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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fab93d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 |||||||||||||||||||||||||||||||||||||||||||||||||||||||||||||||||||||||||||||||||||||||||||||
정선두 (1986~1987) | → | 박정현 (1988~1998. 7. 30.) | → | 조규제 (1998. 7. 31.~2000) | ||||||||||||||||||||||||||||||||||||||||||||||||||||||||||||||||||||||||||||||||||||||||||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21번}}} | ||||||||||||||||||||||||||||||||||||||||||||||||||||||||||||||||||||||||||||||||||||||||||||||
김민국 (1994~1998. 7. 30.) | → | 박정현 (1998. 7. 31.~1999) | → | 팀 해체 | ||||||||||||||||||||||||||||||||||||||||||||||||||||||||||||||||||||||||||||||||||||||||||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 ||||||||||||||||||||||||||||||||||||||||||||||||||||||||||||||||||||||||||||||||||||||||||||||
팀 창단 | → | 박정현 (2000) | → | 조규제 (2001) |
| |
박정현 朴庭鉉 | Park Jung Hyun | |
출생 | 1969년 7월 10일 ([age(1969-07-10)]세) |
경기도 수원시 | |
국적 |
|
학력 | 신풍초 - 수원북중 - 유신고[1]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언우타 |
프로 입단 | 1988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태평양) |
소속팀 |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88~1998) 쌍방울 레이더스 (1998~1999) SK 와이번스 (2000) |
지도자 | 상무 피닉스 야구단 코치 주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190cm가 넘는 상당히 큰 키와 그런 큰 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땅위 5cm 언더핸드 투구로 유명했던 선수로,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를 거쳤다. 하지만 김성근 당시 감독에게 신인 시절부터 혹사를 당해 전성기가 오래 가지 못했던 비운의 투수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은 65승 54패 21세이브 3.45
2. 선수 경력
|
태평양 돌핀스 시절 |
|
1989년 신인왕 수상 당시 정규리그 MVP 선동열과 함께 |
그 결과 박정현은 당대 최고 투수인 선동열과 다승 및 방어율 경쟁을 벌였으며, 결국 1989년 19승 10패 2세이브 2.15, 242 2/3이닝을 투구하며 신인왕을 품에 안는다. 결국 선동열에게 밀려 다승과 방어율은 리그 2위를 기록하였지만,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고졸 출신이 신인왕을 수상한 사례이며 최초의 중고 신인왕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돌핀스의 또다른 선발 최창호와 정명원은 평균자책점 3,4위를 기록하며 돌핀스의 투수력을 입증하였다.
당시 박정현은 타격왕 경쟁에 나선 삼성의 2루수 강기웅과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벌였는데, 박정현이 단일시즌 신인 최다승인 19승[3]을 거두어 신인왕을 차지한다. 마지막 19승째는 구원승으로 거두었는데(9월 26일 인천 삼성전), 이 날 선발이었던 정명원이 2.1이닝 4실점(3자책)으로 털려서 4-1로 끌려갔고, 박은진이 등판해서 2.2이닝 무실점을 기록, 5회초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5회말에 태평양이 5점을 내서 역전에 성공하고, 6회초부터 박정현이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여 승리투수가 된다[4].
스탯만 놓고 보면 20승 이상을 노릴 만했지만, 당시 태평양이 지독한 물방망이 타선이어서 힘들게 완투하고도 패전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고[5], 특히 당대 최강이었던 해태 선동열과도 몇 차례의 선발 맞대결을 펼쳐 계속 아깝게 패하면서 무산되고 만다. 그래도 이때 세운 19승[6]은 현재에도 역대 신인왕 최다승으로 남아 있다.
1989년 선발에 불펜 알바까지 병행하며 정규시즌에만 242 2/3이닝을[7] 던졌던 박정현은 준플레이오프에도 맹활약 하게 된다. 박정현은 삼성과 치른 준플레이오프 1차전(10월 8일)에서 선발 등판하여 14회까지 완투했다. 박정현이 1차전에서 던진 투구수는 173개였다. 1차전을 승리한 이후 모두 승리에 도취된 사이, 박정현은 허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현은 단지 이틀만 휴식한 후에 3차전 5회에 다시 등판했다. 구단 측에 따르면 박정현이 자청해서(?) 구원 등판한 것이라 한다.[8] 박정현은 9회 2사까지 역투(투구수 75)했으나 마지막 한 타자를 남겨둔 상황에서 허리를 부여잡으며 마운드에 주저앉아 구급차를 타고 인천중앙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경기는 양상문이 계투로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으며 승리했고, 이후 태평양은 삼성을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경험 부족 및 타선의 부재로 해태에게 완패한다.
1990년 13승 7패 7세이브 2.63 191 2/3이닝
1991년 10승 12패 3.47 184이닝
1992년 13승 7패 6세이브 3.69 165 2/3이닝
1989년 이후에도 그는 태평양의 1선발로 활약하며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따내지만,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러나 팀의 사정도 그러했고, 심지어 스승인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새로 부임한 박영길 감독조차 그를 쉬게 두지 않았다. 오히려 김성근이 7.5m로 높혀놓은 도원구장의 펜스를 5m로 내리도록 지시하면서 부담은 훨씬 커졌고, 그러면 팀 타선이라도 득점력이 올라와야 했는데 김성근 시절 그래도 리그 중위권은 내주던 성적은 아예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해 그 짧은 인천 도원구장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선수가 아무도 없었던 수준. 그 과정에서 박정현을 비롯한 투수진은 조금씩 망가져갔고, 1992년 부임한 정동진 감독 또한 똑같이 이들을 굴리다가 어느 순간 각성, 이 팀은 이대로는 더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며 1993년 시즌을 통째로 버리고 트로이카 전원의 수술 및 재활에 들어갔다.[9]
1994년 트로이카가 복귀를 하긴 했지만, 최창호와 정명원이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찾은 것과 달리 박정현만은 기량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언더핸드라는 특성의 문제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투수의 혹사 데미지가 팔꿈치와 어깨 중심으로 오는 것과 달리, 언더핸드는 오히려 무릎과 허리 등 전방향으로 데미지가 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토미 존 수술과 같은 인대 접합술 방식으로의 개선이 언더핸드에는 한계가 있는 것. 결국 예전의 위력을 전혀 찾지 못했고, 이미 혹사로 몸이 망가진 상태여서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게 된다.[10] 이 때 그의 나이 25세였으며 이제 전성기에 진입할 나이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단으로부터 재기 불능 판정을 받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출처: 포토로) |
|
SK 와이번스 시절(출처: 포토로) |
3. 혹사와 선수생명 단축
김성근 감독의 투수 혹사 대목에서 빼놓지 않는 선수가 박정현이다. 당시 박정현은 선발과 불펜으로 정규시즌에서 242 2/3이닝을 던졌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다시 18 2/3이닝을 던졌다. 심지어 그 와중에 무려 18완투(정규시즌 17, 준플레이오프 1)까지 기록했다. 특히 1989년 태평양 돌핀스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 3차전에서 자진 구원등판 9회 1사까지 던지다가 허리 통증으로 주저앉아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에도 언론에서 박정현의 무리한 등판을 보고 “원년(1982년) 박철순[12]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그러나 박정현에 대한 혹사는 그 해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김성근이 떠나고 소위 빅볼 메타를 주창하던 박영길이 들어온 1991년 이후로도 그를 비롯한 트로이카에 대한 혹사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팀에 맞지 않던 빅볼 메타 덕에 팀의 득점 지원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이는 모조리 투수진에 대한 부하로 이어졌다. 결국 김성근이 시작한 혹사는 박영길에 의해 완성되며 1993년을 시작으로 기나긴 재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말년에 김성근과 다시 만난 쌍방울에서 124이닝을 소화, 재기하는 듯한 모습을 잠시 보였지만, 그렇게 한국 언더핸드 투수 역사를 대표할 수 있었던 한 선수는 신인 트로이카라는 잠시의 전설만 남기고 사라졌다.
박정현의 부상은 큰 키에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폼임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등판시켜 망가뜨렸다는 게 중론이다. 이때만 해도 선수들의 제구 안정을 위해 언더 전향은 수시로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196cm 언더핸드 박진철도 그런 케이스. 하지만 박정현만큼 낮은 릴리스 포인트는 아니었다. 오버핸드-사이드암이 팔꿈치와 어깨에만 대미지를 준다면 언더핸드는 몸 전체로 대미지를 분산시킨다. 게다가 박정현처럼 키가 크고 릴리즈 포인트가 낮으면 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박정현은 당시의 대표적인 언더핸드 선수 중에서도 가장 컸으며,[13] 릴리즈 포인트도 가장 낮았다. 따라서 가장 철저한 관리를 해도 모자란 판에 3년 동안 내내 혹사를 당했으니 성할 수가 없었던 것.
다만 박정현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당시 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선수는 두명이나 더 있었다. 전성기인 1989~1992년 동안 최다 이닝 소화 3위가 박정현(136경기 784이닝)인데, 그 소리는 그 앞에 두 명이나 더 있었다는 소리.[14] 1위는 심지어 같은 언더핸드 투수인 이강철. 해당 4년간 이강철은 149경기 848이닝을 뛰었다.[15] 2위는 윤학길의 128경기 810.2이닝. 심지어 박정현의 최다 이닝 시즌인 1989년조차 그 위에는 윤학길이 있었던 만큼, 분명 엄청난 혹사인 건 맞는데 당대 최고라기에는 손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태평양은 타선 전력이 약한 만큼 주축 투수진에 걸리는 부하가 해태보다 더 컸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마구잡이식 기용은 1994년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의 투수 분업 도입 이전까지 에이스 투수의 보편적인 운용법이었으며, 심지어 이러한 시스템의 선구자격인 이광환이나 정동진조차도 이 부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나 상술했듯이 태평양의 타선 전력은 굉장히 약했고, 따라서 주축 투수에 가해지는 부담이 좀 더 컸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벌떼타선이라 불렸던 김성근 시기의 태평양 타선은 의외로 해태와도 리그 통산 득점이 별 차이가 없었지만,[16] 정작 삼성 시절 타선을 만들었다던 박영길이 오면서 급추락하며 부담이 더해졌다. 결국, 1993년 시즌을 통으로 날린 끝에 1994년 복귀하였다. 그 해 돌핀스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4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고 정명원이 40세이브를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박정현은 벤치를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성적만을 거뒀다.
4. 은퇴 후
2000년대 중반 상무 피닉스 코치로 재직했다가, 이후 고양시의 주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일했다. 2009년 초 주엽고 야구부가 해체하며 물러났다. 최창호의 말에 의하면, 그 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5. 여담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 방송 예고대로 89 박정현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17]
- 현대 유니콘스를 매우 잘 아는 블로그 주인장의 글에 박정현의 딸이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사라져서 없다.
- 상무 코치를 역임할 당시 상무에서 복무 중이었던 김대우의 미국 진출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4사구 | 탈삼진 | WHIP |
1988 | 태평양 | 6 | 18⅔ | 0 | 1 | 0 | 0 | 0.000 | 7.71 | 25 | 10 | 8 | 1.77 |
1989 | 38 (5위) | 242⅔ (2위) | 19 (2위) | 10 | 2 | 0 | 0.655 | 2.15 (2위) | 183 | 95 | 116 (5위) | 1.11 | |
1990 | 35 | 191⅔ (4위) | 13 (5위) | 7 | 7 | 0 | 0.650 | 2.63 | 177 | 63 | 66 | 1.21 | |
1991 | 30 | 184 | 10 | 12 | 2 | 0 | 0.455 | 3.47 | 190 | 72 | 47 | 1.39 | |
1992 | 33 | 165⅔ | 13 | 7 | 6 | 0 | 0.650 | 3.69 | 154 | 84 | 85 | 1.36 | |
1993 | 1군 기록 없음(부상으로 시즌 아웃) | ||||||||||||
1994 | 11 | 37⅔ | 2 | 3 | 0 | 0 | 0.400 | 4.54 | 43 | 15 | 15 | 1.46 | |
1995 | 1 | 4⅔ | 0 | 0 | 0 | 0 | 0.000 | 7.71 | 4 | 5 | 2 | 1.93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4사구 | 탈삼진 | WHIP |
1996 | 현대 | 8 | 15⅔ | 0 | 0 | 0 | 0 | 0.000 | 6.89 | 18 | 15 | 9 | 1.98 |
1997 | 13 | 25⅓ | 0 | 0 | 0 | 0 | 0.000 | 6.39 | 26 | 16 | 19 | 1.42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4사구 | 탈삼진 | WHIP |
1998 | 현대 / 쌍방울 | 9 | 24⅓ | 2 | 1 | 1 | 0 | 0.667 | 2.22 | 21 | 12 | 13 | 1.23 |
1999 | 쌍방울 | 37 | 124 | 5 | 11 | 3 | 0 | 0.313 | 3.92 | 110 | 69 | 56 | 1.37 |
연도 | 소속팀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4사구 | 탈삼진 | WHIP |
2000 | SK | 32 | 56⅓ | 1 | 2 | 0 | 0 | 0.333 | 5.75 | 75 | 38 | 24 | 1.92 |
KBO 통산 (12시즌) | 508 | 1090⅔ | 65 | 54 | 21 | 0 | 0.546 | 3.45 | 1026 | 494 | 460 | 1.33 |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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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박정현 김수경 | (2명) | 김민태 가내영 (그 외 2명) | 이근엽 나성열 신상윤 (그 외 3명) |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
안병원 이재주 김민범 황윤성 (그 외 3명) | 노승욱 장용대 (그 외 2명) | 전준호 문창환 (그 외 4명) | 이용주 (그 외 4명) | }}}}}}}}}}}} |
[1] 13회 졸업생이며 홍록기, 김병조와 졸업동기다.[2] 유니폼은 94년~95년 시절이다. 안타깝게도 저 두 시즌은 박정현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3] 그 전까지는 1986년 김건우(MBC 청룡)가 18승으로 신인왕 최다승을 차지하고 있었다.[4] 이 때 박정현은 경기 안 나갈 줄 알고 식당에서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코치가 등판 지시를 하니 당황해서 빨리 먹다가 급체를 했다고 한다.[5] 4완투패. 근데 의외로 득점 자체는 해태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해당 시즌 리그 통산 득점 4위인 해태는 500점, 5위인 태평양은 499점이었다.[6] 15개가 선발승이었는데 88년 빙그레 한희민이 거둔(16승 중 14개) 기록을 경신했고, 이 기록은 당시 해태 이강철과 함께 잠수함 투수 최다 선발승 타이기록이었지만 92년 이강철이 이 기록을 깨뜨렸다(18승 중 17개)[7] 역대 KBO 언더핸드 스로 단일시즌 최다 이닝 기록이다. 2위는 같은 해인 1989년 김성길의 233.2이닝.[8] 의외로 이런 경우 에이스들의 자청 등판이 많기는 하다. 1984년 최동원, 2002년 이상훈 등이 대표적.[9] 다만 그 과정에서 박은진이 그들의 몫까지 다 맡으면서 혹사당했다.[10] 1994년 37 2/3이닝 ERA 4.54, 1995년 4 2/3이닝 7.71, 1996년 15 2/3이닝 6.89, 1997년 25 1/3이닝 6.39의 성적을 기록.[11] 1998년 트레이드 기한 마감일. 태평양 투수 3총사의 일원이던 최창호 역시 이날 박종호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된다. 그리고 3개월 뒤 현대가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정명원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태평양 시절부터 함께 고생했던 창호와 정현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라고 말해서 화제가 됐다.[12] 박철순은 이후 기나긴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게 되는 원인이자 원년 이 후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둬 본 적이 없다.[13] 박정현 194cm, 한희민 188cm, 이강철 180cm[14] 특히나 박정현은 투구수가 굉장히 적은 효율적인 투구를 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조정 이닝(Adjust IP)을 기준으로 하면 1989년의 기록도 218.2이닝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오히려 투구수 기준으로 보면 같은 해 최창호가 조정 이닝 239.2이닝으로 더 많은 편이며, 다음 해인 1990년 이강철의 조정 이닝이 박정현보다 많다.[15] 기존 서술에는 이강철은 선동열 덕에 선발만 뛰었다고 되어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4년간 이강철의 기록은 선발 106경기 계투 43경기로, 박정현의 선발 91경기 계투 45경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16] 1989년 기록을 보면 해태 통산 총 득점이 500점, 태평양이 499점이다. 심지어 홈런 개수가 90개, 55개로 35개나 차이가 나는데도 이러한 기록이 나왔다는 게 아이러니. 90년에도 기록상 차이는 좀 커졌지만, 여전히 해태가 리그 4위, 태평양이 리그 5위를 기록했다. 진짜 득점 지원이 바닥을 기게 된 건 1991년 박영길 재임 시점이다.[17] 참고로 같이 출시된 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02 송진우(가명:박흥진).[18] 이 글에서 박정현이 당시 프로 6년차라 했으니 대략 1993년경이다.[19] 시즌 당시 유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