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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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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000><colcolor=#fff> 대한민국의 시인
정희성
鄭喜成
파일:정희성.jpg
출생 1945년 2월 21일 ([age(1945-02-21)]세)
경상남도 창원시
데뷔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변신'
학력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국어국문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료)
경력 대기고등학교 이사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숭문고등학교 교사

1. 개요2. 생애3. 시인의 말4. 여담5. 저서6. 수상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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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봉을 털어 《시인》지를 낸다는 이도윤이 옆에 와서
시 두 편만 달라는데 그것도 안 주느냐고 성화다
시 두 편이면 내 일년 농사라고
그거 털어주면 나는 거지라고…
〈임진각에서 얻은 시상〉,《돌아다보면 문득》
사람에 대한 존중과 연민을 서정적 언어로 풀어낸 것으로 유명한 시인. 주로 노동과 민중 정서에 대한 시를 썼으며 1970년대 사회시의 경향을 대변한 시인이다. 작품으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등이 있다.

다만 그의 가장 유명한 시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4학년 시절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기공식 때 낭독된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시이다.

2. 생애

1945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군제대 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2년 숭문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대기고등학교 이사로 활동하였다.

군복무시절이던 1970년 1월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데뷔 초기에는 질박한 시어로 표현된 《바늘귀를 꿰면서》(1970), 《백씨(白氏)의 뼈 1》(1972), 《불망기(不忘記)》(1974), 《얼은 강을 건너며》(1974) 등의 작품을 비롯해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와 향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74년에 간행된 첫시집 《답청(踏靑)》에 실린 작품들은 이러한 경향을 띤 초기 시로 사회비판적인 성향보다는 고전적 상상력에 기초한 전아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유두(流頭)》 《전설바다》 《해가사(海歌詞)》 등은 신화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절제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작가의 시적 자기인식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억압적인 사회 현실에 맞선 시인의 시대적 사명감으로 《새벽이 오기까지는》(1978), 《쇠를 치면서》(1978), 《이곳에 살기 위하여》(1978) 등의 사회성이 강한 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초기의 시에서 보여준 절제와 균형미보다는 사회적 신념과 용기가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위해 현실지향적인 의지를 작품화하게 되었다. 이 무렵의 시세계는 현실세계와 밀착되어 시적 보편성과 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특히 1978년에 발표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구체적 삶의 현장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참여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감성의 역동성을 확보함으로써 197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사적 성과로 평가된다.

이후 두번째 시집이 나온 지 13년 만인 1991년 세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펴냈으며, 2001년에는 표제시 《시를 찾아서》와 《술꾼》 《첫고백》 《세상이 달라졌다》 등을 비롯해 43편의 신작시가 실려 있는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를 펴냈다. 오랫동안 말을 아끼며 시의 본령을 찾아나선 작가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절제된 시어로 잔잔하게 형상화된 이 시집을 통해 더욱 원숙해진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에 참여시를 개척한 김수영, 신동엽의 뒤를 이어 민중의 일상적 삶에 내재된 건강성과 생명력을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견고한 사실주의의 시적 성취를 이룩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이다.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시와 시학사상을 수상했다.

3. 시인의 말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주로 내가 사는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관해 써왔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러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며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 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나는 믿는다.
80년대의 처음부터 너무 큰 충격을 받아왔던 탓일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고, 감각의 촉수는 그만큼 무뎌져 있었다. 살아오면서 모서리가 닳고 뻔뻔스러워진 탓도 없지 않으리라. 입술을 깨물면서 나는 다시 시의 날을 벼린다. 일상을 그냥 일상으로 치부해버리는 한 거기에 시는 없다. 일상 속에서 심상치 않은 인생의 기미를 발견해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맡겨진 몫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외친다. 나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지 않고 당신들의 당신들의 당신들의 가슴을 울리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미움의 언어에 길들어왔다. 분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동안에만 시가 씌어졌고 증오의 대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나는 나의 말로부터 해방되고 싶고 가능하다면 나 자신으로부터도 해방됐으면 싶다. 이제 길을 나서기는 했는데 나와 내 말이 어디에 가 닿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누구 말이던가. 문득 이 말이 떠오른다.
나는 병이 없는데도 앓는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스스로 세상 밖에 나앉었다고 생각했으나
진실로 세상일을 잊은 적이 없다.
세상을 잊다니! 세상이 먼저 나를 잊겠지.
일탈을 꿈꾸지만 나는 늘 제자리 걸음이다.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는 이 막막함이란 '거울나라의 엘리스'만 겪는 고통이 아닐 것이다.

4. 여담

서울대학교의 대표 시인 '여기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5. 저서[1]

6. 수상 목록



[1] 네이버 프로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