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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6:23:30

안영명

안영명의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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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한 시즌 최다 피홈런 34개[1]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ff6600>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svg한화 이글스
역대 1차 지명 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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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4명)
이상군
전대영
황종선(1)
민문식
(10명)
김상국
한희민
이효봉
곽영진
김수길
김현태
윤홍식
유해덕
한연대
이원일(1)
(3명)
김대중
이중화
안성수
(3명)
송진우
장정순
조양근
(3명)
강석천
황대연
진정필
<rowcolor=#fff>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지화동
김성한
양용모 지연규 구대성 길배진
<rowcolor=#fff>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rowcolor=#f7000d> 신재웅 홍원기
(고졸)
심광호
이상열
조성희
이성갑
(고졸)
고상천
오주상
지승민
김민규
(고졸)
김재현
임광규
조현수
박정진
(고졸)
문용민
<rowcolor=#fff>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조규수 김태균 신주영 안영명 김창훈
<rowcolor=#fff>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윤근영 유원상 장필준(1)
최진호
박상규 김회성
<rowcolor=#fff>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김용주(2) 유창식(2) 하주석(2) 조지훈(2) 황영국
<rowcolor=#fff>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김범수 김주현 김병현 성시헌 변우혁
<rowcolor=#fff>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신지후 정민규 문동주 김서현(2) 황준서(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이상현
(2000)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안영명
(2003~2008)
김경선
(2009)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송창식
(2004~2008)
안영명
(2009~2010.6.7.)
장성호
(2010.6.8.~2010.6.9.)
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
장성호
(1997~2010.6.7.)
안영명
(2010.6.8.~2010)
손영민
(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최영필
(2004~2010)
안영명
(2011)
김광수
(2012~2015.5.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김태완
(2013)
안영명
(2014)
김성근
(2015~2017)
한화 이글스 등번호 45번
정현석
(2013~2014)
안영명
(2015~2017)
조지훈
(2018)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김성근
(2015~2017)
안영명
(2018~2020)
문동욱
(2021)
kt wiz 등번호 48번
이정현
(2017~2019)
안영명
(2021~2022)
김영현
(2023~)
}}} ||
파일:kt위즈 투수 안영명.jpg
안영명
安永命 | An Youngmyung
출생 1984년 11월 19일 ([age(1984-11-19)]세)
충청남도 천안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천안남산초등학교
천안북중학교
북일고등학교
대전대학교(지반설계공학 / 학사)[2]
우송대학교 대학원(스포츠심리학 / 석사과정 수료[3])
신체 184cm,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3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3~2010)
KIA 타이거즈 (2010)
한화 이글스 (2011~2020)
kt wiz (2021~2022)
병역 공익근무요원 (2011~2013)
종교 개신교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가족 안영진, 아내, 슬하 2남 1녀
1. 개요2. 선수 경력3. 피칭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여담6. 논란
6.1. 추신수 옹호 논란
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kt wiz 소속 우완 투수. 現 kt wiz 심리 상담 트레이너[4]

2. 선수 경력

안영명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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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안영명/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6년 2007~2008년 2009년
2010년 KIA 시절 2011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 ||

3. 피칭 스타일

안영명 선수 투구 타이밍이 너무 빨라서 저희도 말이 빨리 나오게 되네요.
- 2018년 5월 9일 넥센전, SPOTV 이준혁 캐스터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파워 피처로, 투구 폼이 부드럽고 릴리스 포인트도 이상적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구속도 빠른 편이다.

무엇보다 이 선수의 장점은 주눅들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을 줄 안다는 것이다. 또한 몸쪽 승부에서도 강점을 보이는데, 이는 대부분의 신인 투수들이 마운드에서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볼만 남발하다가 무너지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2000년대 중반 류현진을 제외한 많은 신인 투수들이 제구력 난조로 무너졌던 것과 대비되어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선수의 단점 또한 주눅들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을 줄 안다는 것이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구사만 할 줄 알지 무브먼트는 예리한 슬라이더를 제외하고는 안던지는게 나을 정도로 구리다.[5] 그리고 시속 140km 후반을 찍을 수 있는 구속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당시의 혹사로 구위를 잃어버렸고,[6] 이 구위가 좋지 않은 공을 가운데에 꽂아 넣다 보니 당연히 피홈런도 많은 스타일이어서 평균자책점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한화 시절 홈 구장은 당시 최악의 타자 친화구장인 대전구장. 2009년에 11승을 챙기긴 했지만 그의 세부 스탯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슬라이더를 많이 구사하면 모를까 안영명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패스트볼만 던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게스 히터들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며 2010시즌에는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깡따구 하나 만큼은 수준급. 홈런을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홈런을 맞고도 그냥 속구 3개를 뿌려넣어 삼진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투구 인터벌도 다른 투수들에 비하면 매우 짧은 편이며 포수에게서 사인을 읽은 즉시 바로 투구동작에 들어가 상대 타자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7]

2015 시즌 들어 변화구의 비율이 높아졌다. 공 10개를 던지면 5~6개 정도를 변화구로 던지고 있다. 스타일을 바꾼 덕분인지 삼진을 잘 잡아내는 중. 하지만 유인구로 변화구를 자주 던지다 보니 투구수가 늘어나게 됐다.[8] 유인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도록 제구가 잘 잡히게 되면 선발투수로서 이닝도 많이 잡아먹을 수 있게 될 듯.

그러나 어깨 부상 후 무리하게 복귀를 시도하다 16시즌 2경기 1패 ERA 20.25의 성적을 거두고 웃자란 어깨뼈 제거 수술을 받은 뒤 구속이 10km 가까이 하락해버려서[9]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

2017 시즌 7월 13일 롯데전 이후 인터뷰에서 더 이상 147km/h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했다. 아래쪽 투심 위주 피칭으로 땅볼 유도를 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8 시즌 4월 후반 들어 최고 구속 140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경기가 나오고 있다. 거기에 빠른 템포로 KIA의 강타선을 상대로 2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펼쳐,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포심 패스트볼을 봉인하고 투심으로만 던진 결과다.[10] 몸 관리를 철저히 한 덕이라는 평. 송은범처럼 투심 장착이 큰 효과를 봤다. 또한 기존의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구위를 회복하고[11] 100km 초반의 슬로커브까지 장착하며 투구 템포까지 빠르게 개조해 김성근 감독 부임 이전의 폼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슬슬 투심 구속 또한 130대 후반~140대 초반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에 은퇴를 선언한 이후, KIA에 잠깐 몸 담았을 적인 2010년도에 오른팔에 경련이 일어나고 이두근을 사용할 수도 없는 상완신경총 손상[12]이 생기는 바람에 수술을 한 후 초인적인 의지로 프로 생활을 한 것이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상술되어있는 변화구의 비율이 높아졌다던가 140 중후반대의 속구를 던지기 힘들어 한다던가 등 구속이 시즌 마다 널을 뛰고 어깨 부상이 일어난 것도 오른팔에 힘이 잘 안들어갔기 때문에 무리하다 생긴 일임이 늦게서야 확인이 되었고 단순한 노쇠화와 혹사 등으로 인한 구속 저하가 아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보면 양팔의 두께가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신경손상 이후엔 오른팔로 4kg의 아령도 겨우 들었다고 한다. 보통의 선수였다면 진작 은퇴하고도 남을 것을 놀라울 정도의 프로 정신으로 버텨냈다는 점이 적지 않은 야구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한화 34 44 3 0 2 1 1.000 3.89 44 6 17 26 19 19 1.341
2004 8 15⅓ 0 1 0 0 0.000 6.46 16 1 13 7 11 11 1.630
2005 10 20⅔ 0 2 0 0 1.000 6.10 26 3 14 14 17 14 1.839
2006 32 76⅔ 3 4 0 5 0.429 3.29 71 9 35 48 30 28 1.330
2007 61 94 1 1 5 15 0.500 3.06 78 9 43 79 33 32 1.245
2008 46 57⅔ 7 1 2 5 0.875 5.31 56 11 44 39 35 34 1.665
2009 26 140⅔ 11 8 0 0 0.579 5.18 148 34
(1위)
52 87 88 81 1.37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한화 / KIA 47 69⅓ 6 8 3 3 0.429 6.75 80 15 38 82 54 52 1.659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한화 3 4⅓ 0 0 0 0 0.000 4.15 7 2 2 4 6 2 2.077
2012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3
2014 48 97⅔ 7 6 4 6 0.538 4.52 114 8 49 64 59 49 1.536
2015 35 125⅓ 10 6 0 1 0.625 5.10 137 15 71 82 77 71 1.57
2016 2 2⅔ 0 1 0 0 0.000 20.25 9 0 4 1 10 6 4.88
2017 25 87⅔ 1 8 0 0 0.111 5.75 123 11 33 54 62 56 1.72
2018 53 66 8 2 0 8 0.800 5.73 83 12 19 48 44 42 1.49
2019 67 62 4 7 0 13 0.364 3.92 82 5 16 48 27 27 1.53
2020 39 45⅔ 1 1 0 1 0.500 5.91 51 9 20 34 32 30 1.51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21 kt 35 35⅓ 0 1 0 4 0.000 4.08 24 2 12 32 17 16 0.99
2022 4 3⅓ 0 0 0 0 0.000 2.70 3 0 0 1 1 1 0.90
KBO 통산
(17시즌)
575 1048⅓ 62 57 16 62 0.521 4.90 1152 152 482 750 622 571 1.49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6년 1완투
(7위)
0완봉
KBO 통산 1완투 0완봉

5. 여담

파일:external/mlbpark.donga.com/1270462026.jpg
* 청소년 대표팀 시절 사진인데, 뒤에 송은범도 있다.[13]

* 2007 플레이오프에서 빈볼에 대한 보복구를 이종욱에게 던진 직후. 손짓이 인상적. 직후 인터뷰에서는 볼이 어떻게 빠졌는지 손바닥을 살펴보는 것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 2020년 1월 16일에 엠스플 유튜브의 스톡킹 야구부에서 빈볼이 맞다고 시인했다. 7분 38초부터 분위기를 환기할 목적으로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나왔는데, 순한 성격의 이종욱이 맞고 순순히 나갈까봐 일부러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킬 생각으로 자극한 것이었다고. 경기 끝난 후에 사과하였다고 한다. 당시 중계화면 3:52:14초부터 이로 인해 '컴온요'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커먼요'를 거쳐 '귀댄요'로 바뀌었다 팬들이 사인해 달라고 하면 커몬요 써달라는 부탁에 곤혹을 치르곤 한다.
파일:CMMRghO.gif

6. 논란

6.1. 추신수 옹호 논란

추신수 선배가 최근 미국내 라디오에서 솔직발언에 두고 파장이크다
개인적인 생각은 인터뷰내용을떠나. 먼저. 이렇게 국내야구를 현상황을 직설적으로 얘기한사람이 있는가?

추신수선배가. 메이저리거 출신이라서 "당신들보다 내가 우위하다 "라서, 어릴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했기때문에 "이것이 자본주의다" 라고 가르쳐주기 위해 발언했는가이다? 그동안의 후배비난을 일거리로 삼아 보란듯이 선배라고 눈앞에 나타는 사람들보다는 낫지아니한가? 누가 한국야구에 발전하는 사람일까? 발언내용이 적절했는지는 함구하겠다

나역시 클린베이스볼을 적극 지지한다

옳다그르다 를떠나 누구든 본인의 생각을 입밖으로 낸 내용은
들어볼가치가있다고생각한다
파장을 예상하고도 가감없이 발언한 추신수 선배가 "진짜선배"라는 생각이든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5년 4월 KBO 리그 월간 MVP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안영명
(한화 이글스)
이호준
(NC 다이노스)


[1] 2009년 기록[2] 김태균의 초·중·고·대학교 직속 후배다.[3] 2022년 기준, 아직 논문을 안 내서 수료 상태라고 한다.[4] 멘탈케어코치[5] 그 슬라이더마저도 제구가 안될 땐 행잉슬라이더가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그럼 바로 배팅볼이 되어버린다.[6] 2018 시즌에 149km/h의 패스트볼을 되찾았다.[7] 때문에 주자 존재시 짧은 멈춤 동작으로 인해 보크 선언을 받는 보습을 종종 볼 수 있다.[8] 볼넷과 홈런 때문에 FIP는 높은 편이라 플루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 앞으로 FIP가 낮아질지 ERA가 올라갈지는 본인 하기에 달렸다.[9] 사실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평균 구속을 보면 이미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2015년부터 130km/h대 후반을 나타내고 있긴 했다. 물론 구속만 낮은 거랑 낮은 구속에다 혹사로 인해 구위까지 떨어진 거는 크게 다르지만.[10]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에 비해 횡적, 종적으로 무브먼트가 큰 대신 구속이 포심보다 2~3km 정도 떨어진다.[11] 2018 시즌 슬라이더의 최고 구속은 140km/h, 포심의 최고 구속은 148km/h까지 회복했다.[12] 본디 신경을 덮고있어야할 근육이 신경과 함께 꼬여버리는 바람에 근육이 팽창할 때마다 신경이 짓눌리는 질병이라 한다. 선천적인 질환으로, 이로인한 통증과 경련을 동반한다. 안영명은 프로선수였기에 일부 근육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됐다.[13] 둘은 공교롭게도 2015년에 두 사람이 같은 팀 한화 이글스에서 뛰게 되었다.[14] 참조.[15] 훗날 안영명이 사과를 고민했었다는 발언을 한 이상 고의 빈볼이 맞다.[16] 그런데 이 발차기를 맞은 것은 김동수가 아니라 한화에서 트레이드되어 넘어간 송지만. 후일담에 따르면 빗맞았다는 듯.[17] 실제로 구대성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펼쳐진 한일전에서 배영수에게 스즈키 이치로를 맞추라고 사주한 경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본선 1라운드/A조 6경기 항목 참조. 이후 스톡킹과 박재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 타석에서 사인 훔치기가 의심된 데다 한양대 선배였던 김동수에게 쌓인 게 있어서 그랬다고 밝혔다.또한 예전 야구는 분위기를 바뀌기 위해 벤치클리어링 유도가 잦았다.[18] 안영명은 이에 대해 더 신인이던 시절 빈볼을 던지라는 벤치 사인을 받았는데 상대타자 피해서 맞히지 못한 것 때문에 집합에 걸린 적이 있어서 몸에 맞는 공 사인 나오면 무조건 맞춰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고 한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 이전에는 빈볼을 맞추고 사과라도 하면 감독과 코치가 상술된 집합 상황 수준으로 화를 내다 못해 2군에 보내는 경우까지 적잖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빈볼 문화가 크게 변하기 시작한건 정찬헌이 정근우에게 빈볼을 던진 벤치클리어링 사건과, 빈볼이라 보기 힘들던 옷에 스친 사구로 발생한 다른 벤클때 해당 투수 윤성환, 타자 김태균이 아닌 외국인선수들끼리 갑자기 서로 싸우며 폭력을 썼던 사건 이후부터였다. 당시 오히려 주먹으로 때린 카를로스 비야누에바가 손가락 인대 부상을 당했는데, 막상 그 투수는 그 이전 이닝에 조동찬을 부상입힐 뻔한 사구를 맞췄다. 다른 선수들보다 거친 폭력을 쓴 것도 벤클 후 혼잡한 상황에서 그 타자가 뒤에서 자신을 집중 공격했기 때문에 흥분하던 중 앞에 상대팀 외국인선수까지 그를 공격하며 거기랑 싸움이 붙은 것. 막상 그 타자는 김태균에게 습격당했는데, 김태균은 상대 코치에게 기습 발차기로 걷어차였다. 그렇게 김태균이 걷어차여 멀리 날아가며 상황이 종료되어버렸고, 외국인 선수 둘만 싸우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벤클에서 외국인선수끼리를 제외한 심한 폭력은 거의 다 뒤에서만 폭행(비야누에바 << 조동찬 << 김태균 << 김재걸)하는 야비한 폭행 위주였다. 당사자 윤성환은 오히려 코치들의 보호로 군중에서 멀어졌었다.[19] 김동수도 따질까말까하는 눈빛이었고, 안영명 자신도 빈볼언급과 사과를 할까말까하는 고민을 하였는데 둘다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말을 약간 더듬으며 평범한 인사치레로 끝내버렸다고 한다. 김동수 코치의 눈빛을 안영명이 읽었다고.[20] 안영명의 1살 터울 친형 안영진도 천안북일고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했고, 성균관대로 진학했다.[21] 2006년 한국시리즈 6차전[22] 하루 전에 전화왔으면 계약 안 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