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영화에 대한 내용은 삼포 가는 길(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1]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2]
소설가 황석영의 단편소설. 신동아 1973년 9월호에 수록되었다.일정한 거처 없이 공사장을 떠돌아 다니는 노동자인 노영달, 팔려갔던 술집에서 도망친 작부인 백화, 출소 후 떠돌아 다니다가 고향인 '삼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전과자인 정 씨, 이렇게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게 되며, 영달과 백화는 서로 호감을 가지지만 결국 헤어진다. 영달과 정 씨는 삼포로 가는 기차 티켓을 사는데 정 씨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삼포가 공사판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출 후 공사판을 떠돌아 다녔다는 황석영 개인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는 듯한 소설로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 경제개발로 인해 고향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탁월한 솜씨로 그려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및 많은 국어영역 문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소설 후반부의 백화가 본명을 가르쳐주고 떠나는 장면, 정 씨가 삼포가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듣고 영달이 그 곳에서 일자리나 구하자고 하는 장면이 지문으로 많이 나온다. 초반에는 영달이 하숙집 주인과 눈이 맞았던 이야기, 중간에는 백화의 남성편력 등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을 교과서에 내보내기에는 좀 곤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백화의 남성편력은 당시대의 상경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다.
'삼포'는 실제 지명과는 관계없이 작가가 지어낸 가공의 지역명이다. 창원시 진해구 웅천의 삼포마을로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해당 마을은 소설의 삼포가 아니라 가수 강은철의 노래 <삼포로 가는 길>에 언급되는 삼포다.[3] (상주시 모서면에 삼포리가 있다.) 진중권의 문화 다방에 출연했던 황석영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의 배경으로서 목포를 염두에 두었는데[4] 나무를 뜻하는 '목(木)' 세 자를 조합한 한자어 '삼(森)'을 생각해내 삼포라는 지명으로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다만 작중 '삼포'의 모티프를 꼭 실제 목포시라고 보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의 목포시는 대한제국 시기 개항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광복 직후 시점에서는 이미 한국의 주요 대도시[5]로 자리잡은 상태였다가 오히려 작중 배경인 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성장동력을 상실하여 대도시로써의 상대적 위상을 상실하고 지방도시 중 하나로 위상이 추락한 상태였다. 즉 삼포의 모델이 정말 목포라고 보면 '본래 고기잡이나 하고 감자나 매던 곳'이었다는 과거(정 씨의 회상)과 '이제는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방둑과 다리에 공사판이 들어서 장까지 열린' 현재(노인이 알려준 사실)의 대비를 통해 정 씨가 결국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작품의 주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작중 배경인 70년대와 40대인 정씨가 고향을 떠났을 시점으로 추정되는 20~30년 전(40~50년대)의 사회상 변화를 기준으로 보면 목포는 이미 (당시 기준에서는) 번화한 시가지였다가 오히려 성장이 지체되고 쇠락한 지방도시로 변화한 것이기 때문.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본작의 삼포는 꼭 목포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목가적인 시골-고향 마을'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목포의 이미지가 일부 차용된 정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2. 등장인물
- 노영달 (영화에서는 백일섭, TV문학관에서는 안병경.[6])
30대의 날품팔이 인부로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하숙집 여주인과 눈이 맞아 공사가 없는 계절에도 하숙집에 빌붙어 있다가 남편에게 들켜서 도망쳤다. 같이 일했던 정 씨와 합류해 가던 길에 백화와 마주치는데, 술집 주인이 백화를 잡아오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비슷한 신세인 거 오히려 같이 동행하여 도망치는 걸 돕는다. 백화와 서로 은근히 마음을 품지만 결국 그녀를 고향으로 보낸 후 자신은 정 씨와 함께 일자리를 찾아서 삼포로 간다. 노인에게서 삼포가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는 정 씨와 대비되게 공사판 일을 잡을 수 있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 정 씨 (영화에서는 김진규, TV문학관에서는 문오장.)[7]
중년의 전과자로 교도소에서 목공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나이가 40살이 넘으며 영달에 비해 말수가 적고 과묵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기차역까지 영달, 백화와 동행하게 된다. 고향인 삼포를 깨끗하고 때 타지 않은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지만, 막상 역에서 만난 어느 노인[8]과 이야기를 하다가 10년 동안 가지 않았던 삼포가 산업화로 인한 개발로 크게 변해버렸다는 이야기[9]를 듣고 낙심한다. 결국 정 씨도 영달처럼 그 고향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부분의 눈이 날리는 곳을 똟고 가는 장면에서 이를 암시해주고 있다.
- 백화 (영화에서는 문숙, TV문학관에서는 차화연.)
술집에서 도망친 작부.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할 때 업자에게 속아 술집으로 팔린 후 유흥가를 전전했다. 나이는 22세지만 19살 때부터 이같은 풍상을 겪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로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있던 술집에서 도망쳐 집으로 가던 길에 영달, 정 씨와 조우한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영달을 마음에 들어해서 그에게 자기 시루떡 반을 주고 함께 고향으로 가자고 제안하지만 영달은 백화에게 삼립빵[10] 2개와 삶은 달걀 2개, 기차표를 사서 보내준다. 헤어지는 길에 백화는 젖은 눈빛으로(그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기 때문) 자신의 본명[11]을 밝히고 퇴장한다.
3. 영상화
1975년 이만희 감독이 영화화한 바 있는데, 삼포 가는 길(영화) 문서 참고.1981년 2월 14일 KBS1 TV 문학관 제8화에서 방영했다. 2019년 7월 KBS 측이 유튜브 아카이브 채널에 영상 풀버전을 올렸으나 비공개로 전환됐다. 임충 극본, 김홍종 연출.
1975년작 영화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철저히 실패했기에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KBS TV 문학관에서 방영한 1981년작 드라마다. 따라서 백화 역시 문숙(영화)보다 차화연(드라마)의 뽀글뽀글 라면 머리 이미지가 대중에게 더 친숙하다. 당시 만 20세의 나이로 이 작품을 찍었던 그녀의 연기는 다시 봐도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차화연은 이 드라마를 통해 묘한 이미지의 백화역을 멋지게 호연해 내며 눈도장을 찍고 이후 주연급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그녀 커리어의 전성기를 열어 젖히게 된다.
4. 기타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교재 EBS 수능특강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수능 출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2015개정 교육과정 미래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기차역에서 영달이 백화에게 기차표와 함께 찐 달걀과 삼립빵을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재의 SPC삼립에서 나오는 그 빵이 맞다. 빵의 종류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가장 유행하던 삼립빵은 호빵 또는 크림빵이었고, 작품 배경이 추운 겨울이니 따뜻한 호빵이 아니었을까라는 짐작도 그럴싸 해 보인다.[12] 하필 삼립빵인 이유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양산빵 브랜드 중 하나가 삼립이었고, 특히 빵집도 그리 흔치 않던 시절 구멍가게나 역 매점에서도 쉽게 파는 것이 삼립의 크림빵, 팥빵 따위였으니 가다가 배고프면 먹으라는 뜻으로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서민적 간식거리를 싸주는 장면을 연출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중 백화가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라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지역은 당대의 유명한 집창촌들이다.[13]
[1] 작중 등장인물인 정 씨가 중얼거리며 하는 말.[2] 소설의 마지막 문장.[3] 마을 입구에 세워진 노래비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강은철 본인이 한 라디오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밝힌 바에 따르면 삼포란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상의 지명으로 작사한 것이며 노래비가 있다는 것도 소문을 듣고 알았다며 이렇게 된 바에 그렇게 설정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라고 했으나, 이는 강은철이 노래의 배경을 잘 모르고 한 말이다. 삼포 가는 길은 후에 아빠와 크레파스, 호랑나비(노래) 등을 작사작곡한 이혜민 작사, 작곡으로 이혜민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할 때에 진해 웅천의 삼포에서 느꼈던 감정을 노래로 만들었으므로 해당 지역을 노래한 것이 맞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을 때 이혜민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4] 실제로 작중에서 정 씨가 백화가 가는 방향을 묻고 백화가 전라선 방향으로 간다고 답하자 자신은 호남선 방향으로 간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또 작중 배경이 눈이 많이 내리는 배경인데 목포를 비롯한 호남지방은 예로부터 북서풍을 타고 서해에서 눈구름이 자주 유입되면서 다설지로 유명했다.[5] 40년대 기준 (분단 이전) 한국 10대 도시이자 4대 항구 중 하나였고 50년대 기준으로는 남한 6대 도시 중 하나였다.[6] 나쁜 녀석들에서 박준철 역을 맡은 배우.[7] 1998년에 김진규가, 1999년에 문오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배우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8] 그 노인의 아들이 그 곳에서 불도저를 끌기 때문에 바뀐 삼포 상황을 대략 안다.[9] 본래는 고기잡이와 감자 농사가 전부인 시골이었으나, 지금은 관광 호텔을 여러 채 짓는다고 공사판에 장까지 들어서고 바다엔 방둑에 다리까지 생겼다.[10]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에 삼립빵은 가장 유명한 제빵 브랜드였다.[11] 원작의 본명은 이점례. 그러나 영화에서는 어쩐 이유인지 이점순으로 바뀌어 나온다.[12] 영화판에서는 삶은 달걀과 함께 비닐 포장된 빵을 집어 봉투에 넣는데 상표가 보이지 않고 TV판에서는 처음부터 비닐 봉투를 안고 와서 건네 주는데 흰 계란은 비닐 밖으로 비쳐보이지만 다른 내용물은 파악이 안된다. 다만 영상물, 특히 영화판 기준으로 보면 (앞의 짐작과는 달리) 영달이가 사준 빵은 호빵이 아니었을 것이다. 호빵은 쪄서 뜨겁게 파는 찐빵이라 비닐 포장된 상태로 팔지 않기 때문이다. (삼립식품이 비닐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데울 수 있는 호빵 스팀팩 기술을 개발하긴 했지만, 그건 21세기 이야기다.) 그나마 뜨겁게 데운 호빵을 삶은 달걀과 함께 비닐봉지에 넣는 것은 (뜨거워서 좀 불안하긴 하지만) 못 하는 일은 아니니 TV판 기준으로는 호빵도 가능하기는 한 셈.[13] 인천 노란집(숭의역 인근), 대구 자갈마당은 이미 철거되었고, 진해 칠구(남원로터리 인근) 또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는 포항 중앙대학(젊은 군인들이 많이 들르던 곳이라 대학이라 붙여졌다고.)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