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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9:53:02

오랑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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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북적
(北狄)
서융
(西戎)
중화(中華)
중원(中原)
동이
(東夷)
남만
(南蠻)

1. 개요2. 상세3. 어원이 된 실제 민족4. 관련 문서

1. 개요

고비 사막의 북방(주로 몽골을 가리킴), 즉 막북의 동부에 할거하던 몽골계 종족인 우량카이족에서 유래한 이민족에 대한 한국어 멸칭이다. 사실상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중세 몽골어로 '삼림민'을 뜻하는 우량카이(Uriankhai)에서 유래했는데 중세 몽골인들이 투바인들을 비하할 때 쓰이던 말이기도 했다. 특히 원나라때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중원으로 이주한 일부 몽골족은 중원으로 이주하지 않고, 여전히 초원이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족들과 다른 유목민들을 야만족으로 여기며 멸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하 공화국의 원주민 사하인들은 스스로 '우랑카이'(용감한 무사)라고 부르는데 오랑캐라는 말과 연관될 수도 있다.

2. 상세

우량카이라는 이름은 명나라때 북방 이민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고,[1] 이것이 조선에서 오랑캐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ㅗ/[u > o], /ㅐ/[ai~aj > ε]의 발음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어형이 되었다.

보통 몽골계 민족과 퉁구스계 여진족[2]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오랑캐'라 불렀다. 한국에서도 요새는 좀 구분한다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러시아인 등 서양인을 가리켜 뭉뚱그려 다 미국인[3][4]이라고 하거나, 비하해서 양키라고 부를 때도 많았다. 서양인들도 근대까지는 몽골 등 중앙아시아 계통 유목민들을 싸잡아서 '타타르'라고 불렀었다. 이와 같이 외국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여러 이민족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현상이 흔했다. 어쨌든 실제 우량카이족이 존재하지만 여진 및 몽골 등 중국의 한족을 제외한 이민족들을 전부 다 '오랑캐'로 지칭했었고, 북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본인도 왜인이 더 많이 쓰이긴 했지만 '섬나라 오랑캐, 왜놈 오랑캐' 등으로 지칭하기도 했으며, 서양인도 '서양 오랑캐' 또는 '남만'(南蠻), '양이'(洋夷)라고도 불렀으니 한국어 단어로서는 그냥 이민족 전반을 이르는 멸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조선에서는 만주에 거주한 옷치긴 왕가의 후예인 몽골계 3부(올량합 3부)를, 명나라에서 '우량카이족의 후손'이란 뜻에서 우량카이 3위라 지칭했던 것[5]의 영향을 받아 조선 북방의 이민족들을 몽땅 오랑캐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과 주로 접촉했던 건 몽골계의 우량카이 3위와 무관한 퉁구스계의 여진족, 그 중에서도 가장 문명화가 덜 된 야인여진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주로 두만강 유역에 거주한 왈개부에 해당하는 집단이었다. 명나라에서는 이들을 우량카이 3위와는 별개인 모린위로 불렀다.

문명화된 건주여진에서 출발했던 청나라에서는 이들을 동해 3부라고 불렀으며, 여진 계통의 동족이란 건 인식하고 있었으나 문명화가 덜 됐다고 여겨 초기에 귀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만주족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즉 유목세계에서도 '오랑캐'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려때부터 유목민족의 침략에 시달렸던 조선에서는 문명화가 됐든 말든 따로 구분하지 않고, 유목민족이면 몽땅 '오랑캐'라 불렀다.

윗 문단에도 나와있듯이 타타르의 용례가 '오랑캐'와 비슷하다. 타타르는 본래의 타타르족[6]의 행적과는 상관없이 서방세계에서 야만적인 유목민족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이는 원래 유목세계에서부터 비문명화된 부족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던 것이 전해진 것이었다. 타타르족은 여진족의 금나라에 협력하여 몽골족이 대제국을 이루기도 전인 초창기의 카마그 몽골 시대부터 극렬하게 대립했었기 때문에 몽골인들은 타타르라 하면 치를 떨었고, 본래의 타타르족들을 절멸시킨 뒤로도 적대적인 유목민 부족에 대한 멸칭으로 타타르를 사용했다가 마침내 몽골 제국을 이루게 되자 용어의 용례가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달자(達子, 타타르-달단의 자식)라는 멸칭으로 정착했다[7].

중국의 한족 혹은 중국인을 싸잡아 욕하는 말인 되놈(떼놈)의 어원은 도이인데 '도이'는 고려시대부터 거란족이나 여진족 등의 이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북쪽 놈'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고, 때때로 뜻을 달리하여 '섬 오랑캐'라는 뜻으로(島夷) 왜구를 가리키는 단어로도 쓰였다. 송나라때도 거란, 여진, 탕구트족(서하)과 많이 싸우다보니 이들을 북적 또는 융적이라 부르는 등 야만인 취급을 했다. 또한 유래인 우량카이족의 입장에서 보면 부족명이, 자기들과는 별 관련도 없는 조선까지 가서 야만족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다소 억울한 점이 많은 단어이기도 하다(...).[8].

여담으로 중국의 몽골족 성씨 중에 '우량카이'(兀良哈, 올량합)가 있다고 한다. 1980년대의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온 6.25 전쟁 소설에서도 중공군을 '중공 오랑캐'라고 부르며 한국군 장병들이 멸시하듯이 부르는 묘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의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 한국군 군가 중에도 <행군의 아침> 등 몇몇 노래에는 '오랑캐'라는 표현이 나온다.

현재도 외국인에 대한 멸칭으로 오랑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전술한 '중공 오랑캐'도 이에 따른 것이다.

개와 오랑우탄 사이의 자식이 오랑캐라는 아재개그가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멸칭으로 오랑캐라고 부른다.

3. 어원이 된 실제 민족

자세한 정보는 우량카이족 문서 참고.

4. 관련 문서



[1] 하지만 몽골인에 대해서는 '타타르(의 중국 표기 달단)의 자손들'이라는 뜻으로 달자라고 불렀다.[2] 그 외의 퉁구스 제민족들[3] 사실 1989년에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기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외국 여행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을 만큼 국제 사회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서양인이라고는 주한미군이나 그 관련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미국인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서양인은 죄다 미국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4] 평택 등 일부 지역에서는 서양인 자체를 미군이라고 불렀다.[5] 다만 실제로 우량카이족의 후손은 타안위(朶顔衛) 하나뿐이었다.[6] 몽골계인 실위의 분파였으나, 그 명칭의 어원이 고대 튀르크어인 걸로 봐서는 돌궐(쾩튀르크) 제국의 영향으로 튀르크화된 것으로 보인다.[7] 몽골족이 한족의 반란으로 몽골 초원으로 쫓겨난 지 훨씬 이후인 명말청초에도 이 달자라는 호칭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한테도 그대로 쓰여서, 명나라 부흥군이었던 정성공의 군대도 청나라와 맞서 싸울 때 "달자를 무찌르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8] 물론 타타르도 그랬다시피 이런 경우는 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