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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수 (1995~1997. 6. 7.) | → | 피어슨 (1999) | → | 윤인섭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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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피어슨 Eddie Pearson | |
본명 | 에디 라본 피어슨 Eddie Lavorn Pearson |
출생 | 1974년 1월 31일 ([age(1974-01-31)]세) |
앨라배마 모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비숍 스테이트 커뮤니티 대학 |
신체 | 190cm, 102kg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 입단 | 199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4번, CHW) |
소속팀 | 현대 유니콘스 (1999) 해태 타이거즈 (2000) 티그레스 카피탈리노스 (2000) 올메카스 데 타바스코 (2001~2002) 랑고스테로스 데 칸쿤 (2002) 캔자스시티 T-bones[1] (2003~2004) 토로스 데 티후아나 (2005) 캔자스시티 T-bones (2005~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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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리그에서 뛰었던 미국의 야구선수 였다.2. 선수 경력
2.1. KBO 리그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피어슨은 육중한 몸을 앞세운 전형적 파워 히터 이미지였고 현대가 홈으로 썼던 숭의야구장도 프로야구 1군 경기장 중 그라운드 크기가 가장 작았기에[2] 팀의 장타력을 극대화해줄 것으로 기대했다.실제로 피어슨은 1999년 한 시즌을 뛰는 동안 31개의 홈런과 108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겉보기에는 꽤나 괜찮아보이는 성적을 거두긴 했다. 그러나 이 당시 리그가 역대급 타고투저 환경이었기에 홈런 순위 10위, 타점 7위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타율이 29위에 머물러 컨택 능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극악의 선구안이었는데 비슷해보이는 공이면 냅다 스윙을 하는 타격 스타일이라 삼진이 많았다. 결국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가 0.849에 머물러[3] 타격 생산성에서는 그저 그런 선수로 기록됐다.
타격이 그나마 봐줄만 한 정도였다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되는게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심각했다.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발이 매우 느렸고 수비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서 매번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 팀에 민폐를 끼쳤다.
여기에 직전 시즌 현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외국인 타자 스캇 쿨바에 비하면[4]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영양가가 많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2연패를 노리던 팀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고 당연히 구단에서도 피어슨과의 재계약을 진작에 포기해버렸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퇴단한 이후 해태 타이거즈와 계약했으나 시즌 전 방출되면서 짧은 한국 생활을 끝냈다.
3. 여담
- 덩치가 너무 커서 유니폼을 만드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5]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9 | 현대 | 129 | .289 | 145 | 12 | 0 | 31 | 108 | 67 | 0 | 47 | 5 | 85 | .351 | .498 | .849 |
KBO 통산 (1시즌) | 129 | .289 | 145 | 12 | 0 | 31 | 108 | 67 | 0 | 47 | 5 | 85 | .351 | .498 | .849 |
5. 관련 문서
[1] 당시에는미국 독립 야구 노던 리그 소속돼 있었으며, 지금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 속해있는 캔자스시티 모나크스(Kansas City Monarchs)의 전신이다.[2] 숭의야구장의 홈플레이트~외야 펜스 길이는 좌우가 고작 91m, 중앙 담장까지의 길이도 110m였다. 이 때문에 1.5m 높이의 콘크리트 펜스 위에 3m 높이의 철망을 덧붙였다.[3] 당시 피어슨의 장타율은 0.498로 리그 최상위권이었지만 출루율이 4할에 못 미쳤다.[4] 팀의 주전 1루수로 뛰는 동안 박재홍, 김경기, 이숭용 등과 함께 중심 타선을 이뤘는데 타율 4위, 홈런 5위, 타점 3위의 수준급 성적을 기록하며 현대의 창단 첫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5]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