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시리즈 우승팀 | ||||
1987년 세이부 라이온즈 | ← | 1988년 세이부 라이온즈 | → | 198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88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 |
세이부 라이온즈 | |
MVP | 이시게 히로미치 |
1. 개요
NIPPON SERIES 1988 | |
세이부 라이온즈 | 주니치 드래곤즈 |
1988년 10월 22일부터 10월 27일까지 개최된 일본프로야구 제39회 일본시리즈. 센트럴 리그 우승팀 주니치 드래곤즈와 퍼시픽 리그 우승팀 세이부 라이온즈가 맞붙어 세이부가 4승 1패로 주니치를 꺾고 통산 8번째이자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대였던 1956-58시즌 이래 30년 만에 3년 연속 일본시리즈 제패를 달성했다.
1982년 일본시리즈 이래 6년 만의 리매치로, 세이부는 킨테츠와의 역대급 1위 다툼 끝에 힘겹게 리그 4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니시테츠 이래의 일본시리즈 3연패를 노렸고, 주니치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지휘 하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6년 전의 복수와 34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꿈꿨으나 결국 주니치가 또 다시 세이부에게 무릎을 꿇는 결말이 났다.
쇼와 시대 최후의 일본시리즈이기도 하며, 아울러 호시노 센이치의 감독 경력 첫 일본시리즈이기도 했다.
2. 일정 및 결과
경기 | 날짜 | 경기장 | 원정팀 | 점수 | 홈팀 | 중계 | |
1차전 | 10월 22일(토) | 나고야 구장 | 세이부 라이온즈 | 5 | 1 | 주니치 드래곤즈 | |
2차전 | 10월 23일(일) | 세이부 라이온즈 | 3 | 7 | 주니치 드래곤즈 | ||
3차전 | 10월 25일(화)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주니치 드래곤즈 | 3 | 4 | 세이부 라이온즈 | |
4차전 | 10월 26일(수) | 주니치 드래곤즈 | 0 | 4 | 세이부 라이온즈 | ||
5차전 | 10월 27일(목) | 주니치 드래곤즈 | 6 | 7 | 세이부 라이온즈 | ||
우승 : 세이부 라이온즈(3년 연속, 통산 8회) |
3. 경기 내용
3.1. 1차전
1988.10.22(土) 13:05 | 나고야 구장 : 28,963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西武 | 와타나베 히사노부 | 0 | 2 | 1 | 0 | 0 | 1 | 0 | 0 | 1 | 5 | 9 | 0 | ||||||||||||||||
中日 | 오노 카즈유키 | 0 | 0 | 0 | 0 | 0 | 1 | 0 | 0 | 0 | 1 | 7 | 1 |
○ 승 : 와타나베 히사노부(1승)
● 패 : 오노 카즈유키(1패)
◎ 세 : 히가시오 오사무(1S)
※ 선발 투수
와타나베 히사노부 : 7이닝 101구 6피안타 1볼넷 1사구 6탈삼진 1실점(1자책)
오노 카즈유키 : 6이닝 113구 6피안타 3볼넷 5탈삼진 4실점(4자책)
※ 홈런
키요하라 카즈히로(2회 1점), 이시게 히로미치(6회 1점)
無
1차전 선발은 양대 리그 최다승 투수의 맞대결(와타나베 15승, 오노 18승)이 성사되었다. 특히나, 오노는 1981년에서 1987년까지 세이부에서 뛰다 친정팀을 이적한 첫해부터 친정팀을 상대하게 되었다. 시리즈 첫 득점은 2회초 키요하라 카즈히로의 특대 좌월 장외홈런이었는데, 무려 도카이도 신칸센 방음벽을 때렸다는 카더라가 있다. 츠지의 병살 타점으로 2:0을 만든 세이부는 6회초에도 이시게 히로미치의 솔로포로 3:0의 리드를 잡았다.
주니치는 6회말 대타 코마츠자키 요시히사와 히코노 토시카츠의 연속 안타, 타츠나미 카즈요시의 번트와 희생플라이로 한 점 보태긴 했지만, 8회 무사1,2루 찬스에서도 구원 등판한 히가시오 오사무에게 꼼짝도 못하면서 1득점에 그쳤다. 모리 마사아키 감독이 '이 한명(이라도) 잡아줘'라는 말하는 것을 듣고 히가시오가 존심 상했지만, 히가시오는 8회 이후를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3.2. 2차전
1988.10.23(日) 13:05 | 나고야 구장 : 28,953명 | |||||||||||||||||||||||||||||
<rowcolor=#000099>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西武 | 궈타이위엔 | 0 | 0 | 0 | 0 | 3 | 0 | 0 | 0 | 0 | 3 | 8 | 0 | ||||||||||||||||
中日 | 코마츠 타츠오 | 0 | 1 | 2 | 0 | 0 | 0 | 0 | 4 | X | 7 | 9 | 0 |
○ 승 : 궈위엔치(1승)
● 패 : 궈타이위엔(1패)
※ 선발 투수
궈타이위엔 : 7⅔이닝 90구 9피안타 1볼넷 1사구 5탈삼진 7실점(7자책)
코마츠 타츠오 : 6이닝 109구 8피안타 2볼넷 4탈삼진 3실점(3자책)
※ 홈런
無
카와마타 요네토시(3회 2점)
주니치의 타선이 궈타이위엔을 난타하면서 8회말에 우노 마사루의 밀어내기로 시작해서 스퀴즈와 2타점 적시타로 동점의 균형을 깨뜨리고 시리즈를 가져갔다. 같은 대만인인 궈위엔치가 코마츠가 내려간 이후 3이닝 4탈삼진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승리를 챙겼다.
3.3. 3차전
1988.10.25(火) 13:05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2,081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中日 | 야마모토 마사 | 1 | 0 | 0 | 0 | 0 | 0 | 2 | 0 | 0 | 3 | 4 | 1 | ||||||||||||||||
西武 | 쿠도 키미야스 | 0 | 0 | 0 | 0 | 1 | 3 | 0 | 0 | X | 4 | 3 | 0 |
○ 승 : 쿠도 키미야스(1승)
● 패 : 야마모토 마사(1패)
※ 선발 투수
야마모토 마사 : 5⅔이닝 75구 2피안타 2볼넷 1탈삼진 4실점(1자책)
쿠도 키미야스 : 9이닝 126구 4피안타 1볼넷 4탈삼진 3실점(3자책) 완투승
※ 홈런
히코노 토시카츠(1회 1점), 우노 마사루(7회 2점)
이시게 히로미치(5회 1점)
2년 연속 일본시리즈 MVP에 빛나는 쿠도 키미야스와 야마모토 마사의 양 좌완 에이스의 맞대결은 투수전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주니치의 히코노가 1978년 일본시리즈 후쿠모토 유타카 이후 10년만에 일본시리즈 리드오프 홈런을 기록하면서 선취점을 뽑았다. 세이부는 5회말 이시게의 동점 솔로포로 동점, 6회말 야마모토의 폭투로 역전에 성공하고 이시게와 이토의 적시타로 4:1로 앞서나갔다. 주니치는 7회초 쿠도를 상대로 우노 마사루의 투런포로 추격에 나섰지만, 쿠도가 끝내 또다시 완투승을 거두면서 세이부가 다시 시리즈 스코어를 리드하였다.
3.4. 4차전
1988.10.26(水) 13:05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2,261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中日 | 스기모토 타다시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1 | ||||||||||||||||
西武 | 모리야마 료지 | 0 | 0 | 2 | 1 | 2 | 0 | 1 | 0 | X | 6 | 8 | 0 |
○ 승 : 모리야마 료지(1승)
● 패 : 스기모토 타다시(1패)
※ 선발 투수
스기모토 타다시 : 3이닝 50구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3실점(3자책)
모리야마 료지[1] : 9이닝 125구 2피안타 2볼넷 7탈삼진 완봉승
※ 홈런
無
아키야마 코지(4회 1점), 키요하라 카즈히로(5회 2점), 츠지 하츠히코(7회 1점)
주니치 선발은 1차전 오노와 같은 세이부가 친정인 스기모토 타다시가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우승을 함께했던 동료들은 오노와 마찬가지로 매서운 타격으로 스기모토를 두들겨팼는데, 2회말 토마시노 세이지의 2루타로 2점을 냈고, 아키야마 코지 4회 솔로홈런, 키요하라 카즈히로 5회 투런으로 AK포가 가동하고, 7회에는 츠지 하츠히코까지 쐐기를 박는 홈런을 때렸다. 반면에 주니치 타선은 모리야마에게 고작 2안타로 막히면서, 모리야마의 일본시리즈 첫 등판 선물로 완봉을 대주는 굴욕을 당했다.
3.5. 5차전
1988.10.27(木) 13:05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32,304명 | |||||||||||||||||||||||||||||
<rowcolor=#ffffff>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
中日 | 오노 카즈유키 | 1 | 1 | 2 | 0 | 0 | 2 | 0 | 0 | 0 | 0 | 0 | 6 | 8 | 0 | ||||||||||||||
西武 | 와타나베 히사노부 | 3 | 0 | 0 | 0 | 1 | 1 | 0 | 0 | 1 | 0 | 1X | 7 | 11 | 2 |
○ 승 : 마츠누마 히로히사(1승)
● 패 : 궈위엔치(1승 1패)
※ 선발 투수
오노 카즈유키 : 1⅓이닝 26구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3실점(3자책)
와타나베 히사노부 : 2⅔이닝 51구 3피안타 2볼넷 2탈삼진 4실점(3자책)
※ 홈런
우노 마사루(3회 2점)
키요하라 카즈히로(6회 1점), 이시게 히로미치(9회 1점)
선발은 1차전의 와타나베 히사노부와 오노 카즈유키의 리매치. 양 팀이 초반부터 난타전을 시전한 끝에 주니치가 6:5로 1점 리드한 상태로 9회말을 맞이했는데... 이시게 히로미치가 쇼와 최후의 홈런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어냈다.
세이부는 연장 10회초에 본래 세이부 왕조 시절 선발로 활약한 마츠누마를 등판시켰고, 11회까지 2이닝을 삭제시켰다. 연장 11회말, 선두타자 키요하라가 안타로 출루하자 1점만 내면 우승하는 세이부는 이시게가 착실히 번트를 댔지만, 대타 타치바나가 폭삼으로 2사 2루가 되었다. 하지만 이토 츠토무가 주니치의 수호신 궈위엔치로부터 우전안타를 치면서 쓰리핏 달성에 성공하였다.
세이부의 일본시리즈 끝내기 안타는 1986년 일본시리즈 5차전[2] 이후 2년만이며, 끝내기 안타로 우승을 확정지은 것은 1950년의 마이니치 오리온즈와 1965년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어서 세 번째 기록이다.
4. 타이틀 시상
- '''최고수훈선수상(MVP)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60b6; font-size: 0.8em"
- '''감투선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099; font-size: 0.8em"
- '''우수선수상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60b6; font-size: 0.8em"
5. 여담
- 이 해 퍼시픽 리그 우승은 개최 직전인 10월 19일의 롯데 오리온즈-킨테츠 버팔로즈 더블헤더 결과에 따라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미리 발권했던 1·2차전 나고야 구장 티켓에는 '주니치 대 퍼시픽 리그 우승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 세이부는 이 해의 우승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1951-1953, 1965-1973), 전신인 니시테츠 라이온즈(1956-1958), 한큐 브레이브스(1975-1977)에 이어서 4번째로 일본시리즈 3연패에 성공한 팀이 되었다. 이후 세이부는 중간인 1989년에 킨테츠 버팔로즈에게 밀려 3위를 기록하는 바람에[3] 4연패를 놓쳤으나 1990-92시즌에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 9월에 일찍이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한 주니치 드래곤즈는 세이부의 우승이 결정되고 불과 일주일도 채 안 지나 일본시리즈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수뇌부는 세이부의 득점 생산력이 뛰어난 타자 등을 중심으로 양보단 질을 우선시하여 정보 수집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양보다 질을 우선시한 결과 전년도 진출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0%에 불과한 수준밖에 수집하지 못했고, 전년도 요미우리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
- 양팀 4번 타자의 활약도가 확연하게 차이났던 시리즈였다. 키요하라 카즈히로와 오치아이 히로미츠 양 선수 모두 3할대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키요하라는 장외홈런 한방 포함 3홈런 4타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마지막 5차전 끝내기 주자로 홈을 밟은 반면, 오치아이는 7번의 득점권 상황에서 볼넷 2개만 기록한 채 주자가 없을 때만 안타를 기록하며 팀 득점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4]
- 세이부는 병살타를 2개만 기록했지만, 주니치는 무려 8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있던 기회도 전혀 잡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세이부는 5차전에서만 실책 2개를 기록한 게 전부인 반면 주니치는 시리즈 동안 4실책을 기록했고 특히 시리즈 스코어 1:1인 3차전에서 투수 야마모토 마사가 기록한 실책 때문에 전부 비자책 실점으로 패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중요한 순간에 터진 실책이 3차전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일본시리즈 개막 당시 일본은 쇼와 덴노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서 국상 못지 않은 자숙 분위기에 들어간지 한 달이 넘었기 때문에 1차전부터 5차전까지 모두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개최하였다. 이로 인해 우승 세리머니도 조촐하게 했고 우승 팀의 관례였던 맥주 파티(ビールかけ)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 확정 시 관중들이 축포를 직접 쐈고 선수들이 헹가레를 했다.
- 히가시오 오사무는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해 이 해 일본시리즈가 현역 시절 마지막 일본시리즈가 되었다. 이후 세이부 감독으로 2차례 일본시리즈(1997, 1998)에 진출했으나 2번 모두 패배하여 선수, 감독으로써 모두 일본시리즈 제패라는 진기록엔 실패했다.
6.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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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 | 1956 · 1957 · 1958 · 1982 · 1983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2004 · 2008 | |
리그 우승 (23회) | 1954 · 1956 · 1957 · 1958 · 1963 · 1982 · 1983 · 1985 · 1986 · 1987 · 1988 · 1990 · 1991 · 1992 · 1993 1994 · 1997 · 1998 · 2002 · 2004 · 2008 · 2018 · 2019 | |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1회) | 1982전기 | |
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8 · 2010 · 2011 · 2012 · 2013 · 2017 · 2018 · 2019 · 2022 | |
시즌 문서 | 2013-2021 · 2022 · 2023 · 2024월별문서 · 2025월별문서 | |
현역 선수 경력 | 쿠리야마 타쿠미/선수 경력 · 겐다 소스케/선수 경력 · 이마이 타츠야/선수 경력 · 나카무라 다케야/선수 경력 타이라 카이마/선수 경력 | |
경기장 | 1군 베루나 돔 · 2군 CAR3219 필드 · 지방 홈구장 사이타마현영 오미야공원 야구장 · 조모 신문 시키시마 구장 | |
과거 헤이와다이 야구장 | ||
홈 중계 채널 | 후지 테레비 2 | |
주요 인물 | 구단주 고토 타카시 · 단장 공석 · 감독 니시구치 후미야 · 선수회장 토노사키 슈타 · 주장 겐다 소스케 | |
구단 상세 정보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19(야구) · 미스터 레오 | |
틀 문서 | ||
세이부 그룹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미스터 레오 |
[1] 現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감독.[2] 그 전설적인 쿠도 키미야스의 연장 12회 끝내기이다.[3] 순위 자체는 3위였지만 이 해에도 퍼시픽리그 1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킨테츠 버팔로즈, 2위 오릭스 버팔로즈, 3위 세이부 사이의 승률 차이가 불과 1리밖에 나지 않았다.[4]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이 시리즈 이후 1994년 일본시리즈, 1996년 일본시리즈에 연달아 출장했지만 홈런은 고사하고 타점도 1996년 1차전에서만 딱 1점을 기록한 채 결국 통산 0홈런 1타점에 그쳤다. 참고로 1994년엔 우승을 달성하긴 했으나, 10.8 결전 당시 입은 사타구니 부상 탓에 3차전에서만 선발로 딱 1번 출장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