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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1:02:03

이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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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써 이 오랑캐 이 제압할 제 오랑캐 이

1. 개요2. 배경3. 장점4. 단점
4.1. 오해
5. 사례
5.1. 실제사례(시대 순)
5.1.1. 한국5.1.2. 중국5.1.3. 그 외 아시아5.1.4. 유럽5.1.5. 아메리카
5.2. 창작물 (가나다 순)
6. 그 외7. 관련 문서

1. 개요

訓擁衛稽故, 令不得戰。議者, 咸以羌胡相攻, 縣官之利, 以夷伐夷, 不宜禁護。
등훈은 병사를 보내 호족(胡族)를 보호하여 강족(羌族)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주위의 책사들은 강족과 호족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한나라 조정에 유리한 것이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니, 호족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 그들을 지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여겼다.
《후한서》 권16 열전 제6 〈등구열전〉

중국고사성어. 말 그대로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한다는 뜻으로, 《후한서》의 〈등우·구순열전(鄧禹·寇恂列傳)〉 중 〈등훈전(鄧訓傳)〉에 나오는 구절인 '이이벌이(以夷伐夷)'에서 비롯하였다. 발음이 비슷한 \'이의제의'랑 헷갈리지 말자.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뜻의 '이독제독(以毒制毒)'[1]과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의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있다. 기미(羈縻: 회유)[2] 정책과 함께 중원에 자리잡은 제국들의 기본적인 대이민족 정책이었다. 원교근공, 차도살인 전략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피를 피로 씻는다는 뜻의 '이혈세혈(以血洗血)'이 있는데, 이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와도 유관하다.

영어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디바이드 앤 룰'인데, 차이점은 '이이제이'가 외교에서 주로 이용되었다면, 디바이드 앤 룰은 식민지 내부에 독립역량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발음을 이용해서 \'EEJ'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2. 배경

중국중원 북쪽에 자리잡은 유목 이민족 세력은 엄청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단발적인 약탈은 있어도 제대로 된 중원 침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민족들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했기 때문. 이 점을 이용해서 중원의 제국들은 이민족들의 분열을 고착시켜 그들을 제어하려 했고, 반대로 여진족이 10만 군대만 있으면 중원도 넘어간다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속된말로 북방을 관리했다.

이는 중국의 지리 특성상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중국은 중원이라는 막대한 식량 생산력을 가진 평야지대를 가져 인구 부양력이 높은 대신 동아시아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이민족들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고비사막과 티베트 고원의 서융,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인접지대의 남만, 동쪽은 서해를 두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동이, 북쪽으로는 몽골고원과 만주의 북적이 있었고, 이들은 언제나 중국 대륙의 정치가 불안정해질때마다 동서남북 어딘가에서 중원을 치고 들어왔다.

이는 유목민족이 사라진[3] 21세기의 중국에도 현재진행형이라, 만주, 내몽골, 티베트, 신장 등 과거 중원을 괴롭히던 유목민족의 땅을 차지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끊임없이 동북공정등 수많은 역사 바꾸기 시도를 통해 이 지역을 완전히 자기땅으로 만들려는 강경책을 밀어붙여 이 지역들을 완전히 한족의 영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또한 유목민족 다음으로 나타난 북방의 러시아, 이전보다 훨씬 강성해진 한국과 일본에게도 이런 강압적인 외교정책과 이간질을 시도하는 것도 중국의 이이제이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전근대시대 중원을 가장 괴롭히던 집단은 중원과 육로로 연결된 서쪽의 과거 흉노, 만주에 위치한 북방의 이민족들이었기에 이들을 상대로 수천년간 중원의 왕조가 이이제이를 써왔고, 이민족들은 북방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중원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지 못했지만, 반대로 중원이 불안하면 이들이 뭉쳤고 성공하면 중원이 이들에게 짓밟혔다. 보르지긴 테무진 등장 이전의 몽골이 그랬고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이전의 만주가 그랬다. 비단 이민족뿐만이 아니라 나라에 망조가 들면 출몰하는 거대 도적집단들에게도 이이제이를 시전한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 강해서 국가가 당장 진압하기 힘든 도적단의 우두머리 몇몇에게 벼슬자리를 던져주고 다른 도적들과 이간질을 시키는 것이다. 후한에게 평난중랑장 직위를 받은 흑산적 두령 장연이나 송나라에게 벼슬을 받고 민란 진압에 나선 송강, 원나라에게 태위 벼슬을 받은 장사성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이제이의 사례는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대 로마의 경우에도 북방의 게르만족을 취급할 때 이이제이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사례가 많다.

3. 장점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면 대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대에게는 어찌되었건 대단히 효율적인 책략이다.

4. 단점

어디까지나 지속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4.1. 오해

이이제이라는 전략에 대해 단순히 적으로 적을 제압한다거나, 외세를 이용해 외세를 물리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오해이다. 물론 골자는 그것이 맞지만, 그냥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이해를 잘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냥 동맹을 맺은 것을 가지고 이이제이라고 착각해도 곤란하다. 백제가 가야와 같이 신라를 공격한 건 동맹이지 이이제이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전통적으로 한반도와 중원의 왕조들은 대북방 정책으로 이이제이를 활용해왔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명나라 시기 극에 달했는데,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이이제이의 모습은 여진족 내부 관리에만 나오지 않았다.
명나라의 경우,

이렇게 안정적인 국방 관리를 위해 이이제이를 주요한 국방 정책으로 삼았고, 이는 일정 시점까지 원활하게 작동한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명나라의 이이제이는 몽고-여진-조선간의 싸움을 유도하고, 그렇게 함으로 세 개 세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여 결과적으로 명나라가 확고부동한 위치에 서게 만드는 것이고, 이것이 이이제이의 표본과도 같다.

이와 같이 전통적으로 이이제이의 핵심은 내가 두 세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이후에 두 세력을 모두 통제할 계획이다.라는 두 전제가 깔려있는 상태로 행하는 것이다.

만일 그와 다르게, 두 세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이후 통제할 계획도 없다면, 그건 애초에 이이제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이이제이 전략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가령 신라가 자존심을 위해 '우리가 당나라로 이이제이 전략을 썼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실질적인 인식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5. 사례

5.1. 실제사례(시대 순)

5.1.1. 한국

5.1.2. 중국

5.1.3. 그 외 아시아

5.1.4. 유럽

5.1.5. 아메리카

5.2. 창작물 (가나다 순)

6. 그 외

7. 관련 문서



[1] '이독공독(以毒攻毒)'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현대 약학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부작용이 없는 약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독으로 독을 다스리는 것이 기본이다.[2] 《漢書 · 郊祀志下》: 方士之候神入海求蓬萊者終無驗, 公孫卿猶以大人之跡為解。天子猶羈縻不絕, 幾遇其真。(唐)顏師古註: 羈縻, 系聯之意。馬絡頭曰羈也。牛靷曰縻。; (漢)司馬相如《難蜀父老》: 蓋聞天子之牧夷狄也, 其義羈縻勿絕而已。[3] 몽골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몽골제국에 비해 매우 약체화되었다.[4] 다만 카탈라우눔 전투 문서에서 보듯이 훈족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서로마군도 결코 작지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스틸리코희대의 암군에게 어이없게 살해당한 이후에 그에게 충성했던 서로마 주력군이 황제를 배신하고 서고트족장 알라리크에게 붙어버려서 전력에 일시적 공백이 생겼는데 그뒤 아에티우스가 변경지역에 남은 2선급 병력을 긁어모으고 노예,검투사등을 해방시켜서 전력을 보충하는등 사력을 써서 그나마 다시 모아놨다가 훈족과 싸우는데 써먹었던 서로마 잔여병력들 역시 아에티우스가 암살당한 이후 와해되어버리는 바람에 서로마 제국군 자체가 해체되어버려서 서로마 제국은 발렌티니아누스 3세 이후로 국가 멸망 테크를 착실히 타게 되었다.[5] 실제로 게르만족들은 야만족이었어도 그 수뇌부들은 로마제국에서 오랫동안 수학하여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로마제국에 있었으니 로마제국의 상황을 꿰고 있었다. 이 코스를 탄 마지막 인사가 테오도리크 대왕이다.[6] 조선을 견제한다는 것에 의문을 느낄 수도 있는데, 몽고나 여진처럼 큰 위협을 느꼈다기보다는 만주에서의 세력 다툼에 가까웠다. 불안정한 만주에서 여진족들을 경쟁적으로 포섭한 것이다.[7] 실제 이렇게 금에게서 탈취한 양양성은 훗날 몽골의 침공을 7년이나 막아낸 방어기지로서 활약했다.[8] 금나라에게 화북을 뺏기고 원나라에겐 그냥 나라를 뺏긴다.[9] 이와 같이 제국에 협조하는 이민족들을 '포이데라티(Foederati)'라고 불렀다. 참고로 이 Foederati는 영단어 Federation(연방)의 어원이 되었다.[10]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 먼나라 이웃나라 이탈리아편에도 이이제이라는 말이 나온다.[11] 심지어 제1차 세계 대전때는 트렌티노알토아디제트리에스테, 고리치아까지 꿀꺽했다.[12] 여자 아이들의 치마 속을 사진으로 찍는 추악한 짓을 저지른다. 참고로 추정호가 찍은 아이들 중에는 전재준의 친딸 하예솔도 있었다.[13] EEJ가 이이제이로 발음되는 일종의 말장난. 오즈랜드에서 말하길 Enemy.Enemy.Jeopardize의 약자라 카더라. 뜻은 '적.적.위태롭게 하다'로, 이이제이와 같은 말이다.[14] 여기서 알라라크가 제일 큰 이득을 누린 건 첫 번째 승천자가 되어 말라쉬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데 성공한 것이라 봐야 할 듯하다. 만일 자신의 앞 순위의 승천자가 살아있다거든 골치가 아팠겠지만 다행히 싹 다 죽었기에 말라쉬에게 직접 도전할 수 있었다.[15] 단, 고양이(와일드카고) 상태에서는 지능이 딸리는지라 인간으로 변신한 후에야 기억해 냈다.[16] 주카가 헤르미온느한테 재를 뿌려서 시각과 청각을 못 쓰게 막고, 아루루가 에뜨랑한테 (주카가 싼) 고양이 오줌을 뿌려 에뜨랑이 헤르미온느에게 쫓기도록 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