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대십국시대 후당의 신하 장승업에 대한 내용은 장승업(후당)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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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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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승업(張承業) |
출생 | 1843년(헌종 9년) |
사망 | 1897년(고종 34년) (향년 54세) |
국적 | 조선(1843~1897) |
1. 개요
조선 후기의 화가로 1843년에 태어났다. 호는 오원(吾園)이다. 오원이라는 호의 유래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주었다는 설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처럼 절세 화가의 호에서 착안해 '나도 원(園)이다.'라는 의미에서 나 오(吾)자에 동산 원(園)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1]사람에 따라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미술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왜냐하면 김홍도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에 꼽는 인물은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두 자리에 자리할 인물로는 신윤복, 김득신, 심사정, 정선, 이암 등의 화가들이 거론된다. 조선의 3대 화가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조선의 유명한 화가들'로 통칭하자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장승업의 그림은 단순한 필치로 그려졌지만 필력에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이 있다. 장승업은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필체를 그림에 도입하여 한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장승업이 선택한 그림의 소재들은 진경 산수화를 선보인 정선이나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 신윤복 등과는 달리 전통 도석 인물화를 고집하여 고루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정선이나 김홍도의 뒤를 이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고미술 사학자들이 많다. 이 말인즉슨 한반도 강산을 그린 그림이 없다는 뜻이다. 정선 이후 한가닥한다는 화가들은 모두 금강산을 그려 남겼는데 장승업은 금강산은 물론이고 한반도 명승지와 관련된 그림은 한 점도 없다.[2]
2. 생애
장승업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어 고아가 되었으며 어렸을 시절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그가 할 줄 알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었고 재능도 있었으므로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술과 여자를 좋아해서 술자리에서 여인이 술을 따라주면 즉석에서 답례로 그림을 그려줬다. 그림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민영환이 고종에게 추천하여 화원으로서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장승업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화원으로 일한지 얼마 안되어 궁궐이라는 틀에 박힌 곳에 머무르며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어했다. 민영환이 이를 보다못해 "당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며 그에게 묻자 장승업은 "술을 마음껏 마시고 싶다."고 답변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고종은 특별히 명을 내려 장승업에게 술을 어느 정도 허락했지만 장승업은 성에 차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궁궐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한 항명죄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므로 이를 알게된 고종이 노발대발하여 결국 장승업은 군졸들에게 붙잡혀 몽둥이 찜질을 당한 뒤 조정으로 끌려왔다. 항간에는 주막에서 술에 취해서 얻어맞아도 맞는지도 모른채 자고 있었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하마터면 장승업은 항명죄로 인하여 참수될 뻔 했지만 그의 재능을 아낀 민영환이 고종을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겨우 죽음을 모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승업은 그 사건 후에도 술을 찾아 몇 번이나 궁궐을 탈출하려다가 걸려서 민영환한테 호되게 혼쭐이 났다. 그러나 장승업은 끝내 술을 포기하지 못했는데 결국 고종의 어진을 그리지 못한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승업을 아는 이들은 그가 술을 찾아 신선이 되었으리라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승업은 만 54살까지 살았으며 술에 빠져 살았던 취화선이기에 전반적인 그의 생애에서 그의 건강에 대하여 생각하자면 장승업의 죽음을 요절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 듯 하다. 굳이 따지자면 알콜 중독으로 인한 죽음이 아닐까?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때 그의 그림이 선물로 간 것이 확인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 대표적인 단독 작품으로는 1988년 3월 5일 KBS1에서 방영된 2부작 드라마 <사로잡힌 영혼>이 있는데 극본은 이상현, 연출은 장기오 PD가 각각 맡았으며 배우 김성겸이 연기했다. 말들을 돌보던 장승업이 갇혀 사는게 얼마나 지겨운지 모른다며 말들을 무단으로 풀어주는 묘사로써 그의 자유분방함을 더욱 강조했으며 드라마 후반부에 고종의 어진을 그리다가 술이 그리운 장승업이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채 궁궐을 탈출하는 과정이 잘 그려졌다. 나중에 극본을 각색하여 같은 이름의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 2002년 임권택 감독 영화 <취화선>[3]에서는 대단한 기인으로 그려지는데 배우 최민식이 연기했다. 옛날 디시인사이드에서 인터넷 신조어 아햏햏이 유행했던 때에 널리 알려져 '세상이 뭐라하든 나는 나! 아햏햏이오'라는 문장으로 패러디되었다. 이후 여기에서 '승업햏자'라는 이름이 파생되었다. 하지만 아햏햏의 유행이 오래 전에 끝났으므로 오늘날의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 tvN의 '어쩌다 어른' 2016년 6월 8일 방영분에서 최진기 강사에 의해 소개된 바 있다. 그런데 현대 화가인 이양원(1944년 ~ )의 그림 군마도를 버젓이 장승업의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장승업의 군마도가 있긴 한데, 최진기가 소개한 그림과는 다른 그림이다. 관련 글 아마도 한국어 위키백과의 잘못된 정보[4]에 기반하여 강의를 준비했던 듯.[5]
-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 6에서 위대한 예술가(Great Artist)로 등장한다.
- 문피아 소설 '화룡[畵龍]'은 궁에서 도망쳐 오대산의 도자기 공방에서 의탁하던 중에 술 마시고 절벽에서 떨어진 후(실제로는 도망치는데 실패하고, 병사한다.) 현대의 20세 장용운으로 환생한 장승업의 이야기를 다룬다.
- 살아온 시기를보면 사진이 충분히 남을법한데 사진들이 아직발견된것이 없다. 아마 남아있다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등으로 반출되거나 행방불명됬을 가능성이크다 .
[1] 씨네21에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 정훈이가 그린 취화선에서는 닷냥이라는 호를 가진 화가로 패러디되었다. 작중의 캐릭터 닷냥은 스스로 장승업과 라이벌이라고 주장한다.[2] 애초에 구구절절 시나 읊고 책을 가까이 하는 고고한 양반 신분 따위가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이 그리는 중국 고사 인물과 명승지를 칭찬해 마지 않는 양반 계층에 대해 역으로 풍자해 빈정거림으로 중국 도상만 그린다거나 자신 역시 신분의 한계로 인해 도피하는 마음으로 개인적 판타지 충족을 위해 중국적 도상을 주로 그려냈다는 설이 있다.[3] 취화선의 각본가가 도올 김용옥이다.[4] 2014년 2월 18일 버전 문서. 현재는 수정되었다.[5] 한국어 위키 백과에서는 이 그림이 장승업의 그림이라면서 그 출처를 개인 홈페이지인 여기로 해 두었는데, 짐작건대 작품 구석의 '양원'이라는 낙관을 장승업의 호인 '오원'으로 오식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