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3595><tablebgcolor=#003595> | 주니치 드래곤즈 2025 시즌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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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최다 도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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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1년, 2012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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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2006~2010) | → | 오오시마 요헤이 (2011~) | → | 현역 |
<colbgcolor=#003595><colcolor=#ffffff> 주니치 드래곤즈 No. 8 C | |
오오시마 요헤이 大島洋平 / Yohei Ohshima | |
생년월일 | 1985년 11월 9일 ([age(1985-11-09)]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도리구 |
출신학교 | 교에이고등학교 고마자와대학 |
신체 | 180cm / 85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2009년 드래프트 5라운드 주니치 |
소속팀 | 일본생명 경식 야구부 (2008~2009) 주니치 드래곤즈 (2010~) |
등번호 | 32번 (2010) 8번 (2011~) |
연봉 | 2023년 / ¥250,000,000 |
등장곡 | Lady Gaga - Hold My Hand LiSA - 明け星 LiSA - 炎 |
응원가 | 주니치 1번 응원가 (2011~2014) 주니치 2번 응원가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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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ragons No. 8 |
일본 국적의 야구 선수.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의 외야수이다.
프로 입단 후 주니치에서만 뛰고 있고 주니치 드래곤즈의 연고지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나고 자란 로컬 보이이며, 아이치 야구 4대 사학 중 하나인 쿄에이 고등학교를 나온, 말 그대로 주니치 성골 그 자체인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고마자와대학을 거쳐 사회인야구팀인 일본생명 경식 야구부에 입단해 2년간 활동한 후 2009년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지명받고 주니치에 입단했다.[1]입단 첫 해부터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에게 수비력을 인정받아 개막전부터 선발로 기용되는 등 첫해부터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2012년부터는 팀 부동의 중견수로 발돋움한다.
2014년 이후부터는 큰 기복없이 2할 중후반~3할은 기대할 수 있는 주니치의 리드오프로 활약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지만 하필이면 이 시기부터 팀이 구단 역사에도 꼽을 암흑기에 빠지는 바람에 오오시마의 분전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2019시즌 후 FA자격을 얻었으나 행사하지 않고 다년 계약을 체결해 팀에 잔류하면서 주니치 원클럽맨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3년 계약 규모이며 연봉 변동이 적용되는 조건.
30대 후반을 향해가는 2020년대에도 큰 기복없이 꾸준하게 성적을 내고 있으며 2020시즌에는 개인 통산 1500안타를 돌파했다. 21시즌 종료 기준 통산 1748안타를 기록하고 있는데 급작스러운 에이징 커브가 오지 않는 이상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2년뒤에 2000안타를 달성하게될 전망.[2]
2020년대 들어 주니치 타선의 물빠다화가 심화되는 와중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2022년에는 오죽하면 만 45세의 후쿠도메 코스케가 클린업 트리오에서 뛸 지경일 정도라(...) 2022년에도 팀의 중심 타자로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센트럴리그 다섯 팀을 상대로 모두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나이가 무색한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친김에 타격왕까지 바라볼 기세.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55호 홈런 이후 침체에 빠지며 멀어보이던 타율 격차가 1리까지 좁혀졌다. 같이 타격왕 경쟁을 하던 사노 케이타가 3할 턱걸이 수준으로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사실상 무라카미의 3관왕을 저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가 된 셈..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오오시마 본인 또한 시즌 막판에 무라카미와 마찬가지로 침체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 아쉽게 타격왕을 놓치고 2년 만의 3할 복귀로 만족해야 했다.
중견수를 맡길 인재가 오시마 빼고 전무했던 과거와는 달리 2022년 주전 우익수 자리를 차지한 오카바야시 유키가 최다안타와 UZR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해, 2023년부터는 오카바야시가 중견수를 보고 우익수는 아리스티데스 아퀴노 영입으로 메운 뒤 오시마는 좌익수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23년 8월 26일에 55번째로 2000안타를 달성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발 빠르고 수비 좋고 컨택과 선구안도 괜찮은 똑딱이 교타자. 2013년까진 시즌별 타율의 기복이 컸지만 2014년 이후부터는 타격도 안정된 편. 담장을 자주 넘길 수준의 장타력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통해 2루타와 3루타를 곧잘 때려낸다.다만 득점권 성적은 3할을 기록했던 2017-19시즌을 빼면 그다지 좋지 못하다. 풀타임 첫 해인 2012년엔 불과 13타점[3]에 그치며 양대리그 이래 규정타석 최소 타점 역대 2위[4]를 기록했을 정도. 다만 이 경우는 주로 리드오프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보니 타석에 주자가 있는 경우가 그만큼 적은 데다 2010년대 이후 주니치 타선이 단체로 물빠따(...)가 된 걸 감안할 필요가 있긴 하다.
주력은 상당히 빠른 편이지만 반면 도루센스는 크게 좋지 못해서 통산 도루성공률은 손익분기점에 걸치는 수준인 70.9%이며, 도루왕을 수상한 2012년에는 32도루 17도루자로 65%의 도루성공률로 사실상 도루왕을 따려고 무리하게 필요없는 도루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9년에 30도루 7도루자, 도루성공률 81%로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다음 2시즌에 연속으로 66.7%(16도루 8도루자)을 찍으며 예년의 모습으로 원상 복귀했다.
수비의 경우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와 좋은 어깨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중견수 수비를 보여주었다. 세부스탯도 한창때는 정말 좋아서 2014~19년까지의 누적 UZR이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했을 정도. 그러나 노쇠화의 영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 좋은 수비력이 점차 나빠지면서 UZR이 음수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어마어마한 내구성. 규정타석을 채운 2012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규정타석 미달이 된 적이 없으며 데뷔 직후 2년, 오른발 골절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한 2017년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단축시즌인 2020년을 제외하면 140경기 이상을 거의 매년 뛰었다. 수비 부담이 결코 적지 않은 중견수 포지션에다 시즌 중 가장 많이 타석에 들어서는 1번 타순을 주로 맡고 부상 위험이 상당한 도루도 249차례를 하고도 30대 중후반까지 이렇다 할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강불괴나 다름없는 내구성.[5]
4. 응원가
4.1. 주니치 1번 응원가 (2011~2014)
주니치 1번 응원가 |
주니치 1번 응원가 가사 |
今この時 おまえが駆け抜ける 이마 코노 토키 오마에가 카케누케루 지금 이 순간 네가 달려나가는 道は一筋 輝け大島 미치와 히토스지 카가야케 오오시마 길은 단 한 줄기 빛나라 오오시마 |
4.2. 주니치 2번 응원가 (2015~)
주니치 2번 응원가 |
주니치 2번 응원가 가사 |
飛び出せ大島 疾風のごとく 토비다세 오오시마 하야테 노고토쿠 날아올라 오오시마 질풍과 같이 その手でチャンスを 切り開け 소노데데 찬스오 키리히라케 그 손으로 찬스를 열어젖혀라 |
5. 연도 별 성적
오오시마 요헤이의 역대 NP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WAR |
2010 | 中 日 | 104 | 374 | 81 | 10 | 4 | 0 | 35 | 17 | 8 | 29 | 52 | .258 | .323 | .315 | .638 | 68 | 1.2 |
2011 | 96 | 355 | 73 | 6 | 4 | 3 | 25 | 18 | 8 | 29 | 50 | .243 | .318 | .320 | .638 | 90 | 2.6 | |
2012 | 144 | 631 | 172 | 19 | 5 | 1 | 83 | 13 | 32 | 46 | 80 | .310 | .376 | .368 | .744 | 131 | 6.8 | |
2013 | 140 | 555 | 124 | 18 | 2 | 3 | 68 | 27 | 19 | 37 | 69 | .248 | .306 | .311 | .617 | 70 | 2.9 | |
2014 | 141 | 642 | 186 | 18 | 2 | 2 | 92 | 28 | 28 | 43 | 56 | .318 | .369 | .366 | .735 | 106 | 6.2 | |
2015 | 142 | 620 | 147 | 20 | 4 | 6 | 70 | 27 | 22 | 39 | 65 | .260 | .313 | .342 | .655 | 92 | 4.3 | |
2016 | 143 | 656 | 175 | 27 | 9 | 3 | 80 | 27 | 26 | 46 | 69 | .292 | .348 | .382 | .730 | 107 | 3.8 | |
2017 | 119 | 521 | 149 | 20 | 3 | 3 | 50 | 29 | 23 | 37 | 66 | .313 | .365 | .387 | .752 | 114 | 2.4 | |
2018 | 141 | 645 | 161 | 20 | 7 | 7 | 92 | 57 | 21 | 47 | 80 | .274 | .329 | .367 | .697 | 92 | 3.4 | |
2019 | 143 | 623 | 174 | 23 | 3 | 3 | 89 | 45 | 30 | 50 | 78 | .312 | .376 | .380 | .756 | 117 | 3.5 | |
2020 | 118 | 525 | 146 | 21 | 3 | 1 | 58 | 30 | 16 | 47 | 51 | .316 | .382 | .381 | .763 | 121 | 3.7 | |
2021 | 141 | 596 | 160 | 19 | 5 | 1 | 54 | 34 | 16 | 42 | 60 | .292 | .345 | .350 | .695 | 99 | 1.8 | |
2022 | 109 | 482 | 137 | 18 | 1 | 1 | 48 | 20 | 11 | 34 | 52 | .314 | .376 | .367 | .743 | 117 | 0.9 | |
2023 | 130 | 494 | 136 | 17 | 2 | 0 | 34 | 23 | 6 | 15 | 43 | .289 | .316 | .334 | .650 | 91 | 1.2 | |
NPB 통산 (14시즌) | 1881 | 7719 | 2021 | 256 | 54 | 34 | 878 | 395 | 266 | 541 | 871 | .291 | .347 | .358 | .705 | 102 | 44.7 |
[1] 프로 지명 이전부터 결혼을 한데다 자녀까지 출산했기에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사회인야구를 포기하고 경쟁의 연속인 프로야구계에 뛰어드는것에 대해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아내의 지지 덕분에 프로 입단을 결정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오시마가 이후 프로에서 연봉 1억엔도 훌쩍 넘기면서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된다.(사회인야구는 평범한 대기업 사원의 월급이기 때문에 안정적이긴 하지만 베테랑들조차 연봉 1천만엔을 받기도 쉽지 않다.)[2] 주니치 외야가 너무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어지간히 에이징 커브가 와도 묻지마 기용으로 명구회에 보낸다는 드립도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3] 그것도 5월 25일~9월 4일까지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하며 풀타임을 뛰고도 고작 6타점에 머무는 통에 최소기록 갱신이 유력하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으나, 9월 이후 7타점을 더하며 최소기록 경신은 어찌저찌 피했다.[4] 1위는 1965년 요시다 요시오, 1982년 마츠모토 타다시가 기록한 12타점.[5] 동갑내기이자 프로 입단을 같은 해에 한 오기노 타카시와 비교하면 이 점이 상당히 메리트이다. 둘은 플레이 스타일이 굉장히 비슷하며, 주루센스는 오기노가 오시마보다 한참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오기노가 한국의 1차지명에 해당하는 1라운드 지명을 받는 사이 오시마는 하위픽인 5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하였는데 오기노는 역대급으로 내구성이 안 좋은(…) 케이스여서 누적스탯은 오시마보다 한참 아래이다. 당장 오시마는 명구회 가네마네 소리가 나오는데 오기노는 1000안타도 간당간당하니 말 다 한 셈. 참고로 오기노의 통산 타석은 오시마의 절반 수준인데 도루 갯수는 244개로 오시마랑 5개밖에 차이가 안 나고(도루왕 횟수도 1회로 동일), 도루성공률은 82.4%이다. 그나마도 2021년에 도루왕 따려고 무리하게 도루를 해서 성공률이 급감한 것이지 그 전까지만 해도 85% 가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