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20:41:56

심정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갓 오브 하이스쿨의 등장인물 심정수에 대한 내용은 T(갓 오브 하이스쿨)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심정수(정치인)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심정수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심정수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5 2003 2004 2005 2006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로고.svg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00~2019)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d0ad67> 2000 2001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송지만
한화 이글스
이병규
LG 트윈스
심재학
두산 베어스
이병규
LG 트윈스
정수근
두산 베어스
<rowcolor=#d0ad67> 2002 2003
송지만
한화 이글스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이종범
KIA 타이거즈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이종범
KIA 타이거즈
<rowcolor=#d0ad67> 2004 2005
{{{#!wiki style="margin: -16px -11px"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이진영
SK 와이번스
}}} 데이비스
한화 이글스
서튼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rowcolor=#d0ad67> 2006 2007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이용규
KIA 타이거즈
이택근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이대형
LG 트윈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rowcolor=#d0ad67> 2008 2009
가르시아
롯데 자이언츠
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박용택
LG 트윈스
이택근
히어로즈
<rowcolor=#d0ad67> 2010 2011
김강민
SK 와이번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12 2013
박용택
LG 트윈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박용택
LG 트윈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14 2015
나성범
NC 다이노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김현수
두산 베어스
나성범
NC 다이노스
유한준
kt wiz
<rowcolor=#d0ad67> 2016 2017
김재환
두산 베어스
김주찬
KIA 타이거즈
최형우
KIA 타이거즈
버나디나
KIA 타이거즈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KIA 타이거즈
<rowcolor=#d0ad67> 2018 2019
김재환
두산 베어스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로하스
kt wiz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샌즈
키움 히어로즈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파일:2024 KBO 포스트시즌 엠블럼.svgKBO 플레이오프
역대 MVP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95 1996 1997 1998 1999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투수
최창호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신국환
LG 트윈스 / 내야수
유지현
LG 트윈스 / 내야수
송진우
한화 이글스 / 투수
1999 2000 2001 2002
박석진
롯데 자이언츠 / 투수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심정수
두산 베어스 / 외야수
안경현
두산 베어스 / 내야수
박용택
LG 트윈스 / 외야수
2003 2004 2005 2006 2007
이진영
SK 와이번스 / 외야수
로페즈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전상렬
두산 베어스 / 외야수
김태균
한화 이글스 / 내야수
이종욱
두산 베어스 / 외야수
2008 2009 2010 2011 2012
이종욱
두산 베어스 / 외야수
박정권
SK 와이번스 / 내야수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박정권
SK 와이번스 / 내야수
정근우
SK 와이번스 / 내야수
2013 2014 2015 2016 2017
유희관
두산 베어스 / 투수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니퍼트
두산 베어스 / 투수
박석민
NC 다이노스 / 내야수
오재일
두산 베어스 / 내야수
2018 2019 2020 2021 2022
김강민
SK 와이번스 / 외야수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플렉센
두산 베어스 / 투수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지명타자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2023 2024
손동현
kt wiz / 투수
레예스
삼성 라이온즈 / 투수
* 플레이오프는 1985년에 시작했지만, MVP는 1995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했다. 1999년과 2020년은 양대리그제로 플레이오프가 2경기 개최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홈런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22개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27개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23개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22개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22개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21개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22개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30개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26개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28개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35개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41개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28개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25개
김상호
OB 베어스 / 25개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30개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32개
우즈
OB 베어스 / 42개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54개
박경완
현대 유니콘스 / 40개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39개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47개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56개
박경완
SK 와이번스 / 34개
서튼
현대 유니콘스 / 35개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26개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 31개
김태균
한화 이글스 / 31개
김상현
KIA 타이거즈 / 36개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44개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30개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31개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37개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52개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53개
테임즈
NC 다이노스 / 40개
최정
SK 와이번스 / 40개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최정
SK 와이번스 / 46개
김재환
두산 베어스 / 44개
박병호
키움 히어로즈 / 33개
로하스
kt wiz / 47개
최정
SSG 랜더스 / 35개
<rowcolor=#fff> 2022 2023 2024
박병호
kt wiz / 35개
노시환
한화 이글스 / 31개
데이비슨
NC 다이노스 / 46개
}}}}}}}}}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타점 1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69타점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74타점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80타점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 85타점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74타점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76타점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89타점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 85타점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91타점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14타점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19타점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91타점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87타점
김상호
OB 베어스 / 101타점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108타점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14타점
우즈
OB 베어스 / 103타점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3타점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115타점
우즈
두산 베어스 / 113타점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6타점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44타점
이호준
SK 와이번스 / 112타점
서튼
현대 유니콘스 / 102타점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88타점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 101타점
가르시아
롯데 자이언츠 / 111타점
김상현
KIA 타이거즈 / 127타점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33타점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18타점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05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17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24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46타점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44타점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러프
삼성 라이온즈 / 124타점
김재환
두산 베어스 / 133타점
샌즈
키움 히어로즈 / 113타점
로하스
kt wiz / 135타점
양의지
NC 다이노스 / 111타점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113타점
노시환
한화 이글스 / 101타점
오스틴
LG 트윈스 / 132타점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장타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백인천
MBC 청룡 / 0.740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618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633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5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0.514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579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5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7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545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640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659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598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590
장종훈
한화 이글스 / 0.562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624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63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624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733
송지만
한화 이글스 / 0.622
호세
롯데 자이언츠 / 0.685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689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 0.720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608
서튼
현대 유니콘스 / 0.592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571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600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622
김상현
KIA 타이거즈 / 0.632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667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0.617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561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602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0.739
테임즈
NC 다이노스 / 0.790
테임즈
NC 다이노스 / 0.679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최정
SK 와이번스 / 0.684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718
양의지
NC 다이노스 / 0.574
로하스
kt wiz / 0.680
양의지
NC 다이노스 / 0.581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575
최정
SSG 랜더스 / 0.548
김도영
KIA 타이거즈 / 0.647
* 장타왕은 1984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출루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백인천
MBC 청룡 / 0.497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75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24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7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36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1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0.459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09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32
장효조
롯데 자이언츠 / 0.452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61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36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452
장종훈
한화 이글스 / 0.424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 0.453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53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50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458
장성호
해태 타이거즈 / 0.436
호세
롯데 자이언츠 / 0.503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445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 0.478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468
김재현
SK 와이번스 / 0.445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45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457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454
페타지니
LG 트윈스 / 0.468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44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33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4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44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63
테임즈
NC 다이노스 / 0.497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5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450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457
양의지
NC 다이노스 / 0.438
박석민
NC 다이노스 / 0.436
홍창기
LG 트윈스 / 0.456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421
홍창기
LG 트윈스 / 0.444
홍창기
LG 트윈스 / 0.447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61731> 파일:KBO 40주년 레전드 TOP4 로고.svg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다 득표자 TOP 4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tablebgcolor=#061731><tablewidth=100%>
파일:KBO_40주년_선동열_B.png
파일:KBO_40주년_최동원_B.png
파일:KBO_40주년_이종범_B.png
파일:KBO_40주년_이승엽_B.png
1위 2위 3위 4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원년의 스타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박철순_B.png
파일:KBO_40주년_이만수_B.png
파일:KBO_40주년_백인천_B.png
파일:KBO_40주년_김성한_B.png
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불굴의 의지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이상훈_B.png
파일:KBO_40주년_박정태_B.png
파일:KBO_40주년_니퍼트_B.png
파일:KBO_40주년_배영수_B.png
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82 세계선수권 주역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장효조_B.png
파일:KBO_40주년_김시진_B.png
파일:KBO_40주년_한대화_B.png
파일:KBO_40주년_김재박_B.png
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선발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이강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민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민태_B.png
파일:KBO_40주년_조계현_B.png
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성실함의 대명사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김태균_B.png
파일:KBO_40주년_박재홍_B.png
파일:KBO_40주년_박경완_B.png
파일:KBO_40주년_홍성흔_B.png
14위 17위 23위 36위
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근성의 야수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전준호_B.png
파일:KBO_40주년_이순철_B.png
파일:KBO_40주년_정근우_B.png
파일:KBO_40주년_박진만_B.png
34위 37위 38위 39위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좌타자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양준혁_B.png
파일:KBO_40주년_박용택_B.png
파일:KBO_40주년_이병규_B.png
파일:KBO_40주년_김기태_B.png
7위 15위 19위 22위
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우타 거포 계보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장종훈_B.png
파일:KBO_40주년_김동주_B.png
파일:KBO_40주년_심정수_B.png
파일:KBO_40주년_우즈_B.png
10위 29위 30위 40위
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우즈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전천후 투수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14px;"
파일:KBO_40주년_송진우_B.png
파일:KBO_40주년_구대성_B.png
파일:KBO_40주년_김용수_B.png
파일:KBO_40주년_임창용_B.png
5위 8위 16위 21위
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
}}}}}}}}} ||
득표 순위
}}}}}}}}} ||

파일: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구 로고.png2002,2003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iki style="margin: -5px 0px"<tablewidth=100%> 2000안타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300홈런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95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
500도루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
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연봉 1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 2400만원
장명부
삼미 / 1억 8000만원(1)
장명부
삼미 / 2500만엔
장명부
삼미 / 1억 400만원
최동원
롯데 / 5800만원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최동원
롯데 / 8910만원
최동원
롯데 / 8910만원(2)
최동원
삼성 / 9000만원(3)
선동열
해태 / 9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 500만원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선동열
해태 / 1억 2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원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김용수
LG / 1억 1000만원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용수
LG / 1억 2200만원
양준혁
삼성 / 1억 4000만원
정명원
현대 / 1억 5400만원
이승엽
삼성 / 3억원
이승엽
삼성 / 3억원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종범
KIA / 4억 3000만원
이승엽
삼성 / 6억 3000만원
정민태
현대 / 7억 4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6억원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추신수
SSG / 27억원
<rowcolor=#fff> 2022 2023 2024
김광현
SSG / 81억원
구자욱
삼성 / 20억원
류현진·박동원
한화·LG / 25억원
(1) 당시 언론에 발표된 금액은 계약금 4000만원, 연봉 4000만원을 합쳐 총 8000만원이었다.
실제로는 계약금 1500만엔(약 4500만원), 연봉 2500만엔(약 7500만원), 부대 비용 6000만원을 합쳐 총 1억 8000만원이었다.
(2)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9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35,862,750원이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참조.
(3)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3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47,400,000원이다. 항목 참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심벌마크(화이트).svgKBO 리그
역대 최고액 계약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99 1999.11.26. 1999.11.29. 1999.12.03. 2000.12.04.
FA 제도 신설 송진우
한화 / FA / 3년 7억원
이강철
삼성 / FA / 3년 8억원
김동수
삼성 / FA / 3년 8억원
김상진
삼성 / FA / 3년 8.5억원
<rowcolor=#fff> 2000.12.06. 2000.12.07. 2001.12.21. 2003.11.24. 2003.11.25.
김기태
삼성 / FA / 4년 18억원
홍현우
LG / FA / 4년 18억원
양준혁
삼성 / FA / 4년 27.2억원(1)
마해영
KIA / FA / 4년 28억원(2)
정수근
롯데 / FA / 6년 40.6억원(3)
<rowcolor=#fff> 2004.11.23. 2013.11.13. 2014.11.26. 2015.03.06. 2015.11.30.
심정수
삼성 / FA / 4년 60억원(4)
강민호
롯데 / FA / 4년 75억원
최정
SK / FA / 4년 86억원
윤석민
KIA / FA / 4년 90억원
박석민
NC / FA / 4년 96억원(5)
<rowcolor=#fff> 2016.11.24. 2017.01.24. 2021.12.23. 2022.03.08. 2022.11.22.
최형우
KIA / FA / 4년 100억원
이대호
롯데 / FA / 4년 150억원
나성범
KIA / FA / 6년 150억원(6)
김광현
SSG / 다년 / 4년 151억원(7)
양의지
두산 / FA / 4+2년 152억원(8)
<rowcolor=#fff> 2024.02.22.
류현진
한화 / 다년 / 8년 170억원(9)
(1) 보장금액 23.2억원. 플러스 옵션 최대 4억원, 마이너스 옵션 최대 6억원.
(2) 보장금액 27억원. 플러스, 마이너스 옵션 각 1억원.
(3) 보장금액 31.6억원, 옵션 6억원, 4년 후 FA 포기 보상금(구단 옵션) 3억원.
(4) 계약금 25억원, 연봉 총액 30억원. 플러스, 마이너스 옵션 각 10억원.
(5) 보장금액 86억원, 옵션 10억원. 기부금 8억원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최대 88억원.
(6) 계약금 60억원, 연봉 총액 60억원, 옵션 30억원.
(7) 연봉 총액 131억원, 옵션 20억원.
(8) 첫 4년 계약금 44억원, 연봉 66억원. 2026시즌 종료 후 선수 옵션 2년 42억원(인센티브 포함).
(9) 계약 기간 내 옵트아웃 포함. 연봉 및 옵션 등 세부 조항 비공개.
}}}}}}}}} ||

보유 기록
133개 한 시즌 최다 4사구
}}} ||
심정수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4번}}}
김광수
(1982~1993)
심정수
(1994)
윤기수
(1995~1996)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32번
윤기수
(1994)
심정수
(1995~2000)
빅터콜
(2001~2002)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4번}}}
윤인섭
(2000)
심정수
(2001)
장광호
(2002)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2번}}}
장광호
(2001)
심정수
(2002~2004)
오윤
(2005~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손주인
(2003~2004)
심정수
(2005~2008)
강희성
(2009)
}}} ||
}}} ||
파일:삼성라이온즈 심정수.jpg
심정수
沈正洙 | Shim Jeong-Soo
출생 1975년 5월 5일 ([age(1975-05-05)]세)
서울특별시 강북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수유초 - 동대문중 - 동대문상고[1] - (SDSU)
신체 182cm, 100kg
포지션 우익수[2], 좌익수[3], 지명타자[4], 3루수[5][6]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4~2000)
현대 유니콘스 (2001~2004)
삼성 라이온즈 (2005~2008)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000> 배우자 홍성순(1975년생)[7]
자녀 첫째아들 심종원(미국명: 제이크 심)(1997년생)[8]
둘째아들 심종현(미국명: 케빈 심)(2002년생)[9]
셋째아들 에릭 심(2011년생)[10]
응원가 Joan Jett - 'I love Rock AND Roll'[11][12]
종교 불교
}}}}}}}}} ||

1. 개요2. 선수 경력3. 주요 기록4. 플레이 스타일5. 평가6. 은퇴 이후
6.1. 미국 이민 전6.2. 미국 이민 후
7. 약물 의혹설
7.1. 의혹에 대한 반박
8. 여담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

'헤라클레스'로 불리며 이승엽과 함께 2000년대 초반을 대표했던 홈런타자이자 2003 시즌 WRC+ 210[13], 2002-2003 2년 연속 3할-4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거포였다. 그러나 하필 같은 시대에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 이승엽의 기록과 스타성에 가려진데다 전성기 시절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가 비인기 구단였던 탓에 2인자에 그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14]

2. 선수 경력

심정수의 선수 경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심정수/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현대 시절
}}}}}}}}} ||

3. 주요 기록

파일:KBO 로고(세로형).svg KBO 주요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기록 비고
2002년 타자 트리플100 달성 [15]
2003년 타자 쿼드러플100 달성 [16]
50홈런 달성 [17]

4. 플레이 스타일

심정수 커리어 홈런 하이라이트
파일:심정수타격폼1.gif 파일:심정수타격폼2.gif 파일:심정수타격폼6.gif
현대 시절 타격폼

전성기였던 OB-두산~현대 시기를 요약하면 컨택, 수비, 선구 전부 다 올스타급임에 더해 그 이상의 미칠 듯한 파워로 리그를 지배했던 타자라고 할 수 있다. 동 시기 홈런왕 타이틀을 다툰 이승엽과의 타격 스타일을 비교하면 이승엽이 거포로서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타격 기술로 공을 담장 밖으로 보내는 유형이라면, 심정수는 웨이트로 다져진 엄청난 근육과 특유의 기마자세 타격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우 강한 파워와 타격 순간의 임팩트로 평범한 야수였다면 외야수에게 잡힐 뜬공도 홈런으로 만들어내는 진퉁 파워히터 유형이다.[18] 이 파워로 만들어지는 강한 타구의 단타 + 투수들의 공포 심리로 인해 현대에서의 최전성기인 2002~2003년도에는 타율도 .328로 웬만한 교타자의 타율만큼 높아지며 출루율 .441, 장타율 .682, OPS 1.122라는 KBO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통산 .287 .388 .533, wRC+ 152.6으로 용병을 제외하면 역대 OPS 10위 안에 드는 강타자이며, 좌타자를 제외하면 심정수 위에는 김태균과 박병호 밖에 남지 않는다.[19] wRC+는 용병을 제외하면 통산 5위이며 위로 우타자는 이만수 하나뿐이다. wRC+로는 한 때 라이벌이였던 이승엽보다도 우위에 있는 타자.[20] 짧은 전성기 이후 파워는 좋았지만 컨택에서 아쉬운 모습을 계속 보였음에도 뛰어난 선구안으로 생산성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했다.

부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전성기 시절에는 OPS 1을 넘긴 시즌이 3번이나 있고,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벌였던 2003년에는 무려 wRC+ 210을 기록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했던 테임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KBO 역사에서 역대 가장 뛰어났던 단일 시즌 기록 중 하나. 당시에는 아직 기록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에 대해 야구 관계자들이 무지했고, 이승엽의 56홈런의 임팩트에 가려져서 그렇지 홈런과 타점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03심정수는 03이승엽보다 한 수 위의 성적을 기록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21]

부상과 시력 문제로 인해 성적이 떨어졌던 시기에서도 전성기 시절만큼의 무시무시한 생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저평가 받을 만한 성적은 절대 아니다. 2할 중반을 겨우 마크했던 타율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출루율이 가장 떨어졌던 시즌이 2004년 현대에서의 .385일 정도로 공을 잘 봤던 준수한 OPS 히터였다. 더군다나 이 시기가 KBO 역사에서 눈에 띄는 투고타저 시즌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기의 심정수는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아쉬웠다는 평가는 타당해도 경기장에 나서면 충분히 제 몫을 해주는 타자였다.

통산 홈런+볼넷의 타격 결과 비율이 전체 타석의 18%를 넘고, 홈런+볼넷+삼진의 비율이 37%에 육박할 정도로 인플레이된 타구 비율이 높지 않은 타자였다. 국내 타자들 중 이보다 높은 비율을 기록했던 타자는 심정수보다 볼넷과 삼진이 좀 더 많았던 7번 이병규최희섭 정도. 다른 OPS 히터들과는 다르게 통산 BABIP은 .304로 높지 않았다. 어퍼스윙을 통해 만들어낸 뜬공으로 홈런과 볼넷을 양산하고, 이로 인해 높은 순장타율과 출루율을 유지하지만, 타율 기대값은 낮은 뜬공 특성상 BABIP 자체는 낮게 잡히는 유형의 타자라고 볼 수 있다.

전성기인 03년에도 리그 평균보다 낮은 .287의 BABIP를 기록하는 등 BABIP의 오르내림이 성적의 오르내림과 직결되지 않았던, 인플레이 타구보다는 홈런을 위시한 장타와 눈야구를 통해 생산성을 뽑아내던 타자였다. 그의 성적 하락은 BABIP보다는 순장타율과 홈런 비율의 하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비는 그닥 빠른 발도 아니고 타구판단이 빠른것도 아니였지만 강한 어깨로 커버했다. 어깨 만큼은 심재학, 심성보와 함께 3심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5. 평가

엄청난 타격 생산성에 걸맞게, 통산 출루율이 .388로 통산 타율인 .287보다 1할이나 높다. 이승엽, 박병호와 함께 단일 시즌 50홈런을 넘긴 단 셋 뿐인 타자이며, 외야수로서는 유일하다. 그의 커리어하이인 2003년에는 역대 단일시즌 sWAR*과 3위, wRC+ 5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그 해 56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이승엽을 완전히 능가하기도 했다.[22] 이만수-장종훈-심정수- 이대호-박병호-최정으로 이어지는 한국 야구 최고의 우타 거포 라인의 한 축이지만[23] 50홈런을 치고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듯이 MVP를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채로 선수생활을 끝마쳐야만 했던 비운의 2인자.

통산 wRC+가 무려 152.6으로, 용병을 제외하면 양준혁, 이만수, 장효조에 이은 4위이며[24] 2023년 기준 현역 선수중에서 이보다 높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25] 다만 통산 sWAR*은 56.17로, 23년 6월 기준 현재 20위로 비교적 낮은데 거꾸로 말하면 라식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고작 33살까지만 선수생활을 하고 일찍 은퇴했는데도 저정도의 기여도를 쌓았다는 말이 된다.

삼성에서의 먹튀 이미지, 전성기를 비인기팀이자 지금은 사라져버린 현대에서 보내며 이승엽에 이은 2인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진 탓에 저평가 받는 감이 없지 않다.[26]

6. 은퇴 이후

6.1. 미국 이민 전

은퇴 직후에는 잠시 삼성의 어린이 야구교실에서 리틀야구 팀을 지도했다. 심정수의 아들도 당시 삼성 리틀야구팀에서 활동했었다.

이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야구이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양준혁이 했던 "내가 야구하면서 본 야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이승엽과 심정수다"라는 칭찬답게 타격이론에 해박하고 평소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 복귀 후 어느 팀이든 간에 지도자 생활이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다. 덤으로 선수 시절 내내 끊임없는 영어공부를 많이한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6.2. 미국 이민 후

이민 이후에는 미국에 아예 정착한 듯. 사실상 이민이다.

다만 미국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정리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09년 기사

2011년 3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연수 간 전준호가 심정수 집에 들러 찍은 사진.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 중이라고 한다.

2015년 1월 LG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하는 아들들 뒷바라지하는 재미에 빠진 듯. 조만간 그라운드에서 심정수 2세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 그의 장남 심종원이 KBO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신청하면서 오랜만에 매스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5년 만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이후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최종 30위에 선정되었다. 미국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직접 시상식에 참석하지는 못 했지만 영상으로 시상식을 대체하여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7. 약물 의혹설

과거 현역 은퇴 시기를 전후해 약물 의혹설이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확실한 근거 부재로 인해 현 시점에선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낭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정수 금지약물복용설은 은퇴시기였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야구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떡밥이었다.

평균 20~30홈런 내외를 기록하던 선수가 갑자기 50홈런 가까이 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OB 시절과 전성기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심정수를 비교해보면 야구선수에서 보디빌더 수준으로 몸이 불어났다가, 삼성에 간 이후로는 다시 몸이 작아져 은퇴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즈음엔 이병규보다도 몸이 작아져 있다.[27]

그리고 선수 생활 마지막인 삼성 시절에 시력저하와 무릎부상 등으로 결국 은퇴했는데, 금지약물을 장기간 사용했을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부작용이 시력저하와 무릎부상이라 의혹을 사기가 충분했다.

한창 리즈 시절 때 국가대표를 계속 불참한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 몫했다.[28]

그래서인지 KBO 선수 중에서 직접 걸린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김상현, 김재현과 더불어 비공인 약물 의심 선수로 여겨졌다. 김재현-김상현-심정수의 공통점은 모두 잠실구장을 떠나서 폭발적인 장타력을 보여줬고, 고관절과 무릎등의 부상을 이유로 드러누워 말년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하체의 근육이 쭉 빠진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개중에 가장 의심을 샀던 행동은 2004년 FA 때 삼성이 영입하면서 계약서 작성 전에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메디컬 테스트를 거부한 것. 당시 거부하면서 했던 말이 명언인데,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 생활 안 한다'였다.

7.1. 의혹에 대한 반박

심정수가 20~30개만 치던 시절은 리그가 역대 최악의 투고타저였던 시절인데다 가장 홈런이 나오기 힘든 잠실구장을 홈으로 썼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두자리수 홈런을 꾸준히 기록하는 정도만 되어도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선수라고 평가받으며, 20홈런을 넘겨본 타자일 경우 적어도 파워만큼은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로 평가받는다. 체격이 꽤나 슬림했었던 프로 2년차에 이미 1위 김상호와 불과 4개밖에 차이나지 않는 21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OB-두산 시절 100경기 이상 출전했던 다섯 시즌에는 언제나 18홈런 이상을 쳐줬다. 따라서 없었던 파워가 생긴 것이 아니라 체격과 관계없이 원래부터 톱클래스의 장타력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이후 두산에서 홍성흔이 잠실구장을 벗어나 사직을 쓰는 홍성흔이 롯데로 갔을 때도 18홈런이 커리어하이였던 홍성흔이 커리어하이 26홈런에 잠실에서 4할 초반대의 장타율이 5할이 된 것을 보면 클래스가 있는 선수가 잠실 이후 다른 구장에 가서 타격이 늘어나는 경우는 계속 나오고 있다.[29]

결국 엄청난 투수친화 구장인 잠실구장에서 훨씬 타자친화 구장인 수원구장[30]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때마침 1999~2003년의 기록적인 타고투저 시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승엽이라는 당대 최고의 강타자이자 경쟁 라이벌이 생기면서 홈런 레이스를 발맞춰주게된 영향까지 자연스러운 전개가 된다. 또한 김용달 코치와 함께 타격 폼도 바꾸면서 홈런 양산에 불붙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비록 이것이 선수 생명에 발목을 잡았지만.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불어났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심정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을 가졌고[31] 프로 입단 후 본격적인 웨이트를 하여 10kg를 찌운 결과 이미 두산 시절에 몸을 완성하였고 그 몸을 계속 유지하였다. 두산 시절 항목에 있는 근육자랑하고 있는 사진도 흔히 현대 시절에 몸을 불리고 찍은 사진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진에 적혀있듯이 1999년, 즉 두산 시절에 촬영한 사진이다.[32] 비슷하게 현대에서 같은 팀으로 뛰던 송지만도 현역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항상 꾸준하게 유지 한 적이 있다. 2013년 은퇴 할 나이에 몸이 확실하게 줄어든 몸이 보였기도 했다.

심정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이란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한국야구에서 일종의 선구자격이었으며, 안경현이 보기 질릴 정도로 경기 내내 삶은 계란을 까먹었다고 알려져 있다.[33] 당시는 지금처럼 웨이트트레이닝 방법론과 영양학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가 아니었으며 진짜 몸 만들기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이나 신경쓰던 시절이다. 90년대만 해도 힘 쎈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식스팩 복근을 단련한 몸짱이 아니라 씨름선수를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단백질 관련 식품 따위는 당연히 없었는데, 그 시절부터 집중적인 단백질 섭취[34]와 벌크업을 반복하면서 올바른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하루에 계란 한 판을 까먹는다는 건 말이 쉽지 하루에 5개만 먹어도 물리는 게 보통 사람이니 정말 영양섭취에도 대단한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벌크업한 모습과 그 이후 빠진 모습을 비교해서 "저렇게 차이가 나니까 약물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근거가 빈약한게, 근육이라는게 한번 생기고 나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게 절대로 아니다. 운동을 쉬거나 하면 다시 근육이 위축되면서 양이 줄어들게 된다. 괜히 깁스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못 움직일 경우 그 부위만 근력 부족으로 반대쪽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게 아니다. 결국 근육이 빠진 것도 그냥 은퇴 후 그렇게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이유가 없으니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근육이 빠져버렸다는 소리다.

그리고 운동선수가 급격하게 벌크업을 했다가 1년만에 쭉 빠지는 경우는 약물이 아니어도 굉장히 흔하다. 심정수와 라이벌이었던 이승엽 역시도 저런 식으로 일본 시절 100kg대까지 벌크업을 했다가, 단순 근육증량이 타격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 80kg대로 살을 쭉 빼서 삼성 리턴 시절에는 날렵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LG 트윈스의 레전드 박용택 역시도 장타력을 키우겠다고 토할 정도로 고기를 먹어 20kg 가까이 증량을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금방 빼버렸다. 그리고 근육으로 증량할때보다 날씬할 때 오히려 더 타격이 좋았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대표적인 케이스가 CC 사바시아인데 130kg가 넘는 몸을 부상 이후 체중감량을 선언하고 1년만에 홀쭉이가 될 정도로 살을 뺐다. 그러나 감량으로 인해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서 사바시아는 다시 살을 찌웠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게도 사바시아는 은퇴 이후 대체 누구세요?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살이 쫙 빠졌다. 오히려 사진만 보면 은퇴 이전과 은퇴 이후의 모습이 뒤바뀐 거 아니냐 싶을 정도. 즉 야구선수는 20kg의 몸무게 차이는 1년이면 금방 빼고 키울수 있을정도로 자연스럽게 고무줄 몸무게를 만든다.[35]

한편 2015년 심정수가 LG 트윈스 선수단 캠프에 방문해서 LG 선수들과 LA 다저스 소속 시절의 류현진을 만난 사진들이 기사화 되었는데, 류현진만큼 당당한 팔뚝을 선보였고 갓 은퇴한 이병규보다 여전히 큰 체격을 보여주었다. 이쯤되면 문제의 전준호와의 사진이 각도상 이상하게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심정수는 2001년 야구 월드컵에 출전했다. 야구 월드컵은 항상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며,[36] 두산의 김재환이 여기서 걸리기도 했다. 게다가 2004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려다가 부상을 당해서 중도에 하차한거지, 안 나간게 아니다. 이승엽, 이종범, 정민태, 임창용 등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을 드림팀으로 꾸렸으나, 이건 얼마 안가 소속팀이 다시 빼오거나 선수들이 부상 때문에 제대로 호흡이 맞지 않았었다.
흔히 말하는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생활 안 한다'란 발언은 심정수에게 관심을 보이던 삼성이 시력에 문제를 제기하자 대답한 발언이며 와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심정수의 시력 저하는 라식 수술 부작용 때문이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의 커리어 자체를 발목잡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약물 복용 의혹을 키우기 위해 거의 의도적으로 끼워맞춘 수준이다.
게다가 약물설에 있어서 적극적인 엄호를 받지 못한 탓도 크다. 2000년대 이후 유입된 두산팬들에게는 그저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초기 시절의 옛날 선수고[37] 전성기를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는 처음부터 (엘롯기 에 비하면) 팬이 많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수원으로 알아서 도망간 시절에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2008년 해체와 키움으로의 재창단 그리고 연이은 장돌뱅이 구단주가 트레이드 파동을 거치면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대부분 흩어졌다.[38] 그렇다고 넥센 팬들에게는 딱히 관계가 없는 인물.[39]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던 삼성팬들에게는 먹튀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 즉 당대 야구팬들 중에 열성적으로 나서서 심정수를 옹호해주고 반박해줄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 진짜 약물 복용이 확실시된다면야 반박할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별 의미가 없겠지만, 심정수처럼 단지 의혹인 상태에서는 반박해줄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경우, 그 의혹이 사실처럼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전형적인 야빠들은 심정수가 약을 하지 않았다라고 오히려 쉴드를 쳐주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약물 떡밥이 풀릴 때는 보통 무릎 부상이 심했던 다른 강타자들도 어느 정도 언급되는데, 김재현이나 김상현처럼 무릎부상을 크게 겪었던 선수들에 대해서 약물 떡밥이 언급되면 대개의 경우 "그 부상 이후에 큰 부상 없이 고령의 나이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한 근육량의 증가가 없다.", "원래 힘만큼은 장사였다.", "심리적인 안정으로 포텐이 터진 것이다.", "첫 풀시즌에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다." 등의 납득할만한 반박을 여러 팬들이 해준다. 그러나 심정수 같은 경우에는 약물 의혹을 반박할 만한 사실이나 정황은 상당히 많지만, 정작 이런 얘기를 나서서 해줄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게다가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가 침체기였고 심정수의 소속팀은 그 상황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현대였기에 반박을 할 만한 사실들도 꽤 묻혀있다. 이러다 보니 약물 떡밥에서 약물 복용이 확실한 리오스 다음으로 집중 포격을 받기가 쉬워지며 많은 사람들이 심정수를 약물 복용을 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원래 힘이 장사인 선수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이 더 커지고, 투수 친화 잠실을 벗어나 타자 친화 구장으로 간데다가, 기록적인 타고투저 기간 동안에 이승엽이라는 훌륭한 경쟁상대 덕분에 역사에 남을 만한 성적을 기록하게 된 것이고, 다만 그 리즈시절이 라식수술과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한 각종 부상 때문에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는게 팩트이다. 굳이 약물 의혹설과 연관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연결이 된다.

약물 의혹에 대해 좀더 세분해서 반박한 글

또한 이 약물 의혹은 기존 국내야구계가 "야구선수는 유연해야 한다.", "웨이트를 많이 하면 유연성이 떨어져서 수비가 망가지고 부상이 많아진다." 식의 일본프로야구도 안 하는, 현 시점에선 시대에 동떨어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한몫한다.[40] 동양인은 웨이트해봤자 "몸이 버티지 못한다", "파워는 안늘어난다"는 편견도 상당했다. 이 때문에 심정수의 벌크업과 파워증가를 웨이트 트레이닝이 아니라, 약물로 해석한 것이다. 90년대 초중반의 야구영상을 보면 대체로 호리호리한 체격의 선수들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속설에 따른 트레이닝이 이루어졌던 것에 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넥센 히어로즈이지풍 코치의 주도아래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엄청난 장타력을 선보이자, 국내야구계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민성유한준이라는 걸출한 성공사례를 통해서, 벌크업의 효과를 다들 체감하였다.[41]

또한 박동희가 메이저리그에 취재를 갔을 때, 거기서 인터뷰한 메이저리그 코치가 다르빗슈 유도 메이저리그에 와서 "이 좋은 걸 왜 여태 안 했을까..." 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 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메이저리그 안착에 성공했던 박찬호도 늘상 운동을 했고, 류현진 또한 웨이트를 포함한 모든 피나는 재활훈련으로 어깨수술과 팔꿈치수술이란 연속 악재에서 성공적으로 재기했으며,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 대비하기 위해, 몸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르빗슈 유는 웨이트를 경시하는 일본야구를 깐 적도 있다. 팀 린스컴이 그 임팩트를 두고도 전성기가 짧았던 이유는 바로 웨이트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린스컴은 그 작은 체격에 웨이트를 안 하니 몸이 버틸 수가 없었고, 그의 전성기는 정말 짧았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심정수도 약물이 아니라 성공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예시로 설명할 수 있었으며, 약물 의혹 역시 문단 상단에 적혀있듯이 사실상 사장된 설로 치부되고 있다.

8. 여담

파일:/image/001/2004/11/10/072004111001500_1.jpg
* 현역 시절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며 자주 팬과 감독 그리고 선수단에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49]

9. 관련 문서


[1] 엄밀히 말해 동대문상고와 청원고는 다른 학교이다. 청원고는 동대문상고와는 별도로 설립한 일반계 고등학교이고, 동대문상고는 청원정보산업고로 교명을 바꿨다가 2003년 폐교했다. 그러나 야구부만큼은 청원고에서 별도로 창단한 게 아닌 동대문상고에서 이관된 것이기에 동대문상고 출신 선수들에게 (현 청원고)라고 표기하는 것이다.[2] 2003년까지 주로 우익수로 출전하였다.[3] 삼성으로 이적한 2005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주로 좌익수로 출전하였다.[4] 04시즌에 주전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이 밖의 시즌에도 간간이 지명타자로 나왔다.[5] 입단 첫해인 94시즌에 2경기 출전했으며 알려진 바와 달리 입단 첫해에도 외야수로 더 많은 경기에 나왔다.[6] 3루수로 출전하면 어깨가 너무 좋아 1루로 던지는 송구가 종종 그물망네트로 가는 일이 있어서 외야수로 전향했다.[7] 두번째 결혼이다. #[8]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다. 애리조나 크리스천 대학에 재학 중으로 2020년 8월 7일 KBO 해외 출신 및 중퇴 선수를 대상으로 한 트라이아웃에 신청서를 내면서 KBO리그 무대 도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명받지 못했고, 연천 미라클에서 잠시 뛰다 은퇴했다.[9]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고등학교에 재학 중으로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하는 대신 샌디에이고주립대로 진학할 생각이라고 한다. 기사마다 나이가 다른데 대학진학 이야기가 나오는것으로 봐서 2003년생이 아닌 2002년생으로 보인다.# # # 2023년 MLB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전체 148번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됐다.[10] 형들과 다르게 미국 국적자라고 한다.[11] 홈런 심정수 넘겨버려 넘겨버려 홈런 심정수 랄라라라라라라(X2)[12] 롯데의 박종윤 응원가와 같다.[13] 훗날 에릭 테임즈가 2015년 40-40을 기록했을 때의 시즌 WRC+ 222에 근접한 수치다.[14] 비슷한 케이스로 2010년대최형우를 들 수 있다. 신인왕 수상자에 삼성과 KIA에서 무려 5번의 우승을 경험하고 타격왕, 홈런왕, 타점왕, 최다안타왕, 출루율왕, 장타율왕 등 도루를 제외한 모든 타격 지표의 1위 타이틀을 따낸 기록이 있지만 홈런 타자로서는 박병호최정에게 밀리고, 완성형 타자로는 이대호에 밀리고, 인지도로는 김현수에게 밀린다. 이대호, 김현수, 박병호는 모두 팀의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이에 비하면 심정수나 최형우는 대표 프랜차이즈라기엔 밀리는 감이 있다. 하지만 파워는 박병호와 함께 국내 타자들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기회인 국제대회에서의 활약도 이들 셋보다 미약한 탓도 크다. 여기에 심정수는 안면 부상이나 시력 저하 등 몸의 문제도 있었고 홈구장의 변화에 따라 밀린 이유도 있다. 투수 중에서는 손승락과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손승락도 마무리 투수 쪽에서는 충분히 대단한 선수였으나 끝판대장으로 불리던 동갑내기 오승환의 그늘에 밀렸다.[15] 161안타-119타점-101득점[16] 154안타-142타점-110득점-124볼넷[17] 우타자 최초[18] 그렇다고 해서 이승엽이 작은 체형은 전혀 아니다. 이승엽은 초창기때는 85kg정도였는데, 2003 시즌에는 92kg다. 애초에 홈런타자하려면 어느정도의 체중과 힘은 있어야 한다. 400홈런 넘게친 최정도 덩치는 이대호나 김태균, 박병호, 김현수보다는 작지만 90kg다.[19] 참고로 해외리그 갔다온 이대호는 통산 wRC+가 140.3이다.[20] 그러나 이승엽은 8년동안 해외리그를 갔다온것을 고려해야한다. 이대호나 이승엽은 해외리그 경험때문에 국내기록에서 약간은 손해를 본 측면도 있다.[21] 15테임즈는 클래식, 세이버상으로도 역대급 타자였지만 무엇보다 40-40 임팩트가 매우 컸다. 40-40은 메이저에서도 6명밖에 없는 기록이고, 그 중에서도 약물러가 3명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아예 없다. 53홈런-146타점을 친 박병호를 누르고 MVP를 차지한건 이유가 있다. 03심정수는 분명 세이버상으로는 최고의 타자였지만 일반 대중이 주는 임팩트가 적었다. 12김태균도 세이버상으로는 박병호보다는 위였지만 박병호가 MVP를 차지했던 것은 클래식과 세이버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승엽도 사실 세이버매트릭스로 보면 02시즌이 최고지만, 야구팬들에게는 99나 03시즌이 더 다가온다.[22] 역대 단일시즌 Top 5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94/97이종범, 82백인천, 91장종훈, 96양준혁, 99/03이승엽, 15테임즈, 01호세, 10이대호, 22 이정후 등과 함께 03 심정수가 꼭 언급된다.[23] 이승엽, 양준혁, 최형우는 모두 좌타자이다. 이종범은 전성기 때는 매년 홈런 순위 5위에 드는 장타력을 과시했지만 기본적으로 컨택트에 초점을 맞춘 리드오프였기 때문에 거포라 보기 힘들며, 박경완은 통산 300홈런을 넘기긴했지만, 20홈런 이상을 친 시즌은 22년 현역 역사중 4번밖에 안된다.[24] 이승엽의 경우 일본에서 8시즌을 보내며 전성기에 스탯을 더 쌓지 못했으며, 선수생활을 매우 길게 하는 바람에 말년에 스탯비율에서 손해를 봤다. 어찌됐든 지명타자인 양준혁이나 80년대가 전성기이던 이만수, 장효조를 제외하고 심정수보다 wRC+가 높은 선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심정수의 타격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25] 23년 6월 기준 최형우가 148, 박병호가 147.4이나, 둘 다 은퇴를 몇 년 앞두지 않은 노장인만큼 심정수의 wRC+를 뛰어넘기는 힘들다[26] 이후 팬이 많은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승엽보다 인기가 적었다. 또한 본격적인 KBO 인기의 팽창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2008년 이른 나이에 은퇴하며 통산 비율 스탯에선 이득을 보았지만 언급이나 회자되는 정도는 성적에 비해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27] 이건 실제 이병규가 다른 리드오프 타자보다 덩치가 월등히 커서 그렇다. 보통 170 중후반대에 70kg대인 리드오프와 다르게, 이병규는 테이블세터 시절에도 185cm에 8~90kg대의 중장거리 타자의 체형이었고, 실제로 30-30을 기록한 적도 있었던 장타력 있는 호타준족이다. 괜히 별명이 적토마겠는가?[28] 2001년 야구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심정수의 홈런 개수가 급격히 증가한 시점이 2002년이라는 점과 그 이후부터 국가대표를 불참한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29] 이후 홍성흔은 2차 FA로 두산에 돌아왔을 때 귀신같이 장타율 5할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홍성흔의 에이징 커브 시기와 맞물린 영향도 있긴하다.[30] 수원구장의 사이즈는 좌우 95m 중앙 120m 펜스높이 2.5m이고, 잠실은 좌우100m 중앙 125m 펜스높이 2.6m이다. 전체적으로 못해도 5m라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는 상황. 당연히 홈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후 kt wiz가 창단 후 홈으로 쓰게 되고 리모델링 하면서 좌우가 98m로 멀어졌다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 바람이 우타자에게 유리하게 부는 성향을 토대로 댄 블랙(양타자), 마르테, 유한준, 박경수, 김상현을 영입했고, 2015년 외야 중앙의 펍을 넘긴 2명의 선수도 박병호 그리고 (홈런 라이벌 테임즈가 아닌) 이호준임을 생각하면 더 규격이 작은 시기인 현대의 수원 임시 홈 시절은 심정수의 홈런이 늘어나도 당연할 상황이다.[31] 계란 먹방과(대부분이 흰자만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루 한 판 이상(30개 이상)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함께 상당히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이상하게 약물 떡밥만 나오면 잊혀지는 사실이다.[32] 그 해 심정수는 31홈런 OPS 1.014를 기록했다.[33] 후에 정수근도 박명환야구TV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버스에 같이 탈 때마다 방귀 냄새가 너무 독해서 무지하게 욕했다고. 박명환은 투수라 야수조 버스에 같이 타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고 엄청 웃었다.[34] 당시에 사람들이 심정수와 같은 벌크업을 잘 하지 않았던 건, 지금처럼 닭가슴살 상품이나 단백질 쉐이크, 프로틴바 등 단백질을 단기간에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대량의 단백질 섭취가 대단히 고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덩치 큰 선수를 선호했던 김응용 감독은 식품영양학적 접근은 아니였지만 전통적으로 몸집(+근육)을 불리는데 좋다고 알려진 육식을 선수들에게 권장했다. 안되면 스팸 햄이나 부침용 소시지, 우유, 계란, 두부 등 지금으로도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식품들을 매끼 억지로라도 먹였다고 한다.[35] 당장 사바시아가 130kg의 거구를 유지한 비결은 그가 아침마다 칼로리 폭탄으로 악명높은 시리얼을, 1인분이 아니라 한 박스를 먹었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 가장 먼저 시리얼을 끊었다.[36] 모든 대회가 그렇지만 전체인원을 테스트하지 않는다 무작위로 선정하여 검사한다[37] 게다가 현재 두산 팬덤은 김경문 감독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다고 OB랑 두산이 다른 팀이 아니다. 같은 팀이다.[38] 의외로 박재홍이 역대급 성적을 거두고도 상대적으로 이종범, 양준혁보다도 인기가 적었던 이유가 현대의 적은 팬덤이다. 기아에서는 태업의혹과 신인시절 고향팀을 선택하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39]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넥센으로 온 현대팬들도 있지만 넥센이 확실히 자리잡은 2012년 이후 유입된 팬들에게는 현대가 막연하고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말은 서건창과 박병호가 터지면서 서서히 기억을 잊혀지게 된 원흉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분탕팬들이 와서 삼청태현 역사는 우리것 이라는 소리를 하고 하는데 현대랑 키움은 공식적으로 서로 남남이다.[40] 아직까지도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할 시간을 주지 않고 무조건 살을 빼게 시키게 하는 김성근 감독. 참고로 염경엽 감독도 김민성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이 커지자 유연성 부족에 대한 우려로 유격수를 시킬 수 없다고 언급을 한 점도 있어서 아직까지는 그 편견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다.[41] 유한준은 당시 두자릿수 홈런을 쳐내던 김하성과 함께 2015년도 약물 의심 선수로 지목받았지만 결국 한화 최진행이 걸리면서, 순수 실력으로 이루어냈음을 증명했다. 강정호, 황재균, 서건창 모두 벌크업으로 성적이 상승했다. 에릭 테임즈도 메이저 초창기 시절 보다 몸이 매우 커졌지만, 약물과는 무관하다. 이와 반대로 박용택은 벌크업을 해서 오히려 손해본 케이스다. 잠실구장을 쓰면서 오히려 홈런을 치겠다는게 독이된 케이스.[42] 야구 해설가 하일성씨가 붙여준 별명. 신기하게도 그의 학창시절 불량써클 이름이 헤라클레스 였다.[43] OB 베어스에 입단했을 당시 별명이다.[44] 계란에 다른 별명들을 합친 것으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 경기 중에 삶은 계란을 한 판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해서 생긴 별명. 이 별명답게 경기 중 현대쪽 벤치를 보여줄 때면 삶은 계란을 땅콩먹듯 먹고 있는 심정수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심정수마저 침몰시킨 오키나와 캠프의 위엄 #[45] 당시 '이승엽은 허리로 치고 심정수는 힘으로 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장사였다.[46] 라식수술 후 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처참하게 몰락하면서 생긴 별명으로, 공이 보이지 않아서 귀로 공이 오는 소리를 듣고 친다는 청각타법 드립이 심정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47] 현대와 삼성에서 반지를 왕창 쓸어갔으나, SK가 우승한 이듬해(2011년)에 입단한 탓에 우승을 못했다. 준우승만 3번.[48] 이쪽은 LG, KIA 모두 해당되는데 LG에 입단한 해는 우승(1994)을 한 다음해인 1995년, KIA에서 은퇴한 해는 우승(2009) 직전 해인 2008년. 반지는 현대(00), 두산(01)에서 2개.[49] 비슷하게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제이 데이비스가 이랬었다.[50] 다만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바뀔 때는 32번이 아닌 다른 번호로 바꿨다.[51] 한만정이 심정수와 오윤이 닮았다고 하자, 갑자기 정우영이 심정수의 얼굴은 정수빈 얼굴이 더 닮았다고 주장한 것. 나중에 한만정이 정수빈은 체격이 둘보다 엄청 작은데 뭐가 닮았냐고 따지고, 정우영은 얼굴만 닮았다고 했는데 왜 체격 가지고 그러냐고 따지면서 정수빈 사진을 나중에 보시라고 말하며, 이상한 언쟁을 벌였다.[52] 물론 이 논란이 아주 오래가기는 어려웠으니 이후에 다시 MC몽이 1위가 되었다.[53] 훗날 정우영이 밝힌 바로는 원래 그 이닝만 잠깐 얘기하다가 넘어간건데, 담당 PD가 모든 걸 종용했다고 한다. PD가 볼때 그걸로 시청자 어그로가 끌리는것 같았는지, 공수교대 시간에 PD가 정우영에게 다음 이닝도 그걸로 더 언쟁을 해서 웃겨보라고 시켜서 그러기로 했고, 실제로 계속 둘이 쓸데없는 얘기로 말다툼을 하는 연기를 하고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가 나쁜 어그로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두사람의 분위기가 나빠보이게 언쟁한 것(사진을 찾아보시라고 말한다던가, 트위터에서도 팬들이 말도 안된다는 트윗을 올렸다고 말한다던가 한 내용)도 다음 이닝부터의 연출된 멘트라고 한다. 정우영의 말로는 본인들은 나쁜 상황이 된지 모르고, 방송끝나고 밝게 한만정과 좋은 분위기로 함께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귀경했다고 한다.[54] 덧붙히면 최초 레전드 16명 중 한 명이다.[55] 하지만 심정수와 심재학의 커리어하이는 각각 현대, 두산에서 보냈다. 알다시피 심정수는 2003년, 심재학은 2001년이 커리어하이.[56] 2019년 타율이 0.337라서 꽤나 잘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NAIA는 4할 이상을 쳐야 타율 1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극도의 타고투저 성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