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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9:43:13

악은 악으로

1. 개요2. 옹호3. 반박4. 창작물의 클리셰로서
4.1. 예시
5. 관련 문서

1. 개요

사악한 적사악한 방법으로 쓰러뜨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의 대결이 아닌 악과 악의 대결이라는 클리셰다.[1]

2. 옹호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나 '이독제독'의 연장선격인 표현이다. 경찰들도 폭력을 휘두르는 범인에게 설득이 먹히지 않으면 결국 부득이하게 무력을 써서라도 제압한다.

독일제국의 비스마르크는 유명한 '철혈연설(Blood and Iron)'에서 오늘의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은 대화가 아닌 '철과 피(전쟁)'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던 유럽의 절대악 나치 독일을 독일 연방국이라는 모습으로 착하게 만든 것은 '선'을 베푸는 방법이 아니라 바로 연합군의 'Blood & Iron'이었다.[2]

신상털기의 주된 명분이 되기도 한다.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경우는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이제이와 흡사한 면이 있다. 이이제이 전략은 자신의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치는 차도살인의 계인데, 창작물의 예로는 두 살인귀를 싸움 붙이는 사다코 대 카야코가 있다. 반면, '악은 악으로'는 악을 상대할 땐 악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악플러들에겐 선플보다는 똑같이 악플로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악플은 본인이나 자기 편이 달 수도 있는데, 이때 상대 악플러들끼리 시비가 붙어 병림픽을 벌이며 싸우다 한명이 제거되는 경우에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이이제이'에 해당된다. 만약 특정 정치인에게 반대하는 과격한 시위대가 나타날 때는 정치인이 정중하게 말해봐야 씹힐 수가 있으나, 자신을 지지하는 과격한 시위대가 나타나 '맞불시위'를 펼친다면 기세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

3. 반박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3]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ß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악에 악으로 맞선다는 개념은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필요악으로 적용되거나 취급되는 면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다만 무엇이 필요악인가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보통 어쨌거나 상황을 개선시켰다거든 그 결과만 보고 '필요한 악'이었다고 용인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개선조차 일시적인 효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태 시술 병원과 동성애자 바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한 이유를 묻자) "...나는 서구 문명이 도덕적으로 무너져 가는 것을 여러 해 동안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를 막는 데에 과격한 방법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에릭 루돌프(E.Rudolph), 근본주의 개신교 계열의 우익 정치극단주의자이자 1996년 올림픽 공원 폭탄 테러범

흔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악으로 여기는 상대에게 악으로 복수하면 상대 역시 자신에게 악으로 복수하며 '보복의 에스칼레이터'를 밟아 악이 악을 낳으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할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과격한 혐중/혐일 시위는 한국인들에게 속시원함을 줄지 모르나, 상대 국민들의 감정을 더 악화해 혐한을 낳기도 한다. 우리도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과격한 혐한 시위를 보면 반성하기는커녕 똑같이 상대해주고 싶어 하잖는가. 물론 그런 시위들에 각자 명분은 있을지라도, 이미 지나치게 모독한 순간, 상대 측에도 대항할 명분이 생기는지라 서로에 대하는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악을 악으로 대응하는 경우에는 말로가 좋지 못했다. 독일인들이 유대인에게서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유대인 학살을 거쳐 본인들이 악이 되어버렸다.[4] 김일성도 제 나름 독립의 명분으로 폭력적 수단을 애용했는데,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혁명적 방식'에 동참하지 않거나 비판적이면 다 죽여버리는 방식을 선호했다. 일제 때야 '악은 악으로' 그랬다고 쳐도, 적어도 독립하여 국가를 세웠다거든 '선'으로 돌아왔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미 자기 맘에 안 들면 다 죽이는, 몸에 밴 습성은 독립 후에도 변하지가 않았고, 자신의 방법으로 똑같이 당할까 두려워했는지 오히려 우월의식을 갖고 자기를 비판하는 조선인들의 씨를 한 명도 남김없이 말려버려 결국 북한2019 세계 최악 현대판 노예국가로 선정됐다(워크프리재단).[5] 더구나 남한에서도 공산주의에 맞서고자 반공주의를 정당방위로서 내세우는 것을 넘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발칸 반도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나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고수했지만 나중에는 튀르키예 같은 침략국이 아닌 같은 남슬라브 민족을 상대로 동족상잔을 저질렀으며[6] 러시아는 몽골 제국이나 킵차크 칸국, 크림 타타르족에 맞서 싸우는 동안은 이들처럼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이렇게 악을 악으로 단죄하다가 올챙이 시절을 잊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자신들은 권선징악으로 여기겠지만 실상은 권악징악 내지 권악징선인 일이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이런 식으로 오남용하기도 한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제40대 통일부 장관 이임식'에서 남북관계가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며, 실망과 증오의 감정을 주고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며, 결코 증오로 증오를 이길 수 없기에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2023년부터 수요집회에 다시 참석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증오 키우는 수요집회에 참석치 않겠다며,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대화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에서 ‘죽창가’ 합창 공연으로 집회를 벌이며 '태평양 연안 국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으나, 중국발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반중감정이 높아진 당시에는 공포와 혐오 말고 신뢰와 협력이 진정한 극복의 길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7]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불안감을 이용해 불신을 퍼트리고,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누고 연대할 때 진정한 이웃이고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초창기에 한국도 외국처럼 중국인 입국 금지 시행하잔 청와대 국민청원이 50만 명에 육박하자 당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런 상황일수록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은 자제해야 합니다."라면서 "지금 어려움에 빠진 중국 국민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말했다. 다만, 그로 인해 한국에서 코로나가 많이 퍼지자 중국에서 오히려 한국인들을 차단해 논란이 됐었다.

한겨레 논설위원은 1급 발암물질인 중국발 미세먼지로 반중감정이 높아지자 함께 호흡하고 같이 싸우자며 중국과의 신뢰와 협력을 강조했다. 다만 링크 기사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오히려 네티즌들에게 커다란 불씨를 일으켰고, 댓글창은 초토화되버렸다.

어느 부족은 사람을 죽인 사람을 한가운데에 놓고 그 사람의 장점을 마르고 닳도록 말하는 문화를 갖고 있단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리고 팃포탯에서 증명됐지만. 끝없는 보복과 의심, 기만은 공멸을 불러와 생존전략에서 굉장히 불리해진다. 하지만 팃포탯은 즉각적인 보복은 하되 한번만 하고 이후에는 적극적인 용서와 협력을 하는 전략을 폈는데. 이렇게 되면 공존으로 인해 생존 확률이 엄청 높아진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악은 악으로 다스릴 수 없다고 호소하며, 이와 관련된 격언 또한 먼 옛날부터 수없이 있어왔다. 이하는 대표적인 어록.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마테오 복음 18장 21-22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마틴 루서 킹 목사[8]
언제 어느 때나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원한 아닌 것으로만 원한은 가라앉는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법구경(Dhammapada)
흉보면서 닮는다.
-한국 속담

4. 창작물의 클리셰로서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악을 피할 수는 없어. 차라리 악이 곧 세상의 섭리... 어떻게 처신하든 어느 한쪽의 악에는 가담하게 되고, 어울리다 보면 얼마쯤은 악당의 영향도 받지.
자네가 구하고 싶다는 착한 사람들은 악당이 보기엔 단순한 "먹이". 당연히 먹혀 버리지... 그것은 피할 수 없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필연이지...
결국... 아무도 악당을 쓰러뜨릴 순 없어. 적어도 그와 상대하는 선이라는 것 자체가 악을 쓰러뜨리려 하지 않으니...
만약... 악을 꺾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즉, 그 이상의 악... 새로운 악당... 세대교체다... 그러니까 자네가 누군가를 구한다거나... 지켜주고 싶다면... 차라리 뛰어올라... 거악(巨惡)으로...!
만화 《은과 금》의 주요 조연 히라이 긴지의 대사.
주인공인 모리타 테츠오는 끝내 이 권유를 거절하고 뒷세계에서 손을 씻는다.
흔히 피카레스크의 주인공이나, 끝까지 선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아치에너미, 혹은 라이벌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등장인물들은 보통 악을 필요악으로 취급하며 정당화한다.

그 외에 살아남거나 목적을 위하거나[9] 극단적인 상황에서 도박을 위해 상대를 분열시키는 방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악랄한 인물들을 단죄하거나 처단하기 위해 악랄한 수단이나 방식을 사용하거나 동원하는 것도 이 클리셰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이제이 플롯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이제이로 보기에는 좀 애매한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등장인물들은 악을 악으로 대적하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4.1. 예시

5. 관련 문서



[1] 알고보면 선과 악의 투쟁을 다루거나 내세우는 작품에서 이런 클리셰를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물론 비교적은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어느 정도 채용하는 편이다. 간혹 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이나 주조연들 중에서도 스토리 상의 개연성이나 극적인 연출의 필요성, 인간 관계에 따른 심리 변화 등에 따라 그런 방식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인물의 성향이 선역에서 안티히어로다크 히어로로 변화하기 쉽다.[2] 쉽사리 버티지 못할 물량(소련)이나 뛰어난 기술력(미국) 등으로 나치 독일과 그 동맹국들을 비 오는 날에도 먼지가 날 수준으로 후들겨 팼다.[3] 생철학의 기본적인 테제, 그러니까 본성이 이성에 앞서 불가분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4] 그런데 현대에는 도리어 유대인들이 가자 지구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다닌다.[5] 이는 여타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는데, 다른 나라의 공산주의자들도 자신들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몰아서 숙청해댔다. 당장에 공산주의 독재자로 악명이 높았던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을 생각해보자.[6] 물론 세르비아의 전쟁범죄가 옹호되는 게 절대로 아니지만, 해당 요인은 상당히 복잡하다. 자세한 건 문서에서 볼 것.[7] 정작 태평양으로 방류하는 오염수에 직격탄을 맞는 미국은 IAEA 핵 안전 기준을 포함한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안전한 일본의 방류 계획에 만족한다고 했다.[8] 그러나 결국 킹 목사는 1968년 보수 성향 백인인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가 쏜 총알에 맞고 사망했다. 킹 목사는 백인들이 흑인들의 형제이니 흑인들이 백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정작 제임스 얼 레이 같은 보수 성향 백인들은 그를 형제로 여기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셈. 그리고 "백인은 최악의 선생"이라던 말콤 엑스를 추종한 흑인들도 똑같이 백인을 증오하고 형제로 여기지 않았고, 말콤 엑스 또한 암살로 최후를 맞았다. 결국 흑백과 상관없이 같은 인간이었고, 그 중에는 상대를 용서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던 것.[9] 예시를 들면, 선한 목적을 이루고자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를 들 수도 있다.[10] 이 법칙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기 때문.[11] 이런 특성 탓에 다른 특촬물 에서는 보기 힘든 다크 히어로 기질을 가진 주인공이 여기서는 종종 나온다.[12] 여기선 아예 마지막 승자 고질라가 아예 도시를 훼방없이 깨부수는 중과부적 엔딩으로 끝난다.[13] 이후에도 닌자세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적은 시간 간격으로 계속 나왔기 때문에 우치하 사스케의 선택은 필요가 없어졌다.[14] 오리지널인 라이토는 그나마 정상참작의 여지라는 판단 기준이나마 있다. 레플리카들은 죄를 저지르면 무작정 죽이기만 한다. 다만 라이토도 L에게 꼬리가 잡히려고 하자 속임수를 쓰기 위한 밑작업으로 경범죄자들을 죽인 전적이 있다.[15] 레플리카 키라들은 물론, 오리지널인 라이토 또한 "엄연히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인 키라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서 키라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들 같이 명백한 살인범인 키라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죄인으로 간주해서 살해했다. 2번째 키라인 아마네 미사의 경우는 키라에게 찬성하지 않고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라이토조차도 손대지 않았던(라이토는 세상 사람들에게 키라를 서서히 인정시키려 했다) 방송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16] 적어도 L은 동료의 소중함과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가급적은 피하려는 태도 및 나름대로의 예의 같은 것들은 갖추고 있었지만, 그런 L의 자리를 동료애도 매우 희박한 데다가 상대방이 자신과 같이 일하는 동료더라도 거리낌없이 무례한 언행으로 대하는 니아가 물려받았다. 그리고 니아의 언급에서 L이 눈초리가 나빴다니 뭐니 하면서 이야기했던 것을 보면, L 스스로도 자신의 후계자로서 멜로니아를 지목했던 것은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물론 영화판에서는 니아와 L이 꽤나 친하게 나오기야 했지만, 이마저도 L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으니......[17] 실제로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등이 공식적으로 도와주기 힘든 독재국가, 군벌 등에게 불법 무기상들을 통하여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적은 아군" 이란 논리로 자국에 적대적인 세력 약화와 체제혼란을 노리고서 지원해주는 것. NCIS에서도 미국이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에 적대적인 군벌이나 범죄조직에게 불법 무기상을 통해 지원해주는 작전이 언급된다.[18] 아버지가 샤돌루 수사를 진행하던 검사라고 한다.[19] 히로 쪽 세계에서는 '박카스'라는 이름으로 지낸다.[20] 중간에 서로 화해할 조짐이 있었지만 칼 위저가 성대모사로 외계인 한 명을 흉내내어 다른 한 명을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으면서 다시 이간질시켰다.[21] 다만 작중 묘사가 수르트를 빌런처럼 묘사해서 그렇지, 수르트의 역할은 악보다는 가치 중립적인 재앙, 운명이 인격체로 형상화된 것에 가깝다.[22] 그래서 작중 별호가 '그림자 인도자'다. 지우가 크로스와 승부에서 패배하면서 폭언까지 듣고 멘붕해서 마음이 뒤틀려지자 지우의 꿈을 조종해서 비뚤어져가는 마음을 바로잡았다.[23] 크로스의 루가루암도 마샤도에게 세뇌당했다가 크로스의 설득에 제정신을 차린다.[24] 이 과정에서 주인공 일행중 하나는 절음발이가 되었고 하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25] 주변인들에게 자신 같은 나쁜 놈을 감싸다가 피해를 입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 악은 가차없이 응징한다는 신조를 가졌을지언정 최소한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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