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전직 야구선수 이선웅을 다룹니다. 에픽하이의 래퍼에 대한 내용은 타블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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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웅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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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f9933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16번}}} | |||||||||||||||||||||||||||||||||||||||||||||||||||||||||||||||||||||||||||||||||||||||||||||||||||||
김구길 (1982) | → | 이선웅 (1983~1992) | → | 백성진 (1993~1994) | ||||||||||||||||||||||||||||||||||||||||||||||||||||||||||||||||||||||||||||||||||||||||||||||||||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87번 | ||||||||||||||||||||||||||||||||||||||||||||||||||||||||||||||||||||||||||||||||||||||||||||||||||||||
이해창 (1987) | → | <colcolor=#ffffff> 이선웅 (1995) | → | 서정수 (1998)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7번 | ||||||||||||||||||||||||||||||||||||||||||||||||||||||||||||||||||||||||||||||||||||||||||||||||||||||
정동진 (1993~1995) | → | 이선웅 (1996) | → | 김일권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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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웅 李善雄 | |
출생 | 1961년 2월 11일 ([age(1961-02-11)]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선린상고 - 인하대 |
포지션 | 유격수, 3루수, 1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3년 1차 지명 (OB)[1] |
소속팀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3~1992)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1995~1997) |
병역 | 예술체육요원[2] |
[Clearfix]
1. 개요
전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소속 내야수. 주 포지션은 유격수와 3루수였으나 1루수를 보기도 하였다.통산 기록은 10시즌 동안 878경기 2974타석 2633타수 666안타 223득점 23홈런.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3루수 수비를 다이빙 캐치하면서 봤다는 점과 1989년에 11도루 0도루실패를 기록했다는 점 때문에 '날으는 돈까스'란 별명이 붙었다.
2. 선수 경력
원래는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삼미 슈퍼스타즈가 꼴찌인 우리 팀 사정 좀 봐달라며 애걸복걸 하자 OB가 통 크게 정구선과 함께 이선웅을 삼미에 지명권을 양보하면서 삼미에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선웅과 정구선은 그냥 타자도 아니고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의 타자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 둘은 삼미-청보의 기둥뿌리가 되어 80년대 인천야구의 내야를 지켰다.서울 출신이지만 인하대를 나왔기에 인천 출신으로 쳐주는 편. 1983년에는 팀에 인천 출신 타자가 조흥운, 김진우와 이선웅 3명 밖에 없다는 기사가 나온 적도 있다.
1985년과 1988년 3할을 기록했다. 1985년의 기록은 청보 역사 유일한 3할타자이며 1988년의 경우 김일권과 이선웅 둘이 3할타자 등극에 성공했는데 태평양은 그 이후 3할타자를 얻기까지 4년을 기다려야 했다.[3] 묘하게도 대부분의 해의 BABIP이 0.250대에서 놀고 있을 때 이 두 해만 바빕이 0.315이상이고 타율 0.141을 찍을 때는 0.162다. 본격 바빕과 타율이 일치하는 타자.
1983년 6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벌어진 김진영 감독 퇴장 사건 때 득점이 인정 안 된 2루 주자였다. 1985년에는 김정수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이선웅은 대기석에서 야유를 하다 같이 퇴장당했다. 이후 벌금 20만원 추가 징계. 1987년에는 한 경기 3병살이라는 진기록을 처음으로 세우기도 했다. 심지어 이 3병살은 3연타석이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1989시즌때는 2번타자의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1번타자는 대도 김일권이었다. 당시 김일권이 62도루를 기록하는 것을 2번타자라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선웅도 거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11도루를 기록하였다. 심지어 도루실패는 0으로 도루성공률 100%. 해당 년도에 태평양은 신진급 투수 3총사인 박정현-정명원-최창호의 분투와 테이블 세터의 활약에 힘입어 인천 연고팀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1992시즌까지 현역 시절을 보내고 LG 트윈스에서 무상 트레이드로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던 김재박과 함께 은퇴한다.
3. 은퇴 후
은퇴 이후에 현대 유니콘스에서 코치를 하였고, 1996년 한국시리즈에도 코치로서 참가하여 준우승을 경험했다.2002년 SK 와이번스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한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 3루수 부문에 뽑혔다. 6월 9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4. 기타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3 | 삼미 | 81 | .223 | 64 | 7 | 1 | 5 | 28 | 16 | 3 | 12 | 3 | 34 | .258 | .307 | .565 |
1984 | 16 | .259 | 7 | 0 | 0 | 1 | 2 | 2 | 0 | 2 | 1 | 3 | .333 | .370 | .704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5 | 삼미 / 청보 | 97 | .300 | 101 | 19 | 1 | 6 | 53 | 27 | 1 | 25 | 7 | 33 | .357 | .415 | .772 |
1986 | 청보 | 67 | .141 | 18 | 3 | 1 | 0 | 6 | 7 | 3 | 9 | 1 | 17 | .203 | .180 | .383 |
1987 | 90 | .257 | 68 | 10 | 1 | 1 | 27 | 21 | 3 | 27 | 3 | 20 | .330 | .313 | .643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8 | 태평양 | 99 | .308 | 91 | 12 | 0 | 1 | 41 | 33 | 5 | 35 | 1 | 15 | .380 | .359 | .740 |
1989 | 117 | .239 | 81 | 13 | 2 | 1 | 35 | 33 | 11 | 42 | 3 | 21 | .324 | .298 | .622 | |
1990 | 120 | .260 | 110 | 14 | 0 | 1 | 47 | 42 | 4 | 36 | 7 | 47 | .328 | .300 | .628 | |
1991 | 95 | .234 | 64 | 10 | 1 | 5 | 25 | 20 | 3 | 24 | 2 | 34 | .300 | .333 | .633 | |
1992 | 96 | .239 | 62 | 14 | 0 | 2 | 18 | 22 | 2 | 21 | 4 | 26 | .304 | .317 | .621 | |
KBO 통산 (10시즌) | 878 | .253 | 666 | 102 | 7 | 23 | 282 | 223 | 35 | 233 | 32 | 9 | .319 | .323 | .642 |
6. 관련 문서
[1] 지명권 양도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였다.[2]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3] 윤덕규는 태평양 이적 첫 해인 1992년에 정확히 0.300을 기록하였다.[4] 단순히 리그에서 가장 오래 뛴 선수는 83시즌 롯데에서 데뷔해 84-85시즌 삼미에 소속되었던 김호근이 롯데-삼미/청보-OB-쌍방울을 돌며 93시즌에 은퇴했다. 92시즌에 은퇴한 선수로는 이선웅과 동기인 이광길이 있지만 여러팀을 떠돌다 삼성에서 은퇴했고, 정은배도 데뷔 후 92시즌까지 쭉 삼청태에 소속되었지만 데뷔는 85시즌에 했다.[5]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백인천의 일본기록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