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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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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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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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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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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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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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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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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4번
신준옥
(1984~1985)
성준
(1986~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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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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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998)
성준
(1999)
정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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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성준
(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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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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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열
(2001~2002)
성준
(2003~2006)
아카호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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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1999~2001)
성준
(2007~2009)
최기문
(20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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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규
(2007~2008)
성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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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4번
이선희
(2001~2007)
성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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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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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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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90216.010220834420001i1.jpg
성준
成埈 | Sung Jun
출생 1962년 9월 25일 ([age(1962-09-25)]세)
경상남도 창녕군[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계성초 - 대구중 - 경북고 - 한양대[2]
포지션 투수, 중견수[3]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6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6~1998)
롯데 자이언츠 (1999)
지도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연수코치 (2000)
SK 와이번스 2군 재활코치 (2001)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01)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02~2004)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05)[4]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05)[5]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06)[6]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06)[7]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07~2009)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0)
삼성 라이온즈 재활군 코치 (2011)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2~2013)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4)
삼성 라이온즈 BBArk 투수코치 (2015~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17~2019)
수성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0~2024)
협성경복중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전설의 인터벌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소속 좌완 투수.

전병호와 함께 느린 구속과 극강의 인터벌(투구준비 시간)로 유명하다. 통산 97승을 기록했으며, 류현진장원삼이 경신하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활동하였던 좌완 투수들 중 송진우 다음으로 통산 승리가 많았던 선수였다. 은퇴 후에는 SK, 롯데, 한화에서 투수코치를 맡았고 2011년에는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에 돌아와 잔류군 코치로 활동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SK 와이번스의 투수코치로 활동하다가 2014년에는 수석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2014 시즌 후 이만수 감독과 함께 물러나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왔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16102746623.jpg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14112216871.jpg
프로 데뷔 시절 (출처 : 포토로) 평상시 모습치곤 외모가 타고났다.[8] (출처 : 포토로)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116163954041.jpg 파일:성준V.gif
30대 시절 (출처 : 포토로) 투구폼

2.1. 아마추어 시절

좌완이긴 했지만 데뷔 초에는 140km/h에 이르는 공을 던질 정도의 속구형 정통파 투수였다. 경북고 재학 시절에는 그 강속구를 무기삼아 박노준김건우가 이끌었던 선린상고를 고교야구 콩라인으로 만들고, 1981년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참가대회 우승(경기결과)
대통령배 불참[9]
청룡기 우승(vs 선린상고 6:5))
봉황대기 우승(vs 선린상고 6:4))
대붕기 4강(대구고에 패)
황금사자기 우승(vs 광주진흥고 6:0)
전국체전 금메달(vs 인천고 9:4)

이 때 경북고에서 함께한 동반자가 류중일, 권택재, 문병권, 구윤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박노준이 당한 극적인 부상에 더 관심을 가졌다.

2.2. 프로 경력

한양대 졸업 후 1986년 입단하여 첫해부터 선발을 꿰찼다. 그러나 강점이던 구속이 아마시절부터 누적된 부상과 혹사 때문에 저하되자 그는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매우 긴 인터벌과 수많은 견제로 타자를 지치게 만드는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확립했다. 덕분에 이후 30대 초중반까지 삼성 선발투수의 한 축으로 롱런할 수 있었다.

느린 공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투구법을 주로 구사했기 때문에, 타자들의 인내심과의 싸움을 즐겼고 승부구로 130km/h대 중반의 빠른 공을 던져서 삼진을 뺏는 일이 허다했다. 그 전에 110km/h에 달하는 매우 느린 공을 정확한 제구로 꽂아넣기 때문에 그렇게 타이밍을 빼앗긴 것이지만.유희관은 74km/h로 던지기도 했다만 이러한 투구 방식에 의해 뒷날에는 '흑마구의 창시자'라고도 불리게 된다. 흑마구 연습하기 간략버전[10]

성준이 등판하는 날은 무조건 게임 시간이 1시간 이상 길어지곤 했으며, 경기장을 찾은 홈 팬들조차 '성준아 빨리 좀 던지라!' 라고 외쳤을 정도로 긴 시간을 자랑했다. 비슷하게 좌완에 구속이 느려 긴 수싸움을 펼쳤던 강태원과 선발 맞대결을 벌이는 날에는 '아침에 수염을 깎고 와서 성준의 경기를 다 보고 나면 수염이 자라 있다' 라는 전설적인 이야기 또한 존재한다.

요즘에는 12초 룰[11]이 있기 때문에 성준같은 인터벌은 볼 수 없을 듯.. 하지만 주자가 있다면 어떨까?

1이닝 30분 무실점 기록을 보유 중이며, 대구 OB전(1997년 6월 7일 토요일)의 경기 중, 찌는 듯한 대구의 태양 아래에서 제 정신이 아니게 된 정수근이 홈스틸을 시도하다가 성준이 던진 최고의 강속구로 홈에서 아웃된 경험이 있다. 이때는 해설자와 캐스터도 본 헤드 플레이를 했던 정수근에게 욕 안 했을 정도(…). 그리고 정수근은 아웃을 당했음에도 만세를 부르면서 들어갔다(…).

1997년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는 서용빈에게 역전 끝내기 2타점 적시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기도 했다.

또한 원조 로나쌩 클럽 회장으로서 이름을 널리 떨쳤는데, 롯데 자이언츠만 만나면 에이스급 활약을 펼치며 패한 적이 없었다.[12] 오죽하면 14년차 퇴물 투수를 롯데 자이언츠가 영입했을까?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226000045396.jpg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222000046549.jpg
쓸쓸했던 말년 선수시기 (출처 : 포토로) 롯데 자이언츠 현역선수 시절 (출처 : 포토로)

2011년 7월 27일 마구마구에 레전드 카드로 추가되었는데 제 1잠재력이 로나쌩이다. 능력은 롯데 관련 세트덱을 상대 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체력제외 전 능력치 +3)

통산 100승에서 단 3승만을 남겨 두고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이상목은 100승을 올리긴 했으나 염종석은 7승만을 남겨 두고…) 2011년 삼성 코치 시절에 우승하기 전까지 우승 기록이 전무했고 선수 시절에 준우승 4번, 코치 시절에 준우승을 한 번 했다.[13] 2011년에는 소속 팀이었던 삼성이 우승했으니 처음으로 우승을 맛본 셈이지만, 이 때 신분이 2군 코치라 우승했다고 보기도 애매할 수 있다.~

3. 지도자 경력

3.1. SK 와이번스 1기,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은퇴 후 2001년부터 SK 와이번스의 투수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주로 2군에서 투수코치를 맡으면서 묵묵히 유망주 투수들을 지도해왔다 보니 SK 코치 1기 시절에는 나름 평가가 괜찮았다. 조범현 감독 재임 시절이던 2006년에는 1군 투수코치로 올라왔으나, 시즌 후 조범현이 물러남에 따라 그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나왔다.

SK에서 나온 뒤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이철성 코치와 함께 롯데의 전력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3.2. 한화 이글스 시절

2010년 시즌을 앞두고 한대화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1군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비록 한화에서는 한 시즌만 있다가 떠났지만 이 시절 류현진과 가볍게 불펜에서 몸을 푸려고 했을 때 장난삼아 류현진에게 변형 슬라이더 그립을 가르쳐 줬는데[14] 이걸 단 3일 만에 실전에서 써먹어서 식겁했다고 한다. 그 날 류현진이 승리한 인터뷰에서 성준 투수코치의 도움이 컸다면서 야갤에서 웃음 바다로 만들어 줬다. 반대로 방출 직전의 상황에서 최후의 기회를 받았던 박정진에게는 투구폼을 고칠 것을 권유했는데, 박정진은 고칠 것을 거부한 후에 오히려 포텐이 터진 일화도 있었다.[15]

3.3.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2011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잔류군 투수코치로 복귀하였다. 전병호와 함께 흑마신 양대 산맥이 한 팀에 강림하였으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기대되었지만, 전병호는 그전에 계약이 해지돼서 나가버렸다. 전병호가 맡았던 잔류군 코치를 맡았지만,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공헌해 그쪽으로 더 알려졌다. 덕 매티스, 저스틴 저마노를 데려온 게 그다.

장효조 2군 감독의 투병 및 별세로 인해 2군 투수코치였던 양일환이 2군 감독대행을 맡게 되자 남은 일정 동안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해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3.4. SK 와이번스 2기 시절

2012년 이만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 와이번스의 투수코치로 다시 돌아왔다. 평가는 호평과 혹평이 반반. 시즌 초반엔 그럭저럭 했으나, 시즌 중반으로 접어든 6월부터는 자신의 투구 인터벌만큼 느린 투수교체 타이밍과 혹사 논란 등으로 인해 투수들이 연속으로 박살나면서[16] SK 팬들 사이에서 최경환 타격코치와 함께 나쁜 평을 들으면서 엠팍이고 김성근 감독 지지성향의 팬들이 모인 솩갤이고 전부 성준의 무능함을 성토하는 글로 가득했다[17]. 이에 분노한 SK 팬들은 김성근 감독 시절 투수코치였던 김상진을 1군 투수코치로 올리든지, 아니면 가토 하지메 전 투수코치를 다시 영입하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했던 시기의 정대현, 전병두, 이승호, 고효준 등 특급 불펜투수들이 이적과 부상, 군 입대로 빠진 상황에서 박희수, 정우람의 기존 필승조에 다른 팀에선 전력 외로 분류되었던 박정배전유수를 살려내 불펜 야구를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하면서 성적을 낸 것에 대한 호평도 있다. 게다가 김광현 조기 콜업을 말리다가 현역 시절 4년 선배인 이만수 감독과 다퉜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축으로 재평가(?) 받았다. 게다가 저 때 그럴 거면 니가 감독하던가라는 말을 이만수 감독에게서 들었다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중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 아니냐는 동정론이 생겼다.[18]

2013년에는 과감하게 KIA에서 수소폭탄 소리를 듣던 진해수를 트레이드로 받아들여겁도 없이 불펜 투수답게 교정시켜 호평을 받았다.[19]

2014년에는 팀의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수석코치로 보직을 옮겨 활동하게 되었고 투수코치는 조웅천, 김원형이 맡게 되었다. 사족으로 타격코치진도 김경기, 정경배로 바뀌었다.[20]

하지만 2014 시즌 후 이만수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자, 팀을 떠난다는 설이 들리고 있다.

결국 SK 구단 공홈 확인 결과 선수단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구단을 떠난것을 확인했다.

3.5. 삼성 라이온즈 2기 시절

파일:3f4fe13a-13b6-4d37-876f-674848a3.jpg
2014년 12월 1일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복귀하였다. 카도쿠라 켄 BB아크 투수지도 위원이 1군 불펜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됨에 따라 BB아크 투수지도 위원으로 보직을 받았다. 2015년 3월 김건필, 박민규, 이승우, 장필준을 데리고 에 차린 단기 재활캠프를 꾸리는 것으로 그의 삼성 2기 첫 행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6월 들어 밸런스가 붕괴된 장원삼다시 다듬고 있는 중이다.

2016 시즌 후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 2019년 허삼영 감독 선임 이후 코칭스태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다. 2019년 12월에 뜬 기사에 따르면 새로 창단되는 대구 수성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가게 됐다.

4. 전설의 인터벌

고교 시절까지만해도 140km/h의 패스트볼슬라이더를 던지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였으나, 혹사와 부상 등으로 구속이 저하되었다. 그래도 프로 초창기 시절에는 좌완이라는 메리트, 140에 가까운 구속과 구위가 있어서 인터벌이 길지는 않았는데, 이후 구위가 떨어지면서 스플리터커브볼을 장착한 후 전설이 시작되었다. 요즘 투수들은 인터벌 제한이 있어 2~3구 던질 시간에 성준은 공 한 번 던질까 말까였다. 만약 주자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타자뿐 아니라 주자도 견제했기에 더욱 더 길어진다. 당시 특유의 인터벌보다 주자 견제가 더 대단했다. 본인의 구속이 느리고 인터벌도 길고 투구동작도 빠르지 않음을 알기에 좌완임에도 더더욱 주자를 견제하는 스타일이었고 때로는 투구보다 견제구를 더 많이 던질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모자 고쳐쓰고, 1루 한 번 쳐다보고, 포수 한 번 쳐다보고, 심판한테 사인 보내 놓고, 바지 한 번 올리고, 로진백 한 번 만지고, 볼 교체 한 번 해주고, 다시 3루 한 번 보고, 1루 견제 몇 번 한 후에 기다리다 타자가 제 풀에 지쳐서 타임을 부르면 가래 한 번 뱉어주고, 엉덩이 한번 긁고, 심판도 지쳐갈 무렵... 느닷없이 130km/h의 강속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다.

1997년 6월 7일에 치러진 낮경기 대구 OB전이야말로 백미. 1번 타자 정수근이 6구 승부 끝에 중전 안타로 진루한 뒤, 2번 타자 이명수와의 7구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그렇게 중심 타선으로 연결되고, 심정수가 10구까지 가는 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무사 만루가 된다. 그렇게 타자 3명만 상대했는데 2시 15분이 되었다. 이후 4번과 5번 타자를 파울플라이, 삼진으로 잡아내고 2사 만루. 여기까지 오는 데에 수많은 견제구를 던졌음은 말 할 필요도 없고, 특히 정수근은 1루부터 2루, 3루까지 쭉 견제구를 받았다. 같은 팀 야수들, 견제를 받는 주자, 그리고 상대 선발인 진필중은 몸을 풀었다 말았다 하는 상황.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여름 오후 2시 대구 경기다. 그렇게 6번타자 안경현의 타석에서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정수근이 냅다 홈스틸을 시도했고, 성준은 역대 최고의 강속구를 던져 홈에서 아웃시켰다. 이럴 때는 감독과 코치의 질책을 듣는 건 물론, 팀 분위기도 안 좋아지며, 중계진에게조차 좋은 소리 듣기가 힘들지만 당시 그 누구도 정수근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1회 초가 끝났을 때 시간은 무려 2시 30분... 이후 OB 선수들은 단체로 더위를 먹어 OB 수비진은 5회까지 4실책, 진필중은 6.2이닝 7실점 2자책을 기록하면서 삼성이 7:4로 승리했다.

라이벌 좌완투수 강태원이 분전했지만, 김응용 감독이 강태원에게 중간계투를 주로 맡겼기 때문에 성준의 넘치는 포스에는 좀 부족한 감이 있다. 단, 인터벌만으로는 이 분도 만만치 않아 어쩌다가 둘이 맞붙는 날은 정말 볼 만 했다는 후문. 이병훈 해설위원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 당시 성준하고 강태원선발 투수로 맞대결 하고나면 턱에 수염이 나있더라(...)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 26분 30초부터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이건열이 술회하기를 성준이 선발투수로 등판한다는 말을 들으면 해태 선수들이 '아, 죽었구나..'하면서 한탄했다고 한다.

만약 박한이와 승부했다면 대략 이런 전개가 예상된다.
파일:attachment/성준/1270742655.jpg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6 삼성 29 149 15 5 2 0.750
(공동 4위)
2.36 135 9 43 60 48 49 1.17
1987 21 109 4 7 1 0.364 3.55 111 11
(5위)
48 32 44 43 1.45
1988 31 159⅔ 11 8 2 0.579 3.33 135 17
(2위)
77 59 67 59 1.31
1989 13 58⅓ 3 2 0 0.600 3.39 55 4 24 14 23 22 1.34
1990 12 36 3 1 1 0.750 2.25 32 2 13 19 10 9 1.25
1991 28 148⅔ 8 4 1 0.667 2.97 141 9 56 59 61 49 1.31
1992 21 124 8 6 0 0.571 3.99 120 15 61 65 57 55 1.43
1993 21 139 12 4 0 0.750
(3위)
2.07
(3위)
115 8 54 51 34 32 1.19
1994 26 152⅓ 14 8 0 0.636 3.37 130 9 68 46 66 57 1.26
1995 25 126 7 8 0 0.467 4.36 127 13 52 58 67 61 1.37
1996 16 50 3 3 0 0.500 3.96 52 4 35 36 22 22 1.66
1997 28 89⅔ 7 7 0 0.500 3.31 91 6 44 45 44 33 1.41
1998 17 40⅔ 1 1 0 0.500 4.87 48 4 23 16 22 22 1.7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9 롯데 13 23⅓ 1 2 1 0.333 5.79 25 4 12 15 16 15 1.59
KBO 리그 통산
(14시즌)
301 1405⅔ 97 66 8 0.595 3.32 1317 115 610 575 581 518 1.34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6년 6완투 1완봉
1987년 4완투 2완봉
1988년 4완투 2완봉
1991년 2완투 1완봉
1992년 6완투 1완봉
1993년 6완투 2완봉
1994년 3완투 1완봉
1994년 1완투 0완봉
KBO 리그 통산 32완투 10완봉

6. 관련 문서


[1] 본관 창녕 성씨 집안으로 출생지와 일치하다.[2] 1982학번[3] 1991년에 5경기만 외야로 일시적 출장한 적이 있으며, 타자 기록은 0할이다.[4] ~5월 26일[5] 5월 27일~[6] ~6월 19일[7] 6월 20일~[8]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하는 마츠시게 유타카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9] 군산상고가 천안북일고에게 승리를 거두며 우승. 우승후보 선린상고는 1회전에서 무명학교인 광주진흥고에 0-2 패배를 당한다. 혜성처럼 나타난 광주진흥고의 에이스는 김정수(해태)였다.[10] 이외에도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에 구질/구종별 투구폼의 차이가 거의 없을 경우 효과는 배가 된다.[11]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공을 받은 후 12초 이내에 투구해야 한다. 이를 초과하면 1회 경고 후,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볼로 판정된다.[12] 단, 이것은 정규 시즌 한정으로 1992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패전 투수가 되었다. 어찌 보면 성준을 꺾어서 롯데가 우승한 것.[13] 삼성 선수 시절인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준우승, SK 코치 시절인 2003년 준우승. 롯데 선수 시절인 1999년에는 팀이 준우승했지만 성준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있지 않았다.[14] 약간 꺾이는 슬라이더라고 말했었다.[15] 오히려 불펜코치였던 정민철은 박정진에게 "네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봐라." 라는 조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자 박정진은 성준 코치의 조언에서 살짝 투구폼을 보완하는 걸로 마무리한 뒤 교육리그를 다녀왔고, 2010년 1군에 자리잡으며 노망주로 포텐이 터졌다.[16] 대표적으로 김광현, 정우람, 박희수, 제춘모 등. 그리고 송은범이재영은 몸이 안 좋다고 자진 강판하기까지 했다.[17] 조범현 감독 시절 때도 주력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 2005년 팀 평균자책점 1위 팀의 투수진이 2006년 무너졌다고 하는데, 사실 2001년 재활코치로 잠깐 있던 적을 제외하면 2006년까지 성준은 SK에서 투수코치를 계속하며 2번 가을야구를 경험했으며, 2006년의 선발진 붕괴는 2005년 플레이오프 직행을 놓고 접전을 벌인 정규시즌 과정에서 투수진에 걸린 과부하의 연장선 상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18] 한참 뒤에 이만수가 인스타에 성준을 칭찬하는 글을 올린 것을 봐서는 그 당시에 의견 차이로 다퉜지만 원체 친한 선배이고 지금은 화해한 듯 하다.[19] 진해수는 7월부터 8월 14일 현재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 가는 중이며 승계주자 실점도 15명의 주자 중 딱 1명밖에 되지 않는다.언터쳐블!? 그래도 전체 평균자책은 기본 5점대[20] SK, 2014시즌 이끌 코칭스태프 구성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