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퀸란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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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퀸란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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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 |
한 시즌 최다 삼진 | 173삼진[1] |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16번 | ||||
그렉 마이어스 (1989) | → | 톰 퀸란 (1990) | → | 결번 |
결번 | → | 톰 퀸란 (1992) | → | 터너 워드 (1993) |
{{{#ffffff [[필라델피아 필리스|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30번}}} | ||||
제프 만토 (1993) | → | 톰 퀸란 (1994) | → | 케빈 플로라 (1995) |
{{{#ffffff [[미네소타 트윈스|미네소타 트윈스]] 등번호 23번}}} | ||||
그렉 해리스 (1995) | → | 톰 퀸란 (1996) | → | 토드 리치 (1997~1998) |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7번}}} | ||||
정현희 (1999) | → | 퀸란 (2000~2001) | → | 신동민 (2003) |
LG 트윈스 등번호 24번 | ||||
해리거 (2001) | → | 퀸란 (2002~2002. 5. 2.) | → | 케펜 (2002. 5. 3.~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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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퀸란 Tom Quinlan | |
본명 | 토머스 레이먼드 퀸란 Thomas Raymond Quinlan |
출생 | 1968년 3월 27일 ([age(1968-03-27)]세) |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힐머레이 고등학교 |
신체 | 190cm, 90kg |
포지션 |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6년 드래프트 27라운드 (전체 686번, TOR) |
소속팀 |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0, 1992) 필라델피아 필리스 (1994) 미네소타 트윈스 (1996) 현대 유니콘스 (2000~2001) LG 트윈스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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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3루수였으며, 국내 팬들에게는 현대 유니콘스와 LG 트윈스에서 외국인 타자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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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시즌에 처음으로 빅 리그 무대를 밟았으나 그다지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토론토에서 단 14경기만 뛴 후 1993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 미네소타 트윈스 등을 돌아다녔으나 4시즌 42경기 타출장 .155/.234/.259 58타수 9안타(2루타 3개) 1홈런 5타점 8득점 6사사구 26삼진으로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그나마 1992년 당시 소속팀이던 토론가 1992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해 우승반지를 끼긴 했지만, 월드 시리즈 로스터에 포함된 것도 아니라서 큰 의미는 없는 기록.
1996시즌 미네소타에서 뛴 이후로는 빅 리그 무대를 다시 밟지 못한 채 3년 간 트리플A에서만 뛰었다. 성적은 0.8 전후의 OPS로 나쁘지는 않았으나 문제는 퀸란은 3년 내내 타신투병으로 악명 높은 PCL에서만 뛰었다는 것. 1999시즌에는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에서 뛰었으나 .743에 불과한 OPS를 기록했다.
2.1. 현대 유니콘스
하락세를 타며 마이너 무대에서의 경쟁력도 잃어 가던 퀸란은 2000시즌을 앞두고 에디 피어슨을 대신할 외국인 타자를 구하던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정규 시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2달 동안 18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중심 타선으로 활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컨택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완전히 공략당하며 성적이 급락했다. 그나마 홈런은 37개나 때려내며 리그 3위에 오를 정도로 장타력 하나는 출중했지만, 타율은 .236으로 멘도사 라인보다 살짝 높은 수준에, 삼진도 '173개나 당해 2024시즌까지도 깨지지 않은 한 시즌 최다 삼진 기록을 썼다. 비슷하게 공갈포 외인 소리를 들었던 트레이시 샌더스는 사실 볼넷도 잘 고르는 전형적인 OPS 히터였지만, 안타깝게도 퀸란은 볼넷도 36개를 얻는 데 그쳐 출루율도 .302에 그쳐 3할 턱걸이 수준이었다. 덕분에 37개의 홈런을 치고도 OPS는 .822에 그쳤는데, 심지어 2000시즌은 타고투저 시즌인 데다 퀸란의 홈구장은 극도의 타자 친화 구장인 숭의야구장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타격 생산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실제로 스탯티즈 기준 wRC+가 91.6에 불과하며, 단일 시즌 30홈런을 기록한 타자 가운데 wRC+가 100을 밑도는 것은 00퀸란이 KBO 40년 역사상 유일하다. 아울러 30홈런 타자 가운데 역대 최저 타율 기록 선수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2]
정작 이 해 현대는 입이 떡벌어지는 핵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개인 통산 3번째로 30-30을 달성하고 타점왕에 오른 박재홍, 홈런왕에 오른 박경완, 타격왕에 오른 박종호까지 타격왕, 홈런왕, 타점왕을 모두 서로 다른 선수로 보유하고 있었고, 부상 때문에 87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3할 타율-4할 타율로 리드오프 역할은 완벽히 해낸 전준호, 선발과 백업을 오가면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이명수와 이숭용, 크게 모자람 없는 평균 이상의 타격을 선보인 박진만과 심재학까지 거의 모든 선수가 평균을 넘는 타격 생산성을 보이며 가히 상대 투수진에 쉴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퀸란 혼자서 낮은 타율로 빌빌대면서 8번 타자로나 자주 나서야 했다.
그럼에도 퀸란이 방출되지 않고 오히려 주전 3루수 자리를 지킨 이유는 모두의 엄지를 치켜 세울 만큼 철벽이었던 수비력 때문이었다. 1루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빨랫줄 같은 송구에, 종종 앉아서 송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해설자들이 감탄을 내뱉었을 정도였다. '모든 타구가 3루로 갔으면'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철벽같은 수비력을 지녔기 때문에 퀸란은 아무리 삼진을 많이 당하더라도 주전 3루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아울러 퀸란때문에 직전 시즌 주전 3루수였던 박종호가 2루로 이동하면서 박종호-박진만이라는 KBO 역사에 남을 키스톤 콤비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 퀸란이 한 편의 반전 드라마를 쓴 시기가 바로 포스트시즌이었다. 당시에는 8개 팀이 드림리그와 매직리그 두 리그에 양분되어 있는 양대리그 제도였고, 드림리그 1위였던 현대는 플레이오프에서 준PO 승자 삼성을 만나 가볍게 4전 전승으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퀸란은 정규시즌과 달리 PO에서는 타율 .308(13타수 4안타)로 준수한 타격감을 선보였고, 4개의 안타 중 3개나 장타(2루타 2개, 홈런 1개)로 이어졌을 정도로 특유의 파워도 과시했다.
그러나 본 무대는 한국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드림리그 2위이자 PO에서 LG를 꺾은 두산 베어스였는데, 1~3차전에서 현대의 철벽 선발진이 두산 타선을 원천 봉쇄하며 현대가 3연승을 달렸지만, 이어진 4~6차전은 살아난 두산의 방망이가 현대의 지친 마운드를 두들기며 두산이 3연승을 질주, 3승 3패로 7차전에 돌입하게 됐다. KBO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거의 보기 힘든 7전제 리버스 스윕이라는 대기록을 헌납하기 직전이었지만, 여기서 퀸란이 날아올랐다. 퀸란은 2회 말 0의 균형을 깨는 선제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더니, 2:2로 다시 동점이 된 4회 말 앞서가는 스리런 홈런을 작렬하며 리드를 되찾아 왔다. 퀸란은 이어 8회 말에도 쐐기를 박는 솔로 홈런을 쳐내며 4타수 3안타(2홈런) 6타점이라는 원맨쇼로 현대의 우승을 견인했다. 참고로 이날 경기 스코어는 6:2 현대의 승리. 다시 말해 퀸란 혼자서 현대의 모든 득점을 책임졌다는 뜻이다.
앞선 6경기에서도 타율 .272(22타수 6안타) 1홈런 4타점으로 타격감이 나쁘진 않았으나 좋지도 않았던 퀸란이지만, 이 7차전에서의 맹활약으로 팀에 트로피를 선사하면서 외국인 선수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진기록을 남겼다.[3] 퀸란은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타출장 .308/.438/.692 13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출장 .346/.370/.731 26타수 9안타 3홈런 10타점의 성과를 남겼다. 포스트시즌 종합 성적은 11경기 .333/.395/.713 39타수 13안타 4홈런 12타점으로, 타율과 출루율은 페넌트레이스 때보다 약 1할이 높았고, 장타율은 무려 약 2할이나 높았다. 비율로만 보면 페넌트레이스에서 경기당 0.28개(133경기 37홈런)씩 때려내던 홈런포를 포스트시즌에 진입하자 경기당 0.36개(11경기 4홈런)씩 쏘아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재계약에 성공한 퀸란이지만, 2001시즌 성적은 약간 아쉬웠다. 작년에 비해 삼진은 조금 줄고 볼넷은 늘리면서 나름대로 출루율을 끌어 올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49볼넷/160삼진이라는 파멸적인 볼삼비를 보였다.[4] 타율도 .242로 여전히 낮았던 데다 홈런도 28개로 줄어드는 등 하향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팀 케미스트리를 깨트리는 행동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플레이오프에서도 4경기에서 14타수 1안타로 삽질만 하며 작년에 제압했던 두산에게 업셋을 허용하는 데 일조했고, 결국 현대는 시즌 종료 후 퀸란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한편, 퀸란을 보낸 현대는 대학 무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김민우를 차기 주전 3루수로 낙점하고 2002시즌에 돌입했지만, 김민우가 시즌 전 김용달 타격코치의 제안으로 무리해서 스위치 히터 전향을 시도했다가 망해버리면서 3루 자리에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급하게 채종국을 기용해 공백을 메웠으나 타격이 많이 아쉬웠고, 결국 2003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 박재홍을 주고 정성훈을 사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2. LG 트윈스
그런 퀸란에게 손을 내민 팀은 다름아닌 LG 트윈스. LG는 2000년 짐 테이텀과 브렌트 쿡슨의 연이은 실패 이후 찰스 스미스, 댄 로마이어 등 기존에 한국 무대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검증받은 외국인 타자들을 주워다 쓰는 기조를 유지했는데, 2002시즌도 마찬가지라서 현대를 나온 퀸란과 삼성을 나온 매니 마르티네스로 외국인 타자진을 구성했다.그러나 정규시즌에 들어서자 13경기에서 28타석 21타수 무안타라는 끔찍한 성적만 기록한 끝에 4월 23일 2군행 통보를 받았고, 5월 3일에 웨이버 공시되며 방출됐다. 참고로 이 성적으로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타석 타율 0.000 보유자라는 불명예 기록도 갖게 됐다.[5]
사실 퀸란의 영입부터가 LG의 답이 없는 삽질이었는데, 퀸란은 애초에 2001시즌 후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대가 재계약을 포기한 것은 이러한 퀸란 본인의 의사도 있었기 때문. 그런 선수를 굳이 데려다 썼으니 성공할리가 만무했다.
LG를 나온 이후로는 당초 예정대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0 | 현대 | 133 | .236 | 115 | 23 | 2 | 37 (3위) | 91 | 74 | 2 | 36 | 11 | 173 (1위) | .302 | .520 | .822 |
2001 | 123 | .242 | 100 | 13 | 1 | 28 | 66 | 66 | 0 | 49 | 10 | 160 (1위) | .335 | .481 | .81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2 | LG | 13 | .000 | 0 | 0 | 0 | 0 | 0 | 0 | 0 | 3 | 3 | 10 | .222 | .000 | .222 |
KBO 통산 (3시즌) | 269 | .233 | 215 | 36 | 3 | 65 | 157 | 140 | 2 | 88 | 24 | 343 | .315 | .490 | .806 |
4. 여담
- 은퇴 후로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으로는 독립리그의 한 팀에서 동생 랍과 같이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
- 마구마구에서는 엄청난 공갈포로 나온다.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던 00시즌의 컨택트가 63[8]으로, 00현대 덱의 효과를 받아도 69로 여전히 하이고, 베테랑에 레전드 버프까지 받아야 어느 정도 컨택이 될 정도.
- 2020년 NC 다이노스의 외국인 타자인 애런 알테어로 인해 야구팬들에게 20년 만에 다시 화제가 되었다. 퀸란과 알테어는 포지션은 3루수와 중견수로 다르지만 8번 타자로 자주 나선 점, 컨택도 나빴고 삼진도 많았지만 출중한 장타력으로 이를 커버한 점, 수비가 좋았던 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 등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미지적으로 비슷하단 것이지 실제 성적표를 까보면 알테어가 퀸란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순수하게 성적만 놓고 보자면 비슷한 타격 생산성에 압도적인 수비력으로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타격 스타일은 정반대이나 딕슨 마차도와 비슷하다.
- 팬 서비스가 아주 좋았던 외국인 선수였다.
-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했을 때는 홈 구장 바로 앞에 위치한 수원 한일타운에 거주했다.# 이외에도 경기가 없을 때는 화서역까지 택시를 타고 간 뒤 전철로 갈아타고 강남 코엑스몰이나 이태원에 가서 여가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이와 대척점을 이루는 선수는 한 시즌 8삼진을 당한 김일권.[2] 퀸란 다음은 2017년 제이미 로맥(타율 .242 31홈런)이며,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로만 따지면 2018년 최정(타율 .244 35홈런)이다.[3] 공교롭게도 이듬해인 2001년에도 두산 베어스의 타이론 우즈가 KS MVP를 수상하며 2년 연속으로 외국인 선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4] 173개에 묻혀서 그렇지 160개도 역대 한 시즌 최다 삼진 4위에 달하는 기록이다.[5] 퀸란 다음으로는 25타석 20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1996년 염경엽과 1999년 김승관이 있다.[6]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7] 참고로 랍 퀸란은 2004년과 2006년엔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부상 때문에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고, 2010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게 말하니 별 볼일 없는 선수 같지만 나름 8년간 458경기를 출장했고 포스트시즌에서 홈런도 쳐본, 성공한 커리어를 지닌 선수이다. 그리고 2005년 이후로는 마이너로 내려간 적도 없는 나름 풀타임 메이저리거였다. 주전이 아니었기에 많이 못 나온 것뿐.[8] 참고로 레어 카드 능력치는 83/63/66/83/83인데 재평가로 추가된 것이고 스페셜 카드는 80/60/62/78/78로 모든 선수들 중 컨택트 꼴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