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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0:38:40

이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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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용만(2) 장진범
조종규
(4명)
강정남
김윤환
조도연
문희수
(7명)
김기철
김태업
선동열
신태순
이순철
최상주
허세환(1)
(10명)
강상진
김경호
김대현
김정수
김평호
백재우(1)
신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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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철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송영복(1)
조계현
한경수(1)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정회열
이호성
오희주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박재홍 이종범 최재영 김동호 김종국
(고졸)
김상훈
김상진
서재응(1)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오철민
(고졸)
김병현(1)
김원(1)
김준희(1)
최희섭(1)
(고졸)
강철민
김정진(1)
이현곤
정성훈
(고졸)
류찬
김성호 정원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진우 고우석 김주형 곽정철 한기주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정영일(1)
오준형
전태현 정성철 심동섭(2) 한승혁(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박지훈(2) 손동욱(2) 차명진 이민우 김현준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유승철 한준수 김기훈 정해영 이의리
2022년 2023년 2024년
김도영 윤영철(2) 조대현(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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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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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86 1987 1988 1989
1991 1993 1996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코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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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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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이광은
MBC 청룡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1987 1988 1989 1990 1991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1992 1993 1994 1995 1996
송구홍
LG 트윈스
한대화
LG 트윈스
한대화
LG 트윈스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1997 1998 1999 2000 2001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김동주
두산 베어스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2002 2003 2004 2005 2006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이범호
한화 이글스
이범호
한화 이글스
2007 2008 2009 2010 2011
김동주
두산 베어스
김동주
두산 베어스
김상현
KIA 타이거즈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최정
SK 와이번스
2012 2013 2014 2015 2016
최정
SK 와이번스
최정
SK 와이번스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박석민
NC 다이노스
최정
SK 와이번스
2017 2018 2019 2020 2021
최정
SK 와이번스
허경민
두산 베어스
최정
SK 와이번스
황재균
kt wiz
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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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3
최정
SSG 랜더스
노시환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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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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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김성관
롯데 자이언츠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양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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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박종훈
OB 베어스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1984 1985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박종훈
OB 베어스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1986 1987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이광은
MBC 청룡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1988 1989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1990 1991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이호성
해태 타이거즈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이호성
해태 타이거즈
1992 1993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1994 1995
김재현
LG 트윈스
박노준
쌍방울 레이더스
윤덕규
태평양 돌핀스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
OB 베어스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1996 1997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이병규
LG 트윈스
1998 1999
김재현
LG 트윈스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이병규
LG 트윈스
정수근
두산 베어스
호세
롯데 자이언츠
2000·2010년·202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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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신인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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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1984 1985 1986 1987
박종훈
OB 베어스 / 외야수
윤석환
OB 베어스 / 투수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건우
MBC 청룡 / 투수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외야수
1988 1989 1990 1991 1992
이용철
MBC 청룡 / 투수
박정현
태평양 돌핀스 / 투수
김동수
LG 트윈스 / 포수
조규제
쌍방울 레이더스 / 투수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투수
1993 1994 1995 1996 199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류지현
LG 트윈스 / 내야수
이동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외야수
이병규
LG 트윈스 / 외야수
1998 1999 2000 2001 2002
김수경
현대 유니콘스 / 투수
홍성흔
두산 베어스 / 포수
이승호
SK 와이번스 / 투수
김태균
한화 이글스 / 내야수
조용준
현대 유니콘스 / 투수
2003 2004 2005 2006 2007
이동학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재영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임태훈
두산 베어스 / 투수
2008 2009 2010 2011 2012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이용찬
두산 베어스 / 투수
양의지
두산 베어스 / 포수
배영섭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2013 2014 2015 2016 2017
이재학
NC 다이노스 / 투수
박민우
NC 다이노스 / 내야수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신재영
넥센 히어로즈 / 투수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 외야수
2018 2019 2020 2021 2022
강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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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LG 트윈스 / 투수
소형준
kt wiz / 투수
이의리
KIA 타이거즈 / 투수
정철원
두산 베어스 / 투수
2023
문동주
한화 이글스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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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2 KBO 리그 최다 안타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88, 1991, 1992년 KBO 리그 도루왕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09.07.25. 한국야구위원회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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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7~2020).svg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20.08.26. KIA 타이거즈 공식 어플리케이션 팬 투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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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 삼성

OF / 해태

OF / 삼성

SS / MBC

2B / 롯데

3B / 해태

P / 해태
''''''
1B /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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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 쌍방울
''''''
C /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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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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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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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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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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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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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17위 23위 36위
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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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 37위 38위 39위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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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15위 19위 22위
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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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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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
300홈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
500도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
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 ||
이순철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display: inline-table; max-width: 330px"<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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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주장직 폐지[1]
김성한
<rowcolor=#000> 1990 1991 1992~1994 1995 1996
김종모 한대화
이순철
선동열 김정수
<rowcolor=#000> 1997 1998 1999 2000~2001 2002~2004
이건열
이순철 (임시 주장)
이강철 이강철이호성 이호성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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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이종범 이종범장성호[2] 장성호김상훈[3]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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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김상훈[4] 차일목 김상훈 이범호 김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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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안치홍[5] 양현종 나지완 김선빈 나성범
[1]: 김일권 이후 장기간 주장직 폐지 출처
[2]: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3]: 마무리 캠프 직전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4]: 스프링 캠프 후 주장 교체
[5]: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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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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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0> 초대 2대 3대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한동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어우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5)
<rowcolor=#ff0> 4대 5대 6대 7대
김동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987)
감독 대행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유백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배성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1991)
<rowcolor=#fff> 8대 9대 10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6)
감독 대행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
천보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1999)
이광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2001)
감독 대행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rowcolor=#fff> 11대 12대 13대 14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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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6)
감독 대행
양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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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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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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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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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4번}}}
김현재
(1983~1984)
이순철
(1985~1997)
방수환
(1998)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박규대
(1996~1997)
이순철
(1998)

(1999)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4번}}}
김용철
(1993~1997)
이순철
(1999)
전종화
(2002~2006)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1번}}}
이용철
(1998~1999)
이순철
(2000)
이종두
(2006~2009)
{{{#fff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81번}}}
김건우
(1995~1997)
이순철
(2001~2006)
윤찬수
(2009)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81번}}}
팀 창단 이순철
(2008)
김성갑
(2009~2015)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78번}}}
다카하시
(2011)
이순철
(2012~2013)
이대진
(20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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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BS 이순철 해설위원.jpg
<colbgcolor=#028dd1><colcolor=#fff> SBS · SBS Sports 해설위원
이순철
李順喆 | Lee Soon-Chol
출생 1961년 6월 1일 ([age(1961-06-01)]세)[1]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서림국민학교[2] (졸업)
전남중학교 (졸업)
광주상업고등학교[3] (졸업 / 30회)
연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81학번 / 학사)
신체 173cm, 80kg[4], A형[5]
포지션 3루수중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5년 1차 지명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5~1997)
삼성 라이온즈 (1998)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1999)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 (2000)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01)[6]
LG 트윈스 1군 주루코치 (2001)[7]
LG 트윈스 2군 작전·주루코치 (2002)
LG 트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03)
LG 트윈스 감독 (2004~2006)
우리-서울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08)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2~201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2 / 2009 / 2015 / 2017)
해설 위원 MBC ESPN-SPORTS+ 야구 해설 위원 (2007 / 2009~2011)
SBS / SBS Sports 야구 해설 위원 (2014~)
경력 KBO 기술위원 (2007~2008)
KBO 자문위원 (2018)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 (2013~201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 (2010 / 2014~2017)
병역 예술체육요원[8]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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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8dd1><colcolor=#fff>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종교 불교
가족 어머니 김정애[9]
아내 이미경(1963년생)[10]
아들 이성곤(1992년생)[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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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선수 은퇴 이후5. 여담
5.1. 축구 관련
6. 비판 및 논란
6.1. 김재환 상 수여 발언6.2. 김도영에 대한 편애 논란
6.2.1. 2022년 9월 15일 경기
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現 SBS, SBS Sports 해설 위원.

빠른 발과 수비 능력, 일발 장타로 타이거즈의 최전성기에 기여한 멤버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였으며, 김성한의 뒤를 이은 군기반장으로도 유명했다.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의 신인왕이었던 인물로[12], 선수로서 KBO 리그 30주년,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13]

2007년에는 MBC ESPN의 해설자로 데뷔하여 특유의 '모두까기' 해설로 호평과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유명 해설자로 인정 받았고, 이듬해인 2008년에 우리 히어로즈의 코치로 현장에 복귀한다. 2009년엔 WBC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WBC 이후 MBC 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여전한 입담을 선보였다.[14] 이후 KIA 타이거즈선동열 감독 취임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고, 해임 직후인 2014년 부터 다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번의 국가대표 코치를 겸했다.

다만 감독으로선 LG 트윈스에서 큰 실패를 겪었으며, 다시는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로 인해 감독 빼고 다 잘하는 사람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15]

별명은 이름의 '철'자를 금속의 종류 중 하나인 의 원소기호 Fe를 붙여서 바꾼 '순Fe', '순페이'[16], 비난해설로 인해 생긴 '이거성', '모두까기 인형' 등이 있다.

2. 선수 경력

이순철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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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이순철/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1985년 1986~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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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내 아바타는 전준우인 것 같다. 김주찬이나 김강민도 있지만 수비까지 두루 따지면 전준우가 가깝다고 생각한다."
2011년, 자신의 아바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17][18]

KBO 골든글러브를 다섯 번이나 탈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홈런 생산능력+도루능력+외야수비 능력 등 전반적인 밸런스가 좋다. 다만 타율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좋은 시즌에는 3할을 어렵지 않게 쳐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2할 중반까지 하락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통산 타율은 0.262로 레전드급 선수 치고는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4년 성적까지로 제한하면 타율 0.277에 OPS 0.798의 웬만한 중심타자 뺨치는 기록을 자랑했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 비율 스탯을 까먹은 케이스.

한편 그의 타율에 가려진 다른 툴이 있었으니 바로 장타력이다. 30홈런 이상은 쳐야 거포 소리를 듣는 지금의 KBO와 달리, 이순철이 뛰던 시절의 KBO는 20홈런대 홈런왕이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30홈런은 1988년 김성한이 때려낸 것이 최초였으며, 1991년 장종훈이 35홈런으로 홈런왕이 되기 전까지 두 시즌 동안 30홈런 타자가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이순철은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리드오프로서는 대단한 기록이다.

즉 이순철은 컨택 능력은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지만(통산 타율만 보면) 출루하면 상대를 뒤흔들고 심심찮게 홈런을 때리면서 스스로 해결도 하는, 당시로서는 완성형 리드오프에 가까웠다. 타이거즈의 이런 장타력 있는 리드오프의 계보는 이후 이종범이 이어받는다.

의외로 한방 능력이 있는 1번타자이다. 도루를 잘하는 이미지 때문에 특유의 한방 능력이 묻힌 케이스. 그의 선수 시절 최고의 해였던 92 시즌에 21개 홈런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매년 홈런을 12개씩 쳐주면서 종종 홈런 10걸 안에 안착했을 정도로, 근래 기준으로도 보기 드문 일발 장타력을 가진 1번타자였다. 이러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1번에서 9번까지 어떤 타순에서도 제 활약을 보인 선수로, KBO 최초이자 유일하게 모든 타순에서 홈런을 기록한 진기록이 있다.[19]

그리고 전성기 시절 이순철의 주특기는 빠른 발과 뛰어난 펀치력도 있었지만 천재성에 가까운 수비력이었다. 당시 TV로 중계되는 해태 경기를 보면 중견수 방면의 뜬공이 나왔을 때 낙구 지점에 이미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가 세상 만사 귀찮음은 다 끌어안은 표정으로 공을 잡았던 이순철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 수비가 소위 '라면수비'[20]였다. 여기에 본인이 애초에 잡기 힘든 타구라면 포구 이후의 플레이를 신경써서 선행주자의 추가 진루를 저지하는 능력도 탁월했다.[21]

사실 라면수비는 매우 빼어난 수비 실력을 갖지 않은 이상 나오기 힘든 고급 기술이다. 타자의 타격 특성을 파악해서 미리 시프트를 통해 자리를 잡는 것은 기본이며[22] 타격 소리와 동시에 낙구 지점을 파악하는 뛰어난 타구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빠른 발이 더해져야만 중계 화면을 외야로 돌리는 그 짧은 시간에 이미 낙구 지점에 도착해 공을 잡아내는 것이기 때문.[23] 이후 이병규에게 라면수비의 계보는 계승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순철의 이러한 수비 능력이 천부적 재능에서 나온 것이 아닌 선수 본인의 피나는 노력에서 나온 대가라는 점이다. 원래 이순철의 수비 포지션은 3루수였으나 국가대표 3루수 출신 선배 한대화가 OB를 떠나 해태로 들어오면서 외야수로 전향해야 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안중에도 없던 외야수를 맡아야 했기에 당시 이순철의 외야 수비 능력은 형편이 없었다.[24] 그러자 이순철은 체육관에서 뒤돌아서 타구 소리만 듣고 공을 잡는 연습을 하였다. 정확히는 타구가 뻗어가는 소리를 듣고 타구의 낙구 포착 지점을 판단하는 연습을 기른 것.[25] 그 결과 KBO 리그의 역사에서 손꼽히는 톱클래스 중견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98년 은퇴했을 때 야수 누적 WAR[26] 5위, 종합 누적 WAR 10위였다.[27][28][29] 야수 WAR 10걸에 해태 선수가 5명이나 포진되었으니 해태의 전력이 얼마나 사기였는지 알 수 있다.[30]

4. 선수 은퇴 이후

4.1. 지도자 경력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LG 트윈스 133 59 70 4 6위
2005 126 54 71 1 6위
2006 46 16 29 1 7위[31]
<rowcolor=#373a3c> 통산 305 129 17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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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해설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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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파일:2018052401001270800092404.jpg}}}||

5.1. 축구 관련

6. 비판 및 논란

6.1. 김재환 상 수여 발언

김재환의 주홍글씨, 앞장서 지우려 하는 야구계 선배들

2018년 11월 29일 일구회 최고타자상을 금지약물 복용을 했던 김재환이 수상했는데 이순철은 김재환에게 상을 주면서 “그렇다고 김재환에게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전 서술을 보완하자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에 태클을 건 것에 가깝다.

그리고 다음 해의 약물 파동 사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6.2. 김도영에 대한 편애 논란

2022년 들어 친정 팀 KIA, 특히 이순철의 광주동성고 후배이기도 한 김도영에 대한 과도한 편파해설로 인해 갈수록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원래 KIA에 대한 편파해설이 있기는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김도영이 입단한 2022년 들어 더더욱 심하다는 평이다.

2022년 4월 9일 KIA 타이거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MLB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하고 돌아온 김광현의 KBO 복귀전 경기에서 SSG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원정 팀이자 6점 차로 크게 지고 있던 팀인 KIA와 관련된 이야기만 줄창 꺼내는 등 대놓고 편파 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KIA의 루키 선수인 김도영이 21타석 만에 김광현을 상대로 데뷔 첫 안타를 치자, "김광현이 슈퍼스타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라고 망언을 내뱉었다.[57] 그 외에도 9회 초 류지혁이 홈런을 쳤을때 류지혁이 홈런을 쳐서 김도영이 한 타석 더 들어온 게 중요하다는 발언 역시 상당한 논란을 사고 있다.

이렇게 과도하게 아직 보여준 것 없는 신인인 김도영을 띄우는 행위에, 각종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는 불타올랐으며[58] SBS 스포츠 게시판이 이순철 해설위원에 대한 비판으로 도배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59]

실제로 이 날 이순철의 편파 발언 때문에 김도영이 싫어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어, 본인의 실언으로 이제 막 데뷔한 어린 선수에게 안티 팬만 만드는 악영향을 끼쳤다. 사실, 김도영 관련 발언들이 워낙 독보적이어서 그렇지, 그 외에도 중계 중간중간 홈 팀인 SSG 팬들의 신경을 긁을 만한 망언이 경기 내내 수도 없이 쏟아졌다.
- 선수 이름 외우는 것도 힘든데, 제가 치어리더 이름까지 알아야 합니까?
SSG 팬들이 배수현 치어리더 영구 결번 얘기도 하는 판이라 정우영 캐스터가 팬들 들으라고 오래 활동한다는 걸 살짝 흘리듯 강조하자 한 망언.[60]
- 공교롭게 야구가 되네요?
SSG가 계속해서 득점을 하자 한 망언.[61][62]

- 정우영 캐스터: (중계 도중 화면에 SSG 유니폼을 입은 아기가 나오자) 아기가 귀엽네요.
이순철 해설위원: 저 아이는 나중에 기억이나 할까요?
사실 가장 심각한 발언은 이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야구 팬으로 자라서 성인시절까지 오랜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괜히 메이저리그에서 레전드들의 역사 보전과 응원의 대물림을 중시하는 게 아니다. 잠재적 충성도 높은 매니아 팬이 될 가능성이 높은 어린이 팬인데, 만약 비꼬는 생각으로 얘기한 것이라면 매우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완전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정말 기억을 못할테니 그런 말그대로의 의미라면 별게 아닌 일이 될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서 이순철 해설위원이 한 망언들.#
-김도영 선수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지?

-김도영 선수가 오늘 안타 2개를 쳤는데?

-오늘 두 가지를 해냈다. 야구 흥행과 슈퍼스타의 디딤돌이 된 것!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수훈선수 김광현에게 이순철 해설위원이 한 질문과 발언.#

이로 인해 SBS 해설위원을 그만둔 안경현이 과거 한 팟캐스트에 출연했을때 '광주 경기는 이순철이 다 가져가려 한다'는 말도 얼떨결에 재조명되는 중이다.

팬들은 이에 대해 이순철 해설 본인이야 말로 후배 해설위원들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하였다.

이후 4월 11일야구에 산다》 방송에서 당시 이순철과 호흡을 맞춘 캐스터였던 정우영이 밝힌 바로는, 정우영의 SNS 댓글 중에서 '주입식 슈퍼스타'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아서 SBS Sports와 이순철에게 이야기했다고 도입부에 언급했다. 본인들도 인터뷰 사건과 디딤돌 발언 등을 알고 있으나, 중계 후 "이순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도의 말로만 치부하며 어영부영 넘어갔기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4월 15일에 업로드된 '미나RE' 영상#에서 김민아 아나운서가 이 사건을 언급했다. 이순철 말로는 "김광현은 월드스타고, 김도영은 풋내기/새내기라서 레벨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했다. 레벨이 같다면 조롱으로 들릴 수도 있다.[63] 김광현을 상대로 안타를 쳤기 때문에 조금 더 자부심을 갖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현의 인터뷰 때 'KBO의 흥행을 위해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나와야 한다'는 답에 김도영을 언급했을 뿐이다." 등의 이유로 둘러댔고 김민아 아나운서가 생방송 상황 중에 어휘 표현이 적절치 않았던 것에 대해 대신 사과했으나, 본인은 사과하지 않았다.

한바탕 논란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는지 4월 30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64]에서는 삼성의 신인 선수인 이재현을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김도영을 칭찬하는 해설을 연달아 하며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순철의 디스 해설 자체는 이전부터 계속 그래왔지만 유달리 이재현에 대해서는 특히 더 독한 말만 쏟아냈는데, 김도영은 그렇게 찬양하던 사람이 동기이자 같은 포지션인 이재현에게는 손바닥 뒤집듯 디스만을 늘어놓았다. 이재현은 해당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의 좋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갓 데뷔한 고졸신인에게 입스 타령을 하질 않나, 안타를 때려낸 후에도 2루까지 가지 못 했다며 지적했다. 경기 내내 이재현을 향해 퓨처스에 가야 한다며 비난한 것은 덤. 정신 나간 해설에도 불구하고 이원석의 쓰리런으로 삼성이 경기의 우위를 점하자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기도 했다. 절정은 8회 선두타자로 나선 김도영이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상황에서 김도영은 빠르다며 칭찬하고 타구를 처리한 이재현은 자신감 있는 수비를 못한다며 무시한 것. 김도영은 해당 경기 3타수 무안타 삼진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순철의 무한 편애는 이전의 비판 이후로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 김도영에게 민폐만 주고 있다. 이날 같이 해설을 맡은 삼성의 레전드 이승엽 해설위원이 김도영, 이재현 모두 1군에서 성장해야 할 좋은 선수라고 치켜세우는 등 적어도 다른 선수를 비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은 것과 크게 비교된다.

팬들은 "이럴거면 개인방송 해라.", "이순철 당신 입이 입스에 걸린 것 같다.", "아들이나 신경써라."라는 반응이며, 동시에 순펠레로의 면모를 생각해 오히려 계속 이재현을 까줬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당한 게 있는 SSG 랜더스의 팬들은 '또 입 놀렸냐?'라며 정신 못차린 이순철의 행보를 다시 지적했다. KIA전 해설만 맡으면 상대팀을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보아, 곧 9개 구단 공동 역적이 될 예정이다.

이후 한화 이글스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선수와 면담을 위해 더그아웃을 잠깐 비운 적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감독으로서 말이 안되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담은 유튜브 영상에는 '본인이 감독 할 때는 뭐했는지 생각도 안나나 보다'라며 이순철을 조롱하는 댓글이 한가득이다. 수베로 감독에게도 '그런 해설자는 유감이다'라며 공격을 들은 것은 덤.

6.2.1. 2022년 9월 15일 경기

2022년 9월 15일,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의 시즌 13차전 경기에서 7회말 한화가 1: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수 윤산흠이 등판했다. 한화 벤치에서 분명 계획이 있어 윤산흠을 올렸을 것인데도 갑자기 뜬금없이 한화 이글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화를 비난했다.[65][66] 그리고 한화 팬들을 핑계로 대는 발언까지 화룡점정으로 추가하며 한화 팬들뿐만 아니라 함께 경기를 보고 있던 기아 팬들까지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후 기아가 동점을 만들고 역전의 기회에서 비디오 판독이 걸렸는데, "기아에게는 운명이 걸린 비디오 판독이다."라면서 대놓고 기아 편에서 해설하는 추태를 보였다. 이후 윤성호 캐스터가 "그건 한화도 마찬가지죠."라면서 수습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말을 쉬었다가 "한화는 절박하지 않다."며 끝까지 말을 놓지 않았다.[67][68] 심지어 비디오 판독 결과는 누가 봐도 1루수 노시환이 제대로 포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스가 올라가는 걸 보니 발이 떨어졌다라는 극한의 행복회로 해설을 하던 도중 판정이 뒤바뀌어 아웃으로 바뀌자 곧바로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절박하지도 않다는 비난을 퍼부을 거면 앞 이닝에서 윤산흠 트집은 왜 잡은 거냐"며 어이상실.

결국 이순철의 이런 행복회로 해설에도 불구하고 7회말 최대의 기회를 날려버린 기아는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10회초 박찬호가 결정적 실책을 저질러 한화의 2:1 승리로 경기는 끝나게 되었다. 끝까지 기아의 에러에 편승하여 승리를 가져갔다며 한화를 까는 것은 덤.[69]

타팀 팬들 반응 역시 시즌 초 김도영 관련 편파해설로 인해 한바탕 곤혹을 치렀던 이순철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반응이 매우 많다.[70][71]

7. 관련 문서



[1] 음력 1961년 4월 18일. 다만 초등학생 시절에 1년 유급하는 바람에 1962년생들과 학교를 다닌 동기이다. 덕분에 빠른 63년생선동열과 친구로 지내고, 반대로 겨우 20여 일(...) 먼저 태어난 양상문은 2년 선배가 됐다. 중고등학생때 유급이었으면 이만수(유급했지만 대학 야구부와 프로때 본인의 어필 노력으로 동갑들과 친구됨)나 정민철(1살 연하들과 친구)처럼 본인 노력 여부로 친구 나이가 달라지는 케바케가 될 수 있었겠지만, 운동부와 무관하게 유급을 하였기에 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쭉 1살 동생들과 친구로 살았다고 하고 본인도 딱히 원래 나이대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급사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스스로 "제가 초등학교때 운동과 무관하게 학교 안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가 1년 유급하고 졸업했다"고만 말했다. 이전까지 알려진 내용과 달리 고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 유급이며, 본인도 야구계에서 62년생 포지션으로 살며 61년생들을 선배로 대한다.[2] 現 광주서림초등학교[3]광주동성고등학교[4] 네이버 프로필 기준[5]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7/01/2005070170220.html[6] ~4월 15일[7] 4월 16일~[8] 198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금메달 수상[9] 2023년 6월 사망[10]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이자 연세대학교 동문이다.[11]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였다. 고등학생 때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지명 거부 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후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로 입단했다가 2차 드래프트때 아빠가 선수생활 마지막을 보내던 삼성 라이온즈로 옮겨서 가능성을 보였고, 그 후 고교 시절 자신을 지명했던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또 부모님과는 연세대학교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12] 타이거즈 신인왕은 무려 36년 후인 2021년에야 두 번째 주인공이 나왔다.[13] 본인은 기복이 심했다며 과대평가라고 표현하지만 기복을 감안하더라도 8번의 우승과 war 43과 커리어, 특히 war은 수비 능력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이기에 오히려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편이 더 맞다.[14] 여러 에피소드 중 압권은 아들인 이성곤 선수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조의 비난 해설을 보였던 것.[15] 더불어 2020년에 들어 비난해설에 대한 불호의 여론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시류의 변화에 의해서인지 해설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16] 비슷한 예로 강페이가 있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강병Fe라는 별명도 있었다. 참고로 이것 때문에 아들 이성곤도 '곤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7]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자연스레 발이 느려지고, 수비 범위가 좁아져 중견수 자리를 내주고, 좌익수로서도 일명 뚝떨 안타를 양산하며 악명을 떨치는 2020년대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발언은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들에게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당시만 해도 전준우는 수비'만' 되는 이승화와 어디에 둬도 눈이 썩는 수비를 보이며 1루와 외야를 오간 김주찬으로 고통 받던 롯데 외야에 혜성처럼 나타난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주전 중견수였다. 풀타임 1년차였던 2010년에 19홈런 16도루로 파워와 주루 포텐을 보인데 이어 2011년은 테이블세터로 나서 컨택에 집중하며 3할 타율과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시즌이었고, 수비에서는 경험과 판단력은 부족했으나 워낙 어깨가 좋고 다리가 빨라 몸으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여 연차가 쌓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즉 이 시점에서는 빠른 발과 좋은 컨택, 적당한 펀치력에 최상급의 수비력까지 갖췄던 전성기 이순철과 비슷한 유형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던 후배 전준우에 대한 일종의 덕담인 셈.[18] 그러나 이후 전준우는 발목-어깨 수술을 받으며 주루툴이 급감, 2013년을 끝으로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하지 못 했고, 수비력은 끝내 발전시키기는 커녕 신체 능력 하락과 함께 퇴보하며 상술했듯이 좌익수 자리에서도 뚝떨 안타를 양산하기에 이른다. 반면 타격에서는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인 2015-2016 시즌을 경찰청 복무로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타율 0.342에 33홈런을 기록하는 등 이순철에게는 부족했던 장타력을 갖춘 강타자로 변모하며 이순철과는 판이하게 다른 유형의 타자로 성장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이 발언은 틀린 예측이 된 셈.[19] 반면 세간의 1번타자의 통념과 달리 정교한 타격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잘 칠 때와 못 칠 때의 기복이 지나칠 정도로 극심한 편이였다. 시즌별로 봐도 3할대 타율을 4번 기록했고, 나머지 해는 .277을 뺀 1991년을 빼면 죄다 2할 6푼을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타율이 극단적이다. 그래도 그 당시가 투고타저였고, 이순철은 장타력이 뛰어난 편이었기 때문에 1994년까지는 1987년을 제외하면 wRC+는 꾸준히 100 이상은 기록해줬다.[20] 왜 라면수비인가 하면 집 근처 슈퍼에 라면 사러 가는 것 마냥 설렁설렁 걸어가서 여유롭게 타구를 잡아내서 라면수비라 불렸다.[21] 1996년 한국시리즈 5차전 당시 주루를 하던 염경엽을 잡은 것이 대표적 사례.[22] 특히 이순철의 현역 시절에는 타자의 타구 방향 빈도를 체크하는 데이터마저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현재 쓰는 외야 수비 페이퍼는 2010년대 중반 이후에야 나온 것이다.[23] 고교 시절 야구선수였던 김C가 선수 시절에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이순철이었는데,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고 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밝힌 적이 있다. 덤으로 야구하기 매우 귀찮고 싫은 표정인데도 너무나 야구를 잘했기에(...)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말하기도 했다.[24] 외야수 전향 첫 시즌인 1986년 이순철의 실책 수는 10개인데 이는 시즌 외야수 최다 실책 기록이다.[25] 외야 수비는 넓은 범위를 홀로 커버해야 하고 그 중에도 중견수는 수비 범위가 제일 넓은 포지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구음만 듣고도 재빠르게 공의 위치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중견수가 공을 더듬는 순간 인사이드 파크 홈런까지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26] 스탯티즈 기준[27] 그의 위에 있는 야수로는 이만수, 장종훈, 한대화, 홍현우 뿐이었다.[28] 그 외 바로 뒤에 5년간 신의 활약을 보인 이종범(6위, 종합 13위)과 홈런왕 출신 팀 선배 김성한(8위, 종합 7위)도 있었다.[29] 종합 WAR는 김성한이 이순철보다 높은데, 김성한은 투수 WAR가 3.5 정도 더해지기 때문.[30] 투수진에는 WAR가 이순철의 2.5배인 선동열이나 투수 WAR 5위(종합 WAR 11위) 이강철, 6위(종합 WAR 12위) 조계현 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다.[31] 시즌 중 자진사퇴.[32]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이강철이 10년 연속 10승 달성에 성공했다.[33] 30대 중반 선수 말년에 기량이 떨어졌을때, 점수가 벌어져 역전의 가능성이 별로 없던 경기들에서 김응용이 경기 후반 후보선수로 있던 이순철을 대수비로 썼다가, 마지막회에 한번 있던 공격기회에 타격 한번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기대했는데 타석에 가려고 준비 다 해놨는데 바로 교체해버려서 타격 한번 못해본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이순철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공수 겸용 후보선수조차 아니라 그냥 수비용 후보선수로 여겨진다는게 너무 수치스러웠다고 한다. 어차피 결정난 경기인데 타격기회도 안 준다는 생각에 너무 원망스러웠다고.[34] 이순철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본인도 지도자를 하면서 감독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해태 타이거즈 단장이었던 이상국의 도움도 있었다고 한다.[35] 후술하겠지만 이순철 본인이 선수협 결성에 적극적이었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36] 여기서 이순철은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37] 당시 선수회 결성에 앞장선 대표격 인물들 가운데는 롯데의 에이스 故 최동원도 있었다.[38] 장효조, 김시진최동원, 김용철(롯데-삼성간 트레이드)이 트레이드 되었다. 둘 다 롯데와 삼성을 대표하는 간판스타였다.[39] 다만 후술하겠지만, 야구만 좋아한 게 아니라 모든 운동을 좋아했고, 그 중 축구를 가장 좋아했었다. 원래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부가 있는데도 축구부에 먼저 입부했던 사람(이후 축구부가 없어지면서 다른 운동부를 하다가 그 운동부까지 없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야구부 가입)이고, 선수 은퇴 후에도 조기축구 활동도 하고 한국프로축구와 EPL 및 유럽축구 시청까지도 꽤 하는 편이라고 알려졌다. 정우영이 EPL 중계 이벤트로 이순철을 1일 특별해설위원으로 섭외한 적이 있었을 정도. 본인도 지금은 야구인이 되어 야구를 사랑하지만, 초등학생때 축구부가 해체되지만 않았어도 평생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40] 이와 유사 케이스였던 안경현은 강원도 초등학교의 피겨스케이팅부였고 2학년 어린이였음에도 소질이 있다고 평가받았는데, 해체되어 야구부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안경현 역시 1970년대 후반 과거로 돌아가서 피겨스케이팅부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41] 비록 감독이 굳이 부정하거나 하진 않았으니 믿어야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언론에서 띄어준 감도 있고 본인 스스로가 국제전에서는 따로 코치가 상대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선수들이 잘 한 거라고 밝혔다.[42] 사실 김영식씨는 김성근 감독과 더 닮았다.[43]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생강차는 감기에 마시면 목에 좋은, 목 관리에 적합한 음료다.[44] 심지어 경기 외의 다른 방송이나 본인의 유튜브에서도 이성곤 선수라고 부르지, 성곤이라고 이름으로 부르거나 단순히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본래 스포츠 해설위원이라는 자리가 가족이 같은 종목 선수일 경우 해설을 하면서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나오기 마련이지만, 이순철은 그런거 없이 항상 이성곤 선수라는 중립적인 호칭으로 부르는데, 이순철의 해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야구 팬들도 이 부분만큼은 칭찬하고 있다.[45] 이순철은 광주상고, 연세대, 해태에서 차례대로 선수생활을 하며 타이트한 팀 문화를 경험했다. 연세대는 이순철보다 4년 선배세대인 박철순-최동원때 선배 박철순이 최동원을 크게 상해한 폭력사건이 있었다. 요즘 같으면 특별법으로 징역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다. 단순히 폭행이 핵심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물론에 잘못하면 허리관절에 장애가 생길뻔했을 만큼 위험하게 때렸기 때문이다.[46] 해태 군기반장 계보는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으로 이어졌다.[47] 양준혁손혁최용호가 해태/KIA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팀 이미지만의 이유라고 할수는 없으며, 저 중에 결국 트레이드를 수용한 선수도 있다. 게다가 반대로 한대화처럼 팀내 후배가 될 나이대였음에도 본인이 해태로 트레이드를 청한 사례도 있다. 한대화의 경우 당시 감독 김성근과의 불화로 팀을 옮기려고 시도하다가 해태로 갔다. 사실 해태 감독 김응용은 아마추어 감독때부터 프로때까지 한대화나 선동열처럼 일류 선수들은 때리거나 혼내기는 커녕, 오히려 코치나 선배 선수들이 못 건드리게 챙겨주는 편이고 문제가 생겨도 일단 면담으로 달래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상위권 선수들은 나이가 어려도 해태가 나쁘지 않았다. 아마추어 감독때도 허구연이 부상으로 은퇴한다고 할때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며 달래주다가 어쩔수없이 은퇴시켰기에, 당시 감동받은 허구연이 아직도 가장 존경하는 야구인으로 김응용을 손꼽는다. 1군 평균 레벨의 젊은 선수들에게야 호랑이처럼 대할때가 많아 고생했지만.[48] 운동선수 무식하단 소리 듣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서, 자신은 코치생활 시작하면서 매일 신문읽기를 습관으로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이다.[49] 숙소 이탈선수가 있었는데, 코치들이 그 핑계로 이탈도 안한 다른 선수들에게 새벽에 잠을 못 자게 하고 기합을 주는 모습에 분노가 차올랐고, 그 숙소 이탈선수를 술집에서 발견한 코치들도 사실 숙소를 이탈해서 자기들도 술을 먹다가 발견해놓고, 적반하장으로 죄없는 선수들까지 다 잡을 핑계가 생겼다고 생각하여 그런 것을 알게 되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50] 다음날 경기 해설 때 '어제 김규성 선수와의 인터뷰를 본 KIA 팬들이 달달하다고 하던데 달달하다는 게 무엇이냐'며 정우영에게 묻기도 했다. 정우영은 스윗하다는 뜻이라며, 이순철 해설위원님이 저를 대하실 때와 같은 것이라고 대답.[51] 1997년 한국시리즈 때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으나 반지는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해태 선수들은 구단이 아닌 자체적으로 돈 걷어서 만들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에 본인 돈을 내고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52] 현역 시절 강태원은 성준과 더불어 투구 템포가 느리기로 소문난 선수였다. 이병훈 해설위원이 농담으로 "강태원-성준 선발 경기를 해설하다보면 어느덧 턱에 수염이 나 있었다"는 말을 했을 정도.[53] 2010 시범경기 중 리카르도 로드리게스가 퇴출될 때 해설 중 다시 한번 언급했다. 2014년 역대 최악의 외인선수가 누구인지를 물어봤을 때, 첫 번째로 언급했다. 그 정도로 이순철이 이빨을 가는 선수가 매니 아이바다.[54] 데뷔년도는 한문연 코치가 1983년, 이순철은 1985년이다.[55] 비슷한 경우로는 이순철과 주간야구를 함께 했던 안경현이 있다. 초등학생이던 70년대 후반에 피겨 스케이팅부에 들어갔다가 야구부 선생님의 유혹으로 피겨 운동이 끝나고 야구부에서 타격을 몇 번 해보다가 옮겼다고 한다. 안경현 자신은 자신이 살던 지역이 강원도라서 학교에 그런 운동부가 있었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밝히면서 자신이 '김연아 선수의 길로 갈 뻔 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90년대 중후반까지도 스케이트는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타는 것이었고 유료 빙상장들도 겨울 한정 운영하는 야외 시설이었다. 그래서 백인천의 학창 시절에서 보듯 한국 스케이트는 겨울에 그나마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서울 경기나 강원도 철원 등지를 중심으로 발원했다. 지금도 경기 북부나 철원 등에 스케이트나 컬링 등 빙상 명문 학교가 꽤 된다. 안경현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야구는 멀고, 스케이트는 겨울이면 가까워지는 곳에서.[56] 해태 타이거즈 동료였던 차동철도 축구 실력이 수준급이다.[57] 김도영은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고, 김광현은 이미 대한민국 야구계에 한 획을 그은 에이스다.[58] 거의 대부분 이순철 해설위원을 까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KIA 팬들조차 어린 선수까지 괜한 욕을 먹게 한다며 매우 험악한 반응을 보일 정도.[59] 실제로 이 날 해설한 정우영 캐스터의 인스타그램에도 비스무리한 댓글이 달렸는데 본인이 그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한다.[60] 비록 선수는 아니지만 같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헌신한 넓은 의미의 동업자에게 매우 부적절한 발언. 참고로 과거 민병헌이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한재권 응원단장에게 응원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언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좋은 태도와 굉장히 상반된다.[61] 참고로 공교롭다는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즉, 실력이 좋아서 SSG가 득점한 게 아니라 그저 우연히 운이 좋아서 한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62] 본인도 야구를 해 보았고 야구선수들이 안타 하나 치고 1점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습을 하는지를 아는 상태에서 선수들의 실적을 깎아내린 것이기에 이 역시 매우 무례하고 부적절하다.[63] 당연히 핑계에 불과하다. 유망주가 베테랑을 상대로 안타를 친 것이 유망주와 해당 팀 입장에선 영광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베테랑 입장에선 허용투수까진 아니더라도 기분 좋은 기록이 될 순 없다. 하다 못해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첫 안타를 쳤으니 김도영은 앞으로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해설했다면 안타를 맞은 김광현도 배려하면서 김도영 포장도 무리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64] 참고로 이 날 경기는 SBS 스포츠보다 접근성이 훨씬 높은 SBS에서 오후 2시에 중계되었다.[65] 윤산흠은 원래 점수 차가 적은 접전 상황에서 위기를 잘 막는 투수다.[66] 그리고 해당 경기는 김범수가 이미 전 날 경기까지 2연투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화 벤치에서는 원칙적으로 기용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리그에서 한화는 3연투가 가장 적은 팀이다.[67] 당연히 한화도 절박했다. 한화도 남은 경기를 통해 100패 달성의 불명예는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68] 당시 기아가 연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과하게 기아 입장에서 해설하는 모습이었다.[69] 오죽 어이가 없었으면 한화 이글스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도 이순철을 돌려까는 영상을 올렸을 정도다.[70] 심지어 한화 팬들 중에서는 아들인 이성곤이 한화에서 경기를 나올 때는 한화에게도 우호적인 해설을 하다가 2군으로 내려가며 경기를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 전 보다 2배 이상 한화를 억까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71] 비슷하게 특정 팀 편파 해설로 지적받는 양준혁 해설위원조차 이 경기처럼 상대 팀의 전술이나 투수 교체에 대해 대놓고 비난하거나 트집 잡을 정도의 막장 해설은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경기 한정 이순철의 해설은 거의 개인방송 편파중계급의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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