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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롬 발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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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롬 발디리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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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2번
정인욱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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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백상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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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롬 발디리스
Aarom Baldiris
본명 아롬 헤르만 발디리스
Aarom German Baldiris
출생 1983년 1월 5일 ([age(1983-01-05)]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국적
[[베네수엘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90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NYM)
소속팀 나베간테스 델 마가야네스 (2006/07)
티그레스 데 아라과 (2007/08)
한신 타이거스 (2008~2009)
오릭스 버팔로스 (2010~201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4~2015)
삼성 라이온즈 (2016)
지도자 아롬 발디리스 52 베이스볼 아카데미 감독 (2017~2021)
티그레스 데 아라과 타격코치 (2021/22)
티그레스 데 아라과 감독[1] (2021/22)
티그레스 데 아라과 타격코치 (2022/23)
응원가 우주의 왕자 히맨 오프닝[2]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기타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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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티그레스 데 아라과의 감독.

2. 선수 경력

2.1. 마이너리그

할아버지는 콜롬비아 프로리그 선수였고, 아버지도 야구를 좋아해 어린 나이부터 야구를 접했다.

1999년 뉴욕 메츠마이너 계약을 했다. 2001년에는 부상으로 아예 활동하지 못했지만 2002년에는 싱글A, 2004년에는 더블A로 올리오는 등 무난한 성장세를 보였다. 2005년 2루수로 포지션을 바꿨는데, 바뀐 포지션에 적응하지 못하며 리그 실책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후 클레임 웨이버를 통해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이적했다. 2007년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옮겼고 그 해 9월 양키스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됐지만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지 못했다.

2.2. 일본프로야구

2.2.1. 한신 타이거스

마이너리그 시절 팀 동료로부터 일본프로야구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2008년 2월 일본에 와서 한신 타이거스의 전지훈련에 연습생으로 참가했다가 타격과 수비 모두 인정받으며 육성선수로 계약했다.[3] 2군에서 발군의 타격을 보여주며 그 해 5월 1군에 등록됐다. 수비는 괜찮아 대수비로서는 가치가 있었지만 1군 타율은 2할 2푼대로 저조했다. 당시 한신 주전 3루수로 있던 아라이 타카히로 때문에 2009년에는 외야수로도 나왔지만, 역시 2군에서와 달리 1군에서는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면서 시즌 후 방출됐고, 오릭스 버팔로즈로 이적했다.

2.2.2. 오릭스 버팔로즈

파일:/image/109/2015/12/30/201512301146778090_568345b650918_99_20151230120103.jpg
파일:/image/109/2011/04/13/201104132100776131_1.jpg
2011년 모습. 이승엽과 함께. 이 둘은 5년 후인 2016년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된다.[4] 또한 이대호와도 2012년~2013년에 동료였다.

그렉 라로카의 대수비로 2010 시즌을 시작했는데, 5월 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대주자로 출장한 후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지자 발디리스는 혼자서 2안타를 쳤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15경기 연속 안타를 치면서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비록 규정타석은 12타석 모자란 채로 시즌을 마쳤지만 타율 .301에 홈런 14개를 쳤다.

2011년에는 새로 영입된 마이크 헤스먼[5]과 3루를 두고 경쟁했다. 시즌 도중 타격 부진으로 2군에 가기도 했지만 1군에 복귀한 후에는 5번 타자로 자리를 굳혔다. 9월 1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는데, 마침 그날 할머니의 부고를 알게 돼 경기 후 오늘 홈런을 할머니에게 바친다는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 온 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웠고 타율은 .267로 떨어졌지만 홈런 18개로 팀 내에서 홈런을 제일 많이 쳤다.[6]여담으로 3루수 경쟁자 헤스먼은 48경기 6홈런 14타점 타율 .192로 망하고 1년만에 일본을 떠났다. 여담으로 이 규정타석 만족은 같은 해 치바 롯데 마린즈오카다 요시후미와 함께 NPB 육성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규정타석을 채운 것이었다.

이대호가 영입된 2012년에는 7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T-오카다의 부상으로 3번이나 5번 타자로 기용됐다. 타율 .264에 홈런 10개 등, 시즌 성적은 전년도 대비 더 떨어졌지만, 2루타 31개를 쳐 리그 1위에 이름을 올렸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9번째로 2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토이 요시오가 이대호-발디리스를 받치기 위해 영입된 2013년에는 142경기에 출장하면서 팀내 선수 중 가장 많이 출장했다. 타율 .289에 홈런 17개로 전년도 대비 선전했지만, 시즌 후 구단과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보류 명단에서 제외됐다.

2.2.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파일:/image/410/2015/12/30/20151230_1451441651_99_20151230111608.jpg
2013년 말 요코하마와 2년 1억 5천만엔에[7] 계약을 맺었다. 계약 당시에는 지금까지 뛰어왔던 팀들에 비해 좁고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기 때문에 타격성적이 더 좋아질것으로 예상이 되었지만... 2014년 5월 10일 야쿠르트와의 홈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치면서 요코하마의 홈경기 통산 1000승 달성에 이바지했다. 6월 영입한 2루수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구단이 3루수로 기용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1루수 토니 블랑코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발디리스는 한동안 1루수를 맡았다. 시즌 성적은 타율 .255 홈런 17개로 20홈런은 당연히 넘길거라는 예상에 비해 자신의 평균적인 성적에 수렴했다.

2015년 초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탈단하면서 다시 3루수를 맡았다. 5월 27일 오릭스전에서 과거 팀 동료였던 츠카하라 쇼헤이를 상대로 홈런을 치면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29번째로 전구단 상대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258에 홈런 13개. 시즌 후 요코하마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구단은 새로운 3루수 제이미 로맥[8]을 영입하면서 발디리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사실 오릭스 말기부터 잔부상이 많았고 주루면에서는 거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만큼 발이 느려졌는데 비슷한 시기 뛰었던 이대호와 함께 NPB에서 가장 느린 주자라는 혹평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이 느려진 발덕분에 수비범위도 엄청나게 좁아져서 한신시절 칭찬받던 수비도 미묘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 오릭스 말기부터는 수비범위를 나타내는 UZR을 봐도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때까진 육성형 용병으로 시작해 오랜 일본 커리어를 보낸 나름의 괜찮은 선수였으나...

2.3. KBO 리그 입성

2.3.1. 2016년

파일:/image/468/2016/04/05/2016040501000245400015951_99_20160405185903.jpg

2015년 12월 30일, 아롬 발디리스의 삼성 라이온즈 입단 소식이 전해졌다. 연봉은 야마이코 나바로의 2015년 연봉보다 5만달러 더 비싼 90만 달러.[9] 이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20-20클럽에 100득점 100타점을 못 하면 팬들에게 욕 먹게 될 첫번째 희생자라는 농담도 있다. 안 그래도 나바로는 2루수인데 이 양반은 3루수인지라... 정작 본인의 목표는 타율 3할이다.

일단 스프링캠프 때는 수비훈련도 열심히 하고 추가 타격 훈련도 자처하는 등 매우 성실하다고 한다. 물론 전 타자용병이 나바로라 기본만 해도 성실해 보이겠지만...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현재 나바로가 재평가되면서 둘의 대결 드립도 생겼다.

일단 시범경기에서의 모습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16경기에 출전해 45타수 18안타 타율 0.400에 득점권 타율 0.467을 기록했다. 물론 장타는 2루타 1개에 홈런 1개다. 수비는 확실히 부드럽게 잘한다. 포구 자체도 부드럽고 송구도 안정적이다.
복귀 전 성적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3 83 18 2 0 1 8 13 12 9 3 0 .217 .323 .277 .600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면서 타격 성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10] 4월 8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루타 하나와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7득점 중 반 이상인 4타점을 혼자 올리는 큰 활약을 보여줬다. 이 날 성적은 5타석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했고 팀은 7대 3으로 승리.

그 이후 역시나 거침없는 똑딱이의 면모를 보여준다.4월 23일 경기 까지 홈런 1개에 2루타 2개 타율도 일본 시절보다 못한 2할 3푼대여서 완전한 먹튀로 각성했다. 장타는 거의 나오질 않고 똑딱질만 해도 겨우 이정도의 타율이다. 스윙자체만 보면 꽤나 호쾌해 보이지만, 배트스피드가 문제다. 그래서 타구가 잘 뻗지 못하는 느낌. 심지어 수비도 불안하며 득점권마다 무기력하게 물러나며 최악의 먹튀를 보여주고 있다.

5월 1일 1회초 상대 선발의 제구가 흔들리는 가운데 어이없이 병살로 물러나서 상대 선발의 기를 살려 주더니 곧바로 1회말 역전을 허용하는 실책성 플레이를 저지르고 이닝이 종료되지 않고 2점을 더 헌납. 공수 양면에서 역적짓을 저질렀다.[11]

아킬레스건 부상이 회복이 되지 않았는지 주루도 제대로 못하고 타격에 있어서도 무사 1,3루 상황에 내야 뜬공밖에 치지 못하는 등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단물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혀 타구가 내야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5회초 뜬공 치고 덕아웃으로 복귀하는데 류중일 감독마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며 완전히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한국에 입국한 가족들과 함께 짐을 쌀 것으로 보이는데.

5월 3일 여전히 답이 없는 타구질로 2회말과 7회말 2번이나 병살을 적립했고, 2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치긴 했지만 후속타자 이지영의 우전안타 때 3루로 가는 도중 주루사를 당하며 타격과 주루 양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번트를 대는 게 나을 정도.[12] 팀은 5:0으로 영봉패 당했고 2병살타 1주루사에 점수차이를 고려했을때 경기 하나를 혼자서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편 이날 경기 전 뜬 영남일보 기사에 따르면 야마이코 나바로와 비교되는 거에 대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5월 4일 경기를 앞두고 이용철 해설위원이 전한 바로는, 류중일 감독이 발디리스에게 2군에 내려가서 몸을 만들고 올라오는 게 어떨지 물어보니 정확한 답을 안 줬다고 한다. 타격에선 여전히 답이없는 타구를 날리고 있고 5회초 두차례나 산책수비를 보여주며 역전패의 빌미를 제대로 제공했다. 6회초 최형우의 2루타와 이승엽의 안타로 또 무사 1,3루 기회를 맞아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중견수쪽 얕은 플라이를 치며 희생플라이 조차 치지 못하고 3루에 있던 최형우가 묶여버렸다. 결국 7회초 1사 이후 박계범이 2루수로 조동찬이 3루수로 수비를 옮기며 교체, 더이상 경기에서 볼 수 없었다.

결국 5일 경기를 앞두고 2군행. 대신 김태완이 콜업되었다. 그리고 그 날 경기를 이겼고, 승리 기사 밑에는 발디리스 빠지니 바로 효과가 난다는 리플들이 주루룩 달렸다.

6일 아킬레스건이 좋지 않아 3군으로 내려갔다. 삼성은 발디리스가 빠지기 무섭게 sk 김광현을 꺾고 2연승을 달렸다. 승리 기사 밑에는 당연히 발디리스가 빠진 효과라며, 방출하라는 리플이 주루룩 달렸다. 게다가, 어버이날 혈투 당시, 대신 1군 콜업된 김태완이 대타 3점홈런을 날려서 동점을 만들었고, 비록 역전당하긴 했지만 이 날 경기를 이겼다. 3루수도 조동찬이 대신 들어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발디리스의 자리는 없을 듯.

5월 11일 최훈 카툰에서 발디리스가 빠진 뒤발치 효과로 4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고 나온다.[13]

22일 경기, 팀은 패배했지만 사실상 선발 3루수로 자리매김한 조동찬이날 경기만 홈런 2개를 때려냈다. 시즌 발디리스의 홈런은 1개.

5월 26일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26일과 31일에 홈런을 쳤다. 그러나 1군에서는 조동찬이 31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쐐기점을 박는 시즌 7호 홈런으로 발디리스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어쨌든 2군 경기에서 장타율 10할대를 기록해 나름대로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음을 보여주었고, 때마침 구자욱이 부상으로 빠진터라 6월 1일이나 2일 정도에 1군에 복귀시켜 1루수로 기용할 계획이 있었으나, 5월 31일 2군 경기 중 발목 통증을 호소하면서 6월 초 복귀는 무산됐다. 그 사이 백상원이 워낙 식물급 타격을 보여주고. 조동찬이 6월 3~4일 한화전을 거하게 말아먹어버리면서 은근쓸적 재평가받았다.

6월 25일부터 다시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6월 30일 드디어 1군에 콜업됐다. 과연 답이 없는 삼성 타선의 희망이 될지 아니면 KBO 무대의 마지막이 될 지 지켜봐야 할 상황. 그런데...
복귀 후 성적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1 71 23 4 0 7 16 20 19 8 6 0 .324 .462 .676 1.138

6월 30일 롯데전 5번타자 1루수로 출장. 2루타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여 정말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은 막장급 경기를 보여주며 6-7 끝내기패배를 당했다.

LG전 7월 5일 3타수 1안타,7일 4타수 3안타로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또한 1루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전체적인 수비 안정화를 이루고 있다.

7월 9일 한화전에서는 2홈런, 특히 2번째 홈런을 정우람을 상대로 블론을 안기는 홈런으로 장식했다. 팀은 무승부를 기록. 타율이 2할 8푼대까지 치솟았다.

사실 이 선수가 외인 타자여서 그렇지, 시즌 기록을 잘 살펴보면 팀 내에서 그닥 나쁘진 않았다. BB/K도 1을 상회하는 데에다 이로 인해 출루율은 타율에 +0.1 정도 찍었고, 아무래도 2016 시즌 이 팀의 악재 중 하나인 부상[14] 발목잡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주루플레이와 수비력은 아직까진 볼만한 실력은 아니다만... 당장 이 선수가 빠지고 여러 차례 넣었던 선수들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선수 이전에 있었던 외인타자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해 보자.[15] 물론 그렇다고 발디리스가 돈값을 했다는 것도 아니다. 발디리스보다 비싼 외국인 타자는 테임즈, 로사리오 둘 뿐이며 기아와 재계약을 두 번이나 한 브렛필과 몸값이 같다! 90만 달러는 약 10억 정도의 거액이다.[16] 또한 내년이면 발디리스는 한국식 나이로 35살이다. 그저 공격력이 부족한 선수들이 득실대는 팀 사정상 기복을 감수하고라도 기용할 만한 선수라는 것 뿐. 올해 발목부상 전력도 있는만큼 노쇠화가 시작되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다. 후반기에 엄청난 임팩트를 뿜어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음 시즌은 재계약이 어려울 듯 하다.

7월 10일 한화전부터 14일 경기까지 4경기에서 14타수 1안타로 다시 먹튀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느린 발로 아웃을 생산해내고 있고, 14일 롯데전에서는 1사 만루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느린 발로 홈-1루 병살타를 기록하며 팀을 패배로 이끌었다.

7월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보우덴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에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팀은 5:4로 승리.

7월 22일 수원 KT전에서 또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6호 홈런. 이날 5타수 3안타(1홈런) 1타점 2득점을 하였다. 팀은 8회 역전까지도 하였으나 그 이후 삽질하는 바람에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그런데 8월 4일 SK전에서 아킬레스건 통증 때문에 복귀 후 처음으로 결장했고, 5일 KIA전에서 선발 출장했으나 3회말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조동찬으로 교체됐다. 결국 6일 아킬레스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부상 부위에 염증이 심해 복귀 시기는 미정이라고.

8월 31일 결국 수술 기사가 뜨며 시즌 아웃이 확정되고 말았다. #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시즌 후 기사에서 삼성 측이 일찌감치 모든 외국인 선수들에게 결별 통보를 했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방출이 확인됐다.

시즌 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의 훈련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대한민국행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일본프로야구 복귀를 원한다고 말했다. 팬들은 대한민국 야구가 맞지 않은 것과 부상당한 건 둘째치고 먹튀인 주제에 발Gi입만 턴다는 반응.[17] 뭐 사실 이게 리그나 팀 옮기는 선수들 국룰이긴 하다. 내가 못해서 짤렸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재취업이 안되니만큼 적당히 듣기좋게 둘러대는 말이 이전 팀에서는 기회가 없었다/적응을 잘 못했다는 말이니 곧이곧대로 듣진 말고 적당히 걸러 듣자.

결국 삼성은 이원석을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발디리스는 이후 오퍼가 없어 은퇴, 현재는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본인과 달리 건강하지만 못치는 용병이 삼성에 오게된다.

3. 지도자 경력

2017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아롬 발디리스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감독을 역임했고 2021년 6월부터는 티그레스 데 아라과에서 타격코치로 있다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감독직을 내려놓고 다시 타격코치로 전환되었다. 이후 23-24시즌에는 코칭스태프에 합류하지 못하며 팀을 떠났다. 이후 다시 본인의 야구 아카데미 운영에 전념하는 듯하다.

4. 기타

한신 타이거스 시절 코치였던 야마와키 코지가 발디리스의 이름을 부르기 어렵다며 '히로시'란 애칭을 붙여줬다.

일본에서는 유난히 짧은 소매의 유니폼 상의를 착용했다. 오릭스 후기나 DeNA 시절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면 거의 한 뼘 정도 소매가 짧았다. 언더셔츠도 사시사철 짧은 소매를 고집해 두터운 구릿빛 팔뚝이 눈에 잘 띄었다.

이승엽오릭스 버팔로즈에 있던 시절에 팀 동료였으며, 굉장히 친했다고 한다. 이승엽이 당시 등장 음악으로 쓰던 드렁큰 타이거의 몬스터를 흥얼거리자 발디리스가 노래가사인 '발라버려'를 따라 불렀다고. 이승엽이 오릭스를 떠난 후에는 이대호와도 함께했었다.

4월부터 계속 죽을 쑬 땐 발기리스 등의 멸칭으로 불렸고 6월 말 복귀 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킹디리스, 풀발기리스 등의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대신 아킬레스건 부상 후유증 때문에 주말 3연전에 방전되는 특징이 있다.

삼성에서 방출 후 인터뷰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2016년 이후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12구단 모두에게 홈런을 친 경험이 있다. 통산 29번째라고 하며, 이 기록 달성자는 2018년 현재 32명.

이 선수 때문에 일본야구를 보지 않는 KBO 리그 팬 일부가 일본야구 수준도 별 것 아니네 하고 폄하하기도 한다. 근데 현실은 같은 해에 30홈런 치면서 대활약한 윌린 로사리오보다 발디리스가 일본에서 더 잘했다. 리그 적응도의 문제일 수도 있고, 노쇠화와 부상을 당한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당장 발디리스는 요코하마 시절부터 노쇠화로 인해 수비력과 장타력이 하락세를 타고 있었고, KBO에서도 선구안 하나는 나바로보다도 좋았다.

사실 삼성 뿐만 아니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역시 디스한 적 있다. 문제는 요코하마의 경우는 발디리스가 뛰던 시절이 암흑기 시절이고 수많은 선수 및 코칭스태프들이 팀 분위기가 막장이라고 디스하던 상황이다 보니 저게 단순한 입털기가 아니라는 것(...)[18]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08 한신 타이거스 77 132 .227 30 9 0 3 16 21 1 .364 .331
2009 23 29 .103 3 0 0 1 1 1 0 .207 .16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0 오릭스 버팔로즈 118 385 .301 116 20 0 14 50 44 1 .462 .363
2011 137 479 .267 128 16 1 18
(3위)
66 49 2 .418 .342
2012 143 503 .264 133 31
(1위)
2 10 55 37 1 .394 .350
2013 142 512 .289 148 25 1 17 91 60 1 .441 .3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4 DeNA 베이스타즈 139 451 .255 115 29 1 17 52 44 0 .437 .331
2015 139 465 .258 120 23 0 13 56 38 0 .391 .33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6 삼성 라이온즈 44 154 .266 41 6 0 8 33 24 0 .461 .389
<colbgcolor=#ffff88> NPB 통산(8시즌) 918 2956 .268 793 153 5 93 387 294 6 .418 .346
KBO 통산(1시즌) 44 154 .266 41 6 0 8 33 24 0 .461 .390
kBO+NPB 통산(통시즌) 962 3110 .267 834 159 5 101 420 318 6 .429 .354

6. 관련 문서


[1] 시즌 중 전환.[2] 최강 삼성 아롬 발디리스 아롬 발디리스 워어어~ 최강 삼성 아롬 발디리스 아롬 발디리스 워어어~ 오~ 발디리스 워어어 발디리스! 오~ 발디리스 워어어 발디리스! 최강 삼성 아롬 발디리스 아롬 발디리스 워어어~ 최강 삼성 아롬 발디리스 아롬 발디리스 워어어~ 오~ 발디리스 워어어 발디리스! 오~ 발디리스 워어어 발디리스![3] 일본 2군에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보유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입단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4] 이 해 2015년 삼성에서 뛰었던 알프레도 피가로도 오릭스에 있었다.[5] 미국판 2군 본즈의 끝판왕과 같은 선수. 2015년에는 마이너리그 통산 433호 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마이너리거 최다 홈런기록자로 야구 역사에 남았다. 현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 싱글A 타격코치. 여담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 한국전에서 9회초에 홈런을 친 선수다. 메이저 기록은 통산 109경기 14홈런 33타점에 타율 .188.[6] 참고로 이 해는 일본프로야구가 투고타저의 끝판왕을 찍었기에 20개를 못 채우고도 퍼시픽리그 홈런 3위를 기록했다.[7] 약 130-140만 달러 정도. 연당 65-70만 달러 수준으로 보험용까진 아니지만 장수용병 치곤 저렴한 값이었다.[8] 그러나 로맥은 2016년 시즌 내내 타율 1할 1푼 7리에 30경기 0홈런 2타점으로 폭망한 후 2017년 결국 한국의 SK 와이번스로 쫓겨나듯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SK에서는 17~18년 2년 연속 30홈런을 치는 등 대활약 중.[9] 참고로 발디리스가 가장 돈을 많이 받던 요코하마 시절 연봉도 환율이 유리할 때 기준 70만 달러 안팎. 발디리스는 일본에서 장수용병이었으나 항상 염가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삼성에서 가장 큰 돈을 벌어간 셈.[10] 다만 이는 삼성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팀의 상황도 마찬가지. 넥센 염경엽 감독이 "타순을 바꿔서 뭔 의미가 있겠냐." 라는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날씨가 추운 탓에 단체로 외인 타자들이 컨디션을 못 찾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니 돈은 4월 7일에서야 마수걸이포를 쳤고, 앤디 마르테도 부상 후유증으로 헤매는 중, 에릭 테임즈도 이제서야 물꼬를 트는 등 외인들이 단체로 이렇게 부진했던 전례가 없었던 점도 있다.[11] 실제로 발디리스의 5월 1일까지의 WAR가 -0.10 이다. WAR가 마이너스이니 벤치에 있는 게 더 도와주는 거다.[12] 결과론이지만 2회 때는 후속타자 백상원이 좌익수 깊숙한 플라이를 쳐서 최소 1점은 나는 상황이었다.[13] 그나마 그 1패도 웹스터, 즉 외국인 용병이다.[14] 본인도 아킬레스건 부상을 겪었다.[15] 부상 이후 5kg 가까이 체중감량을 했고, 그게 좋은 결과가 되었다는 언급이 있었다.[16] 지금 리그를 씹어먹는 최형우의 연봉이 7억이다.[17] 근데 대만프로야구에서 뛰는 마이크 로리도 kt wiz 시절에 대하여 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렇게 말했는데 하나도 욕 안 먹었다. 거기다가 이 문구는 한번 지워진 적이 있다. 즉 2군에서만 뛰었고 창단 1년차라서 팬이 거의 없다 보니 팬들에게 특별히 분노를 가져다주지 않은 선수가 저런 말을 한다면 신경도 안 쓰는데 팬들을 분노하게 한 선수가 저런 말을 하는 것만 기분이 나쁘다는 팬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사실 그거야 당연한 것이다. 최소한 누군지 얼굴은 알던 사람한테 욕 먹어야 기분이 나쁜 거지 어디의 누군지도 잘 모르는 듣보잡이 뭐라 하면 신경 안 쓰이는 게 사람이라. 더군다나 발디리스는 야구를 못해서 미운 털이 박혀있던 선수고 마이크의 발언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한국문화나 한국인들은 좋았다는 비교적 온건한 발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반응도 덜할 수밖에.[18] FA로 나가는 선수들 중 좋은 말을 하는 선수가 없었으며요코하마에서 어지간한 스타플레이어들은 FA를 얻으면 잔류는 생각도 안하고 이적할 궁리부터 한게 함정 감독이 ‘내가 인사를 먼저 하면 너희들도 인사 좀 해라.’ 라는 말을 선수들에게 할 정도로 구단 내의 기강마저 개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