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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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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가코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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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번호 25번
네일 앨런
(1989)
라이언 가코
(2005~2009)
앤디 마르테
(2009~2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23번
아이반 오초아
(2008)
라이언 가코
(2009)
제프 프랑코어
(2009)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25번
앤드류 존스
(2009)
라이언 가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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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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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타
(2009~2010)
가코
(2011~2011.7.13.)
저마노
(2011.8.1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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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aa가코.jpg
<colbgcolor=#182d55><colcolor=#ffffff>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수 육성부문 부사장
라이언 가코
Ryan Garko
본명 라이언 프랜시스 가코
Ryan Francis Garko
출생 1981년 1월 2일 ([age(1981-01-02)]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3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78번, CLE)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5~2009)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9)
텍사스 레인저스 (2010)
삼성 라이온즈 (2011)
응원가 Kenny Loggins - 《Footloose#[가사]
지도자 스탠퍼드 대학교 코치 (2014~2015)
털사 드릴러스 감독 (2016~2017)
퍼시픽 대학교 감독 (2017~2019)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보조코치 (2020)
프런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수 육성부문 부사장 (2021~)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5. 이야깃거리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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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야구선수이자 현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부사장이다. 201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경력이 있으며 포지션은 1루수 / 지명타자이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assets.espn.go.com/fantasy_u_garko_576.jpg
추신수와 같은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주전 1루수로 뛰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2]으로 전설의 용병 존 갈의 3년 후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20홈런을 쳐 본 파워를 갖춘 우타자로 중심 타선에서 파워를 더할 것으로 기대받았다...하지만, 커리어를 보면 클리블랜드 시절 말년부터 급격히 파워가 떨어지고 있었고, 그 뒤에 자리를 잡은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등에서는 컨택능력까지도 시망해 쫒겨난 상태였다.. 클리블랜드 시절 추신수와 뛰면서 준수한 파워의 1루수로 국내에도 인지도가 높았던 점, 그리고 명문대학 출신의 차분한 성격으로, 이런 타입의 선수들이 프로의식(Work Ethic)이 좋아서 국내 지도자들에게 선호 된다는 점이 스탯상으로도 명확히 보히는 하향세를 읽지 못하게 한 원인이라고 해야 할 듯.

원 포지션은 1루수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외야수로 그를 기용하려고 했으나, 가코가 메이저리그에서 외야수로 출장한 경기는 단 12경기뿐. 훌리오 프랑코의 재림인가 결국 류중일 감독은 처음에는 외야수로 쓰고 싶었으나 스프링캠프에서 지켜본 결과 외야 수비는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리고, 주로 지명타자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범경기 및 정규 시즌 경기에서도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영입 소식을 들은 삼성팬들은 기쁨, 놀라움과 함께 "시민구장 보고 충격 먹으면 어떡하지"란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건 외국인 선수 올 때 마다 항상 걱정하잖아..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서의 모습은 삼성의 영입 의도였던 슬러거 타입의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 중평이었으나, 시범경기 후반부터 몸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는지 연타석 홈런을 치며 삼빠들을 난믿가믿의 설레발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가 부진한 가운데 타석의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었다.

정규시즌에 들어서자 부진을 겪는 듯했으나, 홈에 와서야 이제 좀 방망이가 맞는지 찔끔찔끔 타점을 올리기 시작했다가, 다시 부진하기 시작했다. 5월 27일 기준 22타점으로 최형우, 박석민에 이어 팀 내 타점 3위, 결승타 역시 앞의 두 선수에 밀려 3위. 말이 3위지, 꾸준히 클린업으로 류중일 감독이 기회를 준 상황에서 장타율은 3할을 간신히 넘는 성적으로 우려를 샀다.[3] 삼성은 이미 찰스 스미스라는 타자 용병을 사람 구실하도록 개조해 낸 전력이 있는 팀이고, 가코의 출신 지역이 따뜻한 곳이라 더워지면 더 잘 할 거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4월 30일날 한화전에서 가코의 시즌 첫 홈런이 솔로 홈런으로 터졌다! 리그 개막 후 약 1달 만의 홈런이다. 경기도 1:0 >> 1:5로 역전승했다.

5월 27일까지 44경기 146타수 37안타 1홈런 16사사구 22삼진 22타점 타율 0.253 출루율 0.339 장타율 0.315 OPS 0.654를 기록했다.

결국 외국인 선수라고는 믿을수 없는 부진을 거듭하며[4] 6월 12일 넥센전 5회 2사 1,3루 찬스에서 대타 이영욱으로 교체된 후 바로 다음날인 13일 2군으로 내려갔다. 경기 중반 찬스에서 외국인 선수를 대타로 교체했다는 것은 사실상 퇴출 내지는 1군에서 오랫동안 볼 수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당시 교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단칼 류중일 선생' 꼭지 참조) 요약하면 류중일 감독은 목동 원정을 오면서 이미 가코의 2군행을 마음속으로 결정한 상황이었는데, 가코가 그 상황에서 적시타를 쳐 버리면 정서상 2군으로 보내기 어렵게 되므로 '적시타를 치기 전에' 교체했다는 것.

아무튼 가코를 2군으로 내리고 채태인이 아닌 모상기를 콜업한 결정에 류중일 감독의 지지도는 일시적으로 급상승하기도 했는데, 가코에 대한 팬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으며 기대는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 기사에도 나왔듯이 58경기 220타석이라면 많다못해 차고 넘치는 기회를 준 것이건만... 게다가 1년중 한 달 몰아쳐서 잘 한다는 '조영훈의 그달'이 2011년에는 바로 6월이라서 팀이나 팬들이나 전혀 가코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응원가는 신명나게 "가코! 가코! 라이언 가코!"를 반복하는 병맛쩌는 노래. 원곡은 자유의 댄스(원제 Footloose)의 삽입곡이자 영화와 같은 제목의 곡 Footloose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중독성이 있어, 경기를 보고 난 후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상당히 많이 들린다! 전체적으로 뽕짝삘이 강해진 2011 라이온즈 응원가 중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노래가 아닐까(...). 그런데 본인은 응원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응원가가 동성애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라고...라는 기사가 났었지만, 오해라고 한다. 영화 Footloose에 나오는 춤이 싫었을 뿐, 노래가 싫은건 아니라고.. #[5](이 와중에 통역이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영화 이름을 Dancing at the movies로 착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코의 2군행에 대한 반응을 보면 대다수의 삼성팬들은 이 응원가를 다시 듣게 될 일은 없기를 바라는 반응이었다. 지못미..

6월 18일 타격 훈련 도중 왼손 중지 골절상을 당했다.# 회복까지만 4주. 부상은 안타깝지만, 삼성으로서는 가뜩이나 부진한 데다가 부상까지 겹친 가코를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셈.

7월 14일, 삼성에서 덕 매티스를 영입하며 웨이버 공시로 방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한 데다 영입 때 감독이 인터뷰에서 믿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기대했으나 1군 58경기에 출장하고도 기록한 홈런은 1개로, 홈런 1개 친 역대 외국인타자 중 최장수. 또한 6월 13일 2군에 내려갔음에도 방출된 7월 14일까지 병살타 12개로 병살타 부문 2위를 지키고 있는 등 이만하면 흑역사 확정이다.

현재까지도 기대 이하의 성적과 장타력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최악의 용병 타자를 꼽을 때 다니엘 팔카, 데이비드 맥키넌과 함께 늘 1-3위를 차지한다.[6] 이들 중에서도 메이저 경력이 가장 좋아서 평가가 제일 나쁘다.

2012년에는 독립 리그에서 뛰었다. 리그를 씹어먹을 듯한 무시무시한 포스에 힘입어 이학주가 소속되어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 더블A로 갔다고.

2013년에는 콜로라도 로키스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3월 말에 방출되었다. 이후 팀을 구하지 못하면서 결국 은퇴하고 코칭스태프의 길을 걷는 듯. 메이저리그의 1루수 4번타자로 인상적인 성적을 냈으니 분명 재능은 있던 선수였으나, 전성기가 상당히 짧았고, 겨우 20대 후반에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폼과 실력이 떨어져 있었다. 결국 한수 아래인 KBO에서도 재미를 못보고 은퇴했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5 CLE 1 1 .000 0 0 0 0 0 0 0
2006 50 185 .292 54 12 0 7 45 28 0
2007 138 484 .289 140 29 1 21 61 62 0
2008 141 495 .273 135 21 1 14 90 61 0
2009 78 239 .285 68 10 0 11 39 29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9 SF 40 115 .235 27 3 1 2 12 10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10 TEX 15 33 .091 3 0 0 0 3 0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11 삼성 58 189 .243 46 8 0 1 28 21 0
<colbgcolor=#ffff88> MLB 통산(6시즌) 463 1552 .275 427 75 3 55 250 190 0
KBO 통산(1시즌) 58 189 .243 46 8 0 1 28 21 0

3. 지도자 경력

2013년 9월 말에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교 야구부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됐다. 은퇴 선수들 상당수가 마이너리그 하부에서 근근이 지내다가 은퇴한 뒤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걸 보면 나름 선수로서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직 프로로 뛰기에 충분한 32세의 나이에 은퇴한 아쉬움은 남아 있을 듯.

2015년 말까지 스탠퍼드 대학교 야구부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일하다가 2016년 시즌부로 LA 다저스 산하 AA 팀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4. 프런트 경력

202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수 육성부문 부사장직에 취임했다.

5. 이야깃거리

6. 관련 문서


[가사] 가코! 가코! 라이언 가코! X4[2] 대학 시절까지 포지션은 포수로 당해 최고의 대학 포수에게 주는 상인 자니 벤치 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여담으로 대학 당시 전공은 미국 연구학.[3] 타율이 아니다. 절대.[4] 2군행 직전 성적은 58경기 189타수 46안타 1홈런 28타점 27사사구 34삼진 12병살 타율 0.243 출루율 0.332 장타율 0.302. 5월 27일 성적과 비교하면 14경기동안 고작 9안타와 6타점을 추가했다. 외국인 타자가. 장타라곤 2루타 2개 추가한 것과 병살 3개를 적립한것은 덤.[5] 사실 아주 격렬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외설적이라고도 느낄 수 있을 만한 현대 무용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 여기 나오는 춤 자체는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이긴 하다.[6] 발디리스의 경우 복귀해서는 잠시 잘한 적이 있었다. 살라디노는 성적은 좋았으나 부상을 당했고 대체 선수가 팔카라서 평이 박한 케이스.[7] 이 말과 아래 짤방이 워낙 유명해 가코를 선택한 감독이 류중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가코는 선동렬이 경질되기 전 영입된 선수다.[8] 삼성이 먼저 이 둘과 접촉해서 저울질하고 있을 때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발렌틴에게 접촉하며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