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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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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시사IN
유형 시사 주간지
창간일 2007년 8월 17일
본사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로 27, 3층
(중림동, 가톨릭출판사빌딩)
대표자/발행인 이숙이
편집인/편집국장 변진경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평가4. 역대 임원 및 간부
4.1. 대표이사4.2. 편집국장4.3. 편집위원
5. 논조6. 주요 보도 및 논란7. 여담

1. 개요

2007년에 창간한 대한민국의 진보성향 시사 주간 잡지이다. 캐치프레이즈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주간지'이다. 정직(正直)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시사저널사태로 정직(停職), 즉 직무 정지 상태였던 사람들이라는 중의적 표현이 있다. 창간 당시에 일본 슈칸킨요비 및 영국 인디펜던트지에게 창간 축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굽시니스트본격 시사인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일부 학교 도서관에 시사IN 잡지가 들어와 있는 경우가 있다.

2. 역사

시사저널을 퇴사한 기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6년 시사저널의 이철현 기자는 삼성그룹과 당시 이학수 경영전략실장에 비판적인 '삼성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커졌다'라는 기사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이 기자와 이윤삼 편집국장과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기사 게재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를 거부하자, 전직 중앙일보 부회장 출신인 금창태 당시 사장에게 연락을 해 게재를 막으려 했다. 금창태 사장은 전력과 밥줄[2]상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와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데스크에 이 기사를 빼라고 지시했는데 기자들이 이에 반발하자 편집국을 거치치 않고 인쇄소에 직접 사람을 보내 관련기사를 삭제하고 광고를 넣을 것을 지시했다.

다음날 잡지가 발행되고서야 이를 알게 된 이윤삼 편집국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기자들은 편집권 수호를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파업을 시작했다. 이를 '시사저널 사태'라고 하며, 당시 시사저널 기자 총 25명 중에 23명이 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경영진은 파업참여 기자들에게 무기정직 처분을 내리고, 인턴들을 임시 채용해서 대충 휘갈겨쓴 땜빵기사들로 발행을 강행했다.[3] 그리고 용역업체를 동원해 파업 중인 기자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등[4] 양측의 대립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파업기자들은 이 기간에도 각자 취재는 계속해서 '우리가 진짜 시사저널'이라면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를 선보였다. 이 사건은 재벌의 언론 길들이기라는 측면에서 PD수첩에서 다루는 등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2007년 경영진과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기자들은 시사저널을 모두 퇴사하여 새로운 잡지 창간을 준비하면서 이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결국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 23명 중에 22명, 그리고 직원 6명은 시사저널을 퇴사하고 2007년 9월 새로운 잡지인 시사in을 창간했다[5].

문제가 된 기사 표제에도 볼 수 있듯이, 기사는 삼성 이건희보다 2인자라 불리던 경영전략실장 이학수를 겨냥한 기사였다.[6] 소대장보다 바로 윗 선임병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허구한날 언론에 노출되는 이건희보다 이학수에 대한 비판 기사가 삼성에는 더 아팠던 듯하다. 그야말로 집요하게 기사 게재를 막으려 했던 이유가 그런 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관련 내용은 이 기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날 〈시사저널〉에서는 무슨 일이…

주진우 기자는 나중에 자신의 저서를 통해 진짜 이유를 밝혔다. 이학수 기사가 아니라 이건희의 개인비서인 박명경 상무에 대한 비판기사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제목의 '이건희 여자의 엘리베이터[7] 승진'이었고, 삼성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이 기사도 나가지 못했다. 저서에서 주진우 기자는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건희와 박명경이 오랜 내연 관계로, 홍라희도 둘의 관계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으며,[8] 박명경이 삼성 조직 내에서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세력을 키운다는 내용.[9]

박명경은 전문대학 출신인 인물이었는데, 1985년 삼성에 입사해 95년 삼성생명 과장, 98년 삼성전자 차장, 2002년 상무보, 2005년 상무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으며, 입사 후 줄곧 삼성그룹 비서실과 전략기획실 등에 몸담으며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역할을 한다. 박명경은 이른바 'MK'라는 이니셜로 삼성 내부의 문건에서 지칭되던 사람이었는데, 삼성에서 이니셜로 불리는 사람은 이건희 일가[10][11] 외에 박명경이 유일했으며, 당시 삼성 그룹의 몇몇 핵심 수뇌부만이 소유하고 있던 타워펠리스의 꼭대기 층 124평짜리 펜트하우스를 무려 2채나 혼자 소유했을 정도였고, 이건희 회장 가족 식사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인물이었다.

사실 이건희의 여자관계를 다룬 기사가 문제였나, 2인자 이학수를 비판한 기사가 문제였나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사태의 본질은 삼성그룹이 자신의 총수에게 불리한 기사를 인맥과 광고를 이용해서 방해하였고,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재벌이 돈과 인맥을 무기로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후 박명경 상무는 2010년 이학수 실장이 삼성물산 고문으로 좌천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건희에게 직접 경질당하게 된다.

3. 평가

2010년대 초반까지는 좋은 기대를 받았던 주간지 중 하나. 시사주간지중 유료부수가 가장 많았다. 2011년 7월을 기점으로 한겨레21을 넘어 주간지중 유료부수 1위를 유지해왔다. 이는 태생에 내재한 비판 정신, 시사저널 전통 멤버 특유의 필력, 광고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매체 색깔에 기인한다.

2012.7-2013.6 54,422부수를 발행한 것을 끝으로 지속적으로 유료부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더더욱 감소했다. 오죽하면 편집국장이 이를 칼럼에 호소했을 정도. 그러나 여전히 주간지 판매부수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12], 유료부수 감소 문제는 시사IN뿐만 아니라 여타 주간지 및 신문 매체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추세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4. 역대 임원 및 간부

4.1. 대표이사

4.2. 편집국장

4.3. 편집위원

5. 논조

대표적인 진보 성향 주간지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보수 정부, 재벌, 조중동종합편성채널 등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수 정부 집권 당시 인기를 모음. 노동, 페미니즘, 기후위기 등 의제를 기획기사, 데이터 저널리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굴한다는 측면이 있다. 진보적 트렌드를 심층적으로 쫓아간다는 평가도 받으나,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 보수 커뮤니티의 비판을 사기도 한다.

2011년 유료 발행부수 기준으로 주간/월간 시사잡지 중 발행 규모가 업계 2위였다(1위 한겨레21).#[13] 2013년 발표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섰으며,# 대다수의 시사 주간지가 하락세를 보인 2017년에도 여전히 1위를 지켰다. 2017년 발표 기준 순위

이 잡지의 주진우 기획취재팀장(2013~)은 2004년 시사저널 재직 당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일가의 각종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당시 순복음교회 신도 수만 명이 시사저널 건물 앞에 모여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14] 주 기자는 또 2007년 김용철 변호사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관련 특종, BBK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을 여러 차례 보도하였으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내곡동 사저 문제[15],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1억 피부클리닉 의혹을 제기하는 등 선거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기부 X-파일을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사회 부분에서는 올드 야구 팬으로 유명한 천관율 기자가 현실 사회와 야구를 연계해서 분석한 기사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특히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 이후 천관율 기자가 김성근 감독을 분석한 트위터와 기사가 야구 팬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트위터. 김성근 분석기사1, 기사2, 기사3.

최근에는 영일만 일대 심해 탐사 사업에 대한 단독기사를 내기도 했다.#

6. 주요 보도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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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시사IN/주요 보도 및 논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여담


[1] sisa.in을 입력해도 된다.[2] 기자사관학교로 꽤나 명성을 날리던 시사저널이 굳이 유력 일간지에서 사장을 초빙해올 이유는 광고영업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3]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넘쳐나는 기자 지망생들을 임시 채용하고 외부 필진들에게 돈을 주며 기사를 사서 잡지를 만들었던 것.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이 안 된 인턴들이 쓴 기사의 수준이란 게 뻔하지 않겠는가. 엉망인 기사 수준에 기존 독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시사저널은 그야말로 막장테크, 훗날 2013년 한국일보 사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4]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가 술회하기도 했다.[5] 참고로 파업에 참여했던 23명 중 회사로 복귀한 1명은 2011년 시사저널 편집장이 되었다.[6] 이건희 회장 밑에서 15년간 넘게 회장 비서실장,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삼성그룹 경영전략실장을 역임하면서 2인자로 군림하던 이학수와 그의 인맥들은 결국 2010년 이재용 후계구도 확립 과정에서 일제히 숙청되었다. 이 과정에서 같이 쓸려나간 이들이 이학수의 부산상고 동문이었던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과 김응용이 데려온 선동렬 감독이었다.[7] 박명경의 출세 경위를 암시한다[8] 책에는 정확히 이렇게 나와있다. '이건희 회장 가족과 친분이 깊은 한 인사는 "이 회장의 셋째 딸이 박명경 때문에 '우리 엄마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라고 말했다.' (주기자, 86쪽)[9] 실제 박명경의 친오빠는 삼성전자에서 상무로 근무했고, 친동생도 삼성의 협력회사 대표였다.[10] 이건희는 A, 홍라희는 A', 이재용은 JY 이런 식이었다[11] #[12] 2019년 한국 ABC협회 통계 기준[13] 시사 잡지의 파이가 한정된 상황에서 나꼼수주진우 기자의 영향력에 힘입어 한겨레21에서 시사in으로 갈아타는 정기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14] 이때 시위 구호가 "사탄 기자 물러가라", "주 기자를 죽이자"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꼼수다에서 "사탄 기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15] 이 기사를 타이틀로 실은 215호는 시사 주간지로는 이례적으로 2쇄를 찍을 정도로 팔려나갔다.[16] 2025년 3월 4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