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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르바로이(βάρβαροι, barbaroi)는 그리스어로 이어족(異語族,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 야만인 등을 의미하는 통칭이다.외국인들의 말을 [바르-바르]라는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어감으로 따지면 우가우가와 유사하게 대응하지만, 바르바로이는 본래는 비하의 뜻 없이 '다른 말하는 자들' 정도의 뜻이었으나 후대에 비하적 뉘앙스가 강해졌단 차이가 있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바바리안이다.
2. 사례
일단 그리스어를 못하면 무조건 바르바로이로 분류했기 때문에, 페르시아도 바르바로이로 취급됐다. 그리스어를 할 수 있거나 그리스계 민족이라도 마케도니아나 에페이로스처럼 아래 후술되는 조건에 해당사항이 있으면[1] 바르바로이로 간주되었다.그렇게 콧대 높은 그리스인들도 나중에 가면 로마인에게 밟히지만 그때는 로마인들도 그리스인들의 후예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로마인들은 트로이에서 도망쳐 나온 유민들의 후손인데 트로이도 그리스 문화권이었으니 결국은 로마인들도 그리스인이라는 것이다. 근데 이 말은 로마인들이 먼저 주장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지중해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에서 자기네들을 동급으로 취급해준다는 데 굳이 태클을 걸진 않았고 그냥 그리스를 잘 통치했다.[2] 로마 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이후에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화가 이루어졌지만 덕택에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인들은 자기들을 로마인이라고 여겼다. 4차 십자군을 계기로 이때까지 '로마인'이었던 그리스인들의 그리스 민족주의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자각한 건 19세기 그리스 독립 전쟁 이후의 일이다. 그리스가 독립한 과정이 처음에는 자력으로 독립하려다가 오스만으로부터 반독립 상태였던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가 보낸 군대에게 거의 진압되기 직전 서유럽의 힘을 빌려서 독립한 것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서유럽계 왕족을 왕으로 세워야 했다. 그리고 당시에 이미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다지만 로마라는 국호로 독립하기에는 서유럽과 가톨릭 교회를 자극할 우려가 있었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여전히 오스만의 수도였고 로마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오던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직은 (그리스인들이 보기에는) 오스만의 충실한 어용이 되었기 때문에, 차마 로마라는 국호를 쓰기 어려웠다. 영어 위키백과 Roman people(로마인)에도 로마인(Romioi)이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보다는 여전히 오스만 치하에 있는 이들을 더 연상케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스만 치하에서 게으른 노예로 있던 로마인과 대립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용감한 자유의 투사인 그리스인(Hellene) 상이 형성되었다는 대목이 있다.[3] 물론 그리스인들이 자국(민)에 대해서 로마(인)이라고 부르는 용례는, 한국인들이 서울을 한양, 한국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돌려부르거나 혹은 문학적인 용도로 쓰이는 옛 이름으로는 여전히 간혹 쓰인다고 한다.
그리스어를 못하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 일부를 예를 들자면,
한편으로는 웃긴 양상이 되기도 했는데 가령 마케도니아의 경우 당시에는 역시나 바르바로이라 천시했지만, 현재는 마케도니아의 역사를 두고 북마케도니아와 국가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바 있다. 물론 이 천시는 2400년 전 조상들의 일이므로 굉장히 억울할 것이다.
3. 타 언어의 유사 표현
헬레니즘-로마 시대 이후 중동을 제패한 아랍인들 역시 비아랍인들을 아잠(عجم)이라 칭하며 차별하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란 서부를 지칭한 이라키 알 아잠과 홍해 연안 아프리카를 칭한 빌라드 알 아잠이 있다. 물론 나중에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 등이 번성하자 아랍인들이 튀르크인들을 상전으로 모시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바레인의 페르시아인들은 아자미로 지칭된다. 아랍 외에 오스만 시절의 터키어에서도 이란인들은 아젬(Acem)으로 불렸다. 현재는 고어표현으로 간주된다. 특히 이란의 쉬아 무슬림들을 아잠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슬라브어파 언어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는데, 독일인을 일컬어 러시아어의 немцы(녬찌), 보스니아어의 nemci ljudi(넴치 류디), 불가리아어의 немски хора(넴스키 호라), 우크라이나어의 німці(님찌), 폴란드어의 Niemcy(니엠치)와 같이 nemci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데, 고대 슬라브어로 벙어리라는 뜻이었다. 독일인들이 슬라브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슬라브인들이 이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런 표현이 붙은 것 같다.
[1] 마케도니아: 한 사람의 왕이 지배하는 국가. 에페이로스: 도시에서 살지 않고 촌락 생활을 한다.[2] 사실 안토니누스 칙령 이전 기준으로 그리스인은 본국 이탈리아의 로마 시민권자 바로 밑의, 일인지하 만인지상 같은 대우를 받았다. 디아도코이 왕조 계열 국가에서 그리스인들은 여전히 대단한 위세를 누리고 살았으며, 유명한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들은 속주세를 면제받기도 했다. 공식 문서 언어로 그리스어를 쓰고 라틴어를 촌스럽게 느끼는 등 지배와는 별개로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동경을 가졌다.[3] Roman self-identification among Greeks only began losing ground with the Greek War of Independence, when multiple factors saw the name 'Hellene' rise to replace it. Among these factors were that names such as "Hellene", "Hellas" and "Greece" were already in use for the country and its people by the other nations in Europe, the absence of the old Byzantine government to reinforce Roman identity, and the term Romioi becoming associated with those Greeks still under Ottoman rule rather than those actively fighting for independence. Thus, in the eye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a Hellene was a brave and rebellious freedom fighter while a Roman was an idle slave under the Ottomans.[4] 스파르타의 경우는 왕이 두 명이다.[5] 여기서 폴리스적 삶은 '도시와 시골의 구분'이 아니라 '정치'를 말한다. 고전기 희랍인들은 동방에는 '정치'가 없고 오직 노예적 굴종만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전제를 (독재 및 전체주의와 함께) 통치의 한 형태로 규정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까무러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성 자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동쪽의 이웃들이 감내하는 전제와 자신들을 구별하는 것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 그리스인들이 확실히 알았던 것은 자신들이 동양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집트나 페르시아 같은 동양의 제국들이 지닌 훌륭한 문화들을 종종 흠모했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지배받는 방식을 보통 경멸했다. 그들은 이 낯선 시스템을 ‘전제’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인과 노예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전사(戰士)인 그리스인들은 동양의 지배자 앞에서 신하들이 엎드리는 관습을 혐오했다. 그들은 이 관습을 시민과 이들을 다스리는 자 사이의 용인될 수 없는 형태의 불평등이라고 여겼다.」
-케네스 미노그Kenneth Minogue, 《정치》POLITICS: A Very Short Introduction, 공진성 번역, 교유서가, 2018
「오늘날 우리는 전제를 (독재 및 전체주의와 함께) 통치의 한 형태로 규정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까무러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성 자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동쪽의 이웃들이 감내하는 전제와 자신들을 구별하는 것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 그리스인들이 확실히 알았던 것은 자신들이 동양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집트나 페르시아 같은 동양의 제국들이 지닌 훌륭한 문화들을 종종 흠모했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지배받는 방식을 보통 경멸했다. 그들은 이 낯선 시스템을 ‘전제’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인과 노예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전사(戰士)인 그리스인들은 동양의 지배자 앞에서 신하들이 엎드리는 관습을 혐오했다. 그들은 이 관습을 시민과 이들을 다스리는 자 사이의 용인될 수 없는 형태의 불평등이라고 여겼다.」
-케네스 미노그Kenneth Minogue, 《정치》POLITICS: A Very Short Introduction, 공진성 번역, 교유서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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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올림픽을 말하는 것인데 올림픽 선수들이 나체로 경연한다는 게 당시 그리스의 민족혼 비슷하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플라톤이 등장인물들(소크라테스와 그 학파 사람들)의 대화 형식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폴리스의 모습을 서술하는데, 그 국가에서는 남녀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남녀 모두 올림픽에 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남녀 선수 모두 올림픽에선 나체로 운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플라톤은 사역동물들도 암수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키는데 인간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같은 이유로 남녀평등을 주장했다.[7] 이 점만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물론이고, 로마 제국의 5현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 황제도 훌륭한 야만인. 한편 켈트 등 와인이 고급 수입품이었던 북방 민족들은 아까워서 물을 타서 먹었다고 한다. 사실 당시 와인은 액체라기보다는 점성이 매우 높아 거의 찐득찐득한 젤리나 시럽 수준이었다. 물론 그만큼 매우 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