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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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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8 최승준 · 70 이호준 · 71 김경태 · 73 김일경
· 80 박경완 · 81 김정준 · 83 정수성 · 84 박용근
· 85 염경엽 [[감독#s-1.1|
]] · 97 모창민 · 99 김광삼'''
2군
72 서용빈 · 74 경헌호 · 75 김용의 · 76 윤진호
·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94 김재율
잔류·재활군
77 정주현 · 78 양영동 · 79 손지환 · 92 최상덕 · 93 장진용
트레이닝 파트
69 양희준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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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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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반지
1997 20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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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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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KBO 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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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
on 2002. 6. 6. SK 와이번스 공식 홈페이지 팬 투표 선정

OF / 태평양

OF / 현대

OF / 현대

SS / 현대

2B / 청보

3B / 태평양
''' '''
LHP / SK RHP / 현대

1B / 현대
''''''
DH / SK
''''''
C /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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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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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010)
2007년 / 2318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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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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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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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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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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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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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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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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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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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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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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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1경기 최다 볼넷 및 최다 연타석 볼넷[1][2] 6회(2012년 5월 20일)
최고령 KBO 포스트시즌 출전 41세 8개월 13일[3]
연속 타석 출루 기록 13타석(2003년 8월 17일~19일 DH2)[4]
}}} ||
이호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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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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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2020.12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양의지
2020.12~2022.12
김현수
202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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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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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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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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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0 2011 2012 20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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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 김강민 박정권 이재원 최정
<rowcolor=#fff> 2021 2022 2023 2024
이재원
한유섬(임시 주장)
한유섬 한유섬오태곤 추신수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315288><tablebgcolor=#31528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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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
<rowcolor=#ffffff> 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손시헌 손시헌박석민
<rowcolor=#ffffff> 2019 2020~2021 2022 2023~
나성범박민우 양의지
노진혁양의지 손아섭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9번
김태동
(1992~1993)
<colbgcolor=#000><colcolor=#ff0000> 이호준
(1994~1995)
이원식
(1996)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38번
이상윤
(1990~1995)
이호준
(1996~2000.6.1.)
오우진
(2001)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성영재
(2000~2000.6.1.)
이호준
(2000.6.2.~2001)
안재만
(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오승준
(2001)
이호준
(2002~2012)
백인식
(2013~2013.5.5.)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김태우
(2012)
이호준
(2013~2017)
장현식
(2018)
장현식
(2018)
이호준
(2019~2021)
윤형준
(2022)
LG 트윈스 등번호 70번
임훈
(2019~2020)
이호준
(2022~)
현역
}}} ||
}}} ||
파일:22이호준LG.png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70
이호준
李昊俊 | Lee Hojoon
출생 1976년 2월 8일 ([age(1976-02-08)]세)
광주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중앙초 - 광주충장중 - 광주제일고 - (호남대)
신체 187cm, 95kg, O형[5]
포지션 투수[6]1루수, 지명타자[7]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4~2000)
SK 와이번스 (2000~2012)
NC 다이노스 (2013~2017)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8)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9~2021)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22~2023)
LG 트윈스 1군 QC코치[8] (2024~)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6~2007)[9]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16~2017)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c30452><colcolor=#fff> 가족
<colbgcolor=#c30452><colcolor=#fff> 배우자 <colcolor=#373a3c,#ddd>홍연실(1978년생)
자녀 장남 이동훈(2002년생)
장녀 이동영(2005년생)
차남 이동욱(2008년생)
종교 불교천주교 (세례명: 프란치스코)
응원가 SK 와이번스 시절
Speedy Gonzales듣기[10][11]
NC 다이노스 시절
오기택 - 아빠의 청춘[12]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제1악장[13][14]
}}}}}}}}} ||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별명5. 말말말6. 여담
6.1. 야구 관련6.2. 야구 외6.3. 밈: 인생은 이호준처럼
7. 사건 사고
7.1. 병역 비리
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LG 트윈스 1군 QC코치.

해태 타이거즈 시절 유망주 투수로 주목 받기도 했으나 부진하여 타자로 전향하였고, 타격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던 중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직후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팀의 중심타자이자 간판스타로 거듭나며 팀의 왕조 구축에도 기여했다. 이후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여 베태랑이자 간판스타로 팀의 구심점이 되어 빠르게 강팀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로또준, 인생은 이호준처럼, 호부지 등의 별명으로 유명하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호준/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해태 시절 2000~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보통의 인간 이호준, 인생은 아름다워!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호준/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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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별명

5. 말말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17]
이승엽은 화려했고, 이호준은 묵묵했다. 이승엽은 임팩트있게 꾸준했고, 이호준은 소리 없이 꾸준했다. 결국 강한 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도 강했다.
이승엽, 이호준이 2015년 올스타 득표 1, 2위 발표가 난 기사의 베스트 댓글.(하지만 지금은 네이버 스포츠 뉴스 댓글이 폐지됨에 따라 볼 수 없다.)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2013년 인터뷰 중, 후배들에게는 본인이 겪은 자기관리에 대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예정이라 말하며.
부상 전, 나성범 & 이호준의 유쾌한 캠프 수다
(잠시 고민하더니)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진실된 땀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땀이 아니라. 진실되게 해라. 그리고 '앞으로 크게 내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2013년 NC 스프링캠프,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절대 하지 말고 피해야 할 것이 있냐는 박민우의 질문에.
[10대1 인터뷰] NC 이호준"계속 언더로 던졌으면 MLB 갔을 것"
내가 NC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었다. (중략) 유니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선수단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 불만이 쌓인 사람이 있다면 남자답게 감독, 코치 찾아가서 직접 얘기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선수들끼리 편이 갈리면 팀이 무너진다. (중략) 지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해서 눈물 흘리는 리더가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리더는 ‘고참=리더’가 아니다. 게임의 리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018년 10월 인터뷰, NC에는 선수들의 리더가 필요하고 그래야 또 다른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귀국 결정을 내린 건 NC에서의 요청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올시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상처받고 자신감이 상실됐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걸 떠올리니까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
2018년 10월 인터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정식 코치진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직구 변화구 두 개 다 잘 치는 거보다는 직구 하나라도 잘 치자. 변화구에 삼진 먹더라도 뭐라 할 사람 한 명도 없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타석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2020년 4월 SBS sports 전화인터뷰, 팀 타율 2위 및 팀 홈런 1위를 달성한 2019 시즌 타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했다는 말.영상
이호준 코치에게 물었다…"NC 어떻게 홈런군단 됐나요"

6. 여담

6.1. 야구 관련

파일:이호준타격.gif}}} ||
이호준의 타격 폼

6.2. 야구 외

파일:/pds/200901/14/55/e0074455_496d5787c5b08.jpg* 아내 홍연실 씨가 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32] 야구 팬들은 그녀가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를 닮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리그의 WAG 중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다며 찬양했다. 인천대학교 출신 전직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구애를 할 당시에 자신의 연봉으로 외제차를 뽑았다고 과장을 하면서 들이댔다고 한다.[33] 처음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게다가 이호준이 외출할 때는 신발을 직접 신겨주는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호준 부부 인터뷰 딸도 무척 귀엽다.

6.3. 밈: 인생은 이호준처럼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얘기가 있다.[41] SK 와이번스 시절에 쓰일 때는 대박을 터뜨릴 정도는 아닌 성적을 거두다가 FA 자격 획득 마지막 시즌에 성적이 뛰어서 거액 FA 계약 후 먹튀가 되었다는 조롱의 의미[42]였지만, NC 다이노스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야구 선수로서의 기록은 더 뛰어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양준혁[43]보다, 기록은 좀 뒤져도 미인과 결혼한 이호준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는 좀 장난스런 의미였다. 그러나 이후 FA 계약으로 인한 연봉 대박,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긴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생팀을 이끌어가는 모범적 고참 선수로 인정받는 등,[44]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선수라는 경의를 담은 별명이 되었다. 비공식이기는 하나 선수협 차원에서 은퇴투어를 하였다. 이후 그의 계보는 kt wiz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어린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팬들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는 유한준이 잇고 있다.

이 말은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카스포인트에서 이걸 놓치지 않고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만들기도 했으며, NC 다이노스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2014 시즌부터 판매하기도 했다.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처럼'이 나오자 발끈하기도 했다.기사

7. 사건 사고

7.1. 병역 비리

이호준 최대의 흑역사.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고 전과자 빨간 줄도 그어졌으나 실질적으로 둘 다 처벌 받지 않았다.

본인의 병역 비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재검 뒤 공익 복무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호준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45]

본인의 병역비리가 운좋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넘어간 것과 별도로, 다른 선수들에게 전문 브로커를 소개해 준 행위가 발각되어 병역법위반방조죄로 처벌을 받았다. 허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감방살이는 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되나 아무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호준이 전과가 없는 초범임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초범 여부와 상관없이 브로커를 소개한 방조죄만으로 실형을 선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도 병역을 기피하고 다른 선수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준 경우 본인의 병역기피로 징역 8월 + 브로커 소개로 2월로 징역 10월을 살게 되었는데, 이호준처럼 본인 병역기피로 실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방조죄만으로 실형이 불가능했다. 왜냐면 실형은 징역 6월 이상부터 가능하기 때문, 그렇다고 방조죄만으로 징역 6월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선수들은 방조죄로 징역 2월 분량이 추가되었으므로 사법 형평성에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집행유예만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 물론 사법적인 문제와 관계없이 사회 일반 도덕규범상 이호준이 병역비리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2012년 8월 KBO 리그 월간 MVP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이호준
(SK 와이번스)
서재응
(KIA 타이거즈)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5년 5월 KBO 리그 월간 MVP
안영명
(한화 이글스)
이호준
(NC 다이노스)
김태균
(한화 이글스)


[1] 한 경기에 6번이나 볼넷으로만 출루했다. 그것도 연타석으로. '1경기 제한'을 없애면 홍문종의 9연타석 고의사구가 최다 기록. 그리고 그날 얻은 별명이 육또선인.[2] 2013년 4월 28일 김태균이 7타석 6볼넷을 얻어 이호준과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6연타석 볼넷은 아니었고 고의사구가 하나 포함된 것이다. 이호준의 경우에는 고의사구가 하나도 없는 모두 순수한 볼넷. 김태균의 당일 기록은 볼넷-볼넷-고4-안타-볼넷-볼넷-볼넷.[3] 2017년 10월 21일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4] 2007년 제이콥 크루즈, 2014년 정훈과 타이.[5] 기사[6] 해태 타이거즈 입단 시즌에는 투수였으나 바로 다음 해 타자로 전향했다. 여담으로 LG 트윈스의 김재현의 20-20 클럽 가입 허용투수가 바로 이호준.[7] SK 시절 첫 FA 계약을 맺은 2008년 전까지는 주전 1루수였으나 이후 무릎 부상으로 박정권에게 서서히 1루를 내주고 지명타자가 되었다. NC에서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었는데, 1루수 수비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부상 전력과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수비 측면에서는 거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었다.[8] QC(Quality Control) 코치는 미식축구(NFL)에서 시작된 보직으로 영상 및 통계 분석이 주 업무다. KBO리그에는 2017년 전후 도입됐는데 다양한 보직에 두루 관여하는 역할로 해석한다.[9] 2006년 초에 입대했지만 무릎 부상이 심해져 2007년 초에 의병 제대했다.[10] 야야야야~ 이호준 날려버려라(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X2[11] SK-SSG의 거포 타자를 대표하는 응원가이며 상당히 인기있는 응원가 중 하나다. 2008년에는 이재원도 잠시 사용했고 현재는 한유섬이 사용 중이다. 가끔 배영섭 응원가와 햇갈리는 사람도 있으나 그 노래는 장윤정의 올레다. 본의 아니게 응원가가 비슷해 삼성 팬들은 SK 늙은비룡 이호준이라고 하기도 했다. 응원가를 물려받은 한유섬(당시는 한동민)은 SK 젊은비룡 한동민이라고 했다.[12] 다이노스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홈런!) 이호준!(홈런!) NC 이호준~[13]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오~ 이호준 홈런 오오오 홈런 이호준 홈런~ X2[14] 일명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 곡이다.[15] 왜 이런 별명이 생겼는지는 기타 항목 참조. 여기에 엮여서 생긴 김성근 감독의 별명으로 나니욘쥬라는것도 있었다. 대충 3억짜리 경비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김성근에게 이호준이 40억이라고 알려주자 놀라며 나니?! 욘쥬?!라고 말했다는 드립이 흥하면서 생겼다. 물론 드립이다. 김성근은 당시에도 한국에 산지 30년이 훨씬 넘었었다. 그리고 김성근 본인은 10여년 후 "나니?! 햐쿠욘쥬?!"란 소리가 나올 돈벼락을 맞게 되는데...[16] 마침 응원가도 "아빠의 청춘"이다.[17]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까지는 김응용 감독이 실제로 했던 말인데 다재다능했던 이종범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선동열과 이승엽을 언급한 것이다.[18] SK 최초의 준우승인 2003년 근처 시기에 상당한 활약을 보였다. 베테랑이라기에는 젊은 20대였지만 준우승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19] 이호준이 지금은 사라진 용틀임마당에 술을 먹고 쓴 글이 계기가 됐다.[20] 여담으로 이 당시 롯데 자이언츠도 타선 보강을 위해 이호준 영입을 추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호준이 SK와 우선협상이 결렬되자마자 곧바로 롯데 프런트가 이호준과 접촉해 몇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금액 차이가 나서 최종적으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21] 2020 시즌 기준. 이승엽-최정-양준혁-장종훈에 이은 5위이다.[22] 2019 시즌 종료 기준. 이승엽-양준혁-김태균에 이은 4위이다. 우타자로만 한정하면 통산 타점 2위. 1위는 김태균, 3위는 장종훈이다.[23] KIA의 이범호가 329홈런을 기록하며 이호준의 통산 337홈런 기록을 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호준의 홈런 기록을 넘어선 타자는 최정, 박병호, 그리고 이대호 정도.[24] 종전 최고령 300홈런 달성자는 박재홍.[25] 2003년 SK 소속으로 3경기 출장 12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 3삼진 1병살 타율 .167 출루율 .231 장타율 .167, 2009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 2타석 무안타 2삼진, 2011년 SK 소속으로 3경기 출장 6타수 1안타 2볼넷 1삼진 1병살 타율 .167 출루율 .375 장타율 .167, 2012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 18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 2볼넷 5삼진 타율 .111 출루율 .200 장타율 .333, 2015년 NC 소속으로 5경기 출장 16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 3삼진 타율 .250 출루율 .368 장타율 .250, 2016년 NC 소속으로 4경기 출장 13타수 3안타 2타점 1볼넷 3삼진 타율 .231 출루율 .286 장타율 .308, 2017년 NC소속으로 2경기 출장 2타수 무안타[26] 1997년 해태 소속으로 3경기 출장해 3타수 무안타 1삼진, 2003년 SK 소속으로 7경기 출장해 21타수 4안타(1홈런) 1타점 1득점 4볼넷 8삼진 타율 .190 출루율 .320 장타율 .333, 2007년 SK 소속으로 6경기 출장해 24타수 9안타(1홈런) 4타점 1득점 3삼진 타율 .375 출루율 .375 장타율 .625, 2009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11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2득점 1볼넷 3삼진 1병살 타율 .182 출루율 .250 장타율 .455, 2010년 SK 소속으로 4경기 출장해 13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1볼넷 1삼진 1병살 타율 .154 출루율 .214 장타율 .154, 2011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5타수 무안타 2삼진 1병살, 2012년 SK 소속으로 6경기 출장해 20타수 5안타(1홈런) 3타점 2득점 1볼넷 6삼진 출루율 .286 장타율 .500, 2016년 NC소속으로 4경기 출장해 9타수 1안타 1볼넷 2삼진 타율 .111 출루율 .200 장타율 .111[27] 2003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7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 2볼넷 1삼진 타율 .429 출루율 .556 장타율 .429, 2005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20타수 9안타(3홈런) 5타점 4득점 2삼진 2병살 타율 .450 출루율 .476 장타율 1.000, 2011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5타수 1안타 1타점 1삼진 타율 .200 출루율 .200 장타율 .200, 2014년 NC 소속으로 4경기에 출장해 17타수 7안타(2홈런) 6타점 3득점 1볼넷 2삼진 타율 .412 출루율 .444 장타율 .941, 2017년 NC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7타수 3안타 2타점 타율 .429 출루율 .429 장타율 .429[28] 대표적으로 36홈런을 쳤지만 이승엽에게 밀린 2003년.[29] 전력질주는 수비 나갈 때, 방망이 치고 나갈 때, 공수교대 때에 전력질주 하고, 상황이 되었을 때 몸을 사리지 않고 다이빙 캐치하는 것, 격려는 플레이 중 누군가가 잘못 했어도 항상 ‘괜찮다’고 서로 말해주는 것, 불만제로는 선수-코칭스태프-프런트 간 하나로 꽉 뭉쳐서 뒷말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30] 벤치 클리어링은 투수 몇몇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가야 하며, 안 나가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31] 실제로 게임인 마구마구에서 NC 레전드 카드로 출시가 되었다. 물론 SK 소속으로도 출시되었다.[32] 훈련소에 있을 당시 퇴소 전날에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깜짝 영상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이 우와~를 외쳤다는 썰이 있었다.[33] 물론 그 당시엔 연봉이 적었겠지만 FA로 대박을 친 이후의 연봉은 5억으로, SK에서 박경완, 박재홍과 함께 최고 연봉 수령자였고 KBO 전체에서도 양준혁 - 김동주 - 손민한 - 박진만 - 장성호 다음가는 고액연봉자였다.[34] 물론 농담이고, 2017 시즌 이후 은퇴했다.[35] 2대째 야구를 하는 선수의 경우 아버지의 포지션을 닮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내야수 출신인 김한수 감독이 있다.[36] 청소년 대회를 앞두고 서울에서 훈련을 하다가 KFC에 갔는데 양념도 안 뿌려진 치킨이 매운걸 알고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 아야~ 닭이 매워야~' 말 한마디로 웃겼고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김치찌개라면을 넣어 먹다니 세상에 이런 김치찌개도 있구나'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훈련 도중 광주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버스 타기 전 고속터미널에서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라면이 안 들어가 있자 '아줌마! 나 시골서 왔다고 지금 라면사리 안 넣어주요!'하고 따지자 아줌마 성대모사를 하면서 '1인분은 라면사리가 안들어가요오~호호'라고 상황설명을 하자 MC들이 터졌다.[37] 이진영이 이호준에게 "형 잠깐 좀 봐요"라고 말했는데 이호준이 이를 고깝게 받아들이며 말다툼이 붙었다. 이진영은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시죠"라는 의도로 말했는데 이호준이 전지훈련 기간 동안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 했다고..[38] 그러나 1995년, 2006년 시즌 1군 출전 기록은 없다. 23년 연속(1991~2013) 1군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박경완.[39] 이호준보다 먼저 은퇴한 이병규최영필은 대학(93학번)을 졸업하고 1997년에 데뷔했고, 이호준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1994년에 데뷔했다.[40] 2012년에 이적한 조인성과 같은 팀이었는데 서로 반말하는 장면이 경기전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41] 반의적인 표현으로 사랑은 김동주처럼이라는 말도 간혹 보인다.[42] SK에서 FA 이후 2008~2011년까지 4년간 연봉 34억을 받으며 스탯티즈 기준 WAR 합계 2.72를 기록했던 이 기간만을 한정한다면 먹튀라 불릴만 했는데, 2012년에 2억 5천만원이라는 저렴한 연봉으로 SK와 재계약한 후 선수 시절 두번째로 높은 WAR 4.45라는 대단히 좋은 성적으로 한방에 만회했다. 때문에 SK에서도 다소 많이 받긴 했어도 먹튀까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SK에서 연봉대비 잘했다는건 절대 아니고, 그저 애매했지만 받은 돈에 비해서는 평범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단지 먹튀라는 게 다소 심하다는 것 뿐이다. 먹튀/야구 문서에 나와있듯 진정한 먹튀들은 WAR이 0점 대, 마이너스도 수두룩하다.[43] 현재는 결혼을 했다.[44] 이는 성적에서 역대 정상급의 타자이면서도 팀워크, 인성 등에서 평판이 나빠 환영받지 못하며 은퇴했던 두산 베어스 김동주사례와 대조를 보였다. 성적으로만 따지면 영구 결번이 아깝지 않은 선수이나 은퇴식조차 못하고 초라하게 야구계를 떠났다.[45] 이후 추정상으로 SK 소속 선수들 다수에게 병역 브로커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 발생 후 이진영을 비롯한 몇몇 SK 선수들과 약간 사이가 좋지는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일부 팬들의 주장이 있다. 다만 이진영의 경우, 이호준과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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