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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1:42:36

김구(1488)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4대 명필
사자관체 예서체 인수체 초서체
석봉 한호 비해당 이용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


파일:external/www.enewstoday.co.kr/420661_89180_427.jpg
김구의 필체인 인수체. - 대전시립박물관 전시

1. 개요2. 생애3. 사망 이후

1. 개요

1488년 예산군 ~ 1534년

조선 중종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대유, 호는 자암(自庵)과 삼일재, 시호는 문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선의 4대 명필로 손꼽힌 사람으로, 김구가 인수방에 살았으므로 김구가 쓴 필체는 '인수체'라고 불렸다.

2. 생애

생원 시절 세조 즉위 초에 폐위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소릉(昭陵)을 복위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으며[1], 1513년에 별시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조광조, 김식 등과 함께 사림파의 주요 인물로 홍문관 부제학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된 뒤 개령으로 유배되고 남해, 임피 등으로 이배되었다가 1533년에 풀려났다.

이후 고향 예산에서 여생을 보내었으나 1534년, 풀려난 지 1년 만에 사망하였다.

3. 사망 이후

사망한 지 4년 뒤인 1538년에 부제학 직첩을 되돌려받고[2] 영조 시절 시호를 추증받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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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종실록 17권, 중종 7년 12월 7일 정미 3번째기사[2] 중종실록 87권, 중종 33년 4월 12일 을묘 3번째기사[3] 영조실록 64권, 영조 22년 9월 6일 기해 7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