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
| 1990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수위타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 나카네 스스무 나고야군 / .376 | 마츠키 켄지로 오사카 / .338 | 카게우라 마사루 오사카 / .333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45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61 |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338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 .321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310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286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300 |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 오쿠무라 토시아키 킨키닛폰 / .369 |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 .347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15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306 | 코즈루 마코토 다이에이 / .361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362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77 | 니시자와 미치오 나고야 / .353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47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61 |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38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38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43 | 타미야 켄지로 오사카 / .320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34 |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34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53 | 모리나가 카츠야 히로시마 / .307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41 | 에토 신이치 주니치 / .323 |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 에토 신이치 주니치 / .336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44 | 나카 토시오 주니치 / .343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26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45 |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25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20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329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55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32 |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319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355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358 | 미즈타니 지츠오 히로시마 / .348 | 펠릭스 미얀 타이요 / .346 |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369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358 | 나가사키 케이이치 타이요 / .351 | 마유미 아키노부 한신 / .353 | 시노즈카 카즈노리 요미우리 / .334 |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 랜디 바스 한신 / .350 | 랜디 바스 한신 / .389 | 시노즈카 카즈노리 요미우리 / .333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333 |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340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378 |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326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340 | 잭 하웰 야쿠르트 / .331 | 토마스 오말리 한신 / .329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24 |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55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40 |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335 |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337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369 |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 .346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333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343 |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 .340 |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 .337 |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44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351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46 |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 .378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322 |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58 |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 .316 |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 .340 | 토니 블랑코 DeNA / .333 | 맷 머튼 한신 / .338 |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 카와바타 신고 야쿠르트 / .336 | 사카모토 하야토 요미우리 / .344 | 미야자키 토시로 DeNA / .323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348 | 스즈키 세이야 히로시마 / .335 |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 사노 케이타 DeNA / .328 | 스즈키 세이야 히로시마 / .317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318 | 미야자키 토시로 DeNA / .326 | 타일러 오스틴 DeNA / .316 | |
| <rowcolor=#ffffff> 2025 | 2026 | 2027 | 2028 | 2029 | |
| 코조노 카이토 히로시마 / .309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39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83 | 이이지마 시게야 다이에이 / .336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318 | 래리 레인즈 한큐 / .337 |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32 | 토요다 야스미츠 니시테츠 / .325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331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14 | 스기야마 코헤이 난카이 / .323 |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344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잭 브룸필드 킨테츠 / .374 | 잭 브룸필드 킨테츠 / .335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366 |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20 | 에노모토 키하치 도쿄 오리온즈 / .351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3 나가부치 요조 킨테츠 / .333 |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83 | 에토 신이치 롯데 / .337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58 | 카토 히데지 한큐 / .337 | 하리모토 이사오 닛폰햄 / .340 |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 백인천 타이헤이요클럽 / .319 | 요시오카 사토루 타이헤이요클럽 / .309 | 아리토 미치요 롯데 / .329 | 사사키 쿄스케 킨테츠 / .354 | 카토 히데지 한큐 / .364 |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 레론 리 롯데 / .358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26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25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32 | 부머 웰즈 한큐 / .355 |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67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60 | 아라이 히로마사 킨테츠 / .366 | 타카자와 히데아키 롯데 / .327 | 부머 웰즈 한큐 / .322 |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338 | 히라이 미츠치카 롯데 / .314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322 |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 .319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85 |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2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56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5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58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3 |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87 | 후쿠우라 카즈야 롯데 / .346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340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360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358 |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와다 카즈히로 세이부 / .322 | 마츠나카 노부히코 소프트뱅크 / .324 | 이나바 아츠노리 닛폰햄 / .334 | 릭 쇼트 라쿠텐 / .332 | 츠치야 텟페이 라쿠텐 / .327 |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346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338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312 | 하세가와 유야 소프트뱅크 / .341 | 이토이 요시오 오릭스 / .331 |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363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339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322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352 | 모리 토모야 세이부 / .329 |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 .350 |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 .339 | 마츠모토 고 닛폰햄 / .347 | 톤구 유마 오릭스 / .307 |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314 | |
| <rowcolor=#ffffff> 2025 | 2026 | 2027 | 2028 | 2029 | |
| 마키하라 타이세이 소프트뱅크 / .304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외야수 베스트나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40년, 1947년 ~ 1949년 | ||||
| <rowcolor=#ffffff> 1940 | 1947 | 1948 | 1949 | |||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야마다 덴 한큐군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교진군 |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벳토 카오루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코즈루 마코토 다이에이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타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백인천 MBC 청룡 / 0.412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69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340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70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29 |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87 | 김상훈 MBC 청룡 / 0.354 |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 0.327 |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334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48 |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60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1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393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6 |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2 | 마해영 롯데 자이언츠 / 0.372 | 박종호 현대 유니콘스 / 0.340 | 양준혁 LG 트윈스 / 0.355 |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343 |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342 |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343 | 이병규 LG 트윈스 / 0.337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36 |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 이현곤 KIA 타이거즈 / 0.337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357 | 박용택 LG 트윈스 / 0.372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64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57 |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363 | 이병규 LG 트윈스 / 0.348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0.370 | 테임즈 NC 다이노스 / 0.381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0.376 |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 김선빈 KIA 타이거즈 / 0.370 | 김현수 LG 트윈스 / 0.362 | 양의지 NC 다이노스 / 0.354 |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354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60 |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2025 |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49 | 손아섭 NC 다이노스 / 0.339 | 에레디아 SSG 랜더스 / 0.360 | 양의지 두산 베어스 / 0.337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최다 안타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백인천 MBC 청룡 / 103개 | 박종훈 OB 베어스 / 117개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117개 |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 112개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3개 | 이광은 MBC 청룡 / 124개 |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124개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1개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37개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46개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60개 |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152개 | 김형석 OB 베어스 / 147개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96개 | 최태원 쌍방울 레이더스 / 147개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1개 |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70개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6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92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70개 장원진 두산 베어스 / 170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67개 |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172개 |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151개 | 홍성흔 두산 베어스 / 165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57개 | 이용규 KIA 타이거즈 / 154개 |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 이현곤 KIA 타이거즈 / 154개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68개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72개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58개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72개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201개 | 유한준 넥센 히어로즈 / 188개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95개 |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93개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0개 |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7개 |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9개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2개 |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2025 |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193개 | 손아섭 NC 다이노스 / 187개 | 레이예스 롯데 자이언츠 / 202개 | 레이예스 롯데 자이언츠 / 187개 | ||
| * 최다안타왕은 1990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득점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55득점 백인천 MBC 청룡 / 55득점 | 이해창 MBC 청룡 / 65득점 | 이해창 MBC 청룡 / 62득점 홍문종 해태 타이거즈 / 62득점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67득점 | 김재박 MBC 청룡 / 67득점 |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 이광은 MBC 청룡 / 67득점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81득점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93득점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91득점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91득점 |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06득점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85개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13득점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93득점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94득점 |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12득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00득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8득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08득점 | 이병규 LG 트윈스 / 107득점 |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3득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15득점 | 이종범 KIA 타이거즈 / 100득점 | 박용택 LG 트윈스 / 90득점 데이비스 한화 이글스 / 90득점 |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89득점 |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 고영민 두산 베어스 / 89득점 | 이종욱 두산 베어스 / 89득점 | 정근우 SK 와이번스 / 98득점 최희섭 KIA 타이거즈 / 98득점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99득점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97득점 |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 이용규 KIA 타이거즈 / 86득점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91득점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135득점 | 테임즈 NC 다이노스 / 130득점 | 정근우 한화 이글스 / 121득점 |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 버나디나 KIA 타이거즈 / 118득점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18득점 |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 112득점 | 로하스 kt wiz / 116득점 |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 107득점 |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2025 | ||
| 피렐라 삼성 라이온즈 / 102득점 | 홍창기 LG 트윈스 / 109득점 | 김도영 KIA 타이거즈 / 143득점 |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 106득점 | ||
| * 득점왕은 2000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출루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백인천 MBC 청룡 / 0.497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75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24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7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36 |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461 |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0.459 |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09 |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432 | 장효조 롯데 자이언츠 / 0.452 |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61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36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452 | 장종훈 한화 이글스 / 0.424 |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 0.453 |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453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50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458 | 장성호 해태 타이거즈 / 0.436 | 호세 롯데 자이언츠 / 0.503 |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445 |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 0.478 |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468 | 김재현 SK 와이번스 / 0.445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445 |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457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454 | 페타지니 LG 트윈스 / 0.468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44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433 |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4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44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63 | 테임즈 NC 다이노스 / 0.497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475 |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450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457 | 양의지 NC 다이노스 / 0.438 | 박석민 NC 다이노스 / 0.436 | 홍창기 LG 트윈스 / 0.456 |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2025 |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421 | 홍창기 LG 트윈스 / 0.444 | 홍창기 LG 트윈스 / 0.447 | 안현민 kt wiz / 0.448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장타율 1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 백인천 MBC 청룡 / 0.740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618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633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5 |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0.514 |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579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5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0.577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545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640 |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0.659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598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590 | 장종훈 한화 이글스 / 0.562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624 |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636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624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733 | 송지만 한화 이글스 / 0.622 | 호세 롯데 자이언츠 / 0.685 |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0.689 |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 0.720 |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608 | 서튼 현대 유니콘스 / 0.592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571 |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600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622 | 김상현 KIA 타이거즈 / 0.632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667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0.617 |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561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602 |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 0.739 | 테임즈 NC 다이노스 / 0.790 | 테임즈 NC 다이노스 / 0.679 |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 최정 SK 와이번스 / 0.684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0.718 | 양의지 NC 다이노스 / 0.574 | 로하스 kt wiz / 0.680 | 양의지 NC 다이노스 / 0.581 |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2025 |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575 | 최정 SSG 랜더스 / 0.548 | 김도영 KIA 타이거즈 / 0.647 | 디아즈 삼성 라이온즈 / 0.644 | ||
| * 장타왕은 1984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베스트 10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베스트 10 폐지 및 골든글러브로 통합 ▶ |
| 백인천 MBC 청룡 |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61731> |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다 득표자 TOP 4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tablebgcolor=#061731><tablewidth=100%> | | | |
| 1위 | 2위 | 3위 | 4위 | ||
| 선동열 | 최동원 | 이종범 | 이승엽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원년의 스타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11위 | 12위 | 24위 | 25위 | |
| 박철순 | 이만수 | 백인천 | 김성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불굴의 의지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27위 | 32위 | 33위 | 35위 | |
| 이상훈 | 박정태 | 니퍼트 | 배영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82 세계선수권 주역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6위 | 20위 | 28위 | 31위 | |
| 장효조 | 김시진 | 한대화 | 김재박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선발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9위 | 13위 | 18위 | 26위 | |
| 이강철 | 정민철 | 정민태 | 조계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성실함의 대명사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14위 | 17위 | 23위 | 36위 | |
| 김태균 | 박재홍 | 박경완 | 홍성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근성의 야수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34위 | 37위 | 38위 | 39위 | |
| 전준호 | 이순철 | 정근우 | 박진만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최강 좌타자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7위 | 15위 | 19위 | 22위 | |
| 양준혁 | 박용택 | 이병규 | 김기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우타 거포 계보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10위 | 29위 | 30위 | 40위 | |
| 장종훈 | 김동주 | 심정수 | 우즈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nt-size: 18px" {{{#!folding 전천후 투수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14px" | | | | |
| 5위 | 8위 | 16위 | 21위 | |
| 송진우 | 구대성 | 김용수 | 임창용 |
| 득표 순위 |
|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창설~2000년) 2001년 이후 수상자 → | |||||
| {{{#!wiki style="margin: 0 -11px -5px" {{{#18213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1px" {{{#000000,#e5e5e5 | 1958 | 1959 | 1960 | ||
| 이영민 타격상 제정 | 김동주 경남고 | 백인천 경동고 | 최관수 동산고 | ||
| 1961 | 1962 | 1963 | 1964 | 1965 | |
| 조정일 성동고 | 정인성 살레시오고 | 이철화 부산고 | 김영생 대구상고 | 이광환 중앙고 | |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
| 박용해 대구상고 | 오영복 대전고 | 김영신 대구상고 | 전장헌 선린상고 | 신중국 부산고 | |
| 1971 | 1972 | 1973 | 1974 | 1975 | |
| 정현발 경북고 | 정순명 충암고 | 김일권 군산상고 | 박명선 인천고 | 이효헌 마산상고 | |
| 1976 | 1977 | 1978 | 1979 | 1980 | |
| 임정면 마산상고 | 이만수 대구상고 | 김남수 신일고 | 김이수 부산상고 | 김건우 선린상고 | |
| 1981 | 1982 | 1983 | 1984 | 1985 | |
| 구윤 경북고 | 김성범 포철공고 | 한경수 군산상고 | 주은현 광주일고 | 김경기 인천고 | |
| 1986 | 1987 | 1988 | 1989 | 1990 | |
| 김현철 경북고 | 김훈 경남상고 | 곽상선 군산상고 | 정진식 경남고 | 강준기 공주고 | |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
| 강혁 신일고 | 노상진 배명고 | 조현 신일고 | 김건덕 경남상고 | 박현철 광주일고 | |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
| 박진형 경동고 | 신민기 경남고 | 백정훈 광주상고 | 수상자 없음 | ||
| |
| 보유 기록 | |
| 단일 시즌 최고 타율 | 0.412[1][2] |
| 단일 시즌 최고 wrC+ | 227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30452> | LG 트윈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rowcolor=#ff0> 초대 (MBC 초대) | 2대 (MBC 2대) | 3대 (MBC 3대) | ||
| 백인천 (1982~1983) | 감독 대행 유백만 (1983) | 감독 대행 한동화 (1983) | 김동엽 (1983) ☆ | 어우홍 (1984~1985) | |
| <rowcolor=#ff0> 4대 (MBC 4대) | 5대 (MBC 5대) | 6대 (MBC 6대) | 7대 (LG 초대) | ||
| 김동엽 (1985~1987) | 감독 대행 유백만 (1987) | 유백만 (1988) | 배성서 (1989) | 백인천 (1990~1991) ★ | |
| <rowcolor=#fff> 8대 (LG 2대) | 9대 (LG 3대) | 10대 (LG 4대) | |||
| 이광환 (1992~1996) ★ | 감독 대행 천보성 (1996) | 천보성 (1997~1999) ☆ ☆ | 이광은 (2000~2001) | 감독 대행 김성근 (2001) | |
| <rowcolor=#fff> 11대 (LG 5대) | 12대 (LG 6대) | 13대 (LG 7대) | 14대 (LG 8대) | ||
| 김성근 (2002) ☆ | 이광환 (2003) | 이순철 (2004~2006) | 감독 대행 양승호 (2006) | 김재박 (2007~2009) | |
| <rowcolor=#fff> 15대 (LG 9대) | 16대 (LG 10대) | 17대 (LG 11대) | 18대 (LG 12대) | 19대 (LG 13대) | |
| 박종훈 (2010~2011) | 김기태 (2012~2014) | 양상문 (2014~2017) | 류중일 (2018~2020) | 류지현 (2021~2022) | |
| <rowcolor=#fff> 20대 (LG 14대) | | ||||
| 염경엽 (2023~)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rowcolor=#fecd00>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 <rowcolor=#fff> 6대 | 7대 | 8대 | 8대 | 9대 | |
| 감독 대행 조창수 (1997) | |||||
| <rowcolor=#fff> 10대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
| <rowcolor=#fff> 15대 | 15대 | 16대 | | ||
| 감독 대행 박진만 (2022)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41e42> |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rowcolor=#ed1c24> 초대 | 2대 | 3대 | 4대 | |
| 박영길 (1982~1983) | 감독 대행 강병철 (1983) | 강병철 (1984~1986) ★ ☆ | 성기영 (1987) | 어우홍 (1988~1989) | |
| <rowcolor=#ed1c24> 5대 | 6대 | 7대 | |||
| 김진영 (1990) | 감독 대행 도위창 (1990) | 강병철 (1991~1993) ★ | 김용희 (1994~1998) ☆ | 감독 대행 김명성 (1998) | |
| <rowcolor=#000> 8대 | 9대 | 10대 | |||
| 김명성 (1999~2001) ☆ | 감독 대행 우용득 (2001) | 우용득 (2002) | 감독 대행 김용희 (2002) | 백인천 (2002~2003) | |
| <rowcolor=#fff> 10대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
| 감독 대행 김용철 (2003) | 양상문 (2004~2005) | 강병철 (2006~2007) | 로이스터 (2008~2010) | 양승호 (2011~2012) | |
| <rowcolor=#fff> 15대 | 16대 | 17대 | 18대 | ||
| 김시진 (2013~2014) | 이종운 (2015) | 조원우 (2016~2018) | 양상문 (2019) | 감독 대행 공필성 (2019) | |
| <rowcolor=#fff> 19대 | 20대 | 21대 | | ||
| 허문회 (2020~2021) | 서튼 (2021~2023) | 감독 대행 이종운 (2023) | 김태형 (2024~ ) | ||
| {{{#ff630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토에이 플라이어즈]] 등번호 68번}}} | |||||
| 결번 | → | 백인천 (1962) | → | 다카시마 아키오 (1964) | |
| {{{#ff630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토에이 플라이어즈]] 등번호 41번}}} | |||||
| 오카다 타다히로 (1958~1962) | → | 백인천 (1963~1966) | → | 고레히사 유키히로 (1967) | |
| 도에이/닛타쿠홈 플라이어즈-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7번 | |||||
| 사이온지 아키오 (1957~1966) | → | 백인천 (1967~1974) | → | 우치다 준조 (1975~1976) | |
|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등번호 6번 | |||||
| 키쿠카와 쇼지로 (1973~1974) | → | 백인천 (1975~1976) | → | 스즈키 하루히코 (1977~1978) | |
| 롯데 오리온즈 등번호 9번 | |||||
| 하세가와 카즈오 (1972~1976) | → | 백인천 (1977~1978) | → | 에지마 타쿠미 (1979~1983) | |
| 롯데 오리온즈 등번호 2번 | |||||
| 야마자키 히로유키 (1965~1978) | → | 백인천 (1979~1980) | → | 마루야마 카즈히토 (1983~1986) | |
| {{{#ffffff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버팔로즈]] 등번호 22번}}} | |||||
| 노다 운페이 (1978~1980) | → | 백인천 (1981) | → | 스미토모 카즈야 (1982~1988) | |
| MBC 청룡 등번호 2번 | |||||
| 팀 창단 | → | 백인천 (1982~1983. 6. 29.) | → | 최정기 (1984~1986) | |
| 삼미 슈퍼스타즈 등번호 2번 | |||||
| 결번 | → | 백인천 (1983. 6. 30.~1984) | → | 김호근 (1985) | |
| LG 트윈스 등번호 2번 | |||||
| 양현기 (1987~1989) | → | 백인천 (1990~1991) | → | 김동수 (1992~1999) |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0번 | |||||
| 양일환 (1990~1995) | → | 백인천 (1996) | → | 김일권 (2003~2004) |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7번 | |||||
| 정순명 (1996) | → | 백인천 (1997) | → | 장호연 (1998~2000) | |
| SK 와이번스 등번호 83번 | |||||
| 결번 | → | 백인천 (2002~2002. 6. 20.) | → | 오오타 (2007) | |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90번 | |||||
| 김용희 (1994~1998) | → | 백인천 (2002. 6. 21.~2002. 8. 26.) | → | 이명진 (2013) | |
|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1번}}} | |||||
| 손민한 (1997) | → | 백인천 (2002. 8. 27.~2003) | → | 김태석 (2004) | }}} |
| | |
| 백인천 白仁天 | Baek In-cheon | |
| 출생 | 1942년 9월 27일[3] |
| 중화민국 장쑤성 우시현 (現 중국 장쑤성 우시시) | |
| 사망 | 2026년 8월 15일[4] (향년 83세) |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단국대학교병원 | |
| 장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읍 대대리 299 용인로뎀파크 |
| 국적 | |
| 본관 | 수원 백씨 (水原 白氏) |
| 학력 | 효제국민학교 (졸업) 경동중학교 (졸업) 경동고등학교 (졸업) |
| 신체 | 174cm, 77kg[5] |
| 포지션 | 중견수, 지명타자, 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62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토에이) 1982년 MBC 청룡 창단 멤버 |
| 소속팀 | 농협 야구단 (1961) 토에이 플라이어즈-닛타쿠홈 플라이어즈-닛폰햄 파이터즈 (1962~1974)[6]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1975~1976) 롯데 오리온즈 (1977~1980) 킨테츠 버팔로즈 (1981) MBC 청룡 (1982~1983) 삼미 슈퍼스타즈 (1983~1984) |
| 지도자 | MBC 청룡 감독 (1982~1983)[7] 삼미 슈퍼스타즈 플레잉코치 (1983~1984) 청보 핀토스 타격 인스트럭터 (1985)[8] LG 트윈스 감독 (1990~1991) 삼성 라이온즈 타격 인스트럭터 (1994)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6~1997) 연세대학교 야구부 타격 인스트럭터 (1998) 한화 이글스 타격 인스트럭터 (1999) 삼성 라이온즈 타격 인스트럭터 (2000) 한화 이글스 타격 인스트럭터 (2001) SK 와이번스 타격 인스트럭터 (2002)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2~2003)[9] |
| 해설위원 | SBS /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1999~2001 / 2006~2010)[10] tvN 코나미컵 해설위원 |
| 경력 | KBO 원로자문위원 (2007) |
| 병역 | 중앙정보부 대체 복무 (첩보원) |
| 종교 | 불교 → 개신교(예장통합)[11] |
| 가족 | 형 백인원[12]누나 백인숙 여동생 백인옥, 백인애, 백인순 아들 백인학, 그 외 아들 2명[13] |
1. 개요
| |
| 배트를 들고 있는 백인천[14] |
노력자애(努力自愛)
스스로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
백인천의 좌우명
대한민국의 야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 포수.스스로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
백인천의 좌우명
일본프로야구에서 수위타자(타율 1위) 타이틀을 차지했고, 한국프로야구에서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으로써 창단 첫 통합 우승을 견인했다.
2. 생애
2.1.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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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백인천/선수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백인천의 선수 경력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통합 선수 경력: 백인천/선수 경력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플라이어즈-닛폰햄 시절 | 타이헤이요 시절 | 일본 롯데 시절 | 킨테츠 시절 | }}} | |||
| | |||||||
| 1982년 | 83 MBC | 83 삼미 | 1984년 | ||||
| 아마추어 경력 | |||||||
| 경동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 농협 야구단 시절 | }}}}}}}}} | |||||
2.2.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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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백인천/지도자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3. 해설위원 경력
NPB 해설위원 시절에는 야구판 예송논쟁을 불러 일으켰다.2006년,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이승엽이 진출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담 해설 위원이 되어 2010년까지 활동했다. 자신의 수제자 이승엽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며, 캐스터와 함께 대놓고 승빠 기질을 보였다.
다만 해설위원으로서 갖춘 역량은 NPB에서 20년 가까이 현역으로 뛰었으니 만큼 한국에서 가장 NPB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장점만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 단점. 처참한 한국어 발음(+웅얼웅얼한 말투)과 흥분하면 튀어나오는 일본어 때문에 제대로 된 중계가 힘들 지경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요시!" "그란도 시즌!" "라지에타" "스고이!" 특히 그란도 시즌과 반말 때문에 해설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당시 같이 중계를 맡았던 임용수 캐스터조차 '요시 그란도 시즌'에 대한 질문을 받자 백인천 위원님이 오랫동안 일본 생활을 하셔서 일본식 어투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아요라고 답변하였다. 게다가 이승엽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에는 해설임에도 말이 거의 없었다.
요시 그란도 시즌은 야갤을 시작으로 많은 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실제 발언은 '요시! 그란도 시즌!'이 아니라 '역시! 하나둘셋이야!'라는 주장이 나왔고, 모든 야구 사이트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해설자 백인천은 한국어 발음도 부정확했고 바로 옆에 있는 캐스터도 이해하기 힘든 자신만의 일본식 표현을 쓰곤 했는데 그로 인해 나타난 해프닝이다.
2.4. 2010년대
2010년 8월 20일, 일간스포츠에 "이대호는 날 미워할지도 모르겠다"라는 기사가 떴다. 내용인 즉, "이대호는 사직 야구장에서 쪼그려뛰기 같은 걸 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는 것. 때문에 가뜩이나 폭염주의보가 내려 더워 죽겠는 와중에 백주 대낮부터 롯데빠들의 혈압을 제대로 올리고 있다. 그래도 당사자 이대호는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분명 나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시키신 훈련이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15][16]2010년 6월부터 일구회 산하의 은퇴선수 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12년에는 한일유소년야구육성기금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뇌출혈 후유증 예방운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동아일보에서 회고 인터뷰도 했고 김영덕, 박영길 감독과 삼자 인터뷰로 프로야구 30년을 회고했다.
2013년 7월 29일,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58명의 공동 저자가 함께 집필한 과학 논문인 <백인천 프로젝트>가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되었는데, 백인천 본인이 직접 책 추천사를 썼다. # 논문의 내용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모여 한국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분석했으며,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가설이 한국프로야구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검토했다고 한다. 본인이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자인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징성을 갖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천관율 시사IN 기자는 "본인이 롯데 팬이라 프로젝트 이름을 처음 듣고 기겁했다"고 한다.
2014년 12월 5일,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시상식에 참여한 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과 관련해 "프런트는 성적을 이유로 감독을 경질하기보다는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 발언을 접한 롯데 팬들은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당신 입에서 나올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믿고 맡겼더니 8888 찍었냐?" 등의 실소들을 흘리면서 비웃었다.
2016년 7월 16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개최된 2016년 올스타전 시구자로 선정되면서 오랜만에 그라운드를 밟아 팬들에게 모습을 비췄다. 자신이 초대 감독을 역임했던 원년 MBC 청룡의 모자를 쓴 채 마운드를 밟고서 시구를 했고, 삼성 감독 시절 제자인 이승엽이 시포자로 백인천의 공을 받았다. 올스타전 당시에도 뇌경색 후유증 때문인지 시구를 마치고 나갈 때 다리를 몹시 쩔뚝거렸다.
2017년 4월 2일, LG 트윈스는 잠실 홈 개막전 시구자로 창단 감독이자 첫 우승 감독이었던 백인천 전 감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본인도 언젠간 LG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해 보고 싶었고, 만약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때도 잠실에서 시구를 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 그러나 일신상의 사유로 홈 개막전 시구자는 이광환 전 감독으로 변경됐고, 대신 구단 SNS를 통해 LG 팬들에게 개막전 승리 기원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
2019 WBSC 프리미어 12 한국 vs 호주 개막전에서도 시구를 하였다. 여전히 몸이 불편한지 스탭의 부축을 받았는데 결국 이 시구가 야구장에서 보여 준 마지막 공개 행보가 되고 말았다.
2.5. 말년
2021년 9월 30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홀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랫동안 거주해 온 고양시에서도 오래전에 떠났고, 평택시로 거처를 옮겼다고 하며, 자신을 보살펴 줄 가족조차도 국내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볼 때 정황상 현재의 후처와도 별거 중이거나 이미 또 이혼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는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중 24위로 선정되었다. 다만 상술한 뇌경색 투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서 시상식은 따로 개최되진 않았다.2023년 1월 5일, MBN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현장르포 특종세상 564회에 출연했다.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홀로 거주 중이며, 뇌경색 후유증으로 인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었다. 은퇴 후 현재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다. #
세 번의 뇌졸중을 겪어서 휠체어 생활을 했으며[17] 후처와도 이혼했고, 자식들도 모두 일본 등 해외에 있고 연락도 끊긴 상태라고 한다. 지인의 소개로 수양딸로 삼았던 여성은 백인천의 재산을 자신 명의로 돌려놓고 연락이 두절됐다. 현재는 지인의 배려로 천안시에 위치한 지인의 아파트에서 지낸다고 한다.
2024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하기로 했으나, 당일 아침 건강 문제로 불참 통보를 전했다.
2026년 2월에는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됐다는 근황 기사가 떴다. 현재도 천안시에 거주 중인 듯한데 인지 기능도 현저히 떨어진데다 거동마저 부자연스러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여기다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발가락이 골절됐고 몸에 욕창까지 겹쳐 입원이 시급한데 인근 병원에 입원실이 없어 입원은 3월에나 가능하고, 설사 입원한다고 해도 당장 낼 병원비조차 없어서 야구인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김소식 전 야구협회 부회장의 증언이 나왔다. #
2.6. 사망
2026년 8월 14일 오전 6시경 백 전 감독은 자택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했고 평소 그의 건강을 돌보던 요양보호사가 119를 불러서 응급 처치를 했으나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소생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거주지 인근의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으로 이송했으며 백 전 감독은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18] 그러나 오후 1시 50분경 타전된 속보에 따르면 "단국대학교병원으로 옮겨진 뒤 맥박이 돌아왔고 희미한 호흡이 남아 있어 중환자실로 이송 후 경과를 지켜보고 있으나 여전히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었다. 한편 경동고등학교 총동문회 측이 백 전 감독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그러나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난 15일 오전 6시 41분 단국대학교병원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 장례는 KBO장으로 치러지며, 8월 17일 오전 8시에 발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KBO장의 경우 2025년 사망한 이용일 초대 KBO 사무총장에 이어 두 번째다. KBO는 한국 야구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은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現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이 맡는다.
장례는 개신교식으로 치뤄지며, 천안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한 뒤 용인 로뎀파크에 수목장으로 안장될 예정이다.
2.6.1. 반응
-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백인천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분, 제가 꿈꾸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감독님이셨다"라고 했다. 또 "감독님께 배운 것들과 감독님께서 제게 심어주신 자신감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
- 정우영 SBS Sports 캐스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린 시절 방송으로 접했던 백 전 감독의 활약상을 언급하며 "절대 넘을 수 없는 0.412라는 숫자를 KBO 역대 타율 순위 맨 윗 칸에 남기고 먼 길을 떠나신 백인천 전 감독, 전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명복을 빕니다"고 추모글을 게시했다. # 특히 8월 15일 두산과 기아의 경기 중계 중 김도영의 시즌 35호 홈런 직후 "김도영은 라지에이터보다 뜨겁습니다!"라는 멘트로 고인을 추모했다. 해설 경력 문단에 나오듯 원본 멘트가 당시 이승엽의 시원한 홈런에 대한 백인천 해설의 챈트였기에 중계멘트로서 오마주이기도 하다.[19] 김도영이 '백인천 타격상' 출신이라 본인만의 방식으로 추모한 것이라고 한다.[20]
- 김태균 KBS N SPORTS 해설위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인에게 수상받았던 사진을 올리며 "한국 야구를 위해 걸어오신 길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추모글을 게시했다. #
- 허구연 KBO 총재는 8월 16일에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또한 유영구 전 KBO 총재, 프로야구 OB 모임인 일구회의 김광수 회장, 박철순 부회장, 구경백 사무총장 등은 8월 15일에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고 한다. # 그가 생전에 선수로 뛰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도 코무라 마사루 대표이사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
- 특히 그가 감독으로 족적을 남겼던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별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고인을 추모했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다만 롯데 자이언츠는 별도의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 다만 추모식은 진행했으며,[23] 근조리본도 붙이고 경기에 임했다.[24][25] kt wiz도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 KBS N SPORTS에서도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26]를 15일과 16일에 편성했다. # #
-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X에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한 시대를 빛내주신 감독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고 추모글을 게시했다. #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현역 시절에는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하면서 장훈과 함께 당대 최고의 한국인 타자였다. 더구나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가 여전했던 시기에 일본프로야구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세우고 한국 야구의 위상을 일본 열도에 알린 인물 중 한 명이다. 백인천의 현역 시절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타자를 꼽으라면 박용택을 꼽을 수 있다. 임팩트는 다소 부족하지만 누적 스탯으로 보면 매우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일본프로야구의 1960~1970년대 리그 성향이 투고타저였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약한 선수는 아니었다.1982년 고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하자 40대의 많은 나이에도 후배 선수들과 똑같이 뛰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미일 프로야구 최초이자 KBO 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4할 타자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물론 당시 KBO 리그의 수준이 일본프로야구보다 현저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야구 선수로서는 백발노인 축에 속하는 40대의 나이에[27] 팀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경기까지 뛰는 위치였음을 고려한다면 0.412라는 고타율은 매우 대단한 기록이다.
지도자로서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팀을 거치며 굵직굵직한 족적들을 남겼다. KBO 리그 원년에는 당대 유명한 선수들이 즐비했던 스타군단 MBC 청룡 초대 감독을 맡았으나[28] 선수단 안팎으로 좌충우돌한 끝에 한국시리즈 문턱을 밟아보지 못했다. 1989년에는 청룡의 선수들이 이어진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1980년대 중하위권에서 맴돌던 약팀을 일약 리그의 강호로 견인했다. 사실 LG는 청룡 시절부터 선수들의 개인주의가 강해서 강팀이 될 수 없다고 손가락질 받던 약팀이었다. 실제로 1989년의 MBC 청룡 선수단과 1990년의 LG 트윈스 선수단의 차이는 크게 없었고 1990년 정규시즌 초반에는 하위권으로 떨어지면서 청룡의 약체 DNA가 어디 가지 않는듯 했다. 그러나 6월 중순부터 급반등하더니 정규시즌 우승까지 거머쥐었다.[29]
이어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해서는 뎁스가 초토화된 삼성 타선을 전면적으로 리빌딩하면서 2000년대 삼성이 전성기를 달릴 수 있도록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백인천의 삼성 감독 시절 리빌딩은 KBO 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리빌딩 성공 사례인데 투수로 입단했던 고졸 선수 이승엽을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홈런타자로 발굴해냈고 정경배, 최익성, 신동주, 김태균 등 젊은 야수 유망주들을 적극 등용하면서 대구 팬들이 선호하는 화끈한 공격 야구 색깔을 강화했다. 비록 재임 중 가을야구 진출은 1997년 한 해 뿐이고 그마저도 그 시즌에는 뇌출혈의 여파로 중도에 사임했으며 본격적인 리빌딩의 여파로 이만수, 강기웅 등 대구 팬들이 사랑하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쫓아내듯이 배제시킨 것은 삼성 감독 시절의 옥에 티로 꼽힌다. 그래도 삼성 팬들은 이 시기의 리빌딩이 없었다면 소위 삼성 왕조의 기반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한국시리즈 우승의 비원을 풀어준 김응용, 왕조 시대의 사령탑이었던 류중일에 이어 삼성의 명감독 중 하나로 백인천을 꼽는다.
3.2. 부정적 평가
선수 생활 동안 아쉬운 점은 고국에서의 현역 생활이 그리 길지 못했고 현역에서 은퇴하는 과정도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했다는[30] 점이 옥에 티라고 볼 수 있다.가장 큰 문제는 단연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도자 차원을 넘어 '롯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인물'로 꼽히는데[31] 롯데 감독 시절 태업으로 팀을 망치면서 롯데는 물론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단기적 혹평을 받은 지도자로 낙인되면서 지도자 생활도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개인적인 성격 문제나 사생활 문제는 그렇다 쳐도 야구인으로서는 업적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인물이었는데, 롯데 감독 시절 단순한 성적 부진을 넘어 스포츠 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직업 정신 자체를 의심토록 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백인천을 보는 시선이 바뀌어버린 건 물론 KBO 리그 역사상 한 인물이 한 팀의 팬에게 가장 극악한 금지어로 남게 된 사례가 됐다. 오죽하면 백인천을 긍정적으로 보는 LG나 삼성 팬들조차 롯데 감독 시기의 백인천은 도저히 실드를 쳐주지 못할 정도. 롯데 감독 시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백인천/지도자 경력/롯데 자이언츠 문서에서 볼 수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 '인천'이라는 이름과 달리 인천광역시와는 관련이 거의 없다. 일단 이름의 한자 구성부터 다른데 똑같이 어질 인을 쓰기는 하지만 인천시의 '천'은 내 천이고 백인천의 '천'은 하늘 천이다. 물론 인천과 인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인천 연고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뛴 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고, 그마저도 선수 말년이 불명예스러웠기에 인천과의 인연은 그야말로 미미하고 좋지 않은 수준이다.[32]
-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고교/대학야구 타자상 이름은 백인천의 타율이었던 0.412를 딴 'BIC 0.412상'이다.
- 야구용품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 감독 시절부터 프로야구 선수는 항상 최고의 장비를 써야 한다며 구단에 직접 브랜드 있는 장비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선수단에게 본인이 직접 공수한 미즈노 프로 배트를 쓰게 했는데 이걸로 인해 부정배트 사건이 터진다. 롯데 감독 퇴임 후에는 야구용품 사업을 했으며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타격 폼도 봐주고 몸에 맞는 배트를 추천 해줬다. 그리고 요청시 본인의 싸인도 해주었고, 싸인만 원하면 착불로도 보내 주었다. 2013년에는 건강이 안 좋았음에도 직접 야구용품 박람회에 참석하였다.
- 이승엽과 최익성이 가장 존경하는 야구인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자신의 스승으로 박흥식, 박승호 코치와 함께 또 하나의 은사인 백인천 감독을 꼽았으며[33], 최익성은 백인천 감독이 본인의 야구인생에서 인생을 꽃을 피운 은인이라고 언급했다. 최익성이 서정환코치와의 트러블 속에서도 버티게 해준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백인천 감독으로, 최익성 본인의 재능을 극찬받은데다가 늘 항상 버팀목이 되어줬기에 백인천 감독을 자신의 친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이후로도 최익성은 은사인 백인천이 있는 한은회에 가입할 정도로 백인천 감독을 잘 따랐다고 한다.
- '백골퍼'라는 별명에 걸맞게, 실제로 골프를 좋아하는 골프 애호가라고 하며 실력도 꽤나 되는 편이다. 야인 시절 골프 용품 사업을 한 것에서부터 알 수 있다.[34] 다만, 롯데 감독 시절 인터뷰에서 그러잖아도 성적도 엉망진창인 마당에 뜬금없이 골프 얘기나 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비판받으면서 백골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여진 것일 뿐.
- 프로야구 출범 전에 일본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고 일본어가 매우 능숙한 것 때문에, 일부 초보 야구팬들은 그를 재일 한국-조선인이나 한국계 일본인 혹은 일본인 출신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어난 곳만 중화민국이며 혈통과 자란 곳은 엄연한 대한민국인, 아주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 때 한국으로 왔으며, 초중고도 모두 한국에서 졸업했던 엄연한 토종 한국인이다. 즉 일본프로야구에서 선수로 뛴 한국 국적자 중, 독립한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최초의 선수이다.
-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지낸 적이 있다. 해방 후 가족 전체가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했다. 유년기는 성북구 돈암동에서 보냈다.
- 1980~90년대에는 성동구 옥수동에서 지냈다.
- 토에이 플라이어즈에서 뛰던 시절 황당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1967년 7월 19일,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3:5로 뒤지고 있던 9회말 무사 1·2루의 찬스를 맞은 백인천이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쳤다. 그러나 전속력으로 1루를 돌아 2루로 향하던 중 1루 주자였던 대주자 요시다 마사아키를[37] 앞질러 버리는 바람에 아웃되면서 홈런이 취소되었다. 백인천의 홈런이 됐어야 할 타구는 단타로 기록되었고, 두 주자가 모두 홈을 밟으면서 5:5 동점이 되었으나 연장 10회에 킨테츠가 결승점을 올리면서 토에이는 5:6으로 패했다.경기기록 당시 요시다는 원래 주자였던 코레히사 유키히코의 대주자로 출전한 상태였으며, 타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명 때문에 공을 놓친 뒤 1루로 돌아가려다가 백인천에게 추월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로 경기 후 백인천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요시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며 이마를 라커룸 벽에 부딪히는 등 크게 낙담하며 당시 1루 주자였던 요시다 마사아키에게 직접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다만 팀에서는 요시다가 꾸물거린 책임을 더 크게 봤는지, 요시다는 이 시즌 이후 팀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야구계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38] 야구에서 보기 드문 선행 주자 추월 아웃이 볼데드 상황이라 주자들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홈런에서, 그것도 끝내기 홈런에서 발생해 홈런이 취소되고 팀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워낙 황당하다 보니 당시 해외 소식 보도가 잘 안되던 국내 언론에서도 이 사건이 보도되었고,[39] 일본에서도 현재까지 종종 회자되는 사건이다.#1 #2
6. 관련 문서
[1] 1982년 기록[2]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KBO 4할 타자다.[3] 호적상으로는 1943년 11월 27일생이라고 한다.[4] 공교롭게도 일본의 칸베 토시오 코치와 미국의 토미 존도 같은 날에 별세했다.[5] 네이버 프로필 기준.[6] 같은 팀인데 팀 매각에 따라서 이름만 바뀌었다. 1972년까지는 도에이 플라이어즈, 도에이가 부동산 회사인 닛타쿠홈에게 매각해 1973년에는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닛타쿠 홈이 1년 만에 다시 팀을 닛폰햄에게 매각해서 닛폰햄 파이터즈가 됐다. 1974년 시즌 후 닛폰햄 사장으로 취임한 미하라 오사무가 전임 감독이자 라이벌이었던 미즈하라 시게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취임 1년 만에 대규모 트레이드를 감행하며 소위 '미즈하라 인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나섰다. 장훈과 백인천도 이 과정에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7] 선수 겸 감독.[8] 후기리그 한정[9] 2002년 6월 21일 ~ 2003년 8월 6일.[10] 2기 시절에는 요미우리 홈 경기 중계 전담 해설.[11] 2016년 2월 말부터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거룩한빛광성교회에 출석했으며, 2018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건강이 악화되고 천안시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천안중앙교회에 출석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 후 그의 위패에도 십자가와 '성도 백인천' 이라고 쓰여 있고 장례식 역시 개신교식으로 치뤄졌다. 인터뷰에서 남동생이 목사고 여동생들도 개신교 신자임을 밝혔다.[12] 백인천보다 5살 위이고 야구인 출신으로서 선수, 지도자, 심판을 역임하였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는 동대문구장 근처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심판복을 제작하였다.[13] #[14] 사진의 배트는 1982년에 실제 쓰던 ZETT제 배트로 경기를 치르던 도중 부러졌으나, 저 방망이로 안타를 많이 쳐서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고 한다. 배트에는 수위타자(首位打者)와 1982년 성적이 적혀 있다.[15] 사실 한국 스포츠계 특성상 웬만큼 깊은 원한+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이 아닌 이상 대선배+전 감독에게 대놓고 나쁘게 얘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특히 현역은... 게다가 그 대선배가 전 리그적인 독고다이나 영구제명이 된 사람이 아닌 이상 야구계에 이런저런 연줄로 엮여 있기 때문에 어떻게 꼬일지 모르고(예를 들어 씹은 사람의 후배가 하필 감독으로 온다든지...) 또한 우리나라는 감독을 "지도자, 스승, 은사"로 보는 경향이 커서 그런 비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16] 물론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이미 이대호는 레전드급 성적을 찍은 위상 높은 스타 플레이어로 올라선 채로 명예롭게 은퇴했기에 더 이상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대호는 은퇴사에서 자신의 롯데 재적 기간 중 감독들에게 모두 고맙다고 언급했지만, 백인천과 양승호는 뺐다. 즉, 백인천에게 좋은 감정은 없다는 뜻으로,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백인천이 이대호가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양승호의 경우 롯데 감독 퇴임 후 뇌물수수 건이 까발려졌고, 이게 유죄로 확정되어서 전과자로 전락해 버린 것 때문이었다.[17] 심지어 발가락이 괴사했을 정도다. 이렇게 되면 잘라내야 하지만, 하필 혈전약을 먹고 있는 탓에 절단 수술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18] 다만 사망 판정은 비가역적인 상태를 뜻해서, 정말 사망 판정이 되었다면 추가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후술한 자발적 회복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1) 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판정되었다고 기자가 오보한 경우 또는 2) 병원측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었다고 잘못 판정한 경우 둘 중 하나로 보인다. 만일 후자라면 의료사고일 가능성까지 생기게 된다.[19] 요시 그란도 시즌 사건은 설령 백인천 해설 본인은 몰랐더라도 소위 베이징 뉴비 혹은 그 이전 부터 야구를 봐 왔던 팬들에게는 백인천 해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이며, 야구 황금기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이기에 특히 의미가 있는 멘트였다고 할 수 있다.[20] 본인의 스레드에 남긴 언급으로 이 의미가 맞다고 인정했으며 '요시 그란도 시즌'부터 하고 싶었으나 방송에 부적절하여 라지에이터만 언급했다고 밝혔다.#[21] 그란도 시즌 해설 당시 함께했던 캐스터이기도 했다.[22] 잠실 - SSG : LG, 광주 - 두산 : KIA, 사직 - NC : 롯데, 대구 - 한화 : 삼성, 수원 - 키움 : kt.[23] 이때 중계를 하던 한명재 캐스터는 빛을 되찾은 날이었지만 야구계는 빛을 잃었습니다. 라는 멘트를 남겼다.[24] 그리고 이날 그가 감독을 맡았던 세 팀 모두 승리했다.[25] 롯데의 경우는 백인천의 롯데 감독 시절 행보를 기억하는 팬들을 감안하여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추모 영상이 나올때 일부 팬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26] 한국야구레전드 - 故 백인천 편.[27]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선수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30대 초반에 접어든 선수들에게도 '노장'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럼없이 붙이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지금도 40대 초반이면 대부분의 선수가 은퇴하는 나이다.[28] 당초에는 대학야구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던 배성서 감독이 초대 청룡 감독으로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문화방송 경영진이 일본에서 갓 귀국한 백인천을 감독으로 낙점하면서 배성서의 감독 선임이 무산됐다.[29] 청룡 시대와 LG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모기업의 기조 변화였다. 정부 눈치를 보던 공영방송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구단의 주인이 바뀌면서 구단에 대한 지원 규모가 달라졌다. 특히 야구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선수단 운영에 부당하게 개입하던 청룡 프런트와 달리 럭키금성그룹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신임 구단주가 된 구본무 당시 럭키금성 부회장은 "10연패를 해도 괜찮으니 백 감독과 선수들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하라"고 다독여줄 정도로 든든한 신임을 안겨줬다. 그 결과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귀결됐다.[30] 그가 4할 타자의 위업을 달성했던 MBC 청룡이 아닌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은퇴했고, 은퇴 사유도 기량 저하나 부상이 아닌 간통 혐의 때문이었다.[31] 말 그대로 롯데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모든 선수, 코치, 감독, 단장을 전부 통틀어서 최악의 평가를 받는다. 롯데는 꼴런트라고 해서 프런트들이 대부분 질이 처참한 인물들로 구성됨에도 불구하고 저들보다도 욕을 많이 먹는다. 꼴런트들이 아무리 욕을 많이 먹는다 한들 그래도 백인천처럼 경질당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올드 팬덤의 입방아에 올라서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없다. 그리고 백인천은 롯데 시절 태업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데, 이 때문에 롯데 팬덤이 아닌 다른 팬덤에게서도 롯데 감독 시절은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종사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이 양반과 비견될 만한 롯데 자이언츠 종사자는 많은 계약금을 받고 야구는 못하는데 일찍이 결혼한 유부남에 아이도 있는 애아빠 주제에 성범죄를 저질러 그 자체로 볼드모트화된 서준원 정도 말고는 없는데, 서준원도 최소한 범죄가 문제였지 팀을 8888577이라는 암흑기로 밀어넣으며 꼴데로 전락시킨 백인천보다는 팀에 악영향은 덜 줬다는 게 중론이다. 역사상 최악의 단장이라는 이윤원, 사기꾼 소리나 들었던 성민규, 백인천 뺨치는 최악의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종운조차 본인들의 능력 부족으로 운영을 못 한 것일 뿐 최소 태업은 안 했다.[32] 한편 백인천의 현역 마지막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가 이름을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로 몇 번 바꾼 끝에 1996년 현대그룹에 인수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간판을 바꿨을 때, 현대 측에서 창단 감독으로 백인천을 선임하는 것도 검토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김재박에게 지휘봉을 맡겼다.[33] 실제로 이승엽의 성공 비결 이유 중 하나를 언급했을 때 백인천 감독은 반드시 들어간다.[34] '백구상사'라는 일본 골프용품 수입총판을 운영했다. 한 인터뷰에서 "내가 사업을 뭘 아나 일본 친구들이 도와줘서 그냥 흉내만 내본거지"라는 식으로 둘러대긴 했지만 상당히 잘되서 꽤 큰 돈을 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5] 20-20 없이 200-20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몇 없다. MBC-LG 프랜차이즈 후배 박용택도 그 몇 없는 선수 중 하나다.[36] 다만 선수 대표 선서는 차고령 선수였던 윤동균이 맡았다. 백인천도 현역 선수이기는 했지만 선수 겸 감독이었기에 순수한 선수 신분으로는 윤동균이 최고령자였기 때문이다.[37] 참고로 이 시즌에 프로 입단 5년 만에 겨우 1군 출전 기회를 잡았던 상황이었다.[38]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팀의 주축 외야수였던 백인천을 단 한 번의 실수만을 이유로 팀에서 내보내는 것은 무리였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황당한 실수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도 없었으니, 결국 팀 내 입지가 거의 없었던 요시다에게 책임이 돌아간 셈이다.[39] 1967년 7월 20일자 경향신문 4면1967년 7월 21일자 조선일보 4면
분류
- 백인천
-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선수
- 대한민국의 남자 야구 감독
-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 대한민국의 첩보원
- 1942년 출생
- 2026년 사망
- 1962년 데뷔
- 1984년 은퇴
- 우시시 출신 인물
- 수원 백씨
- 서울효제초등학교 출신
- 경동중학교 출신
- 경동고등학교 출신
- 선수 겸 감독/야구
- 우투우타
- 포수
- 외야수
- 농협 야구단/은퇴, 이적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은퇴, 이적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은퇴, 이적
- 치바 롯데 마린즈/은퇴, 이적
-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은퇴, 이적
- MBC 청룡-LG 트윈스/은퇴, 이적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은퇴, 이적
- MBC 청룡-LG 트윈스/역대 감독
- 삼성 라이온즈/역대 감독
- 롯데 자이언츠/역대 감독
- KBO 타격왕
- KBO 출루왕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일구회
- 뇌출혈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