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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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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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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최종건
(1953~1973)
제2대
최종현
(1973~1998)
제3대
손길승
(1998~2004)[A]
최태원
(1998~ )[A][B]
[A] 1998년, 손길승은 SK 그룹 회장, 최태원은 SK 주식회사 회장으로 공동 취임.
[B] 2004년까지 손길승(그룹), 최태원(주식) 공동 회장 체제로 운영되다가 손길승 회장이 사임하면서 최태원에게 그룹 회장직 인계.
}}}}}}}}}}}}}}} ||
<colcolor=#ffffff> SK 제3대 회장
최태원
崔泰源|Chey Tae-won
파일:최태원2024.jpg
<colbgcolor=#ee7609> 출생 1960년 12월 3일 ([age(1960-12-03)]세)
경기도 수원시[1]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수성 최씨 (隋城 崔氏)[2]
직업 기업인
현직 SK 회장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서울 SK 나이츠 구단주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
학력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 (졸업)
수송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전학)[3]
신일고등학교 (졸업 / 10회)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 / 학사)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 수료)
부모 아버지 최종현, 어머니 박계희
형제자매 남동생 최재원
여동생 최기원
배우자 노소영(1988년 9월 결혼 [이혼소송중])[5][6]
자녀 장녀 최윤정(1989년 출생)[A]
차녀 최민정(1991년 출생)[A]
장남 최인근(1995년 출생)[A]
삼녀 최시아(2010년 출생)[B]
동거인 김희영[11]
신체 179cm|85kg|B형
병역 전시근로역 (과체중)[12]
종교 개신교[13]
재산 12억 달러 (한화 약 1조 6,000억 원)[1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LinkedIn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경영 활동2.2. 대한상공회의소회장 활동2.3. 반도체2.4. 바이오2.5. ESG
3. 스포츠 후원4. 가족 관계
4.1. 후계 관련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2003년 분식회계 사건5.2. 2013년 횡령 사건5.3. 이혼 소송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으로, SK의 회장.

2. 생애

1960년 12월 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선경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조카로 태어났다.

수송중학교,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15]

선대회장인 최종현이 1998년 8월 타계하면서 38세에 SK그룹 회장이 되었다.[16]

2.1. 경영 활동

1992년 SK상사에 부장으로 입사 후 상무를 거쳐 SK주식회사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SK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되었다.

1998년 8월 26일 최종현 선대회장 작고 당시, 경영권에 관하여 특별한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함에 따라 SK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당초 SK그룹의 경영권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최윤원 회장은 "우리 형제 가운데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었다.#[17]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그해 9월 38세의 어린 나이에 SK그룹의 수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나서게 된다. 당시 외환위기로 기업 환경이 암울했던 시기에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최 회장은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라는 취임 일성과 함께 생존을 위해 그룹 체질을 바꿔야 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2002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그룹 CEO 세미나에서는 "생존 능력이 없는 계열사는 흑자라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제주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5년까지 흑자를 내더라도 일정 수준의 이익을 못내는 계열사는 정리한다는 것으로 '계열사의 3대 생존 조건'으로 사업모델의 경쟁력 확보, 세계적 기업 수준의 운용 효율성, 경제적 부가가치(EVA·영업이익 중 세금과 자본비용을 뺀 금액)가 플러스가 될 것을 설정했다.#

이후 SK 글로벌 사태, 소버린 사태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으나 이를 극복하며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2003년에 발생한 소버린 사태는 SK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로 꼽히는데, 모나코에 기반을 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식회사의 주식 14%를 매입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사건이다. 당시 주주총회서 표 대결까지 간 결과 SK그룹팬택앤큐리텔 등 우호 세력, 외국인 주주, 소액주주의 도움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SK그룹과 최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소버린의 압박이 진행되는 동안 SK는 이사회의 70%를 사외이사로 구성,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선언하는 등 위기를 돌파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대폭 개선하며 주주들을 설득하는 한편,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또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어렵게 위기를 극복한 최 회장은 2008년 9월 최종현 선대회장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임직원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힘겨웠던 SK그룹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모두 전현직 임직원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의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014년 3월 4일에 모든 계열사 대표직 및 그룹 내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 뒤, 2015년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527명과 함께 특별사면 되었다.# 이후 SK 회장직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후 SK그룹의 실적은 크게 성장했다. 자산과 매출 규모 등에서 급성장을 이어가 국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고, 기존 주력 분야였던 에너지·정보통신에 이어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미래 신성장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질적 성장도 이뤘다는 평가다.#
파일:SK그룹 25년 성과.jpg
최태원 회장 취임 후 25년간 SK그룹 성과

최 회장 취임 후 25년간 SK그룹 자산총액은 10배, 매출은 6배, 영업이익은 9배 성장했다고 한다. 특히 수출액은 83조4천억원으로 약 10배 성장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한국 전체 수출액 약 887조원 중 거의 10%를 SK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18]

최 회장이 SK를 이끄는 동안 가장 놀라운 사건은 단연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로,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만으로는 그룹 성장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사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내외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여 하이닉스 인수를 관철했다고 전해진다.#

SK가 2011년 11월 3조 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에는 ‘승자의 저주’ 우려도 제기되었으나, 인수 후 적극적 기술·시설 투자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인수 첫 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타 업체들이 투자를 주저할 때 역발상으로 3조8500억 원을 투자했고, 2013년에는 R&D 비용을 1조 원 이상 투자했다. 이러한 투자가 밑거름이 되어 반도체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자 SK하이닉스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 하이닉스SK 편입 이후 10년간 매출 약 4배, 영업이익은 약 34배 증가했다. SK는 덕분에 재계 2위로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수출 비중이 70%를 넘어서는 수출지향형 기업집단으로 탈바꿈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0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으며 경영 복귀 후에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가치 구현을 독려하고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사업에 내재화해야 기업 가치를 높여 지속가능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경영지론 하에 그룹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에 2016년 사회적 가치 창출 조항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여기에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두 축으로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측정 틀을 만들어 계열사 경영에 직접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파일:최태원.jpg
발언하는 최태원 SK 회장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부는 물론이고 고려대학교 관련 행사에 종종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2월에는 고려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는데, 국내 대기업 총수가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하는 게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고려대학교 SK미래관 건물 건립에 사재 300억 원을 출연한 것에 이어 2019년 완공 당시 직접 와서 기념 식수를 한 바 있다. 2020년에는 SK하이닉스의 채용 연계형 전공으로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 학부 과정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고, SK가 우승하자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는데, 참석한 재벌 총수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참석했다. 2000년에는 재벌 총수들 중 막내에 속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찍어주느라 바빴지만, 이번 방문 때도 어느 곳을 가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걸 보면 사진 찍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는 듯하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하면서 또 한 번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11월에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사촌형인 최윤원 고문의 자녀들,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했다.

2019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구성원의 행복에 두겠다고 발표한 후 실제 구성원들과의 다양한 소통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행복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복토크 100회를 채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2019년 11월 24일,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강등된 경기인 K리그1 37라운드 파이널 라운드 B 수원전을 직관했고, 이때 크게 분노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팀을 다시 승격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1개월 후인 2020년 10월 24일 K리그2 25라운드 수원 FC전을 직관하고, 팀이 승격에 성공하자 남기일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하며 "제주는 왜 외국인 선수가 없느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투자의 의지를 내비쳤기에 기대가 많다.

2020년 10월 26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조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줄어든 무료 급식소에 3개월간 도시락비 또는 도시락 지원을 한다고 한다. 매출이 하락한 영세한 식당에서 도시락을 구매하고 그 도시락을 무료 급식소에 보내는 방식이다. 최태원 "코로나 무서워도 밥은 먹어야"…40만끼 쏜다

하이닉스 성과급 논란 당시 30억 원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노사 합의를 통해 최근 하이닉스는 임직원 상여 지급 목적으로 4,885억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했다.

2021년 2월, 중국 장쑤성 지역 경제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장쑤성에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는 SK그룹은 현지 인력을 무려 10,000여 명이나 채용하고 있다.

2021년 10월 26일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미국 출장 일정을 잠시 늦추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10분 간 조문을 했다.[19]

2022년에도 2번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다. 홈에서 통합우승을 했는데 하필 그 날이 정치인 취임행사 날이어서 직관을 못 갔다. 우승 뒷풀이에는 참가하여 헹가래를 받았다.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했다.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 생산 기업 ASML 본사를 방문해 클린룸 생산라인을 함께 살펴봤다. 이날 한국네덜란드 양국은 반도체 협력 강화 의지를 밝혔는데, ASML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수소 등 자원을 재활용하는 친환경 공정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고 한다. #

2.2. 대한상공회의소회장 활동

2021년 2월 1일, 대한상공회의소의 차기 회장에 추대되었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사상 최초로 대한상공회의소 수장을 맡게 된 것으로, 경영 업적, 글로벌 역량 등을 고려할 때 적임자라는 것이 추대의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4대 그룹 회장인 최태원이 회장에 오르면서 대한상의를 비롯, 경제계의 위상도 한결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NC 김택진 대표이사가 IT 기업인 최초로 신임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동행하여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3개 중점 분야에 대한 미국 투자를 확대하며 정상회담을 측면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재계와 실질적인 경제 협력에 나서며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5월 31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2030 부산엑스포[20] 민간유치위원장 역할을 맡게 됐다.

취임 때부터 본인이 기획한 국가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송에도 직접 출연하고 있다. 국가적 의제에 대해 국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민간 주도로 해결하자는 프로젝트로, 2021년에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사업화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원까지 하는 '아이디어리그'에 심사위원과 멘토 역할로 출연했다. 2022년 8월 9일부터는 SBS에서 6주 동안 대한상공회의소의 2번째 국가발전 프로젝트 주제인 '한식의 산업화'를 소재로 한 경제 토크쇼 식자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대기업 총수가 MC를 맡아 방송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2022년 12월 21일 대한상의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일률적인 법인세 인하를 비판했다. 최 회장은 "법인세를 무차별적으로 인하하는 게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라며 정부가 내년에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로 취약계층 보호 등 '위기 관리'를 꼽았다. 기사

2.3. 반도체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그룹의 사업 영역을 정유와 통신에서 반도체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내수기업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SK텔레콤과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기업인 하이닉스의 시너지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결합이었다. 하지만 인수하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룹 고위 임원들은 합병에 반대했다고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앞서 2010년 그는 그룹이 매년 10% 이상씩 발전하기 위해서는 SK텔레콤과 같은 회사를 키워 내야 한다며 또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그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지인을 만나 반도체 사업의 전망이 밝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최 회장이 반도체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다. 그는 정보기술(IT) 분야가 세상을 바꿀 것이고 반도체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업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곧바로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1년 가까이 반도체를 파고든 최 회장은 2010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는 의중을 그룹 이사진에게 밝혔다. 이사회 내부에서는 대부분이 반대하고 나섰다.

첫째, 인수 금액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덩치의 회사를 먹고 배가 터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그룹 전체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파다했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당시 돈으로 2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수와 동시에 모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둘째, "SK텔레콤이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고 굳이 신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는데 왜 해보지도 않은 사업에 손을 대느냐"는 의견이었다. 셋째는 반도체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하이닉스라는 회사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SK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박정호 당시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현 SK텔레콤 사장)을 필두로 태스크포스(TF)팀을 정식으로 꾸렸다. 자금 조달은 채권단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신주를 발행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총 3조 3,700억 원이 투자됐는데 신주 2조 3,400억 원, 구주 1조 300억 원이었다.

당초 채권단은 썩 반기지 않았지만 최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리고 최 회장의 제안은 현실이 됐고, 그의 판단은 빠르게 증명되었다. 결국 SK하이닉스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고,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무려 13조 7,213억원을 기록했다. 3조원의 투자로 한 해에만 4배 넘게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인수 이후 2015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4,800억원에 인수하고,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1조원에 사들였다. 2018년에는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4조원에 인수했다. 당시 최태원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인수 작업을 지휘했다.

SK하이닉스인텔 낸드 사업까지 확보하면서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인텔 낸드 사업 인수로 SK하이닉스키옥시아를 제치고 낸드부문 2위 업체로 올라서게 되었다. 반도체 경쟁사인 인텔을 대상으로 10조 원 규모의 M&A를 성사한 배경에도 최태원의 결단력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2.4. 바이오

최태원의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은 최종현 회장 때부터 주도적으로 육성해온 사업 분야로, 오랜 기간 존버끝에 빛을 발한 케이스다. 최종현 회장은 SK의 강점인 정밀화학 사업을 발전시켜 차세대 먹거리로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우려 했고, 1993년 대전 대덕연구원에 제약팀을 꾸린 뒤 제약이라는 뜻의 ‘Pharmaceutical’’의 앞글자를 딴 ‘P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최태원 회장이 이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이끌어오며 혁신 신약 개발에 열을 올렸다. 2007년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후에도 지주사 직속에 신약 R&D 조직을 두고 투자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연구소는 설립 3년 만에 첫 성과를 낸다. 1996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으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 임상시험 승인(IND, Investigational New Drug)을 받음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연구소는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의 유럽 상업화를 위한 5억 달러 규모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수면장애 분야 1위 기업에 기술수출 및 FDA와 EMA 승인 획득이라는 연구실적을 이뤄냈다.

약간의 시련도 있었는데,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소버린자산운용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 위협 등으로 최 회장은 경영권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에 대한 외부 견제가 심해지면서 SK의 제약바이오산업도 존폐를 우려할 정도의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사업의 육성을 계속 추진했고, 2002년에는 바이오 사업을 꾸준히 육성해 2030년 이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눠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그 후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2015년에는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하고 의약품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넓혔다.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다. 이후 SK바이오텍은 2017년 다국적 제약사인 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구매했다.

2018년에는 SK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3사를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들을 하나로 합쳐 규모의 경제와 함께 효율을 높였다.

바이오 산업은 이후 결실을 맺는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국내 최초로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에 대한 승인을 받았고, 수면장애치료제 '솔리암페톨'은 2019년 FDA 승인을 받은데 이어 2020년 EMA 승인을 획득했다. 한국에서 FDA 승인을 받은 혁신 신약 2개를 보유한 업체는 SK바이오팜이 유일하다. FDA의 신약 승인 확률은 6~8%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볼 때 이는 괄목할 만한 성과다. 신약 개발 경험이 전무한 신생 업체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 승인을 받았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약 개발은 통상 10~15년의 기간과 수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000~10,000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물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2.5. ESG

최태원은 '사회적 가치'로 표현되는 ESG 경영 기조를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2009년 연세대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국제포럼'에 참석하는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을 보다 구체화 해 나간다. 2012년에는 사회적 가치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사회적기업가 육성'을 위해 세계 최초로 KAIST와 공동으로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개설했다. 2014년에는 직접 집필한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개념을 더욱 명확히 했다.

ESG가 지금처럼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당시에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경제적 이론 정도로 여겨지기 쉬웠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가 제안한 것이 지금의 ESG 평가 기준의 개념과 흡사한 'SPC(사회성과 인센티브)'다. SK그룹은 이와 유사한 평가기준을 마련해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성과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는 이후 ESG 광풍에도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SK그룹 8개 관계사는 한국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21] ESG가 기업의 화두가 된 2021년 중반에 와서는 혜안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SK그룹은 ESG 대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신한금융투자가 발간한 ‘뉴 패러다임, ESG’에 따르면, SK그룹은 지주회사 SK㈜와 SK텔레콤이 모두 A+를 받아 전체 128개 기업 중 5위를 기록했다. 근로조건 관련 국제 기준과 법규를 준수하고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구성을 위해 직위 체제를 간소화한 점, 협력 회사들에게 특허 기술 사용권을 무상 제공하는 점 등이 인정받았다.[22]

각종 행사의 연설에서 오랜기간 ESG를 화두로 이야기하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에 재계와 각종 경제 기사에서는 'ESG 특사'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2030년까지 미국에 61조를 투자한다고 했다. 이 중 절반 가량은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될 예정.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와 제임스 클라이번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 등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만나 탄소 감축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23]

3. 스포츠 후원

최태원은 스포츠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농구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매 시즌마다 서울 SK 나이츠의 홈 경기를 수시로 관람하는가 하면 훈련 시설 및 경기장 환경 개선도 직접 챙기는 등 평소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2023년 5월에는 서울 SK 나이츠의 구단주로 취임하기도 했다. 최태원이 프로스포츠 구단주로 직접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례적이라는 평.

재계에서 소문난 스포츠맨이라는 얘기도 있다.# 즐겨 하는 스포츠는 골프가 아닌 테니스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유학 시절에 배운 뒤 체중 관리, 체력 단련, 취미 활동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테니스를 치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는데, 이를 오히려 유쾌하게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에 활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24]

스포츠에 대한 최태원의 높은 관심은 아마추어 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어졌다. SK핸드볼, 펜싱과 같은 비인기 종목을 20여 년간 장기 후원해 왔다.# 특히 핸드볼 후원에 열심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태원은 학창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하는 등의 인연으로 200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고 있다.# 핸드볼은 국제 대회 기간에만 반짝하는 인기로 '한데볼'(추운 데서 하는 핸드볼)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여건이 열악했지만, 최태원이 협회장을 맡으며 국내 최초의 핸드볼 전용 경기장 건립을 주도하고 선수·코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펜싱 역시 의료팀·트레이너 보강, 아마추어 대회 개최, 국제 대회 유치 등 SK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최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한다.# 펜싱과 같은 상대성 종목, 시드 배정을 위한 세계 랭킹이 절대적인 종목의 경우 모든 국제 대회 출전을 가능케 해주는 대기업의 후원이 매우 중요한데, SK텔레콤이 2003년 이후 20년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로 총 300억 원을 후원해왔다.

SK는 최태원 회장의 지시로 기타 아마추어 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노력해왔다. 2021년 SK 와이번스신세계그룹에 매각한 후 SK텔레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육성 TF'를 발족해 훈련 환경이 열악하거나 국제 대회에서만 잠시 주목받는 종목 후원을 확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1#2 이에 따라 장기 후원 종목인 핸드볼과 펜싱 외에도 그간 별도 후원사가 없었던 역도, 높이뛰기, 리듬체조, 스케이트보딩, 브레이킹 등까지 대상을 넓혔다.[25]

그 결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190개의 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SK 후원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왔다. 펜싱, 핸드볼, 역도, 수영, e스포츠 등 9개 종목의 협회와 선수를 후원, 획득한 메달이 금메달 11개 포함 총 25개에 이른다고 한다.# 금메달로만 보면 펜싱 6개, 수영(황선우), e스포츠 각 2개, 역도(박혜정)로 한국 선수단 전체 금메달의 약 4분의 1인 11개에 기여한 셈이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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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은 취임 후 20년 만에 재계 5위에서 2위를 넘볼만큼 자산 규모를 늘렸다. 최태원은 이러한 성장은 자신의 경영 능력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며 2018년 친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했다. 여동생인 최기원도 보유 주식의 일정 부분을 증여하며 동참했다. 현재 SK의 지분은 최태원, 최기원, 남동생인 최재원 순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20년 9월 21일, 2014년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한 장남 최인근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인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 최윤정SK바이오팜에서 일하다가 2019년 휴직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생명정보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비역 중위로 전역한 차녀 최민정은 2019년 SK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다.

4.1. 후계 관련

최태원은 2021년 들어서 자신의 후계와 관련한 질문에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자신의 자식들이 될 수도 있고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될 수도 있다며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본인이 SK그룹 회장이 된 것부터가 최종건의 아들 3형제와 최종현의 아들 최태원 본인과 최재원, 5형제 간 합의로 이뤄진 것이라, 최태원의 말 한 마디로 후계자를 바꾸는 건 어려울 것이다.[26]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2003년 분식회계 사건

대법원 판결문 - 대법원2005도4640

SK글로벌의 채무를 줄여 1조 5,587억원의 이익을 부풀리는 등 분식회계, 그룹 지배권 확보 과정에서 워커힐호텔 주식과 SK 주식을 맞교환하여 959억 원의 부당이득, SK그룹JP모건SK증권 주식 이면계약 과정에 개입하여 계열사에 1,112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2003년 3월 구속기소된[27] 최태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6월 13일에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서울고등법원에서 9윌 22일에 "추가로 심리하거나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아 공탁금 1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면서 9월 22일 보석 석방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여 "죄가 모두 인정되나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대표적 기업가이고 손해가 모두 보전된 데다 '지배구조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에서 관용의 필요성이 있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5.2. 2013년 횡령 사건

대법원 판결문 - 대법원2013도12155

계열사 자금 450억 원을 창업투자사에 출자하게 한 뒤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보내 개인적인 선물ㆍ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에 대해 최태원은 1심에서 "동생이 한 일"이라고 하였으나 2013년 1월 31일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013년 7월 29일 "김원홍, 김준홍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 항소심에서 검찰이 봐주기 논란을 우려, 징역 6년을 구형하였으며 동생도 같이 구속되었다. 이후 2013년 9월 27일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이에 상고하였으며, 2014년 2월 27일 상고심 공판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서 50억 원 이상 횡령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나 횡령 금액이 300억 원을 넘으면 최소 징역 4년에 처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상 최저형으로 선고됐으며 재벌 총수 가운데 이 기준에 따라 실형이 확정된 최초의 사례다. 2년 6개월 수감 생활 후 2015년 8월 14일 박근혜 정권 당시 광복 70주년 특사로 사면 및 복권과 함께 출감하였고 잔형을 면제 받았다.

5.3. 이혼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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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1] 수성 최씨 집성촌이다.[2] 개령공파(開寧公派)-매곡문중 25세 원(源)○ 항렬이지만, 범SK가에서 최태원 항렬 사람들은 ○원 돌림을 썼다. 족보[3] 충암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1학년을 마치고 신일고로 옮겼다. 충암고 8회 동기생이 윤석열 대통령이다.[이혼소송중] #[5] 노태우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김옥숙 대한민국 제13대 영부인의 장녀.[6] 2024년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 부장판사 등)은 혼인파탄의 유책사유가 있는 최태원 측 이혼 청구의 본소의 항소를 기각하고, 노소영 측 위자료 및 재산분할과 이혼 청구의 반소의 항소를 받아들여 반소에 의해서 그들은 이혼하고, 원고(반소피고) 최태원 측이 피고(반소원고) 노소영 측에게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위자료로 1심의 20배인 20억 원, 재산분할로 1심의 21배인 1조 3808억여 원의 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태원 측이 항소심 판결 중 위자료, 재산분할 등 부분에 대해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는 때까지 최태원과 노소영의 법률혼 관계는 지속된다.[A] 노소영 소생.[A] [A] [B] 동거인 김희영 소생.[11] 최태원의 삼녀 최시아의 친모로, 현재 최태원과 동거 중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다. 언론에서는 '동거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최태원은 배우자 노소영과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므로 김희영은 최태원의 이혼소송 판결 확정 전까지는 최태원과 내연관계에 있는 사람이며, 사실혼 배우자가 아니다. 법률혼관계 존속 중에 제3자와 이중으로 맺은 관계는 아무리 서로가 혼인의 의사로 실질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혼관계로서 보호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5. 9. 26. 선고 94므1638 판결 등에 따라, 노소영과 법률혼관계 진행 중에 맺은 다른 '사실혼' 배우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건 옳지 않다. 대한민국 가족법은 법률혼주의이기 때문에, 비록 일부 개별법에서 '사실혼' 배우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배우자의 존재에 '준한다는 것일 뿐'이지 해당 지위에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12] 친동생 최재원도 면제인데 최재원은 시력 때문에 면제되었다. 사촌동생 최창원 역시 시력 때문에 면제. 이 당시에는 지금보다 병역 자원이 풍족하던 시기라 이렇게 조금이라도 결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엔 병무청에서 먼저 5급 등의 처리를 하고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다.[13] 출처[14] 2024년 5월 포브스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 24위.[15] 경제학에서 '시카고학파'로 잘 알려진 바로 그 대학으로, 전 세계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인 최종현 회장도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16] 최종현 회장 타계 전인 1998년 1월 선경그룹에서 SK그룹으로 상호가 변경되었다.[17]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윤원도 채 2년도 되지 않아 폐암으로 요절하는 비운을 맞았다.[18] SK그룹 사업이 내수시장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통념과는 다른 사실이다[19] 아직 법적으로 이혼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상주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으나 상주 역할을 하기에는 노소영과의 관계가 이미 남남 사이이다 보니 조문만 하고 간 것으로 보인다.[20] 5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 엑스포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생산·부가 가치 유발과 수십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대규모 행사로,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행사로도 불린다.[21] 영국 런던 소재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2014년 시작했으며 구글·애플·GM·이케아 등 전세계 유수의 글로벌기업들이 가입했다. 발전이나 정유·석유화학·가스 등 화석연료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의 경우 자체심사를 거쳐 가입 대상에서 제외한다.[22]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SK그룹 계열사는 대체로 기업문화가 좋은 것으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23] 매코널 대표는 상원의원으로 37년째, 원내대표로 15년째 재임 중인 공화당 서열 1위의 정치인이다. 클라이번 의원 역시 민주당 하원 서열 3위의 유력 정치인이다.[24] 엑스포 홍보용 QR코드를 새긴 목발을 짚고 프랑스 출장을 가는가 하면, 엑스포 유치를 위해 파리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Break a Leg'이라고 건배사를 했는데 '행운을 빈다'는 뜻의 표현이라고 한다. 본인의 발목 부상에 빗대어 부산 엑스포의 행운을 기원했다고.#[25]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 2개 등 메달 6개를 딴 황선우를 유망주 때부터 후원했고,최진우, 조현주 등 어린 유망주들도 후원하고 있다.[26] 3세대 들어선 범두산가 같은 루트를 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27] 당시 최태원을 구속시킨 사람은 초임검사 시절의 한동훈이다.[28] SK 와이번스는 2012년 임경완 영입 이후 9년간 외부 FA 영입이 없어서 팬들에게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김광현이 방송인 김구라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농구단 SK 나이츠 선수단과 코치진 모두에게 부여된 이동통신 요금 혜택이 야구단 와이번스 선수단에게는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다 2021년에 드디어 외부 FA로 최주환을 데려왔지만 결국 SK 와이번스신세계 그룹에 매각했다.[29]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였는데 선제골을 먼저 넣고도 타가트와 한석희에게 멀티골을 얻어맞고 2-4로 패했다.[30]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해 SK스포츠 팀들의 부진이 크다. SK 와이번스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3루수 FA에 총액 106억 원, 포수 FA에게 총액 69억 원, 신임 감독에게 총액 125억 원을 안겨 줬지만 정규 우승에 실패하고 하필이면 FA로 계약한 선수들이 포스트 시즌 때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고 부족한 투수 엔트리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창단 최초로 포스트 시즌 스윕패를 당하고 최종 3위까지 떨어지게 된다. 서울 SK 나이츠는 2017-18 시즌에 우승했지만 다음 시즌에 꼴지만 간신히 면하는 성적까지 추락. 그나마 게임단인 T1에 과거 e스포츠라는 개념을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임요환과 e스포츠 선수의 상징이라 불리는 그 페이커가 소속 되어있고, T1 또한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불리는 만큼, 게임단에 대한 평판은 전 세계에서도 매우 높은 편.[31] 이러한 성격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을 닮았는데, 신약 개발로 유명한 김대기 박사가 SK케미칼에서 근무할 당시 최종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앞에서 신약 개발이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보고를 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김 박사의 발표를 묵묵히 듣고 있던 최종현 회장이 갑자기 "김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니오?"라고 묻자 주변이 술렁거리고 김 박사도 당황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한마디가 압권. "부작용을 진작에 발견해서 해결한다면 더 완벽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잖소? 앞으로 더 열심히 개발해보시오."[32] 노소영 관장은 61년생이고 장모인 김옥숙 여사는 미스코리아 참가 제안을 받았지만 대회에 나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