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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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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홈구장 하마마츠 구장 · 토요하시 시민구장 · 나가라가와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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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선수 경력 와쿠이 히데아키/선수 경력 · 타카하시 히로토/선수 경력 · 나카지마 히로유키/선수 경력
주요 인물 감독 이노우에 카즈키 · 선수회장 야나기 유야 · 투수 주장 오노 유다이 · 야수 주장 오오시마 요헤이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8 결전 · 암흑기 · 도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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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조, 2011~2012 시즌3. 2013~2015 시즌: 비밀번호 개막4. 2016 시즌: 최하위5. 2017~2019 시즌: 3년 연속 5위6. 2020년, 비밀번호 탈출7. 2021년, 아직 암흑기는 끝나지 않았다8. 2022년9. 2023년10. 2024년11. 2025년12. 원인 및 기타
12.1. 암흑기 승률
13. 둘러보기

1. 개요

이 문서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2013년부터의 암흑기를 다룬다.

2000년대에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의 지휘 아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와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루며 승승장구하던 주니치였으나, 오치아이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물러난 후 2013년 B클래스로 추락한 뒤 2019년까지 4456555이라는 비밀번호를 찍었고 2020년에 한 차례 비밀번호를 끊은 이후에도 현재까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2020년에 3위를 기록하며 비밀번호를 한 차례 끊어냈으나 하필 이 해 코로나19로 인해 센트럴 리그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개최하지 않기로 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무산되었고[1], 그 이후 다시 리그 하위권으로 추락하면서 2025년 시점에서 14년째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센트럴 리그 전통의 강팀이자 명문으로 유명했던 주니치는 철옹성 투수진[2]과 철벽수비의 야수진을 자랑하던 선수단의 노쇠화와 그런 선수단의 세대교체에 완벽히 실패하여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만년 꼴찌의 대명사였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밀어내고[3] 리그 최고의 웃음후보로 전락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다른 팀의 암흑기는 2025년 시점에서는 "그래 우리 그런 시절도 있었지"라면서 팬들이 과거 얘기를 하는 소재 수준이지만 주니치의 암흑기는 2025년 시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며 현재의 전력으로 언제 탈출이 가능할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암울함을 더하고 있으며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 주니치 팬들은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이 약체라는 것을 디폴트로 받아들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2. 전조, 2011~2012 시즌

2011년 주니치는 75승 59패 10무, 승률 .560으로 구단 역사상 첫 2년 연속 센트럴 리그 제패를 달성했으나 2011년 일본시리즈에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3승 4패로 물러나며 아쉽게도 우승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 일본시리즈가 주니치의 마지막 일본시리즈가 되어버리는데, 사실 이 시즌에도 저반발력 공인구의 도입 여파로 타선 득점력이 폭락하면서 승률만 좋았지 피타고리안 승률로는 419득점 410실점 승률 .510[4]으로 간신히 5할 턱걸이를 하는 성적이었으며, 당해 4위였던 한신 타이거스보다도 피타고리안 승률이 낮았다.

2012년에는 상술했듯 프런트와의 불화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퇴임하고, 1992~1995시즌에 감독을 맡았던 타카기 모리미치가 17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정규시즌에서는 요미우리에게 압도적인 승차로 리그 우승을 내줬으나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3위 야쿠르트를 어렵지 않게 격파하고 파이널로 진출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요미우리에게서 먼저 3연승을 뽑아내며 2년 뒤의 한신처럼 1승만 더 하면 하극상을 일으키고 일본시리즈에 갈 수 있었으나, 그 뒤에 3연패를 당하는 사실상의 리버스 스윕으로 요미우리에게 2012년 일본시리즈 진출권을 내줬다.[5]

3. 2013~2015 시즌: 비밀번호 개막

단 1승을 남기고 일본시리즈를 놓친 다음 해인 2013년엔 오노 유다이 이외에 규정이닝을 넘긴 선수가 없었을 정도로 철옹성을 자랑하던 투수진이 무너지며 4위로 추락, 12년 만의 B클래스를 기록[6]하며 2007년 이후로 꾸준히 개근했던 클라이맥스 시리즈 연속 진출 기록이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타카기 모리미치 감독은 4위 추락의 책임을 지고 2년 만에 쓸쓸히 퇴임했고, 시즌 종료 후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GM으로 팀에 돌아옴과 동시에 주전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선수 겸 감독 취임, 총액 7억엔을 넘는 베테랑 및 주축 선수들의 연봉 삭감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봉 삭감에 반발한 베테랑 유격수 이바타 히로카즈가 주니치를 퇴단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그렇게 주전 포수에 감독까지 맡게 된 타니시게의 지휘 아래 2014년 시즌이 시작되었고 7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점차 드러나는 주전들의 노쇠화와 이바타 히로카즈의 공백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8월에 사상누각처럼 7승 20패로 처절하게 무너지며[7] 2년 연속 4위에 그쳤다. 2000년대 전성기를 구축했던 멤버들이 노쇠화의 기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력들을 30대 중후반, 심지어는 40대를 넘기도록 1군 엔트리에 대동하면서 주전으로 기용한 반면[8] 유망주들에겐 기회를 얼마 주지 않은 채 대체할 전력을 키우지 않고 안주했고, 그 댓가로 선발 라인업이 3, 40대들의 천국이 될 동안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다 사라진 유망주들이 많아지면서 정작 노쇠화된 주전들을 바꾸려니 대체제도 마땅히 없는 악순환에 놓였다. 그 와중에 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오치아이는 GM으로 복귀해 연봉 삭감 등으로 체질을 개선하나 싶더니 자신이 감독으로 앉힌 타니시게와 알력 다툼을 벌이고 드래프트 실패[9] 등의 삽질로 팀의 침체를 더 가속화시켰다.

오치아이 GM-타니시게 감독 2년차인 2015년에도 시즌 초반에 잠깐 1위 경쟁을 벌였으나 금세 추락하더니 센트럴리그가 단체로 교류전에서 폭망한 여파로 전구단 승패마진 음수라는 희대의 접전이 펼쳐지는 와중에 혼자서만 리그 최하위로 가라앉아 있었다.[10] 그래도 한 자릿수 승차에 다른 5팀도 누구 하나 잘 나가는 팀이 없어서[11] 조금만 분전하면 B클래스를 탈출할 수 있었으나, 끝내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나마 초반 1위를 달렸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교류전 이후 삐걱거리더니 막판에 엄청난 DTD를 시전해서 주니치 대신 최하위로 가라앉은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야마모토 마사, 타니시게 모토노부를 필두로 한 대다수의 베테랑들이 현역에서 은퇴하며 세대 교체에 나섰고, 타니시게는 감독으로 전임했다.

4. 2016 시즌: 최하위

타니시게가 전임 감독이 된 2016년에는 5월 초까진 1위 경쟁을 벌였으나 6월부터 투타 밸런스가 싸그리 무너져내리며 추락한 끝에 8월에 최하위로 전락하면서 8월 8일에 타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휴양 형태로 중도경질되었다. 이후 모리 시게카즈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으나 끝내 팀의 추락을 막지 못한 채 나고야 돔 원년인 1997년 이래 19년 만의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고, 단장 재직 3년 간 팀의 반등은 커녕 단점만 더 악화시켰다고 악평받은 오치아이 히로미츠 GM도 시즌 종료 후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12] 시즌 종료 후 대행을 맡은 모리 코치가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덧붙여서 당해 시즌 타니시게를 제외한 센트럴 리그 나머지 5개 팀의 감독은 모두 외야수 출신이었는데, 외야수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포수 출신 감독이 이들에게 성적에서 밀려 도중사임하는 모습으로 완벽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5. 2017~2019 시즌: 3년 연속 5위

모리 시게카즈가 정식 감독으로 지휘한 첫 해인 2017년엔 처음부터 최하위로 가라앉는가 했으나 교류전에서 5할을 기록하면서 나름 선방하고 야쿠르트가 구단 사상 최악인 시즌 96패를 찍은 덕에 5위로 마감할 수 있었다. 다만 알렉스 게레로가 홈런왕에 빛났으나 나머지 선수들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에 투타 밸런스는 여전히 나아지질 않았고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가 게레로를 데려가게 되면서 주포를 잃었다.

2018년엔 연초부터 이와세 히토키 보상선수 지명 소동이 벌어지며 시끄럽게 시즌을 시작했다. 야쿠르트만 아니었으면 진작 꼴찌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이라 시즌 전부터 강력한 최하위 후보로 꼽혔으나 막상 시즌에 들어가니 A클래스에 잠깐이나마 들어가는 등 나름 선전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7월부터 다시 최하위로 떨어지며 2년 만의 꼴찌가 눈 앞에 다가왔으나 시즌 막판에 한신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꼴찌로 추락해준 덕에 1게임차 5위로 시즌을 마쳤고, 모리 시게카즈 감독의 퇴임과 함께 베테랑 아라키 마사히로이와세 히토키, 아사오 타쿠야가 은퇴를 선언했다. 타선은 게레로가 빠졌음에도 타격왕을 수상한 다얀 비시에도 등 3명의 3할 타율을 배출하며 지난해보다 득점이 100점 이상 오르는 등 간만에 선방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막상 본래 주니치의 핵심 무기였던 투수진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전히 투타 밸런스가 안 맞아서 5위로 추락한 것. 이 시즌의 5위로 비밀번호 개막이 확정되었다.

1990년 신인왕 출신의 요다 츠요시 감독이 취임한 2019년에도 강력한 최하위 후보였고, 실제로도 시즌 내내 하위권을 전전했으나 2017년을 연상시키듯이 야쿠르트가 16연패로 추락해준 덕분에 5위로 시즌을 마쳤다.[13] 투타 밸런스는 여전히 안 맞았으나 그나마 이 해엔 12구단 중 최소실책 1위, 센트럴리그 6구단 중 요미우리와 함께 득실마진이 유일한 +인 팀이라 비밀번호 탈출에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이긴 했다.

이때까지의 시즌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로 떨어진 2016년을 빼면 본래는 최하위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다른 구단들이 더한 삽질을 해준 덕분에(...) 어부지리로 4, 5위를 한 시즌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6. 2020년, 비밀번호 탈출

2020년에도 출발이 좋지 않아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시즌 중반부터 약진하기 시작하면서 중위권 경쟁을 이어갔고 한신과 요코하마가 일제히 코로나19와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주춤하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2위 자리까지 올라가는 등 상당히 선전했다. 시즌 막바지에 6연패를 당하면서 도로 4위로 떨어질 듯 보였지만 반 게임 차인 상태에서 만난 4위 요코하마를 깔끔하게 스윕승으로 잡아내면서 8년 만의 A클래스를 확정짓고 비밀번호를 탈출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한 개막 지연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취소되면서 포스트시즌은 아쉽게 포기해야 했지만 어쨌든 7년 연속 B클래스 기록을 어떻게든 끊어내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시즌은 상당히 운이 좋았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득실마진이 -60(429득점 489실점)으로 꽤나 낮아서 피타고리안 승률이 리그 5위의 .435에 불과했음에도 실제 성적은 60승 55패 5무 승률 .522로 꽤나 선방했다. 당시 에이스였던 오노 유다이의 어깨를 갈아서[14] 중위권에서 버티고 상위권을 달리던 야쿠르트가 삽질하며 DTD를 시전하고 A클래스 경쟁을 하던 DeNA가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라미레스 감독의 지도력 한계로 서서히 침몰, 히로시마는 불펜과 수비가 흔들리면서 작년보다도 더욱 답이 없는 수준으로 전략해 개막부터 하위권만 주구장창 맴돌았기에 그나마 크게 저하되는 모습 없이 나름대로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7. 2021년, 아직 암흑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 시즌 일찌감치 양극화가 발생한 센트럴 리그에서 B클래스 스플릿인 5위권에 묶여 있었다. 시즌 막판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맹렬히 3위권을 추격했음에도 주니치는 조용히 밑바닥에 있었다. 잘못하다간 5년 만에 다시 최하위가 될 위기에 처했으나, 10월 26일 한신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한신을 이기며 한신에는 고춧가루를 투척하였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이기면서 자신은 5위를 확정하게 되었다. 그나마 투수진은 돔구장의 버프를 받으며 웬만한 지표에선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게 위안거리.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투수들은 좋지만 타선은 매우 부실한 팀이라는 증거가 된다. 애초에 투수와 타자 모두가 괜찮았더라면 5위라는 낮은 순위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 외야만 봐도 40대인 후쿠도메 코스케가 주전 자리도 모자라 클린업 한 자리까지 차지할 정도로 타자 뎁스가 습자지만도 못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팀내에 홈런을 기대할만한 타자가 1루수 다얀 비시에도 밖에 없다. 나고야 돔이 홈런이 나오기 힘든 구장이긴 하나 마찬가지로 돔구장 가운데 홈런이 잘 터지지 않는다는 교세라 돔 오사카를 홈으로 쓰는 오릭스는 팀 홈런 1위다. 심지어 나카타 쇼를 징계성 트레이드로 내보낸 닛폰햄마저도 주니치보다 많은 78개다. 육성은 둘째치고 스카우트 기조부터가 이미 단단히 잘못됐다. 앞으로 타자 뎁스 강화나 거포 유망주 영입이 없다면 비밀번호를 다시 쓸 위험이 크다.

8. 2022년

한신이 개막 9연패를 포함한 1승 15패로 처참히 침몰한 것에 더해 홈런포도 의외로 잘 터져준 덕분에 개막 초반엔 승패마진 +1~3 이내에서 그럭저럭 분전하며 3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교류전 직전에 7연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센트럴 리그가 선전했던 교류전에서 7승 11패로 부진한 것을 비롯해[15] 6월에만 2번의 6연패를 기록하며 초반에 무너진 분위기를 수습한 한신에게 밀려 최하위로 추락했고, 이후 다른 팀들이 침체되는 틈을 타 최하위를 탈출할 기회는 있었으나 끝내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6년 만의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이 시즌엔 그래도 최하위치고는 팀 스탯은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66승 75패 2무로 승패마진이 불과 -9에 불과했고[16] 팀 평균자책점은 리그에서 유일하게 2점대를 기록한 한신에 이은 2위(3.28)였다. 그러나 12구단 최하위의 62홈런 414득점에 그친 압도적인 빈타와 요코하마에게 시즌 내내 6승 18패 1무에 그치며 승점자판기 역할을 한 것이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9. 2023년

개막 4경기만에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래도 시즌 초중반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 심각한 부진을 겪은 덕분에 잠시 이 둘을 제치고 탈꼴찌를 하기도 했으나 빈약한 전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고 여기에 요코하마를 상대로 또 호구를 잡힌 것에 더해 타츠나미 카즈요시 감독이 쌀밥 통제 소동, 콘도 렌 벌투 사건 등의 여러 가지 구설수를 만들어내며 후반전부터 2번의 4연패와 함께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일찌감치 3위 이내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에서 7월부터 야쿠르트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신세로 전락했고, 8월 말엔 8연패까지 찍으며 구단 역대 최저 승률 경신 가능성까지 눈앞에 올 지경이었다. 그나마 타선에선 현역 드래프트를 통해 요코하마에서 데려온 호소카와 세이야가 중심타자로 각성한 덕분에 장타력은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문제는 나머지 타자들이 뒷받침을 못해줘서 사실상 호소카와와 나머지 수준이었다. 지난 해에 이어 당당히 12구단 홈런, 득점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덤.

그나마 9월에 12승 10패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야쿠르트가 DTD를 하면서 5위가 보이나 싶었지만, 결국 10월의 시즌 마지막 2경기를 전패한 데 이어 야쿠르트가 한신과의 최종전에서 역전 끝내기로 승리하면서 2년 연속 최하위를 피하지 못했다.

10. 2024년

시즌 초에는 지난 2년 동안 주니치의 앞길을 막았던 요코하마에게 2연전 스윕을 거두는 등 6연승을 기록하고 단독 선두 자리까지 오르며 올해는 다르다를 보여주는 듯 했으나, 4월 중순에 5연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다시 침체에 빠져들며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교류전이 끝난 이후로 또 다시 야쿠르트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나마 작년과는 달리 5위를 유지하며 야쿠르트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결국 지난 해에 이어 시즌 막판에 또 다시 야쿠르트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요코하마와의 최종전에서 패배하며[17] 3년 연속 최하위가 확정되고 말았다.

시즌 종료 후 타츠나미 감독과 카타오카 아츠시 수석코치가 모두 사퇴했고 2군 감독 이노우에 카즈키가 1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 타츠나미와 함께 사임을 선언했으나 이노우에의 설득으로 사임을 철회하고 2군 감독으로 전임했다.

11. 2025년

시즌 초부터 또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최하위로 돌아왔다. 8경기를 치르는 동안 홈런을 하나도 못친 건 덤. 이미 팀 타격지표가 옆나라 롯데한화와 맞먹을 정도. 그래도 야쿠르트의 부진을 틈타 금세 4위로 올라오며 9월 초까지 히로시마와 4~5위를 두고 다투면서 가을야구를 향한 희망을 이어갔으나 결국 A클래스 팀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최종 순위 4위 및 5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되었다.

압도적인 기세로 리그 우승을 달성한 한신을 상대로 13승 12패로 유일하게 상대전적 우세를 차지했으나 요코하마에게 또 다시 8승 17패로 압살당한 것과[18] 12구단 중 유일하게 시즌 내내 월간 승률 5할을 단 1번도 달성하지 못한 것이 결정타가 되며[19] 끝내 B클래스 탈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야쿠르트, 히로시마 덕분에 4년 연속 최하위를 면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지만 이것도 주전들의 연이은 부상 지옥으로 붕괴된 야쿠르트에 의한 승률 인플레이션+한신의 독주체제라는 리그 상황에 따른 결과라서 주니치의 팀 사정이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12. 원인 및 기타

00년대까지 센트럴리그 강호의 지위를 구가하던 주니치 구단이 이렇게 된 원인을 꼽자면 우선 구단주를 비롯한 구단 고위층의 낡은 마인드, 팬들보다는[20] 구단주의 심기를 더 살피는 프런트진의 헛발질,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들의 무능함에 빈약한 선수층이 겹치며 기나긴 암흑기가 도래했다. 위에 적은 대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GM의 드래프트 삽질까지 겹치면서 양대리그 이래 꾸준히 상위권을 지켜오며 2000년대엔 최전성기까지 이뤄냈던 주니치가 2010년대에는 앞서 서술한 이유들로 인해 웃음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던 2011년 이후 센트럴리그 5팀이 돌아가며 일본시리즈에 진출하는 와중에도 혼자 묵묵히 B클래스에서 죽이나 쑤는 중. 과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콩라인을 벗어날 수 없음을 한탄했지만 이제는 A클래스만 해줘도 눈물을 흘리면서 절을 할 상황이 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황금기를 함께했던 선수들을 적절한 시기에 세대교체를 통해 바꿔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와다 카즈히로처럼 불혹을 넘기고도 준수한 성적을 낸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선수들이 전성기보다 성적 하락이 뚜렷한데도 대체 선수를 육성하는 데 소홀하였고 결국 지지부진한 육성에다 드래프트 전략의 실패까지 겹치면서 세대교체에 완벽히 실패해 버렸다. 상술했듯이 기존의 주축이었던 노장 선수들을 쓴다고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다 트레이드나 전력외통보 등으로 팀을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활약하는 사례도 나오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한 건 덤. 그러면서도 지역출신 프랜차이즈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후한 대우를 해주는 등[21] 선수단 내 케미스트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팀 운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모기업인 주니치신문의 재정 악화 역시 영향을 끼쳤는데, 인터넷이 나날이 발전하며 신문과 광고, 인쇄업이 주요 사업인 모기업의 특성상 재정 상황이 나빠져 구단에 자금 투자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야구단이 모기업을 먹여살려야 할 지경이라 전력 공백이 발생해도 그 공백을 제대로 메꿀 수가 없게 되었다. 육성이 안 되면 돈이라도 써서 거물 용병이나 고액 FA로 빈 자리를 채워넣어야 할 텐데 그럴 상황도 안 되고, 당장 몇 년 전 오노 유다이의 연봉을 지급하려고 부동산까지 담보로 잡히는 판국이라 연봉도 올려주기 힘들어서 있는 선수도 계속 나가는 등 전력 공백의 악순환이 반복되어 버리면서 추락해버린 것. 그나마 구단에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2023년 시즌 종료 후 나름대로 돈을 써서 나카타 쇼, 우에바야시 세이지 등 한때 다른 팀에서 잘 나가다가 방출된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는데, 애초에 타팀 방출 선수들이란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보니 2025년에 부활의 조짐을 보인 우에바야시를 빼면 팀 전력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고 특히 이들 중 가장 이름값 및 연봉이 높은 나카타 쇼는 2년 간 삽질만 일삼다 은퇴를 선언하며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20년대 들어서는 그런대로 물갈이가 꽤 진행되긴 했으나 그래도 이때의 세대교체 대실패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실정이다. 2023년 기준으로는 투수진은 매우 좋으나, 타선이 극도로 빈약한데다 감독과 프런트가 워낙 무능한 탓에 이 시기보다 더한 최악의 시즌을 경신했다.

이렇게 기나긴 암흑기를 겪으면서 승률을 계속 깎아먹는 중임에도 아직 통산 승률이 .510에 달한다. 과거 전성기 시절 쌓아둔 승수 덕분에 통산 승률이 5할 아래로 무너질 가능성은 낮으나, 암흑기가 20년 이상 장기화 된다면 이마저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주니치보다 앞서 암흑기를 겪었던 LG 트윈스의 경우 암흑기 도중이던 2005년에 통산 5할 승률이 무너졌으며, 2013년 암흑기를 끊어낸 뒤 대부분의 시즌에 상위권에 든 데 이어 2023년에 우승까지 하고도 승패마진이 계속 음수에 머물다 2025년 8월 9일에야 겨우 5할 승률에 복귀했다.[22]

12.1. 암흑기 승률

연도 감독 순위 경기수 승률 비고
2013 타카기 모리미치 4위 144 64 77 3 .454
2014 타니시게 모토노부 4위 144 67 73 4 .479
2015 5위 143 62 77 4 .446
2016 6위 143 58 82 3 .414 8월 9일 타니시게 모토노부 감독 중도해임[23]
2017 모리 시게카즈 5위 143 59 79 5 .428
2018 5위 143 63 78 2 .447
2019 요다 츠요시 5위 143 68 73 2 .482
2020 3위 120 60 55 5 .522 8년 만의 A클래스
2021 5위 143 55 71 17 .437
2022 타츠나미 카즈요시 6위 143 66 75 2 .468
2023 6위 143 56 82 5 .406
2024 6위 143 60 75 8 .444
2025 이노우에 카즈키 4위 143 63 78 2 .447
통산 13시즌 1838 801 975 62 .451 3위 1회, 4위 3회, 5위 5회, 6위 4회

13. 둘러보기

파일:NPB 로고.svg {{{#FFF 문서가 있는 [[일본프로야구| {{{#FFF 일본프로야구}}}]] 암흑기 목록}}}
구단
한신 타이거스/암흑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암흑기
주니치 드래곤즈/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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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해 퍼시픽 리그도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1, 2위끼리만 대결하는 것으로 축약하기로 하면서 3위였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2] 어느 정도였냐 하면 주니치에서 중간계투 정도로 뛰는 투수도 다른 팀으로 가면 에이스이고 1, 2군을 왔다갔다 하는 투수도 다른 팀 가면 로테이션 투수가 된다는 말까지 있었다.[3] 요코하마는 DeNA 인수 후 구단 체질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에 나서서 TBS 말기의 막장 분위기를 씻어내며 반등하는 데 성공해 2017년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했고, 이후 2021년 다시 최하위로 추락하는 등의 부침도 있었으나 다음 해 바로 2위로 부상하며 중상위권을 꾸준히 노릴 수 있는 전력을 유지한 결과 2024년 일본시리즈에서 하극상 우승을 차지하며 암흑기를 완벽히 끝장냈다.[4] 타율 .228/419득점은 당해 리그 최하위로 역대 처음으로 타율, 득점 최하위로 우승한 팀이 되었다. 아사오 타쿠야, 요시미 카즈키를 위시한 투수진의 분전과 9월 이후 접전에서의 연승으로 타선의 약점을 완벽히 메꾼 것.[5] 그리고 2012년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는 3년 전 대결했던 닛폰햄을 상대로 또 다시 우승했으나 이 시즌 이후 현재까지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하고 있다.[6] 반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이 해 주니치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3위를 확보하며 15년 연속 B클래스를 종결하고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달성했다.[7] 1990년 8월의 한신 타이거스(6승 20패) 이래 24년 만에 월간 20패를 기록한 팀이 되었다. 월간 20패를 기록한 것은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8] 야마모토 마사의 경우는 정말로 만 5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을 정도였다.[9] 오치아이가 GM을 맡은 후 첫 드래프트인 2014년에 뽑은 신인들은 노쇠화된 주전들을 대체하기 위한 소위 즉시전력감 위주로 무려 9명을 지명했고 육성선수도 3명이나 선발했다.(1순위 사토 유이치는 지명 거부) 그러나 이렇게 뽑은 선수들 중 2019년 딱 한 해 주전 포수를 맡았던 5순위 카토 타쿠마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제대로 된 활약도 보여주지 못한 채 2021년까지 모두 방출되었고, 심지어 카토조차 같은 해 치바 롯데 마린즈트레이드되었다가 포수가 부족해진 팀 사정 탓에 2023년 복귀한 것이라 사실상 2021년을 끝으로 전원 방출당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해 드래프트는 일명 '즉전력"외(外)" 드래프트'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나마 다음 해인 2015년 드래프트에선 향후 팀의 새로운 주축이 될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키노시타 타쿠야, 아베 토시키, 후쿠 케이토를 지명하며 성공을 거뒀다.[10] 그 시즌 교류전에서는 10승 8패를 기록한 한신, 9승 9패로 정확히 5할을 찍은 히로시마를 제외한 센트럴리그 모든 팀이 승패마진 -를 기록했고, 교류전을 1위로 시작했던 요코하마는 3승 14패로 완전히 멸망했다. 주니치는 7승 11패를 기록.[11] 2015년 6~8월 센트럴 리그는 3~4연승 한 번이면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었고, 반대로 3~4연패 한 번이면 누구나 최하위가 될 수 있었던 초접전 상태였다.[12] 시즌 막판에 몇몇 팬들이 오치아이의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나고야 돔에 들고 오기도 했다.[13] 여담으로 시즌 도중 요다 감독이 뜬금없이 어린이들의 교육에 안 좋다는 이유로 '너(お前)'가 들어간 응원가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한 것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14] 이해 오노 유다이는 무려 10 완투를 기록하면서 사와무라 상까지 수상하기도 했다[15] 이 시즌 교류전은 센트럴 리그가 55승 53패로 우세를 기록했다. 야쿠르트는 14승 4패로 교류전 최고승률을 기록했고 한신은 12승 6패로 리그 최하위를 탈출, 요코하마도 9승 9패로 나름 선전하며 중위권 진입의 교두보를 만들었다.[16] 1994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61승 69패) 이래 28년 만에 승패마진 -10 미만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17] 얄궃게도 결승 적시타를 친 선수가 타츠나미에게 박대받다가 쫓겨나다시피 이적한 쿄다 요타였다.[18] 미우라 다이스케 감독은 2021년 부임 이래 다른 팀들에겐 상대전적이 밀렸지만 주니치 상대로는 2025년까지 5년 연속 상대전적 우위는 물론 통산 79승 41패 5무로 무려 승률 .658을 기록했고, 이렇게 주니치를 상대로 제대로 승패마진을 벌어놓은 덕분에 통산 5할 승률을 지키며 명예롭게 감독직에서 퇴임할 수 있었다. 주나쌩 클럽의 명예의 전당 미우라 다이스케[19] 7, 9월에 작년 9월을 연상시키는 DTD를 시전했던 5위 히로시마도 다른 개월엔 월간 승률 5할을 지켰고, 심지어 전반전에 완벽히 멸망하며 100패 가능성까지 언급되었던 야쿠르트도 7월에 12승 6패 및 올스타전 전후 기간 동안 8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추스른 덕에 최종적으로 최하위는 피하지 못했으나 승률을 4할대로 어떻게든 끌어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20] 주니치 구단이 주부지방을 꽉 잡고 있다 보니 웬만해서는 팬이 떨어져 나가지도, 타지 팬들이 유입되지도 않는다. 팬서비스나 팬 심기를 보는 것들이 다 허사나 헛돈 쓰는 거나 다름 없다고 봐도 된다.[21] 대표적인 선수가 커리어 내내 유망주 소리만 듣다가 노망주의 길을 걷고 은퇴한 도노우에 나오미치(堂上直倫)이다. 아버지가 주니치에서 선수와 스카우터 생활을 했고 나고야 지역 명문인 아이치공대 메이덴고교를 나와 2006년에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로 주니치에 입단한 이른바 성골이라고 할수 있는 선수인데 통산타율 .225, 홈런 30개, 안타 467개 밖에 기록하지 못하면서 기대밖의 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6년이나 데리고 있었다. 웬만한 드래프트 1위라도 성과가 안 나오면 많이 기다려야 10년정도인 관례에 비해 엄청난 특혜를 받은 셈이다. 그 후에도 드래프트 당시에는 오타니 쇼헤이의 뒤를 잇는 이도류 후보에 들었다가 1순위 지명으로 입단 후에는 야수와 투수를 오가며 어느 쪽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네오 아키라에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 선수도 주니치의 세력권인 기후현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미 방출됐거나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됐을 수준이다.[22] 다만 KBO 리그 자체가 일본프로야구에 비해 50여년 늦게 출범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누적 기록이 적어서 승률 변동의 폭이 클 수밖에 없고, LG 트윈스는 암흑기 직전인 2002년 기준으로도 통산 승률이 1230승 1199패 .506으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23] 당일 경기부터 모리 시게카즈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지휘했고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