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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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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純之
1406년(태종 6) ~ 1465년(세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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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본관은 양성(陽城)[1][2],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靖平)[3].수학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정인지, 이천, 장영실 등과 함께 세종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과학자 중 1명으로 평가된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인물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1406년(태종 6) 경기도 양성현(현 안성시)에서 아버지 이맹상(李孟常)과 어머니 문화 류씨 류자(柳滋)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친시(親試) 문과에 을과 2등 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문무관의 품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종1품)에 이르렀다.이전까지 조선은 명나라의 역법(曆法)을 받아들여 사용하였으나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하였다. 이에 따라 1433년 세종의 독자적인 역법을 발명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천 등과 함께 제작에 들어가서 1442년 조선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編)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編)[4]을 편찬해 냈다. 칠정산내편은 중국 역법, 칠정산외편은 아랍 역법을 참조해 만든 것이다. 그를 통해 조선은 천체의 운행을 한반도의 땅과 하늘에 맞춰 계산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개발한 혼천의, 간의, 자격루의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수학에도 능해 토지 측량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3. 기타
- 이순지가 칠정산을 만들고 있을 때 나라의 중요한 국책 사업인 역법 개발 사업에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아 세종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이순지가 답하기를 "진급이 느려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그 일 하는 사람들 진급을 최대로 올려라. 그럼 되느냐?" 그러니까 이순지가 또 안된다고 하면서 "일은 고되나 봉급은 적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답했다. "그럼 봉급만 올려주면 되느냐?" 이순지 왈 " 기관장의 직책이 낮은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래서 세종이 얼마나 높으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이순지는 당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 있던 정인지[5]를 지목했다. 세종은 허락했고 역법 개발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삼년상을 치르러 내려간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세종은 이순지에게 복직하라는 명[6]을 내린다. 이순지는 "5살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어머니께서 유모도 없이 저를 키웠습니다. 그런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벼슬이 웬말이십니까?" 라며 상서를 올렸지만 세종은 윤허할 수 없다며 그를 복직시켜 상중에 왕실로 들어와 다시 근무하게된다.
- 지구설과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까지 했다는 낭설이 있다. 하지만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천상열차분야지도 해설서)를 보면 분명하게 천원지방과 천동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낭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순지가 1427년 월식의 그림자로 지동설을 입증했다고 하는데, 일월식 계산 자체는 천동설로도 멀쩡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이순지는 1427년 갓 과거에 급제했다.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학자인 홍대용의 지구지전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 성종은 과거 세종대왕 때 이순지같은 학자들이 왜 자기 대에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4. 대중매체에서
-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배우 김홍표가 연기했다. 산학(수학)과 천문학 등을 연구하는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나온다. "한양의 위도를 알아냈다"며 기뻐하다가 책장에서 굴러 떨어지고 상관인 최만리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는 학사로 나온다. 최만리가 조선어에 서툰 외국계 학사인 설순을 함께 꾸짖으며 "조선말 제대로 모르는 놈에 산학에 미쳐서 예의도 모르는 바보까지 있으니 원!"이라며 혀를 찰 정도. 또한 장영실을 상사이자 선배 과학자로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천재호가 연기했다. 제12화에서 <칠정산> 내편을 완성하고 <칠정산> 외편을 만들고 있는 발언을 하는데 사실 <칠정산> 외편은 극 중 연도와는 달리 1444년에 이미 만들어졌다. 제16화에서 세종과 삼강행실도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잠깐 나왔는데[8] 원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창손이 제기했던 문제이다.[9]
- 2019년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배우 오광록이 연기했다. 장영실의 재주를 처음 알아보고 세종께 고해 등용되게 하는데 장영실이 만든 간의를 이용한 천문 관측으로 조선과 중국의 시차가 30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황희가 이끄는 숭명파 대신들이 명나라에 일러바쳐 명나라 사신이 와서 자기 눈 앞에서 "간의를 철거해 불태우라"고 요구하자 횃불을 들었으나 차마 태우지 못하고 있자 세종이 직접 횃불을 빼앗아 간의를 태운다. 세종의 본심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상황.
5. 관련 항목
[1] 일시중파 10세.[2] 양성(陽城)은 현재 경기도 안성시이다.[3] 공손하고 말이 드물었으며, 절제함이 있기에 예의바른 이였단 뜻이다.[4] 칠정(七政)이란 7개의 움직이는 별로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나타낸다.[5] 세종 대 관학파 계통의 신하로서 과학과 수학은 물론 역사 및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 대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이다. 특히 여러 기록에 따르면 수학, 계산에 있어서 정인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정인지는 세종의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다.[6] 기복(起復)제도라 하여 부모의 상례를 치러야 하는 신하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삼년상을 지내게 되는데, 필요에 따라 복상 기간을 마치기 전에 출사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정말로 꼭 필요한 신하들에게는 임금이 '상복을 벗고 지금 관직으로 나오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7] 해당 사건으로 인해 파직되었다가 열흘뒤 복직했다.#[8] "삼강행실도를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풀어 설명하겠다"는 세종의 의도에 "삼강행실도를 배포해도 패륜을 저지르는 자는 있는 것입니다"라고 태클을 건다.[9] 극 중에서 이순지는 세종에게 "네 놈이 선비냐? 네 놈이 유학자야?"라는 면박을 들었는데 실제로 정창손이 세종에게 들었던 면박은 더 노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