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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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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2) 이수민 김영한 최충연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장지훈 최채흥 원태인 황동재 이승현
2022년
이재현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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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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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9번
박정환
(1994)
<colbgcolor=#c0c0c0><colcolor=#074ca1> 이현동
(2012~2014.7.24.)
이우선
(2014.7.25.~201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
이우선
(2014~2014.7.24.)
이현동
(2014.7.25.~2014)
임진우
(2015)
최재원
(2016)
이현동
(2017~2019)
양우현
(2020~2021.6.1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양우현
(2019)
이현동
(2020~2021)
오선진
(2022)
}}} ||
}}} ||
파일:삼성 이현동 등판.jpg
이현동
李炫東 | Lee Hyun-Dong
출생 1993년 3월 27일 ([age(1993-03-27)]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광주제일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12년 1라운드 (전체 7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12~2021)
병역 경찰 야구단 (2015~2016)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2.2.1. 2012년2.2.2. 2013년2.2.3. 2014년2.2.4. 군 복무2.2.5. 2017년2.2.6. 2018년2.2.7. 2019년2.2.8. 2020년2.2.9. 2021년
2.3. 은퇴
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원래는 투수로 입단했으나 2017년 시즌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재학 시절 팀의 에이스 겸 4번타자로 2010년 황금사자기에서 유창식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본인은 타점상과 수훈상을, 그리고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타자로서는 펀치력을 갖춘 강타자감으로 평가되었고, 투수로서는 145km/h대의 빠른 공을 던져 어느 쪽으로라도 대성할 것이라고 평가를 받았다.[1]2012 신인지명을 앞두고 어깨부상을 당했지만, 1라운드에서 삼성이 투수로 지명했다. 재활시설이 잘 갖춰진 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있기 때문.

2.2. 삼성 라이온즈

2.2.1. 2012년

7월 21일, 경찰 야구단과 퓨처스 경기에서 처음으로 등판했지만 실전감각이 무뎌진 상태라 볼질만 일삼았다.

2.2.2. 2013년

2군에서 5승 7패 3세이브 6.0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선발로 시작했는데, 삼성 2군 투수 수가 적다보니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계투로 전향했고 다시 시즌 후반에는 선발로 등판하는 등 제대로 된 보직 없이 등판한 결과였다. 하여튼 기록만 보면 실망스러웠기에 최원제처럼 타자로 키워야 할 애를 투수로 쓰고 있다면서 타자 전향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타자로 지명했지만 선동열 감독이 투수로 썼던 최원제의 사례와 달리 이현동은 애초부터 투수로 지명했다.

2.2.3. 2014년

시즌을 앞두고 류중일 감독이 문선엽과 더불어 기대주로 지목했다.

7월 이우선이 은퇴해 코치가 되면서 등번호를 맞바꿨다. 시즌 최종 2군 20경기에 등판해 2승 7패 1세이브 1홀드 7.9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군도 타고투저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걸 떠나 이닝 대비 많은 피안타와 삼진보다 많은 볼넷 갯수 등,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징이라면 5선발로 나서다 시즌중에 계투로 전향했다는 것.

시즌 후 정병곤[2] 등과 함께 경찰 야구단에 지원해 합격했다. 2013 시즌 후 상무 지원에서 탈락한 적이 있어서 올해도 떨어지면 꼴이 말이 아닐 거라고 걱정했다고.

2.2.4. 군 복무

2015년부터 경찰청에서 뛰게 되었다. 2014년 말에 계투로 전향한 뒤 경찰에서도 계투로 나왔다. 그러나 5월 7일 출장을 마지막으로, 어깨 부상 때문에 나머지 경기는 등판하지 못하고 2015 시즌을 마쳤다. 2015 시즌 기록은 14경기 1승 3패 5홀드 평균자책점 10.66.

시즌 후 아시아 윈터리그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내야수 신본기가 불펜 등판할 정도로 투수가 부족했음에도 경기 출장은커녕 현지 숙소조차 배정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 부상으로 인해 출국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는 어깨 통증 때문에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1달 가량 결장했고, 2경기 나오고는 다시 7월 말까지 2달 가량 결장했다. 2016년 시즌 성적은 12경기 11⅔이닝 ERA 10.03.

어깨 통증과 이로 인하여 재활을 거듭했고, 결국 전역 후 타자 전향을 결정했다.

2.2.5. 2017년

4월 25일 롯데 2군전에 대타로 투입되어 첫 경기를 가졌고, 5월 5일 롯데 2군전에서 김재열을 상대로 우월 솔로홈런으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5월 9일 2군 주전 중견수였던 이상훈이 웨이버 공시되고, 이따금씩 중견수로 나오던 우동균이 상대 야수의 송구에 머리를 맞는 부상을 당하면서 자연스레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5월말 페이스가 다소 하락하고 우동균이 복귀하면서 주전 중견수 자리를 내줬지만, 6월 들어 다시 페이스가 상승하고 우동균도 1군에 올라가면서 다시 중견수로 나왔다.

6월 16일 상무전에서 5타수 5안타 2홈런[3] 4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하면서 17일 1군에 올라왔다. 투수일 때는 (군복무 시절을 제외한) 3년 동안 1군에 한 번도 올라오지를 못했지만 타자로 전향한 지 불과 반년만에 1군에 올라오는, 상당히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6월 17일 경기에서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이후로는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6월 26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엔트리가 확장되는 9월 1일에 1군 등록됐다.

9월 3일 두산전에서 프로 데뷔 첫 안타와 도루를 기록 했다.

2군 최종 성적은 48경기 125타수 50안타 / 0.400 / 0.454 / 0.696 / 1.150 / 8홈런 5도루 5도실.

2.2.6. 2018년

지난 시즌 최형우가 떠난 좌익수 자리에 김헌곤, 배영섭, 박한이 등이 돌아가며 출전했지만 모두 아쉬운 모습을 보여[4] 이현동에게도 기회가 갈 듯하다. 다만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비슷한 나이의 타자 유망주 이성곤이 이적했기 때문에 그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2017 시즌 후 미야자키 교육리그 경기 중 무릎 부상을 당하며 조기 귀국했고, 예상보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부상 후유증인지 소포모어 징크스인지 시즌 내내 저조한 타격감에 허덕이며 결국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시즌 성적은 64경기 40안타 5홈런 19타점 26득점 1도루 타율.241.

시즌 후 왼쪽 손목 수술을 받았다.

2.2.7. 2019년

5월 말부터 2군 경기에 출장했다. 홈런은 없지만 4할대 타율과 6할대 장타율로 2017년 수준의 타격 페이스를 회복하면서 6월 14일 1군에 등록됐다.

1군 등록 후 벤치만 지키다가 6월 18일 드디어 1군 무대 첫 선발출장 기회를 얻었다.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리는데 상대는 LG 트윈스이며 9번 타자 우익수[5]에 이름을 올렸다.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7회 말 송준석으로 교체되었는데, 3회 초 실책 1번과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6] 1번으로 가뜩이나 부진하던 저스틴 헤일리를 괴롭혀 추가 실점의 빌미를 주면서 까였다. 20일 1군에서 제외됐는데, 1군에 있던 6일 동안 겨우 1경기만 나온 셈이었다.

2군 성적은 22경기 24안타 2홈런 9타점 14득점 5도루 타율 0.353, OPS는 1.032로 타격만큼은 2017년 때로 돌아왔다. 그러나 1군에서 제외된 후 7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2달 가량 결장했던 데다 나이가 차서 팀도 이현동을 마냥 기다려주기는 어려워졌다.

2.2.8. 2020년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은 물론 퓨처스리그 출전 기록조차 없었다.

그런데 마무리 캠프에 명단을 올리고, 또 12월 3일 발표된 보류 선수 명단에서 살아남아 내년 시즌에도 삼성에서 뛰게 되었다.

2.2.9. 2021년

프로 10년차임에도 1군에서 보여준 것이 거의 없고, 거기다가 전년도에 부상으로 통으로 시즌을 날려먹었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1군에서 활약을 보이지 않으면 선수단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즌 개막 두 달 가까이 지난 6월 2일 퓨처스리그 롯데전에 대타로 투입되면서 거의 1년 반 만에 실전을 소화했다 .

그리고 9월 8일 기준 타율이 2군에서 2할대 초반으로 부진하고 있다.

사실상 방출 명단에 오른 셈. 사실 전면 1라운드 지명자 치고는 보여준 것도 없을 뿐더러 나이도 있고 이현동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는 외야수 자원들인 박승규, 김성윤 위주로 개편되는 편이라 올 시즌 이후 최선호와 함께 정리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3. 은퇴

시즌 후인 10월 31일 인스타그램에 은퇴를 선언했고, 다음 날 팀에서 공식적으로 방출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건장한 체격을 가진 거포형 외야수였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삼성 1군 기록 없음[7]
2013
2014
2015 군복무(경찰 야구단)
2016
2017 16 16 .188 3 1 0 0 0 1 1 0 .250 .188
2018 1군 기록 없음
2019 1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20 1군 기록 없음
2021
KBO 통산
(2시즌)
17 18 .167 3 1 0 0 0 1 1 0 .222 .167

5. 여담

6. 관련 문서


[1] 2012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삼성 스카우트 팀이 밝힌 바에 의하면 투타 모두 재능이 있으나 타격 쪽 재능이 더 크다고 한다.[2] 서류 문제 때문에 불합격처리됐다. 사유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3] 3루타도 1개 쳤는데 2루타가 없어서 사이클링 히트 기록은 놓쳤다.[4] 김헌곤은 아름다운 4월 이후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고, 배영섭은 타격 성적은 양호하나 좌익수로 쓰기도 힘들 만큼 수비가 불안하다. 박한이는 감독의 성향상 기회가 많이 가지 않았고, 나이가 있기 때문에 18시즌에는 지명타자로 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5] 시즌 첫 우익수 출장이었다. 2군에서는 중견수좌익수로만 출장했다.[6] 충분히 단타로 처리할 수 있는 공을 굳이 몸을 날려 2루타로 둔갑시켰다.[7] 타자투수 기록 모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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