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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3:25:21

가해자가 된 피해자


1. 개요2. 어록3. 사례
3.1. 대표 사례 및 유형
4. 관련 문서

1. 개요

말 그대로 과거 피해자였던 사람이 시간이 흘러 가해자가 된 것을 뜻한다. 현실과 창작물을 가리지 않고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있으며, 창작물의 경우는 그 비극성이나 악독함을 강조하고자 같은 범죄로 엮이는 게 특징이다.[1]

창작물에서 이전의 피해자가 이후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로 주요한 의미는 타락, 흑화를 의미하지만 도와주고 누명쓰기처럼 가해자로 오해받는 피해자도 아우르는 복합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2. 어록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2]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中
He's got his mother's face. And his father's hand. [3]
엄마의 얼굴을 닮았고, 아빠의 손을 닮았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혼란스럽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혼란이 점점 더한 건 과거 사악한 집단으로 여겼던 자본가나 기득권층이 직접 만나보면 상당히 젠틀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다.[4]

화가 나서 미치겠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창업자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니라 2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꼬인 게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착하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다. 예전엔 못 가지고 무식한 사람들이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것.[5]

빈부의 격차가 인격이나 인성마저도 그렇게 비틀고 있다.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참 답답하다. 『말』을 보면 운동권 내부에도 참 비리와 문제가 많은 것 같고……참으로 진실이 뭔지 혼란스럽다.
영화감독 박찬욱, 2003년 2월 월간 말과의 인터뷰 중에서 진보 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해달라는 기자의 물음에 길게 침묵하다 꺼낸 말.

3. 사례

이 클리셰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는 과거에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당했던 사람이 일종의 보상 심리 등으로 나중에 자신이 당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고 있는 경우이다.

사실 꼭 보상심리까지 갈 것도 없고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기에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돈 주는 사장님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미소가 한가득이다가, 자기가 돈 주는 식당 주인에게는 깍두기 갯수 조금 적다고 잔소리와 폭언을 퍼붓는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한 피해자라기보다는 힘과 권력이 없어 가해자가 되고싶은데 못 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던 새털만큼의 권력만 생기면 급격히 표변해서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행태를 취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상술했듯 현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내리갈굼등으로 자주 겪어볼 수 있는데, 병역을 간다면 일병때 내리갈굼을 당한 사람이 상병, 병장이 돼서 내리갈굼을 하거나 군내 부조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여성은 시가살이를 하며 갈굼받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돼서 똑같이 며느리를 갈구는 상황이 이에 속한다. 직급이나 사회적 입지 등에서 아래에 속한 사람이 그 직급이나 위치가 높아지면서 자신이 당했던 악습을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악독한 선임들도 대부분 과거엔 자기 선임들에게서 갈궈지던 후임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본인도 엄연한 피해자였음에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해자로 바뀌는 까닭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만 몇 개 추려보자면, '나는 너와 같은 시절에 갈굼당했는데 너는 편하게 있으면 나만 억울하잖아!' 같이 일종의 보상심리(즉 본전생각)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똑같이 수행하는 경우도 있고, 후임 시절은 갈궈지다 보니 점점 자신도 모르게 '너희 같은 것들한테는 이래도 돼' 같은 생각이 무의식중에 새겨지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똑같은 수행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 중에는 아예 후임 시절에 '내가 선임되면 지금 내가 당한 것들 똑같이 물려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아무리 갑질이나 학교폭력, 똥군기, 시집살이, 인권침해 등이 세간에서 욕을 먹어도 정작 당사자들은 상기한 이유들 때문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해 자정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므로 누군가 가혹행위를 하지 못하게 강제하지 않는 이상 자발적으로는 쉽게 근절되지 못하고 오래 남게 된다. 아니, 위에 예시로 든 것들은 실제로 관련 법이 있는데도 적발도 쉽지 않고 기준이 너무 애매해 지켜지지 못하는 것들뿐이다.

이 경우 가해하는 대상이 가해자일 경우에는 동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가해하는 대상이 가해자가 아니라면 동정을 받을 여지가 없다.

또 다른 경우는 사건의 피해자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입장이 뒤바뀌어 가해자가 되는 경우다. 원래의 가해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입장을 뒤집어 버리는 식의 묘사가 등장한다. 그밖에도 사건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오히려 자신이 상대방에게 저지른 행위가 가해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6] 이 경우에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하는 활동으로 내용이 전개되거나 복수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든 본인들이 가해자인 만큼 마지막엔 자신들도 다른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당하거나 좋지 않게 끝나는 결말을 맞이하거나 아니면 작중 최후의 승자가 된다. 전자는 권선징악을 중시하는 작품이나 작중 주인공의 주적으로 등장할 때 많이 보이고, 후자는 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에서 많이 보인다.[7]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째 에피소드 <뫼비우스의 띠>는 바로 이 상황을 비유한 제목이다. 재개발 피해를 본 앉은뱅이와 꼽추가 자기네 입주권을 강탈한 부동산 개발업자를 살해했다.[8]

반대로 이전의 가해자가 이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보복 싸움처럼 둘이 같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사회나 집단이 난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악을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창작물에서는 보통 내용은 반대로 현재 가해자인 자가 알고 보니 과거에는 피해자였다라는 쪽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후배를 민폐로 묘사해 윗사람의 부조리를 정당화시키고 대물림시킨다.

3.1. 대표 사례 및 유형

4. 관련 문서



[1]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똑같이 가정폭력 가해자가 되거나 또는 흉악범죄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복수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이를 희생시키는 사례가 있다.[2] 보통 고인 물은 썩는다와 비슷한 논조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니체의 의견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 해석이다. 니체는 약자를 '절망과 죄책감, 천민의 도덕을 퍼트리고 강자의 미덕을 파괴하는 자들'로 칭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보며 저 문장도 책 전체를 보면 근묵자흑을 묘사하는게 아니라 대등한 경쟁에서 실력 부족으로 패배하여 보상을 얻지 못한 사람이 상대를 악으로 주장하여 패배를 정당화하는 식의 것을 말한다. 해당 문맥이 워낙 유명해 이 문맥만 널리 퍼져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맥만으로 보자면 잘못된 용도로 인용되는 사례인 셈이다.[3] 포르투갈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APAV)의 공익광고[4]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인 겉치레와 예의범절이라는 사회적인 '가면'을 쓴다는 점과 이 문맥에 나오는 자본가기득권층은 '처세술'쯤은 기본 장착인 계층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이 내용을 말하는 사람이 영화감독계의 거장 박찬욱이라는 것 또한 감안해야 한다.[5] 그러나 이러한 언더도그마를 무지성으로 배척하고 혐오하는, 속칭 오버도그마 현상을 경계하는 사람 또한 많다. 애초에 약자강자, 돈의 많고 적음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지 개개인의 인성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6] 예를 들어 소매치기를 잡으려다가 치한으로 몰리는 경우.[7] 알고 있겠지만 이 나라가 법치주의인 이상 재판청구권을 제외하고 법에 명시된 예외적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직접 심판할 권리가 없다. 자신이 처벌하는 순간 그게 물질적이든 신체적 정신적 가해를 입히든 범법이기 때문. 감정에 휩쓸려 보복하는 순간은 똑같은 사람이 됨을 기억하자.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클리셰의 대부분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실로 착각하며, 실제로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복성 사적제재를 했다가는 법앞에서 정당방위 따윈 없으며, 운이 좋아야 감형을 받고 보통은 감형없이 자신이 한 범죄와 똑같은 형량을 받게 된다.[8] 이건 부동산 개발업자한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차라리 가해자가 된 피해자보다 복수에 더 가깝다.[9] 실제로 막장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나중에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의도치 않게 자신도 막장 부모가 된다고 한다.[10] OCN 드라마 보이스 4에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방영된다. 과거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아들이 성장한 이후 복수를 위해 아버지를 인신매매 조직에 팔아넘긴다.[11] 실제로 미국에서는 여중생 자살 사건이 일어나자 가해 학생의 부모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12] 학교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들의 강요와 협박으로 인해 자신보다 더 약한 학생 (예를 들자면 장애학생)을 괴롭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학생의 악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이것보다는 피해자가 화풀이를 위해 가해 학생 등등 주변 학생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자신보다 더 약한 학생을 건드리는 경우가 더 많다.[13] 간부와 나머지 후임들의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하며 거기서 오는 반발까지도 이겨내야 한다. 간부 입장에서는 이제껏 잘 돌아가던 것을 왜 바꾸냐고 물어올 것이며 현상유지를 원하는 간부 특성상 부정적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후임 입장에서는 이제껏 고생했던 것은 선임이 되어 자신도 선임들이 누려보던 것을 얻을 날만을 기다려왔기 때문인데 갑자기 자신 대에 이르러 그것을 없앤다고 하면 일이병 때 고생하고 상병장 때도 고생한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선임에게 그냥 지금처럼 유지하자고 반발하게 된다.[14] 다만 이는 육군 한정[15] 자신이 초딩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초딩을 비하하면 자신이 초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16] 오히려 피해를 준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낙인찍힌 대상이나 연좌대상이라는 걸 지각한 상태에선 그런 걸 행하거나 보면서 오히려 너는 당해도 싸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까지 한다.[17] 특히 이런 낙인 피해자나 연좌 피해자들 중엔 무고하거나 무고했는데 범인으로 몰린 사람의 지인이어서 덩달아 휘말린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무고했는데 누명쓰고 몇 년 이상 형량을 치르는 손해를 본 사람들과 함께 피해본 무고자의 연관자들이 존재한다) 잘 모르고 공격했다가 정말 애먼 사람을 공격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18] 당시 정작 담임교사는 이 아이한테 나쁜 짓을 한 가해자들을 두둔해서 국민들이 분노해 담임교사의 신상이 털리고, 교육청과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글과 항의전화가 빗발쳤다.[19] 주로 이류대라는 부류들이 여기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일류대 출신들에게 놀림받고 삼류대 출신들을 놀린다.[20] 이로 인해 실제로 동양인들 중 흑인들 관련 언더도그마를 보이면 주변에서 유태인 경찰과 똑같은 취급을 받으며 욕을 먹곤한다. 대표적으로 조지 플로이드 사건 당시 국내에서도 흑인들한테 동조하다가 주위에서 동양인들을 상대로 인종차별하고 해코지 하는 건 흑인들이 제일 많이 저지른다는건 알고 동조하냐면서 욕을 엄청 먹은 사례들이 많았다.[21] 애초에 미국은 테러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격한데, 버스 기사 폭행은 테러와도 같기에 당연히 엄중처벌된다.[22] 다만 이 주변 인물들이 과거 가해자의 악행을 옹호하거나 악행에 동조했다면 조금이나마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