제외한 내외야 전 포지션에 출전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준수한 수비력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대수비나 대타 요원으로도 자주 기용되었고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포지션이 있을 때에는 대체 후보 1순위로 활용되었다.

부상 전엔 주력이 매우 좋아 단독 도루 작전을 자주 맡았고 대주자로도 자주 기용되었다. 통산 도루 성공율 또한 매우 높으며 전성기인 2010 시즌에는 30개가 넘는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술할 무릎 수술의 영향으로 주력이 상당히 감소해 대담하게 시도하는 편은 아니게 되었다. 은퇴 시점에서 통산 10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한국 프로야구 역대 도루 성공률 1위(83.8%)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25]

조동찬의 가장 큰 단점은 유리몸. 부상 때문에 2015 시즌은 그냥 통째로 날려먹었고, 100경기 이상 출장한 시즌이 4번에 불과하다. 특히 2013년에 입은 무릎 부상은 결국 그의 양 다리의 길이를 달라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주력과 타격 밸런스 모두 무너지며 한동안 크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이후에도 내야진에 구멍이 날 때마다 1호 백업으로 활동하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5. 응원가

6. 여담

6.1.조동화

파일:/image/076/2010/11/25/2010112501002596300157651.jpg
2001년 조동화(우)와 동생 조동찬(좌)의 모습.
파일:조동화 조동찬.jpg
양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 두 사람의 모습.
파일:조동화 조동찬 코치.png
양 팀의 코치 신분으로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

SK 와이번스조동화와는 두살 터울 형제 사이다. 형인 조동화가 2000년 SK에 신고선수(연습생)로 입단한 것에 비해 조동찬은 2002년 2차 1번으로 지명받고 입단해서 프로 입단년도는 형보다 늦었지만, 실질적인 1군 활약은 조동찬이 더 빨라 인지도는 형보다 더 앞선다. 또한 한국시리즈 경험 커리어나 우승 경험면에서도 동생이 한수 위. 조동화가 2003년에 상무를 안갔다면 경험 커리어는 같았겠지만.[35] 그러나 삼성과 SK가 만난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우승함으로써 둘의 우승 경험 커리어는 같아졌나 했는데, 2011년~2014년 4년 연속 삼성이 우승, 동생이 다시 세 개 더 앞선다.(2013년은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 제외)[36]

형과는 매우 사이가 좋다. 어려서 집이 가난해 둘 중 한 명만 야구를 시키려고 했는데 형이 기꺼이 동생에게 양보해 결국 부모님이 좀 더 노력해 둘 다 계속 야구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고, 프로에 먼저 입단한 형이 동생을 위해 선배들한테 이런저런 야구장비를 얻어다가 동생을 줬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오히려 형이 동생을 더 아끼는 편인듯 하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 나간 형을 위해 형이 홈런치는 꿈을 꿨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0년 아시안게임 엔트리 탈락 이후에 갑자기 버닝한 것도 형하고 하룻밤 자면서 마음을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버닝 덕에 결국 최종 대표로 선발되었다. 인터뷰에서도 형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

참고로 2014 시즌 후 두 형제가 나란히 FA 자격을 얻었는데, 역대 최초의 형제 FA기도 하다. 두 선수 모두 우선협상 마지막 날에 조동찬이 4년 총 28억, 조동화가 4년 22억에 원 소속구단과 타결에 성공, 합쳐서 50억을 버는데 성공했다.

부모님은 계란 장사를 했는데, 형 조동화는 계란을 싫어해서 남는 계란은 자연히 조동찬의 몫이 되곤 했다. 이 계란 덕인지 체격 면에서는 형보다 앞선다. 여기에 1군에서의 활약도 조동찬이 더 빨랐기 때문에 조동찬이 형인 줄 오해하는 팬들이 꽤 있다.

여담으로 조동화, 조동찬 형제의 우승반지 개수는 무려 9개나 된다.(02,05,06,07,08,10,11,12,14) 게다가 중간에 빠진 2년조차 조동화의 소속팀 준우승(09)과 조동찬의 소속팀 우승(13)[37] 이 포함돼 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번갈아가며 우승반지를 획득할 수도 있었던 셈. 소속팀 SK 와이번스삼성 라이온즈가 2000년 후반~2010년 초반을 호령한 강팀이었다보니 이런 기록도 가능할 뻔했다.

05조동찬-06조동찬-07조동화-08조동화-09x-10조동화-11조동찬-12조동찬-14조동찬.

같은 해에 유니폼을 벗었다. 또 각자 31세 시즌 말미에 심각한 왼 무릎 부상을 당했던 것도 공통점이다.

2026년부터는 형제가 같은 팀에서 코치로 활동한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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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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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83년 7월 27일.[2] 주 포지션은 3루수로 통산 670경기(513선발) 4,590⅓이닝을 출전했다. 원래는 키스톤과 3루를 모두 보는 유망주였으나 2005년 김한수를 1루로 밀어내고 2년 동안 주전급 3루수로 출전했고, 이후 잦은 부상으로 박석민에게 밀려났으나 이후에도 3루수로 종종 투입된 편. 특히 2010년에는 박석민이 손가락 부상으로 지명타자 출전이 많아져서 사실상 주전 3루를 꿰찼으며, 2016년에도 박석민의 이적과 아롬 발디리스의 부진/부상으로 3루수 주전이 되었다.[3] 2루수유격수로도 많은 경기를 출전했는데, 2루수로는 통산 271경기(222선발) 1,750이닝, 유격수로는 통산 185경기(135선발) 1,235⅓이닝을 출전했다. 2004년 틸슨 브리또의 이적으로 주전 유격수를 맡았고, 박진만 영입 후에는 3루수로 더 많이 출전했으나 유격수로도 2011년까지는 간간이 출전했으며 특히 2009, 2010년에 유격수로 적지 않은 경기를 출전했다. 2011년부터는 김상수가 주전 유격수를 맡기도 했고 주전 2루수 신명철의 노쇠화로 서서히 2루수 비중이 늘어났고, 2012~2013년에는 주전급 2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는 거의 3루수 위주로 출전했다가, 2016~2017년에는 키스톤이 부실했던 팀 사정상 2루수와 유격수로도 종종 출전했고 특히 2017년에는 사실상 주전 2루수에 가까운 위치였다.[4] 이외에도 외야수, 1루수로도 종종 출전했다. 외야수의 경우 주로 좌익수로 나왔는데, 특히 2005년과 2008년에 출전이 많았으며 통산 35경기(26선발) 212이닝을 출전했다. 우익수와 중견수로는 각각 통산 7경기(2선발) 12이닝, 6경기(4선발) 35⅓이닝 출전에 그쳤다. 1루수로는 거의 출전이 없었다가 2017, 2018년에 다린 러프의 백업으로 간간이 1루수로도 출전했고, 통산 39경기(13선발) 161이닝을 출전했다.[5] 여담으로 2008년에는 포수를 제외한 내외야 7개 포지션에서 적어도 1경기 이상 출전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주로 3루수와 좌익수로 나온 편.[6] ~7월 16일[7] 7월 17일~[8] ~7월 9일까지.[9] 7월 10일~[10] ~7월 3일[11] 7월 4일~[12] 삼성 삼~성 조동찬~ 삼성 조동찬~ (안타!) ×4[13] 참고로 이 곡은 해병대 군가 〈묵사발가〉, KIA 타이거즈의 팀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14] 조동차~아~안~ 조동차~아~아~아아아안~ 삼성 조동찬~ 조동찬~ 조동찬~[15] 팬들에게 매우 혹평을 받으며 2011 시즌 초반만 쓰고 폐기됐다.[16] 주 포지션은 3루수였으나 유격수-2루수는 물론 외야수로도 출장한 적이 있다.[17] 특히 2008년에는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출장했다. 역대 포지션 출장 경험으로 따지자면 포수까지 출장한 경험이 있는 이종범에게 밀려 2위에 해당하지만 단일년도 포지션 출장 경험으로만 따지자면 조동찬이 1위이다.[18] 이는 프로 입단 과정에서부터 알 수 있는데, 조동찬은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지명을 받았지만 조동화는 지명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입단했다.[19] 같은 날 1군 1루코치로 올라간 정병곤 코치의 보직[20] 2013년 NC에서 양승관-양후승 형제가 같은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으나 당시 동생인 양후승은 2군 코치였다.[21] 그 손지환과 손시헌을 데려간 두산은 처음에는 불안했으나 갈 수록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더욱 그러한 평이다.[22] 이마저도 손시헌은 후반기에 수비 실책이 줄어들면서 평가가 좋아졌다.[23] 단, 김영웅은 주력보다 파워에 치중한 선수라면 조동찬은 파워보다 주력에 치중한 선수이다.[24] 당장 암흑기 시대 조동찬과 비슷한 포지션의 외야수인 김헌곤과 비교하면 승리기여도 격차가 확실하다.[25] 이후 김혜성김지찬이 100도루를 기록함과 동시에 각각 84.7%, 87.8%의 성공률로 조동찬의 기록을 돌파했으나, 현역을 지속하면서 성공률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26] 기존에 선수들이 쓰는 헬멧에 얼굴가리개를 붙인 것으로 헬멧 쓴 모습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시킨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전에 심정수이종범의 사례 때문에 검투사 헬멧 형태가 따로 제작되었지만 조동찬이 쓴 헬멧은 따로 국내에서 만든 수제품 헬멧.[27] 보면 알겠지만 쳐서 막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기 쪽으로 굴려서 잡는다. 게다가 형 조동화도 번트하면 크보에서 알아주는 번티스트다.[28] 근데 잘 보면 좌타자 번트자세다...[29] 2012년 말에 정식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2012 시즌 도중 부건이가 태어난지 몇 달 되지도 않아 둘째가 생겼다. 따라서 결혼식은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미뤄진듯.[30] 형 조동화의 딸인 조예원 양[31] 통산 도루 개수는 150개, 도루 실패는 단 29개.[32] 상대방 포수도 김혜성을 비롯하여 발이 굉장히 빠른 주자가 루상에 나갈 경우 거의 뛸 것을 다 의식하고 있으니 투포수들이 더 집중하게 된다. KBO의 대도들이 조동찬보다 도루 성공률이 낮은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33] 초중고 동기로 함께 야구부 생활을 했다.[34] 고향은 경기도지만 야구를 하기 위해 공주로 내려가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35] 2009년까지 삼성은 02, 04, 05, 06 4번 진출했고 3번 우승했으며, SK는 03, 07, 08, 09 4번 진출했고 2번 우승했다.[36] 참고로 조동화는 2011년에는 시즌 막판 무릎 부상으로 가을 야구에 불참했고, 2012년에는 2010년과는 반대로 건너편에서 동생이 우승 반지 끼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근데 불행 중 다행으로 조동화는 동생과 달리 2011년의 부상과 큰 수술 이후 재활에 성공하여 수비력에 큰 지장을 받지 않고 FA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큰 부상도 더 이상 당하지 않았다. FA직전 시즌에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실력 대비 초대박 계약에 성공했다. 결국 한 시즌 정도를 날렸어도 이후 부상 후유증에 의한 치명적인 악영향은 받지 않았다.[37] 부상으로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