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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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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222222> · 가요 [[고조선|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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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CE 10c~1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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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 소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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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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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CE 14c~19c)
· 시조 [[조선|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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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 박인로(누항사), 윤선도(어부사시사 · 오우가), 김천택(청구영언), 김수장(해동가요), 김인겸(일동장유가), 정학유(농가월령가), 저자 미상(사설시조)
소설 [[조선|
조선 전기
]] 김시습(금오신화)
[[조선|
조선 후기
]] 허균(홍길동전), 김만중(구운몽 · 사씨남정기), 조성기(창선감의록), 박지원(허생전 · 양반전 · 호질), 저자 미상(임경업전), 저자 미상(유충렬전), 저자 미상(최고운전), 저자 미상(운영전), 저자 미상(박씨전), 저자 미상(임진록), 저자 미상(춘향전), 저자 미상(심청전), 저자 미상(흥부전), 저자 미상(토끼전)
산문 [[조선|
조선 전기
]] 유효통(향약집성방), 서거정(동문선), 김구(화전별곡), 이황(성학십도), 이이(성학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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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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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CE 19~20c)
[[대한제국|
대한제국
]]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한용운(님의 침묵), 심훈(그날이 오면 · 상록수), 김소월(진달래꽃 · 초혼), 윤동주(서시 · 별 헤는 밤), 이상(오감도), 정지용(향수 · 유리창),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육사(광야 · 청포도),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소설 · [[대한제국|
대한제국
]] 이인직(혈의 누 · 은세계), 이해조(자유종), 안국선(금수회의록)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홍명희(임꺽정), 이광수(무정), 염상섭(삼대 · 만세전), 김동인(감자 · 배따라기), 현진건(운수 좋은 날 · B사감과 러브레터), 채만식(태평천하 · 레디메이드 인생 · 탁류),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동백꽃 · 봄·봄), 이상(날개),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천변풍경), 계용묵(백치 아다다), 오영진(맹진사댁 경사)
산문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신채호(조선상고사), 김구(백범일지), 이태준(무서록)
현대
(CE 20c~21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목월(나그네), 서정주(국화 옆에서), 김수영( · ), 김춘수(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고은(만인보), 신경림(농무 · 목계 장터),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오적 · 무화과), 박노해(노동의 새벽),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 천상병(귀천),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소설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해방·전후 ~ 1970년대
]] 황순원(소나기 · 카인의 후예), 박경리(토지 · 김약국의 딸들), 최인훈(광장),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김승옥(무진기행), 윤흥길(장마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현기영(순이 삼촌), 황석영(장길산 · 삼포 가는 길 · 황석영 삼국지), 오정희(중국인 거리 · 유년의 뜰), 이강백(파수꾼 · 결혼), 하근찬(수난이대 · 흰종이 수염 · 야호)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년대 ~ 2000년대
]] 조정래(태백산맥),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평역 삼국지), 최인호(고래사냥 · 상도 · 해신), 복거일(비명을 찾아서), 최명희(혼불), 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은희경(새의 선물), 윤대녕(은어낚시통신), 공지영(고등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마광수(즐거운 사라),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영도(드래곤 라자)[1], 이우혁(퇴마록)[2]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년대 ~ 2020년대
]] 조창인(가시고기), 김훈(칼의 노래), 귀여니(그놈은 멋있었다)[3] 이금이(유진과 유진), 한강(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김려령(완득이 · 우아한 거짓말)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박상영(대도시의 사랑법), 장강명(표백), 정보라(저주토끼), 정유정(종의 기원, 7년의 밤), 손원평(아몬드), 성해나(혼모노), 김호연(불편한 편의점)
파일:북한 국기.svg 김일성(꽃파는 처녀), 홍석중(황진이), 백남룡(벗)
산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오영(방망이 깎던 노인), 피천득(인연), 법정(무소유),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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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펼치기 · 접기 ]

[1] 태성 · 천재교육 교과서 등재[2] 중앙교육·대한교과서·지학사 교과서 등재[3] 귀여니 현상(대중문화사전, 디지털 다매체 환경과 문학의 새로운 유통 양상(인문콘텐츠, 이지원, 2017)), N세대와 인터넷소설의 논리-귀여니의 소설을 중심으로(대중서사연구, 최희진, 2003)
}}}}}}}}}

파일:심훈.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심삼준(沈三俊) → 심삼보(沈三保) → 심대섭(沈大燮)
해풍(海風)[1]·백랑(白浪)·금강생(金剛生)
출생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흑석리[2]
사망 1936년 9월 16일[3] (향년 35세)
경기도 경성부 연건정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묘소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 경내
본관 청송 심씨[4] (靑松 沈氏) 안효공파
학력 교동공립보통학교 (5회 / 졸업)
경성고등보통학교 (자퇴[5])
중화민국 북양정부 저장 성 항저우 지강대학 (극문학 / 중퇴)
직업 작가, 신문기자
종교 개신교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3. 기타4. 둘러보기

1. 개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6]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C%8B%AC%ED%9B%88.jpg

대한민국독립유공자,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각본가.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흑석리(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1번지)에서 아버지 심상정(沈相涏, 1871. 9. 19 ~ 1930. 3. 9)과 어머니 해평 윤씨(1870. 6. 26 ~ 1956. 6. 20)[7]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6-10번지로 이주했다.

1915년 교동공립보통학교(5회)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었고,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다. 이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미결 구류일수 중 90일 본형에 산입),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약 8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정리하고 출옥한 후 퇴학당했다.[8] 3.1 운동 가담으로 체포된 직후인 3월 17일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관련 학생들의 평소 성품과 행실을 조사한 '학생성행조사서'에서는 심훈에 대해 '영리하나 경솔하여 모든 명령 등을 확실하게 실행하지 않는다. 게으른 편이어서 결석·지각 등이 많고 평소부터 훈계를 받아 온 자이다.'라고 설명했다.#

출옥 후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은 그는 곧 중화민국 절강성 항현(杭縣)[9]로 건너가 지강대학(芝江大學)[10] 극문학부에서 공부하였으나, 복역 시절의 후유증으로 결국 중퇴했다. 1923년에 귀국하여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를 만들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5년 5월에 철필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에서 퇴사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 소설인 《탈회》를 동아일보에 1926년 11월부터 연재했다. 《탈회》를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해 이듬해 이경손 감독의 《장한몽[11]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먼동이 틀 때》의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 및 감독을 맡았지만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1930년 조선일보에 중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연재했는데, 일본 경찰의 검열에 걸려 완성되지 못하고 집필이 중단되어 미완성 소설로 남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모델이 박헌영주세죽이라고 한다.

1927년 12월 2일에 조선일보에 "박군의 얼굴"이라는 시를 기고한다.

그는 박헌영과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이고 친구 사이였는데, 박헌영이 신의주 사건으로 인해 형무소에 수감되고 1927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을 때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이에 분노하여 시를 지은 것이다. 여기서 박군은 박헌영을 가리킨다.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코올 병에 담가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海綿)같이 부풀어 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이던가

4년 동안이나 같은 책상에서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 사람의 박[12]은 교수대 곁에서 목숨을 생으로 말리고 있고
C사[13]에 마주앉아 붓을 잡을 때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14]은 모진 매에 창자가 꿰어서 까마귀 밥이 되었거니.
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 깊은 밤
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던 이 박군은
눈을 뜬 채 등골을 뽑히고 나서
산송장이 되어 옥문을 나섰구나.

박아 박군아 XX(헌영)아!
사랑하는 네 안해가 너의 잔해를 안았다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동지들이 네 손을 잡는다
이빨을 악물고 하늘을 저주하듯
모로 흘긴 저 눈동자
오! 나는 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오냐 박군아
눈을 빼어서 갈고
이는 이를 뽑아서 갚아주마!
너와 같이 모든 X(한)을 잊을 때까지 우리들이 심장의 고동이 끊칠 때까지.

영화 평론가로도 활약했는데 메트로폴리스를 극장에서 감상하고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2년 어머니 해평 윤씨가 거주하던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15]로 내려가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1935년 장편 소설 《상록수》를 집필했는데, 이 소설이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금을 받았다. 그는 이 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다. 《상록수》를 영화화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탄압 등 여러 사정으로 끝내 만들지 못했으며[16] 《상록수》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시는 <오오 조선의 남아여>인데, 1936 베를린 올림픽 때 동갑내기인 손기정, 남승룡마라톤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는 조선중앙일보의 호외 소식을 길거리에서 주워 들고 그 자리에서 감격하여 신문지 뒷면에 즉석으로 지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伯林마라톤에 우승한 孫, 南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그 뒤 그는 《상록수》의 출간 작업을 위해 당진군에서 경성부로 상경해 한동안 한성도서 주식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갑작스럽게 장티푸스에 걸려 경성부 연건정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급히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병세가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 1936년 9월 16일 아침 8시 요절하고 말았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이었던 여운형은 심훈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으면서 이 시를 낭송하였고, 관을 안으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당초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서봉마을에 안장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 용인시 일대가 개발되자 안성시 삼죽면 마전리 산19-7번지로 이장되었다. 이어 2007년 12월 5일 셋째 아들 심재호(沈載昊, 1936 ~ 2021)에 의해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筆耕舍) 경내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른다.

3. 기타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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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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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이달의 문화인물(1998-2005) }}}}}}}}}

[1] 어머니의 본관인 해평 윤씨에서 유래되었다.[2]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1번지(흑석로13길 9번지)인데, 이 지번에 현재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심훈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3] 청송 심씨 인터넷족보에는 9월 6일에 사망한 것으로 오기되어 있다.[4] 안효공파(安孝公派)-온양공(溫陽公) 인겸(仁謙)파 24세 ○섭(燮) 항렬. 이 안효공파는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에 속했다. 한때 서인의 거두였던 심의겸, 김효원의 반대로 이조정랑에 등용되지 못한 심충겸, 노론 벽파의 영수였던 심환지, 대한제국 의정대신 심순택 등이 바로 안효공파 벌족이었다. 이런 명문가 출신이어서 왕족이고 갑부였으며 현재는 친일파로 유명한 청풍군 이해승의 누나 이해영과 혼인하였으나 집안간의 재력 차이가 너무 커서 갈등 끝에 1921년 이혼했다. 이해영의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심훈은 이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직녀성' 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후 안정옥과 재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5] 사후 명예졸업 추서[6] 체코의 민족영웅 얀 지슈카도 유사한 유언을 남긴 바 있다.[7] 윤현영(尹顯永)의 딸이다.[8] 2005년 경기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9]중국 저장성 항저우시.[10] 1845년 숭신의숙(崇信義塾)으로 설립되었고, 1952년 폐교되어 저장사범학원, 저장대학, 푸단대학 등으로 분리되었다.[11] 이수일과 심순애를 각색하였다.[12] 일본 히로히토 황태자 암살사건에 연루된 아나키스트 박열을 말한다.[13]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던 시대일보를 말한다.[14] 1925년에 있었던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신의주 사건)으로 잡혀 고문을 당하던 끝에 죽은 박순병을 가리킨다.[15] 청송 심씨 안효공파 집성촌이다.[16] 이는 8.15 광복 후인 1961년 신상옥 감독이 만들게 되었다.[17] 1950년 8월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