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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1:05:28

한국경제인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넘어옴

대한민국 경제5단체
파일:한국경제인협회 로고.svg 파일:대한상공회의소 로고.svg 파일:한국무역협회 로고.svg 파일:중소기업중앙회 로고.svg 파일:한국경영자총협회 CI.svg

<colcolor=#ffffff> 한국경제인협회
韓國經濟人協會
The Federation of Korean Industries (FKI)
파일:한국경제인협회 로고.svg
<colbgcolor=#008f71> 이전 명칭 전국경제인연합회[1](全國經濟人聯合會)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61년 8월 16일([age(1961-08-16)]주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24
(여의도동 28-1, FKI타워)
회장 류진[2]
기관 분류 사단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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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02-3771-0114

1. 개요2. 구성3. 역대 회장4. 한국경제인협회 사옥5. 역사
5.1. 설립 배경5.2. 연혁
6. 비판 및 논란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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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대기업 모임. 약칭은 한경협.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3] 한국경영자총협회[4]를 포함한 경제5단체 중의 하나다.

1961년 8월 16일에 삼성 이병철 회장이 대기업들을 모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하였다. 이후 1968년 주요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하여 회원을 크게 확보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변경하였다. 2023년 9월 18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설립목적은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한국 경제의 국제화 촉진이다.[5]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 환원 활동도 하고 있다.[6][7][8]

2. 구성

파일:한국경제인협회 구성도.png

회장직은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에서 4백 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추천으로 선임되는 절차를 밟는다. 주로 대기업 회장이 선임되며 간혹 중견기업 회장이 선임될 때도 있다.

회원은 제조업, 무역, 금융, 건설등 전국적인 업종별 단체 67개와 한경협의 회원사는 공기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436개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외자계기업도 포함되어 있다.[9]

한경협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경제 싱크 탱크로 유명하다.[10] 한편 산하단체로 EIC(Elite Intensive Course)와 YLC(Young Leaders’ Club)을 두어 대학생들의 시장경제 이해와 시장경제 체제의 친화성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11]

2023년부터는 한국경제인협회 청년자문단이 신설되어 한경협 전반의 운영과 경제정책에 대해서 청년들의 자문을 받고 있다.[12] 또 다른 자문단인 경영자문단은 대기업 CEO나 임원으로 구성되며 중소기업의 경영자문을 통한 사회환원 활동을 하고 있다.[13]

3. 역대 회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191919><tablebgcolor=#ffffff,#191919> 파일:한국경제인협회 심볼.svg한국경제인협회
역대 회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초대
이병철
제2-3대
이정림
제4-5대
김용완
제6-8대
홍재선
제9-12대
김용완
제13-17대
정주영
제18대
구자경
제19-20대
유창순
제21-23대
최종현
제24-25대
김우중
제26-27대
김각중
제28대
손길승
제29-30대
강신호
제31-32대
조석래
제33-38대
허창수
제39대
류진
}}}}}}}}} ||


역대 한경협 회장들 중에서 대기업 총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회장대행 임기도 같이 포함된다.

4. 한국경제인협회 사옥

파일:fkitower.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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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

5.1. 설립 배경

1953년 7월 한국전쟁 이후 복구 사업과 미국의 지원으로 인한 삼백산업으로 한국에서 대기업이 등장했다. 민간 시장이 발전하기 전 단계에서 기업은 정경유착으로 발전을 도모했고 이승만 정부 말기 각종 뇌물사건과 비리로 대기업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 발생하여 자유당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고 민주당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장면 민주당 정부는 대기업 회장들에 대해 조사를 착수했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6월 26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이 면담을 가진 후 조사가 취소되었다. 기존에 연행된 기업인들도 6월 30일 모두 조사를 중지하고 '부정 축재 기업인들에게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모두 풀어주었다.[21]

그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다시 이승만자유당 시절 처럼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에 뇌물을 전달하면서 정경유착으로 발전을 추구했으나, 각종 법적 조사와 정치적 격변에 따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1961년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을 초대 회장으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출범하였다.

5.2. 연혁

6.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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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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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


[1] 줄여서 전경련이라고 불렀다.[2] 풍산그룹의 대표이사[3]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2006년 중소기업중앙회로 바뀌었다. 중소기업 중심조직이라 그런지 대기업 중심의 한경협과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4] 약칭은 경총. 한경협보다도 경영자의 이익을 더 중시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노동계와 갈등을 가장 많이 겪기도 한다.[5] 한경협 정관 제1조[6] 가처분소득의 1%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할 의사가 있는 법인 및 단체로 구성된 '1% 클럽'을 운영한다.[7] 중증 장애인을 위한 전동휠체어 지원사업을 통해 총 3,500여대의 전동휠체어 지원과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인 점자정보단말기 총 1,270여대를 보급하였다.[8] 보육취약계층을 위해 '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을 8년간 전국에 101개소를 건립하였다.[9] 외자계 기업들은 이해관계가 없어서 이름만 걸어두는 수준이다.[10] 미국 헤리티지 연구소와 같은 보수주의 싱크 탱크를 지향하며 대기업감세와 출자총액제 폐지, 노동환경 규제 완화 등 친대기업 성향의 경제연구자료를 내놓고 있다.[11] 두 산하단체 모두 대학생이 가입하여 활동하는 학술 및 미래 지도자 양성 코스이다.[12] 6개월 임기로 선임되며 사회 각계 각층의 엘리트 청년 약 10명으로 구성된다.[13] 2004년부터 신설되어 200명이 활동한다. 자문위원이 사임하면 그 인원만큼 선임하는 구조이다.[14] 당시 삼성물산 사장[15] 당시 경성방직 사장[16] 전문경영인. 당시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이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겸 재정위원장으로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대리인으로 계열사 사장인 홍재선을 내세웠다.[17]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18] 관료 출신으로 롯데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호남석유화학 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19] 전문경영인. SK 제2대 회장 최종현의 사망 이후에 최태원 회장이 경험을 쌓을 동안 공동회장에 취임하여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였다.[20] 박카스포카리스웨트가 여기서 나온다.[21] 이는 위법 행위를 한 재벌 총수에게 중형을 선고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총수가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정상 참작 해달라는 논리의 발단이 되었다.[22] 현재는 합병하여 산하단체이다.[23] 현재는 분리독립하여 별개의 단체이다.[24] 한경협 청년자문단에서 기획했다.[25] 이 LG반도체가 현재 SK하이닉스의 전신이다.[2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전경련을 탈퇴했다.[27] 한경협 전반의 운영과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자문을 청년들에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