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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9:46:49

남기일

남기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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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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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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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4월
고정운
(김포 FC)
5월
남기일
(제주 유나이티드 FC)
6월
이정효
(광주 FC)
}}} ||
<colcolor=#fff> 허난 FC
河南足球俱乐部
파일:남기일 허난 fc.jpg
<colbgcolor=#d61920> 이름 남기일
南基一|Nam Ki-Il
출생 1974년 8월 17일 ([age(1974-08-17)]세)
전라남도 순천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순천중앙초등학교 (졸업)
광주북성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93 / 학사)
수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1])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스포츠산업경영학 / 박사[2])
신체 177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3]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d61920><colcolor=#fff> 선수 부천 SK (1997~2003)
전남 드래곤즈 (2004)
성남 일화 천마 (2005~2008)
천안시청 축구단 (2009~2010)
감독 천안시 축구단 (2009~2010 / 플레잉 코치)
광주 FC (2011 / 플레잉 코치)
광주 FC (2012~2013 / 코치)
광주 FC (2013~2014 / 감독 대행)
광주 FC (2015~2017)

성남 FC (2018~201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0~2023)[4]
허난 FC (2024~)
서명 파일:남기일서명.pn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지도 스타일
4.1. 장점4.2. 단점
5. 사단6. 논란 및 사건·사고
6.1. 주먹 감자 사건6.2. 선수단과의 끊임없는 불화
7.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별명은 탱크[5], 감독 시절 별명은 승격 청부사. K리그2 역대 최다 승격 감독으로 광주 FC, 성남 FC, 제주 유나이티드 FC 감독을 맡으면서 지휘한 구단을 모두 1부 리그로 승격시켜 승격 청부사로 평가 받는다.[6]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m.kfa.or.kr/2009430163757.jpg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 시절의 사진. [7]

순천중앙초등학교, 광주북성중학교, 광주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에 93학번으로 입학했다. 특히, 김정수와는 초중고 동기이다. 금호고 시절에는 기영옥의 지도를 받았다.[8]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7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부천 SK에 지명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등번호는 29번. 1997년 부천에서 1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자리를 꿰찼으며 7시즌 동안 122경기에 출장해 19골을 기록하였다.[9] 특히, 2001년에는 35경기에 출전해 9골 2어시스트를 기록, 팀내 최고 성적을 올렸고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04년 김길식과의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고향 팀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전남에서 한 시즌 동안 19경기 1골을 기록했다.

2005년을 앞두고 김학범 감독이 부임한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12번을 달았고, 성남에서 4시즌 동안 6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소속팀의 2006년 K-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K리그에서 30-30 클럽에 가입한 선수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2007년 피스컵 개막전에서 당시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볼턴 원더러스 FC를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여 프리미어 리그 클럽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최초의 K리그 소속 선수가 되었다.[10]

2009년부터는 부천 시절 사제의 연을 맺었던 하재훈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천안시청 축구단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며 2시즌 동안 40경기 6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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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도 스타일

실리 축구의 달인이자 좋은 전술 능력을 가진 지략가형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실력 있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전략, 전술에 비해 팀 매니지먼트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으로 성격, 인격적으로는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정도로 인망 없는 리더쉽으로 매번 선수단과의 불화 문제가 심심치 않은 강압적인 지도 방식이라는 명암이 공존하는 지도자이다.

4.1. 장점

간단히 정리하자면 단단한 수비와 중원을 구성해서 쉽게 지지 않는 팀을 만들고, 공격은 선수들한테 맡긴다. 이때 감독이 요구하는 것은 패스 플레이와 침투 플레이이며, 특히 공격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 정해두진 않고, 위와 같은 기본적인 틀만 잡고 나머지 세부 부분은 공격진의 개인기량에 맡긴다.

전형적인 한국형 지도자이며 전술 스타일은 위르겐 클롭과 유사한 "전방 압박과 짧은 패스 역습"에 전술적으로 중점을 둔 지도자다. 그리고 주어진 스쿼드 내에서 활용을 하는데 굉장히 능하며 지도 스타일은 다르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비슷하다. 카리스마로 기강을 강하게 잡으며 선수들한테 짜임새 있는 움직임을 요구하며 강도높은 훈련 스타일을 지향한다.

광주 시절 초기에는 라인을 올려서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좁히는 축구를 시도했었고 이 전술과 짧은 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를 시도했다. 하지만 K리그1에서 지도했던 광주 시절 후반부나 성남의 승격 후에는 안정된 수비(3-5-2 또는 3-4-3)를 바탕으로 역습을 주로 했다. 제주에서는 광주 시절과 성남 시절의 스타일이 섞여 보다 완숙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고 있는데 유튜브 인터뷰에서 남기일 감독은 팀 선수구성과 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먼저 파악한후 팀의 장점을 먼저 살려놓고 그위에 본인의 스타일을 입히는 스타일이다.

K리그에서 드물게 대규모 사단급 코칭 스태프를 구축한 감독이기도 하다.

성남, 제주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던 광주 시절부터 함께한 스태프 8명을 웬만하면 전부 데리고 있는 편으로 이정효[11] 수석 코치, 기우성 골키퍼 코치 등 이 두 사람은 모두 광주 시절부터 함께 하고 있는데 이로 봤을 때는 자기 사람을 끝까지 챙기거나 공적인 경기, 훈련을 제외하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대단히 유한 모양.

광주 시절 함께했던 길레미 혼돈 피지컬 코치도 광주부터 성남, 2부 리그 시절 제주까지 남기일 감독과 동행하다가 제주의 승격 이후 대전으로 복귀했다. 성남에서부터 합류한 조광수 코치[12]는 처음 합류할 당시에는 피지컬 코치였으나 길레미 혼돈의 재합류 이후 공격 코치로 보직을 바꿔 제주에서도 함께하다가 제주 승격 이후 홍명보 감독이 부임한 울산으로 이적했다. 나머지 3명의 스태프는 의무 트레이너(AT)다.

또한 끊임없이 공부하는 감독으로도 고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 시절 자진 사퇴의 이름을 빌린 경질로 나갔을 때도, 보통의 감독들은 쉬는데 비해[13]바로 유럽으로 가서 돌풍의 팀 레버쿠젠을 관찰하고, 이 외에도 박사학위 논문을 받기도 했으며 선수의 심리와는 별개로 플레이 스타일은 잘 분석해내는 스타일이다. 즉 전술에 있어서는 너무 직선적이라 재미없다고 비판은 들어도, 결국 전술적으로는 선수와 감독의 조화를 잘 이끌어내며 승리를 가져오는 실리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

4.2. 단점

가장 큰 단점은 인망 없는 리더쉽으로, 지도자를 떠나 사람으로서 성격, 인격적으로 큰 결함이 의심될 만큼 매니지먼트 능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쉽게 말하자면 경기 결과는 잘 내는 실력 있는 감독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팀을 운영할 때 잡음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지도 스타일에 본인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시했는지, 2021 시즌에는 3명의 용병 중 그나마 제르소와 합이 잘 맞는 모습을 보이며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14]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갑고 빡빡한 이미지에 대해 인정을 했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젊은 나이에 감독 생활을 일찍 시작하다 보니 일부러 컨셉을 강하게 잡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본인도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거기에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에 강등권 약체 구단을 맡아오면서 항상 잔류에 대한 성과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겠지만, 그 기대 이상의 성과에 대한 강박 관념 때문에 항상 고심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컸던 걸로 보인다. 최근에도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으로 빡세게 굴리는 모습은 여전하나, 어느 정도 소통과 대화도 많이 하면서 나름 유해지려는 모습도 보여지고 실제로 훈련 영상을 보면 격려를 많이 하고 애정 어린 조언도 많이 해주면서 제법 인간미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팀 관리 및 운영 면의 단점이 점차 개선되는 상황에서 현재 남기일의 단점으로 꼽히는 점은 공격 전술의 부실함. 제주에서 상위권급 지원을 받으면서 부각된 새로운 단점인데, 이전부터 남기일은 공격의 큰 틀만 잡아주고 세부적인 것은 선수의 개인 역량에 맡기는 편이었다. 수비 전술이 중요한 승격팀이나 하위권 팀이면 몰라도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제주에서는 주민규 등 공격진의 개인 기량에 따라 경기력 기복이 심해진다는 한계를 보인다. 제주에서도 윤빛가람, 주민규 등과 불화 의혹이 터지며 있는 스쿼드도 잘 못 쓰는 단점이 겹쳐서 이러한 경기력 기복이 더 커지는 것도 있다.

또한 전술적으로도 아주 문제가 없는 감독은 아닌데, 우선 축구가 보는 맛이 별로 없으며[15]수비 시 하프스페이스가 조금씩 벌어지는 모습 또한 아쉬운 점.

5. 사단

최소 두 곳 이상 동행한 적이 있는 지도자 한정.

6. 논란 및 사건·사고

6.1. 주먹 감자 사건

남기일은 국내에서 카를로스 케이로스로 인해 잘 알려진 주먹감자의 원조인 사람이다.

2003년 9월 부천 SK 소속으로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고 전남 서포터즈들에게 주먹 감자를 날렸고 흥분한 전남 서포터즈가 난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전남으로 트레이드가 되었으며 남기일은 전남 팬들에게 큰 절까지 올리며 사과했지만 전남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지금도 전남 팬들은 남기일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남기일의 고향이 광양시와 함께 전남 드래곤즈의 핵심 연고 지역 중 하나인 순천시임을 생각하면 거의 고향 팬들에게 주먹 감자를 내민 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더 분노할 수밖에 없다.

파일:주먹감자 반납.png

2015년 6월 3일 K리그 클래식 전남과 광주의 경기에서는 '남기일 씨 주먹감자 반납이요'라는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전남은 선제골을 기록하고도 후반 막판 2골을 허용하며 1:2 역전패했다. 이 경기 이후 광주와 전남의 대결은 옐로 더비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광주는 그 어떤 구단보다도 전남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6.2. 선수단과의 끊임없는 불화

예전에 꼰대이면서 강압적인 스타일의 김학범감독 밑에서 오래 선수생활한 부작용인지 아님 원래 그런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남기일은 요즘시대와는 전혀 맞지않는 구시대식 지도자들 마냥 체력 훈련을 굉장히 강하게 시키고 선수들에게도 고압적으로 대하기로 유명한데,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선수들과의 소통이나 매니지먼트 능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해 선수들과의 불화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실제로 제주에서의 행보를 보면 3~5세 연상인 홍명보, 최용수, 박건하보다 훨씬 강성하며 나이가 많은 감독은 아님에도 소통이 안 된다고 평가받았을 정도다. 제주 부임 이전까진 약팀을 맡아서 이러한 지도 방식이 먹혔을지 모르지만, 성남에서도, 제주에서도 선수단과의 소통에 대한 안 좋은 말이 끊임없이 나왔으며 광주 시절에는 오죽하면 선수들이 남기일보다 이정효 코치를 더 따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고 그런 이정효와도 싸울 만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16]

즉 강압적으로 찍어누르는 전형적인 한국식 올드스쿨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2021 시즌에는 경기에서 패배하자 경기 당일 선수들에게 운동장으로 나와 훈련을 받으라고 했고, 이에 선수들은 불만을 표시하며 출근하지 않았으며 고참 선수들이 따로 남기일에게 이건 아니지 않냐면서 항의했다는 썰이 있었다.

2022 시즌에도 전반기 내내 윤빛가람을 기용하지 않고 훈련에도 배제하는 등 불화를 겪다가 스쿼드가 얇아져서야 기용했고, 9월부터는 재계약에 실패한 주민규를 고의적으로 벤치 자원으로 돌리면서 불화 의혹이 생기고 있다.[17][18]

국내 선수들과도 이러니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는 갈등이 더욱 심한 편이다. 성공을 거둔 팀에서도 외국인 선수 활용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일관되게 받았다.[19][20]

결국 제주 시절 화려했던 스쿼드를 구축한 선수들은 본인과의 불화 등으로 점차 타 구단으로 이적했고, 새로운 네임드 선수들은 남기일의 성향 때문에 영입이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제주의 스쿼드는 점점 얇아졌다. 제주 시절 2022 시즌과 2023 시즌이 이 문제점들이 가장 부각됐으며, 결국 2023 시즌 중반 이후 16경기 1승이라는 끝없는 부진 끝에 감독직을 사임했다.

2024년 5월에는 은퇴 축구선수이자 이다원과 함께 "두개의심장"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이성재와 성남 감독 당시 있었던 일화가 알려져 새로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1#2

이성재를 19시즌전 전지훈련 당시 불러 "너 팀에 왜 있냐. 나 어차피 너 안쓸거다."라고 말 한다음 이성재가 팀을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남기일의 호텔방으로 찾아가니 안전고리만 건 채로 문을 조금 열고 "어? 가~"라고 무례하게 배웅했다는 것인데, 앞선 선수 매니지먼트 문제의 근원이 결국 감독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추측에 힘을 싣는다.

물론 앞선 이성재와 갈등 부분의 경우 결국에 사람은 다 본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간의 불화나 갈등 문제에 대해서 선수 한 명의 이야기만을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해당 발언에 약간의 과장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남기일 감독에게도 분명 당시 상황이나 흐름 등이 있어 피치 못할 사정이나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다.

다만 사정이나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저런 식으로 대하는 것 자체는 분명 문제가 있는 행위며,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분명 문제가 될 만한 어떤 행동이 있긴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선수가 유튜브 같은 불특정다수가 보는 공적인 곳에서 감독이자 나이적으로 훨씬 어른인 사람의 실명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노골적으로 욕설까지 섞어가며 비난했다는 것 [21] 자체부터가 남기일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비롯한 대인 관계 능력에 결함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22]

수원 삼성 감독직에 부임을 원했으나, 가지 못한 것 또한 이런 이유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남기일 정도의 감독이 K1이야 그렇다치더라도 K2에서 인기가 없었을리가 없는데 중국을 갔었다는 것은 K2에서도 별로 오퍼가 없었거나 마음에 가는 수준의 오퍼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23]

7. 여담

파일:K리그 더 클래식 레전드 선수 및 감독.png
* 2017년 5월 25일 오후 1시 46분 피파 온라인 3에서 선수로 K리그 더 클래식 2차 선수 업데이트가 됐다고 밝혔다. K리그에서 활약한 일부 2002년 한일 월드컵 멤버들과 현재 K리그 클래식K리그 챌린지 감독들이 추가되었다. 거기에서 남기일 감독이 선수로 만들어져 있다.

[1] 석사 학위 논문: 중등학교 운동부 지도교사의 교사효능감이 교직만족에 미치는 영향(2004. 6).[2] 박사 학위 논문: 프로축구 지도자의 리더십유형에 따른 조직유효성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거래적, 변혁적, 서번트 리더십을 중심으로-(2009. 2).[3] 스트라이커, 윙어[4] 2023 시즌 도중 사임.[5] 현역 시절 강한 파워를 바탕으로 쉴새 없이 돌파해 상대 수비진을 당황시키는 플레이로 붙었다.[6] 수원 FC, 부산 아이파크 등 구단 두 곳을 1부로 승격시킨 조덕제도 이 별명을 가졌지만 정작 잔류시키는 재능은 없어서(...) 남기일보단 위상이 떨어진다.[7] 본인 핸드폰에 소장중이라고 얘기했다.[8] 기성용의 아버지이다.[9] 참고로 1997년과 1998년에 부천 SK를 맡던 감독은 발레리 니폼니시로, 그 당시 니폼니시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로는 남기일을 비롯해 최윤겸, 윤정환, 조성환, 김기동 등 굴직한 성적을 낸 감독들이 있다.[10] 2번째와 3번째는 2008년 풀럼 FC를 상대로 득점한 부산 아이파크 소속의 최기석, 울산 현대 소속의 이진호, 4번째는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한 FC 서울 소속의 데얀 다먀노비치, 5번째는 2012년 선덜랜드 AFC를 상대로 득점한 성남 일화 천마 소속의 에벨톤, 6번째, 7번째, 8번째는 2022년 토트넘 홋스퍼 FC를 상대로 득점한 김천 상무 FC 소속의 조규성, 수원 FC 소속의 라스 벨트비크, 울산 현대 소속의 아마노 준이다.[11] 현재는 광주 FC의 감독으로 팀을 지휘하고 있다.[12] 홍명보호에서 이케다 세이고의 통역이었다.[13] 사실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감독들은 까여도 많이 까이지만, 그 나라 스포츠판에서 상위 0.1% 안에 드는 엄청난 엘리트이므로 나가자마자 대학 교수직이나 방송계, 연맹이나 협회에서도 꾸준히 일하는 경우가 잦아서 쉰다고도 보기 어렵다.[14] 외국인 선수들과 전혀 안 맞던 황선홍과 달리 남기일은 그래도 한두 명과는 맞는 점이 있었다. 광주 시절엔 본즈, 성남 시절엔 에델, 제주에서는 제르소하고 맞았다.[15] 남기일 본인의 문제라기보단 그의 스타일인 실리 축구 자체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결과는 내는데 재미가 없으니.[16] 이정효는 이를 두고 단지 연락이 뜸할 뿐이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17] 결국 주민규는 이로 인해 득점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하며 조규성에게 득점왕을 뺏기고 말았으나, 베스트 11에 들어가며 체면치레는 했다.[18] 주민규가 울산으로 이적하기 전에 남기일 감독에게 "감독님 왜 저를 미워하셨어요.'라고 물어보자 "민규야 난 널 미워한 게 아니다. 네가 제주를 떠난다 하니 대체자를 키워야 해서 그런 거였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득점왕을 생각하면 주민규 입장에서는 속상한 게 당연하다.[19] 김학범에게 배웠느니 하며 얘기가 많은데 지나치게 갖다붙이는 해석이다. 김학범 밑에서 뛴 건 애초에 남기일이 30 넘어서부터다. 그리고 김학범 역시 광주, 강원에 있을 때는 선수들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말한 적도 종종 있어서 봐 가면서 하는 사람이지 최근 변화한 것도 아니다.[20] 하지만 그가 뛰었을 때의 성남은 고압적인 구단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성남 감독이었는데, 남기일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다. 또한 지도자로써 가치관념이 완성될 정도의 나이인 30대부터 성남에서 뛰었단 것은 마냥 갖다붙인다고만 볼 수는 없다. 물론 김성근-김기태마냥 완전히 지도자로써 사제지간이라고도 볼 순 없기에, 저 말도 반은 맞는 말이다.[21] 평소 이성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실제 선수들에게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하며 최대한 선수가 피해가 안가게끔 하는 편이다. 하지만 얼마나 악행이 심했으면 대놓고 얘기를 했다.[22] 김남일 감독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었는데, 김남일의 경우 마지막 인사를 하니까 오히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악수까지 해주면서 잘 가라고 배웅해 줬다고 한다.[23] 충남 아산, 천안 시티, 경남 FC라던가 하다못해 서울 이랜드나 안양 정도의 2부 강팀들도 감독직이 비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천안을 제외하면 저 팀들의 24시즌 감독들이 남기일보다 이름값이 떨어지는 감독들인 것을 감안하면 아예 오퍼 자체를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도하게 높은 몸값 탓에 부담스러웠을 가능성도 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