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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3:45:08

마이크 헤스먼

마이클 스티븐 헤스먼
Michael Steven Hessman
출생 1978년 3월 5일 ([age(1978-03-05)]세)
캘리포니아 주 파운틴 벨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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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마터 데이 고등학교
신체 196cm
포지션 내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15 라운드 (전체 452번, ATL)
소속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2003~200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7~2008)
뉴욕 메츠 (2010)
오릭스 버팔로스 (2012)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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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직 야구선수, 야구코치. 마이너리그 최다기록인 개인통산 433홈런으로 마이너 홈런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메이저 통산 14홈런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활약하지 못한 미미한 선수였음에도 마이너 홈런왕이라는 독특한 경력이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어중간한 메이저리거보다도 유명한 선수. 국내에서도 여러차례 기사로 소개된 바 있다.

2. 선수 경력

1996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출신으로 15라운드에 애틀란타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낮은 지명순위에서 알 수 있듯 그다지 기대받은 선수는 아니었으며 196cm이라는 크고 건장한 체격 하나만을 보고 로또삼아 뽑은 수준.

기대치가 별로 없던 선수답게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까지 8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03년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빅리그를 밟게 되고, 첫 안타를 마이크 스탠튼을 상대로 대타 홈런으로 뽑아냈고 2할8푼 3타점 1.090 OPS를 기록하며 비록 26타석이라는 스몰샘플이었지만 어느정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04년에는 마이너에서는 공포의 4번타자인데 메이저리그만 올라가면 삽질을 거듭했고, 훌리오 프랑코비니 카스티야를 보유한 브레이브스는 애초에 기대치가 낮았던 헤스먼을 논텐더로 풀어버리고 만다.

그가 찾은 다음 팀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그러나 여기서 그는 타율이 급작스럽게 하락해서 홈런은 여전히 2년간 28, 24개를 쳤지만 2할대 초반의 공갈포가 되어버렸고, 결국 05, 06년 2년간은 메이저 무대를 못 밟게 된다. 더군다나 플라시도 폴랑코, 매글리오 오도네즈 등의 강타자들이 즐비해서 헤스먼의 자리는 더더욱 있을 수가 없었다.

07년 어느정도 폼을 회복하며 다시 올라온 빅리그 무대에서도 시원찮은 모습만을 보여버리고, 결국 팀은 헤스먼을 포기하고 미겔 카브레라를 영입하는 강수를 둔다.

08년에는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으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올림픽 때문에 1개월이나 시즌을 비웠음에도 34홈런을 기록해서 이 성적을 바탕으로 확장 엔트리에 메이저에 올라간 것. 메이저에서도 비록 스몰샘플이지만 2할9푼에 5홈런을 치며 커리어하이를 쓰며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낸다.

그러나 09년 급작스러운 폼 저하로 또 2할 1푼을 치며 다시 마이너에서만 1년을 보냈고, 방출되어 2010년에는 메츠 산하 마이너로 들어간다. 여기서 또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또 지긋지긋하게도 빅리그에서는 똥을 쌌다.

2011년은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했는데, 1할대의 실망스러운 수치심이 드는 성적을 기록하고 한 해만에 짐을 쌌다.[2]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팀 산하 마이너를 전전했지만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긁어볼 대로 긁어본 그에게 기회를 주는 팀은 없었고 모든 팀이 마이너 뎁스용으로 그를 사용했다. 그의 성적 또한 홈런은 많이 쳤지만 컨택트가 2할대 초반의 공갈포로 올려볼만한 가치가 없는 성적이었고. 그래도 이 시기에 마이너 300홈런 돌파, 현역 마이너리거 홈런갯수 1위로 마이너 홈런왕이라는 명성이 퍼져 기사도 많이 탔고, 그를 보러 오는 마이너 관객도 있어서 나이많은 마이너리거임에도 불구하고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37세 시즌인 2015년에도 2할3푼을 쳤지만 홈런은 16개를 치며 마지막까지 마이너 홈런왕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이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이전 마이너 통산홈런 기록은 432개였는데, 헤스먼이 현역 마지막 홈런으로 433개를 기록하며 기록을 깨고 은퇴했다.

은퇴 후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가, 2022년 시즌이 끝나고 타이거스를 떠났다.

3. 플레이 스타일

마이너 홈런 통산기록 보유자로서, 키 196의 건장한 체격을 지녔다. 이에 걸맞게 당겨치기 풀스윙을 고수하는 우타거포였는데 선구안도 뛰어나서 타율과 출루율이 거의 1할 가까이 차이나는 시즌도 종종 만들어내곤 했다.

이 선수의 문제는 컨택. 소위 말하는 아이-핸드 코디네이션이 부족해서 나머지 모든 걸 다 갖추었지만 마이너에서도 맞으면 홈런인데 2할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컨택 재능이 확연히 부족했다. 타율이 지표로서 의미를 많이 상실한 현재라면 저 출루율을 보고 좀 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겠으나, 이 선수는 96년 드래프트된 선수다. 아직까지 타율이 절대적인 평가지표 중 하나이던 20세기에 데뷔한 선수였기에 낮은 컨택능력 때문에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또한 포지션과 운 문제도 있었는데, 1루, 3루를 주로 보았는데 주 포지션은 1루였다. 1루는 예나 지금이나 강타자들이 득실거리는 자리고, 이 선수들은 고액연봉자답게 주루나 수비에서 허슬플레이를 하지 않으니 거의 다치지도 않아서 자리도 안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루는 유독 노망주들이 나이만 먹다가 결국 재능에 비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산처럼 쌓였고, 헤스먼 또한 그런 경우였다. 헤스먼의 전성기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1루수는 전성기의 미겔 카브레라였고, 당연히 헤스먼은 기약없이 마이너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3]

이런 점들이 여럿 겹쳐서 만개하지 못한 선수. 괜찮은 수준의 수비와 1루수치고는 뛰어난 주루도 갖추었고, 뛰어난 장타력과 선구안이라는 강력한 무기도 갖추어서 의외로 빅리그에서도 타율에 비해 홈런은 제법 치는 편이었고 뛰어난 선구안은 빅리그에서도 통하는 수준이었지만 컨택 재능이 없다는 이 단 한 가지의 약점이 발목을 잡아서 결국 빅리그에서 대성할 수 없었다. 파워는 근육으로 보강할 수 있고, 수비는 연습으로 늘릴 수 있지만 컨택은 재능이라는 점을 뼈아프게 보여주는 선수. 결국 야구는 방망이로 공을 맞추어야 모든 것이 시작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멘탈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빅리그에만 올라오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일본에서도 적응에 실패했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예선전에서 한기주에게 홈런을 뽑아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그냥 그랬던 등 야구인생 전반에서 큰 무대에 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거의 기대치 없이 버리는 카드인 하위 라운더 출신으로서 피나는 노력을 통해 빅리그에 입성했으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능의 차이가 얼마나 잔혹한지 보여주는 사례. 그래도 빅리그 콜업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지속한 덕에 마이너 홈런왕이라는 독특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고, 덕분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인구에 회자되는 선수이고 은퇴 후 코치 자리까지 얻었으니 재능이 없어도 노력하면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돌려준다는 사례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1루수, 3루수[2] 이때 주전이 된 선수는 아롬 발디리스[3] 비슷하게는 필리스 시절 라이언 하워드 때문에 주전 자리를 끝내 차지하지 못하고 아시아에서 만개한 다린 러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