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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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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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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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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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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화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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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51번}}}
결번 이중화
(1987~1988)
손창현
(1989)
{{{#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김한근
(1988)
이중화
(1989~1995.5.29.)
임주택
(1996~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박용준
(1989~1994)
이중화
(1995.5.30.~1995)
최재호
(1996~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김재걸
(1995)
이중화
(1996)
정경배
(1997~2001)
}}} ||
}}} ||
파일:external/cfs6.blog.daum.net/4674ca3b548d8&filename=%EC%9D%B4%EC%A4%91%ED%99%941.jpg
이중화
李重和 | Lee Jung-Hwa
출생 1964년 2월 11일 ([age(1964-02-11)]세)
충청북도 청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전곡초 - 청주중 - 청주고 - 동국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7년 1차 지명 (빙그레)
소속팀 빙그레-한화 이글스 (1987~1995)
삼성 라이온즈 (1995~1996)
해설 위원 CMB 대전방송 야구 해설 위원

1. 개요2. 선수 경력
2.1. 빙그레-한화 이글스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3. 은퇴 이후4. 연도별 성적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었으며, 주로 2번 타자에 기용되었다. 팀내 역할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도화선 역할로, 테이블 세터 포지션이었다. 당시 도루를 잘 안하던[1]빙그레 타선에서 그나마 도루를 하던 선수였기 때문인지 빙그레 올드팬들에게는 더욱 기억에 남는 선수이기도 하다.

1989년 21연속 도루 성공 기록을 세웠다.[2] 이를 봤을 때 도루능력이 좋았던 것은 확실하다. 또한 한화의 날쌘돌이 계보는 이중화에게서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성기 시절엔 타율도 꽤나 준수했고 빠른 주루능력으로 대부분 상위타선에 기용되었다.

2. 선수 경력

2.1. 빙그레-한화 이글스 시절

1987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좌타자의 희소성을 인정받아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입단 초기였던 1987년1988년은 각각 48경기, 66경기에 출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이후 1989년부터는 김영덕 감독의 용병술로 주로 2번 타자에 기용되었다. 1989년 8월 25일까지 21연속 도루 기록을 세웠다. 이해에는 25도루 49득점을 기록했다. OPS도 .719로 나쁜 편은 아니었다.

1990년에도 줄곧 2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선구안이 상승해 출루율 중 볼넷의 비율이 많아졌다. 도루도 꼬박꼬박 해서 16도루를 달성하지만, 도루실패율이 두 배로 늘어난 건 덤.

1991년에는 351타석에 들어서 25도루 34볼넷 46득점을 기록. 타율도 3할, 장타율은 4할, .776의 OPS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선수로서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이 해 수준급 활약을 펼쳤고 팀은 1991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3차전에서 8회 2사 후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놓치며 퍼펙트를 기록하던 송진우가 흔들리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며 결국 패배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3]그래도 당해년도 정규 시즌에 war 2.99를 찍는 등 수준급의 선수로 성장하는듯 보였으나..

다음해인 1992년부터 부진의 늪에 빠져버린다. 도루 횟수도 반토막 나버리고, 타율도 2할대 초반을 기록하며 전년도의 페이스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1993년에는 부상까지 겹쳤고 이후로도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해 결국 1995년 5월 30일자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5년에는 경기에 거의 나오지 못하였으며 7경기에 출전하여 1안타를 기록하였다.

이듬해인 1996년, 64경기에 출전해 타율 .247, 출루율 .302, OPS .617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시즌 종료 후 손목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

한동안 개인 사업을 하다가 2011년 대전광역시에 상설 야구클리닉을 개업했다고 한다. 위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근처라고 한다.

이후 충청권 케이블TV SO 방송인 CMB 대전방송에서 야구중계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만 중계를 하며 간혹 청주구장 경기가 있을때도 중계한다.

현역 시절에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으나, 은퇴 후 운동을 쉬어서 그런지 현재는 매우 후덕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부인 강은주는 KBS 공채 연기자 출신으로 결혼 후 은퇴했다. 예전 활동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경로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TV 문학관 영상 정도.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7 빙그레 48 65 .262 17 3 0 0 6 13 3 8 .308 .343
1988 66 105 .305 32 2 0 1 19 15 2 7 .352 .345
1989 111 272 .294 80 13 6
(1위)
0 25 49 25 20 .386 .333
1990 107 277 .256 71 10 2 1 19 48 16 30 .318 .324
1991 118 304 .309 94 11 7 1 32 46 20 35 .401 .375
1992 90 247 .206 51 10 0 1 20 33 9 15 .259 .249
1993 15 19 .158 3 0 0 0 0 6 1 3 .158 .273
1994 한화 85 228 .219 50 10 0 1 16 22 7 16 .276 .26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5 한화/삼성 7 7 .143 1 0 0 0 0 0 0 0 .143 .143
1996 삼성 64 154 .247 38 2 1 2 11 24 6 13 .312 .305
KBO 통산
(10시즌)
711 1678 .260 437 61 16 7 148 256 89 147 .328 .316

5. 기타

6. 관련 문서


[1] 발 빠른 선수들은 많은데, 불행히도 이정훈, 이중화를 빼면 도루 센스가 없는 선수들 일색이었다. 1987시즌 무려 4도루 15실패를 기록하며 2할대 도루성공률을 기록한 이강돈이 대표적 예시. 이 때문에 빙그레는 포수치고는 발이 빠른 편인 김상국, 양용모가 팀 내 도루 순위권에 들 정도였다(...)[2] 당시엔 최고기록이었으나 이후 힘이 장사이신 어떤 형님이 2회 많은 23연속 도루 성공 기록을 세우면서 묻혀버렸다(...)[3] 만약 파울 플라이를 잡았다면 퍼펙트 게임이 완전히 굳혀졌을지도 모른다. 정회열에게 볼넷, 홍현우에게 안타, 그리고 장채근에게 2타점 싹쓸이 적시타를 내주며 2-1로 역전패 당했다. 정회열에게 던진 회심의 몸쪽 공이 볼 판정을 받았으나 포수 유승안, 구심 이규석 모두 볼이라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