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경기 이전
2.1. 대만의 경기 준비
이번 대회 출전 과정에서, 대만은 상당한 전력을 구축해 등장했다.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을 위해 왕젠민[1],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의 선발 장즈지아[2], 쉬밍지에[3] 등등 메이저리거 차오진후이를 제외한 해외파들을 전부 소집해 준비했기 때문이다.[4]2.2. 안이했던 대표팀
허나 김재박 감독을 비롯 한국야구계가 차오진후이를 제외한 대만의 전체전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고, 당시 삿포로 대회를 앞둔 2003년 한국야구계의 촉각은 오직 차오진후이의 대만 대표팀 차출여부에 쏠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여기에 한 가지 요인을 더하자면 감독 선임도 굉장히 늦었는데, 대회를 불과 3개월 앞둔 8월 초에야 김재박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야 대표팀 전임감독제가 없었으니 현직 프로구단 감독을 끌고 가는건 그렇다 쳐도, 불과 대회 3개월 전에야 감독을 선임하는건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팀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태도였으며 대만 야구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대표팀은 그해 1월에 이미 나가시마 시게오를 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선임한 상태인 것과 비교하면 준비가 상당히 늦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2.3. 한국의 경기 준비
3. 경기 내용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I Olympiad ━━━━━━━━━━━━━━━━━━━━━━━━━━━━ 예선 1차전, 2003.11.5 12:00, 삿포로 돔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R | H | E | B |
대한민국 | 정민태 | 2 | 0 | 0 | 0 | 1 | 0 | 0 | 0 | 1 | 0 | 4 | 0 | 0 | 0 |
중화 타이페이 | 왕젠민 | 0 | 0 | 1 | 1 | 0 | 0 | 0 | 0 | 2 | 1X | 5 | 0 | 0 | 0 |
3.1. 1회-2회 : 선취점을 얻은 대한민국
1회초, 선두타자 이종범이 상대 실책으로 출루한후 2루 도루를 성공 시키고 있다.
이날 경기 대만의 선발은 뉴욕 양키스 산하 더블A에서 뛰던 왕젠민, 대한민국의 선발은 한국시리즈 MVP 수상자였던 현대 유니콘스의 정민태였다. 1회에 이승엽의 우전 적시타와 장성호의 우익선상 2루타로 득점했다.
3.2. 3회-4회 : 추격하는 대만
3.3. 9회 : 다시 앞서는 대한민국, 그런데...
3:2로 앞선 9회초에는 이종범의 적시 2루타가 나오며 4:2로 앞섰다. 하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도루사와 주루미스로 추가점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어이없게 날려버렸으며, 반대로 대만은 6회부터 구원등판한 양젠푸가 4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대만 승리의 디딤돌 역할을 담당했다.[5]9회말, 5회부터 버티며 공을 뿌리던 임창용이 2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고, 이에 부랴부랴 등판한 조웅천이 2아웃까지는 잘 막아냈다. 하지만 천즈위안에게 중전 적시타를 허용한 것을 포함 연속 2안타를 내주며 순식간에 2실점을 해 4:4 동점이 되어 연장전을 치르게 되었다.[6] 연장 10회초, 구원 등판한 장즈지아가 2번 박한이, 3번 이승엽, 4번 김동주 3명의 타자를 맞아 1이닝 퍼펙트 피칭을 기록하며 막아냈다.
3.4. 10회 말 : 통한의 끝내기 실점
이어진 연장 10회말, 한국은 1사후 볼넷과 안타로, 그리고 만루작전으로 만들어진 1사 만루 위기에서 가오즈강에게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중전안타를 맞으며 4:5 패배를 맞이 했다.4. 결과
한국야구 뒷심 부족으로 대만에 무릎약소국이라 생각했던 대만에게 패함으로써 나머지 두 국가 모두에게서 이겨야 본선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중국 상대로는 1승이 가능할지라도, 다음 상대가 일본이란 점이다.
5. 여담
대만 방송에서 나온 한국-대만전. 1:40부터 나온다. |
여담으로 이날 패배는 한동안 대만에서 TV 국가 연주 배경화면으로 사용되었다.
아울러 이 패배는 한국 대표팀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는데 당장 3년 후의 메이저 국제대회의 아시아 예선전 첫경기 상대로 뽑힌 것이다.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적어도 2승을 해야하는 상황에서[7] 1차전 상대가 대만이었던지라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던 상황인데다 삿포로 참사가 지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아 팬들이 상당히 노심초사했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이 왕젠민의 대만 국대 합류 여부였는데 소속팀이었던 양키스가 불허하는 바람에 한국에게는 '불행 중 다행'으로 한시름은 덜었었다.
그나마 전화위복이 된 부분이라면 삿포로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메이저리거 서재응의 차출에 목을 매게 되면서 결국 차출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손민한을 비롯해서 배영수, 박명환 같은 우수한 국내리그 선발자원이 있었음에도 김인식 감독 이하 수뇌부가 끝까지 서재응의 차출을 고집했던 것만 봐도, 삿포로 참사의 트라우마가 당시 기준으로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그 대회 첫경기 대만전에서 '서재응ㅡ김병현ㅡ구대성ㅡ박찬호'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거 콰르텟을 가동하는 철저함까지 보여줬다.
[1] 왕젠민은 이 삿포로 대회와 이듬해 아테네 올림픽 본선까지는 참가했으나, 뉴욕 양키스의 40인 로스터에 합류한 후로는 빅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구단의 반대로 국제대회에서 뛰지 못했다. 이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온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나 참가할 수 있었지만, 이미 대만 대표팀은 황금기를 지나 호구가 된 뒤였고 왕젠민 자신도 전성기를 지난 뒤에 국대팀에 선발된 것이라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2] 한국 한자 독음으로는 장지가(張誌家). 우완 투수이며 2001년 야구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일본 대표팀에 완투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2002~2004년 3시즌간 세이부에서 뛰었다. 대만프로야구로 복귀했으나 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 밑의 항목에서도 장즈지아에 대한 추가설명이 나오니 참조 바람.[3] 한국 한자 독음 허명걸(許銘傑). 우완투수이며 2000~2011년 12시즌은 세이부에서, 2012~2013년은 오릭스에서 뛰고 2014년부터 대만프로야구에서 뛰고있다. 여담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 출전권을 걸고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던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박재홍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된 적도 있다.[4] 당시 차오진후이는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으로 2003년 7월 이제 막 빅리그에 입성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였다.[5] 양젠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본선 한국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지만 1이닝 7실점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6] 사실 9회말 임창용과 조웅천에게 변명거리를 말해주자면 9회부터 갑자기 심판의 판정이 병맛이 되어버렸다. 임창용의 볼넷도 사실 스트라이크성 공까지 볼 판정을 내주며 볼넷을 내준 셈이었고..[7] 일본이 3전 전승을 한다는 가정하에 내린 계산이었다. 한국의 전문가들 역시 일본에 지는 것으로 예상하고 대만전과 중국전을 이겨야 한다는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