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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15:46:01

서승화

서승화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LG 트윈스 등번호 57번
김신섭
(2001)
서승화
(2002)
이병석
(2003)
LG 트윈스 등번호 22번
박영복
(2002)
서승화
(2003~2007)
김태군
(2008~2008.5.)
김태군
(2008~2008.5.)
서승화
(2009)
김광삼
(2010~2016)
LG 트윈스 등번호 47번
이형종
(2009)
서승화
(2010~2011)
조윤준
(2012~2015)
}}} ||
파일:external/www.inews24.com/1234512390837_1.jpg
서승화
徐承和 | Seung-hwa Seo
출생 1979년 7월 13일 ([age(1979-07-13)]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유천초[1] - 한밭중 - 대전고 - 동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8년 2차 3라운드 (전체 23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2~2011)
지도자 동강대학교 야구부 코치 (2019~)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7~2009)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사건사고5. 연도별 성적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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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 트윈스투수.

고등학교 시절, 195cm의 큰 키에 150km/h의 직구와 변화구를 내리꽂으며 지옥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할 정도로 촉망받는 좌완 파이어볼러였으나, 프로에선 좋지 못한 성격과 유리멘탈로 인한 각종 논란과 더딘 성장 때문에 말 그대로 지옥에서 온 좌완 파이어볼러가 되며 빛을 보지 못하고 방출되며 은퇴했다.

2. 선수 경력

대전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공을 던져 많은 야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였을 정도로 좋은 재목으로 여겨졌다. 1998년 LG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서승화는 동국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LG는 5억 원의 계약금과 함께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2] 그러나 이것은 서승화 입장에서 봤을 때나 5억 원이지, 구단의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10억 원(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계약 파기금 5억원 + 5억원)을 들여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는 동국대학교 시절 이중계약 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LG는 비공식적으로 KIA 타이거즈한기주의 10억 계약금 신화를 자신들이 먼저 시전한 것이다. 피츠버그에 이적료를 지불하긴 했지만, 5억 원까지 가진 않았고, 실제로는 10만 달러를 지불했다. 10억 계약금 신화는 아니란 말.서승화 LG와 입단 계약

LG 트윈스의 전설적인 좌완 투수였던 이상훈의 백넘버 47번을 받은 것을 보면, LG가 이 선수에게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번호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고, 프로 생활 내내 22번을 달다가 은퇴하기 전인 2010~2011 시즌에 달았다는 게 함정.[3]

구속에 비해 제구력이 좋지 않은 것이 흠이라, 당시 좌완투수 덕후 김성근 감독이 집중 조련을 했었다고 한다.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라 체력이 약해서 50구만 던지면 그 이후의 공은 비실비실 들어와서 동네북이 된다는 점이었다. 즉,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서승화가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 LG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뼈아팠으며, LG가 2000년대 들어서 부진한 큰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03년 국민타자 이승엽벤치클리어링 도중 난투극을 벌이면서 나쁜 쪽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당시 평균자책점 5점대 패전조로 거의 등판하던 서승화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빈볼러라는 이름이 따라다니게 됐다. 이 경기에서 서승화는 등판하지 않았으나 벤치클리어링 도중 서승화가 선배인 삼성 김한수에게 달려들자, 이를 본 이승엽이 서승화를 공격하게 되었고, 서승화도 받아치면서 싸움이 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게 이상하게 와전되어 서승화가 이승엽에게 아리랑볼을 던졌고 이승엽이 그딴 공은 안 치겠다며 받아쳤다는 등 이상한 뜬소문이 더 붙기도 했다.

그나마 2004년엔 14홀드로 2자리수 홀드를 찍기는 했으나, 그것 외에는 형편 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여전히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10억씩 주고 데려온 유망주가 성장하지 못하고 등판할 때마다 불을 지르는 데다가 잦은 부상과 사건사고를 터뜨리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시기 이순철의 황태자 소리를 들었었다.

결국 2007~2008 시즌은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자리를 비우고 2009년에 복귀했다.[4] 후반기 첫 경기인 7월 28일 잠실 삼성전에서 3년 만에 복귀해 1.1이닝 3볼넷 3K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이틀 뒤 잠실 삼성전에서 선발등판해 2.2이닝 7피안타 5볼넷 8실점의 최악투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리고 8월 2일 목동 히어로즈전 연장전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투수가 없어 10회말 구원투수로 나와 클락 한 타자만 상대해 안타를 허용하고 내려갔는데 이재영이 이택근에게 끝내기안타로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1주일 사이 2번의 패전을 적립했다.

결국 2군에 내려가 조정기를 가졌다가 8월 18일 두산전 선발 등판을 통해 1군에 복귀했다. 이 경기에서 서승화는 6회까지 무실점이라는 의외의 호투를 보여주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불펜이 불안한 약팀 LG는 7회에도 서승화를 내보냈고 그 결과 3실점하면서 2:3으로 역전당해 6.1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패전위기에 몰렸으나 8회에 타선이 터지면서 패전은 면했다. 그래도 데뷔 후 최다이닝 소화에 6년만에 기록한 통산 2번째 퀄리티스타트였다. 4일 휴식 이후 8월 23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투수로 예고되어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2군에 내려가 있었을 때 후배 이병규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먹고 시즌을 마감했다. 당일 선발은 박지철로 급하게 변경되었다.

2010년 들어 LG는 터지지 않는 만년 유망주인 서승화를 선발로 육성하려고 많은 기회를 주었다. 2010년 4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5이닝 1실점 무자책점 2피안타로 호투하며 가능성을 높였다. 영점이 덜 잡혔다고 판단한 박종훈 감독에 의해 다시 2군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심수창의 빈 자리를 메울 4선발감으로 확정된 김광삼을 제외한 5선발군 가운데 이범준과 함께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였다.

2010년 5월 5일 어린이날 두산전에서 4이닝 10피안타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2010년 5월 21일 두산전에서 데뷔 8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5월 28일 목동 넥센전에서 영 좋지 않은 제구로 4이닝 8피안타 5사사구 6실점 3폭투를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고 다음날 2군행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10년 9월 16일 서승화는 김태군과 같이 1군에 콜업됐고 9월 21일 삼성전에서 원정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였다. 그런데 무려 143구를 던지고 6실점(6자책)으로 완투패를 당했다.경기 하이라이트 이미 5회 말에 6실점을 했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추격조 투수로 교체해야 맞으나, 어찌된 일인지 서승화가 6실점하는 동안 불펜에서 단 한 명의 투수도 몸을 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박종훈 감독이 이날 서승화에게 벌투를 시킨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박종훈 감독은 인터뷰에서 투구 밸런스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완투시켰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2011 시즌 박종훈 감독의 투수진 구성 계획을 보면 선발 후보 명단에 서승화는 없었다.

2011년 4월 28일을 기준으로 좌완 중간계투이상열 뿐이라 좌완 중간계투가 필요할 텐데도 여전히 콜업이 안 되었다.

2011년 8월에서야 2군 경기에 등판하였다. 부상은 아니었고 언급하기 힘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정 때문이었다고 한다.[5]

그러나 2011년 8월 이후로 박종훈 감독의 연이은 삽질과 무능, 그리고 안 좋은 얘기들 때문에 서승화, 이형종, 이범준, 이승우의 반발과 항명이 이해가 간다는 동정론도 늘었다. 이들의 반발 원인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기에[6] 재평가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서승화가 이제까지 저질러 온 잘못된 처신을 변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해 결국 서승화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011시즌 종료 후 11월 7일에 자신의 싸이 미니홈피에 자살 암시글을 써 큰 파장이 일었다.
그렇게 죽을 만큼 아파서 무엇을 얻었냐고 수없이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모든 일과 삶은 그만 내려놓겠습니다.
이제서야 떠나게 되었네요.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

이후 구단에서 방출이 확정되었다. 이미 자신이 구단에 스스로 방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10시즌 간 LG에서 거둔 서승화의 통산 성적은 2승 23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6.25. LG는 1승당 5억 원을 쓴 셈이다. -21의 승패마진은 LG 역대 투수 중 통산 승패마진이 가장 나쁜 투수다.

현역 생활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지만, 2012년 2월 27일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고 하였다. 이후 수 년이 지나서야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3. 은퇴 후

2014년 1월에 신윤호의 야구왕국에서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2019년부터 동강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일하고 있다.[7]

4. 사건사고

파일:attachment/susunghwayaguahnhae1234.jpg
* 2010년 7월 26일 이형종과 함께 팀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싸이에 적힌 것 보면 "LG TWINS xxx 야구 안해 2군행" 이라고. 그리고 얼마 뒤 관련 기사가 나왔다. 본인은 홧김에 저지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말 저주받은 수준의 멘탈임이 틀림없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2 LG 27 36⅓ 0 2 0 0 5.94 35 7 13 6 28 1.32
2003 46 82⅓ 0 5 0 3 5.57 96 11 46 3 51 1.73
2004 49 69⅓ 1 8 1 14 5.58 58 5 45 7 64 1.49
2005 4 5 0 0 0 0 5.40 9 0 3 0 2 2.40
2006 5 3⅔ 0 1 0 0 19.64 6 1 7 2 1 3.55
2007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08
2009 4 10⅓ 0 2 0 0 10.45 14 2 10 1 7 2.32
2010 12 52 1 5 0 0 6.75 65 4 42 5 41 2.06
2011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7시즌)
147 259 2 23 1 17 6.25 283 30 166 24 194 1.73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3 LG 8 .375 3 2 0 0 0 2 0 0 0 4 .375 .625 1.000
KBO 통산
(1시즌)
8 .375 3 2 0 0 0 2 0 0 0 4 .375 .625 1.000

6. 기타

7. 관련 문서


[1] 대전 서구 도마동에 있는 초등학교로, 초등학교 내 야구부가 꽤 유명하며, 운동장 전체가 야구부를 위해 존재한다 할 정도로 펜스가 넓다.[2] 당시는 지명 후 선수가 대학교에 진학해도 졸업 이후까지 구단의 지명권은 유효했다. 2004년 드래프트부터는 지명받고 2년 이내에 입단하지 않으면 소멸한다.[3] 2015년 12월 이상훈이 코치로 LG에 복귀했을 때 우스갯소리로 "팀에서 47번을 주셨다. 은퇴를 하고 LG 선수들이 47번을 다는 것을 보고 '왜 저 번호를 선택하지' 하고 의아했다. 저주받은 번호가 아닌가. 서승화와 조윤준 모두 안 좋지 않았나. 봉중근 역시 욕을 많이 먹었다. 내가 달면 저주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4] 모교인 대전고에서 근무했고 야구부 후배들을 가르쳤다고 한다.[5] 지인 여러 명한테 사정이 안 좋다면서 돈을 빌려놓고 단 한 푼도 갚지 않았으며 그 액수가 무려 천만 원 단위에 이른다고 한다. 명백한 사기범죄.[6] 선발 한 번 던지면 하염없이 2군에 쳐박혀야 했다.[7] 감독은 홍현우다. LG의 먹튀 듀오[8] 이 사건 이후 두산과 LG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이 되었다.[9] 그리고 2024년 대한민국 쇼트트랙에 서승화 뺨치는 만년 패륜급 선수가 등장했다.[10] 사실 밀었다는 말도 어폐가 있고, 풀스윙까진 아니겠지만 툭 밀었다기보단 그냥 내리친 거다. 언론 보도에선 분명히 서승화가 이병규 머리에 배트를 내려쳤다고 적혀있다.조선일보 기사 이뉴스 기사 이병규는 이 때문에 머리쪽이 찢어져서 병원에 실려가서 8바늘이나 꿰매야 했다.[11]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만약 타자로 뛰었다면 프로에서 꽤나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교야구 때 투타 모두 우수했던 선수였던 만큼 타자로써의 재능도 좋았기 때문에 특히나 더 아쉽다.[12] 그래서인지 그의 여동생이자 여자 야구선수인 서승오도 예쁘다는 반응이 꽤 있다. 실제로 댓글 내용이 "오빠 닮아서 외모가 괜찮네요"였다. 키도 169cm로 장신인건 덤.(지금은 네이버 스포츠 댓글이 막혀서 확인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