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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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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純之

1406년(태종 6) ~ 1465년(세조 11)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5. 관련 항목

[clearfix]

1. 개요

조선 전기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본관은 양성(陽城)[1][2],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靖平)[3].

수학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정인지, 이천, 장영실 등과 함께 세종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과학자 중 1명으로 평가된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인물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1406년(태종 6) 경기도 양성현(현 안성시)에서 아버지 이맹상(李孟常)과 어머니 문화 류씨 류자(柳滋)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친시(親試) 문과에 을과 2등 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문무관의 품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종1품)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나라역법(曆法)을 받아들여 사용하였으나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하였다. 이에 따라 1433년 세종의 독자적인 역법을 발명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천 등과 함께 제작에 들어가서 1442년 조선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編)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編)[4]을 편찬해 냈다. 칠정산내편은 중국 역법, 칠정산외편은 아랍 역법을 참조해 만든 것이다. 그를 통해 조선은 천체의 운행을 한반도의 땅과 하늘에 맞춰 계산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개발한 혼천의, 간의, 자격루의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수학에도 능해 토지 측량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5. 관련 항목



[1] 일시중파 10세.[2] 양성(陽城)은 현재 경기도 안성시이다.[3] 공손하고 말이 드물었으며, 절제함이 있기에 예의바른 이였단 뜻이다.[4] 칠정(七政)이란 7개의 움직이는 별로 , ,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나타낸다.[5] 세종 대 관학파 계통의 신하로서 과학과 수학은 물론 역사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 대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이다. 특히 여러 기록에 따르면 수학, 계산에 있어서 정인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정인지는 세종의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다.[6] 기복(起復)제도라 하여 부모의 상례를 치러야 하는 신하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삼년상을 지내게 되는데, 필요에 따라 복상 기간을 마치기 전에 출사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정말로 꼭 필요한 신하들에게는 임금이 '상복을 벗고 지금 관직으로 나오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7] 해당 사건으로 인해 파직되었다가 열흘뒤 복직했다.#[8] "삼강행실도를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풀어 설명하겠다"는 세종의 의도에 "삼강행실도를 배포해도 패륜을 저지르는 자는 있는 것입니다"라고 태클을 건다.[9] 극 중에서 이순지는 세종에게 "네 놈이 선비냐? 네 놈이 유학자야?"라는 면박을 들었는데 실제로 정창손이 세종에게 들었던 면박은 더 노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