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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18:23:31

호질(소설)

1. 개요2. 내용3. 호질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들4. 관련 문서

1. 개요



연암 박지원의 단편 소설. 제목의 의미는 랑이의 책이다.

2. 내용

열하일기에서는 박지원의 순수 창작이 아니라 청나라로 가던 중 들른 한 상인[1]의 집 벽에 적혀 있던 이야기[2]가 모태이며, 이야기를 본 박지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걸 가져가면 한양이 유쾌하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옮기기 시작했다고 해 놓았다.[3] 그리고 그때 자기 말고 다른 한 명과 서로 반반씩 나눠서 필사했는데, 자기 것은 제대로 옮겼는데 다른 사람이 옮긴 것은 오탈자에 빠진 부분도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문맥을 통하게 하려고 반절은 적당히 기억나는 대로 옮겼다고 써 놓았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사상적 탄압을 빠져나가기 위한 작가의 의도된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4]

호랑이를 통해 조선 상류층(혹은 선비 계층)을 비판한 소설이다.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수하들이 먹이로 좋은 인간을 추천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수하들은 의원, 무당, 선비를 추천하는데 호랑이는 각각의 이유를 들면서 질색한다.
'의醫(의원 의)는 의疑(의심할 의)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온갖 의심스러운 처방을 마구잡이로 내려 죽은 환자들의 원혼이 골수에 서려 있어 먹지 못한다.
무巫(무당 무)는 무誣(무고할 무)에 불과하므로, 무고한 사람들과 귀신들을 속여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것이 변하여 금잠(금빛 누에)이 되었는데, 그 똥은 독이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므로 먹지 못한다.
선비라는 종자는 '유儒(선비 유)란 유諛(아첨할 유)를 가리킨다더니 평소에는 대가리 꼿꼿이 세우다가도 제 목숨 위험해지면 넙죽 조아리니 인간 중에서도 가장 못 먹을 족속이로다.

그러자 '학자가 가장 먹을 만하다'는 창귀의 추천을 받은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가보는데, 그 마을에는 나이 사십도 안 되는데 1만 5천 권의 경전을 번역하고 집필한[5] 유학자 북곽 선생이 살고 있었다. 또한 그 마을에는 정절을 잘 지키어 천자한테도 칭호를 받았고 땅까지 하사받은 동리자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런데 이 동리자가 거느리고 있는 다섯 아들이 모두 각성바지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더욱이 이들이 자기 어머니와 북곽 선생이 밀회하는 걸 보고 "북곽 선생 같은 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나. 저건 필시 여우가 둔갑한 것이다.", "사람으로 둔갑하는 걸 보니 필시 오래 묵은 놈일텐데, 가죽은 벗겨팔고 고기는 나눠먹자"라고 하면서 덮쳐오자, 여기에 놀란 북곽은 도망가다가 똥통에 빠져서 허겁지겁 밭고랑을 달리던 중 호랑이를 만난다. 이때 호랑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코를 감싸쥐고는 "어허, 儒句臭矣(유자여, 더럽다.)"고 한다. [6] 식겁한 북곽은 호랑이한테 아첨을 늘어놓지만, 호랑이는 "평소에는 날 그렇게 욕하더니 이제 와서는 산중왕이라고 하는 거냐?"라는 말을 시작으로 여러 비판을 이어가며 질책한다.
1. 만물의 이치는 하나다. 즉 호랑이의 본성이 악하면 인간들의 본성도 악할 것이고, 인간의 본성이 선하면 호랑이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2. 우리는 딱히 법이나 처벌이 없어도 잘 사는데 인간들은 법을 만들고 온갖 도구로 벌을 내리거나 죽여도 악행이 끊이질 않는다.
3. 우리가 표범을 안 잡아먹는 이유는 차마 제 동류에 손댈 수 없어서 그런 것인데, 너희는 제 동족에게도 해를 입힌다. 그렇게 따지고 보자면 호랑이와 인간 중 누가 더 악하느냐.[7]

이 말을 남긴 호랑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진다. 벌벌 떨면서 이 미천한 놈은 그저 분부를 기다린다면서 넙죽 엎드려 있던 북곽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안도하는데 마침 아침일찍 밭을 갈러 나온 농부가 선생님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무슨 기도를 드리냐고 묻자 의관을 바로잡고는 짐짓 점잔을 빼면서 "하늘이 아무리 높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조심스럽게 디디지 않을 수가 없네."라고 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이러한 사회비판 외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호랑이가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들의 혼령(창귀)이 호랑이에게 붙어 호랑이를 도와준다는 설정은 호환을 당한 사람의 혼령이 호랑이에게 붙잡힌다는 민간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반에 박지원이 만들어낸 호랑이의 천적이 되는 괴수들을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박지원이 얼마나 야사집 등에 밝으며 문학 상상력이 풍부했는지 알 수 있다. 산해경을 비롯한 신화집과 야사 등 책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 영역에 4번째 지문(25~28번)으로 출제되었다.

3. 호질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들

그러나 비위(狒胃)는 호랑이를 먹고,

죽우(竹牛)도 또한 호랑이를 먹으며,

(駮)도 역시 호랑이를 먹고 산다.

또한 오색사자(五色獅子)는 큰 나무가 서 있는 산꼭대기에서 호랑이를 먹고,

자백(玆白)은 날아다니며 호랑이를 먹고,

표견(䶂犬)도 날아다니며 호랑이와 표범을 먹고,

황요(黃要)는 호랑이와 표범의 염통을 꺼내서 먹는다.

활(猾)은 뼈가 없으니 호랑이와 표범이 삼켜도 뱃속에서 그 간을 먹는다.

추이(酋耳)는 호랑이를 만나기만 하면 갈가리 찢어서 먹는다.

호랑이가 맹용(猛㺎)을 만나면 무서워 눈을 내리깔고 감히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맹용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더 무서워 하니 호랑이의 위세가 참으로 높은 것이다.

이 짐승들이 오직 호랑이만을 잡아먹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짐승들도 잡아먹으나 유독 호랑이만을 선호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본작에서 이와 같은 호랑이를 잡아먹는 짐승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이 천적들은 전부 상상의 동물이다. 당시 사람들이 '이런 상상 속 괴물들이 아니면 호랑이를 당해낼 수 없다'라고 생각할 만큼 호랑이를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야생에서 호랑이에게 대적할 수 있는 동물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죽우(竹牛)[8]를 제외한 나머지 짐승들은 전부 중국의 고서[9]에 인용된 바가 있는 전설상의 짐승들이다. 한국의 요괴가 아닌 중국의 요괴다.

파일:external/www.chinjuh.mydns.jp/p18_3.gif
호질에서 언급한 호랑이의 천적중 하나인 박(駮)의 모습. 산해경에 나오며,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고 살며, 이 박을 데리고 있으면 창칼같은 병기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박종관 작가가 그린 능인사 만화판에서는 자백은 부리가 긴 검은색 괴조, 활은 일종의 슬라임, 맹룡(맹용)은 단순한 용으로 묘사되었다.

네이버 웹툰 호랑이형님에서는 추이[10], 황요, 활, 박[11], 표견, 비위, 오색사자가 등장한다. 해당 웹툰에서 본작을 인용하기도 한다.
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한 번 잡아먹으면 창귀가 굴각(屈閣)이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어 호랑이를 이끌어 부엌으로 가서 솥을 핥으면, 집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 부인에게 야참을 시켜오게 만든다.[12] 호랑이가 두 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 높은 곳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살펴 만약 계곡에 함정이나 쇠뇌가 보이면 먼저 가서 그 기구들을 풀어버린다. 호랑이가 세 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육혼(鬻渾 :'죽혼'인데 육혼으로 읽힌다)이 되어 호랑이의 턱에 붙어 자기가 알고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죄다 알려준다.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에게 붙은(복속되는) 창귀(倀鬼)에 대한 설명도 있다. <청우기담>에 의하면 창귀들은 "호식(호랑이에게 잡아 먹힌)당한 사람의 영혼으로, 감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오로지 호랑이의 노예가 된다."로 서술되며 어우야담에서는 호랑이 꼬리에서 나오는 사람을 홀리는 독기라 묘사한다. 문 앞에서 범이 꼬리를 흔들어 독기를 뿌리면 홀린 사람이 스스로 나와 범의 입속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창귀가 호랑이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친지들에게로 호랑이를 안내하는 등 먹잇감이 다른 먹잇감을 불러들인다.

창귀와 관련된 자료로 중국 쪽 설화가 있다. "마증"은 호랑이로 변한 스님에 관한 일종의 괴담 설화다.

한반도 전역에 퍼진 호환(虎患)과 그로 말미암은 창귀에 대한 두려움은 민속 대백과 사전창귀 항목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호식장(虎食葬) 내용에는 창귀를 예방하기 위해 호환 피해자의 영혼을 봉인하는 호식총(虎食塚)이라는 주술적 의례가 나온다.[13] 네이버 웹툰 호랑이형님에서는 이 호식장을 인간이 아닌 호랑이한테 해주는 역발상을 볼 수 있다.

4. 관련 문서


[1] 이름이 심유붕(沈由朋)이고 마흔여섯 살의 소주(蘇州) 출신 상인이라고 적었다.[2] <<관내정사(關內程史)>>의 7월 28일 갑진일 대목에 그 유래가 자세히 나와있다.[3] 상인이 박지원에게 이 글을 베끼는 이유를 묻는데, 그 대답이 이렇다. "귀국해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히려고 합니다. 응당 배를 잡고 웃다가 웃음을 참지 못해 뒤집어질 겁니다. 입 안에 있던 밥알이 벌처럼 뿜어 나올 것이고, 갓끈이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질 것입니다." 볼드체로 적힌 부분은 박지원이 친구 석치 정철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정석치문에서 죽음과 삶에 초연한 유형의 사람(혹은 술을 즐기고 호방한 성격으로 묘사된 정철조 본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이 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글로 그대로 나온다.[4] 이에 대해서 호질이 박지원의 창작물인지의 진위 논란에 대한 연구를 한 논문들도 엄청나게 많다. 이는 단순히 작자가 누구인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곧 작품의 주제 의식 해석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질은 대체 뭘 말하는 건지 작품 내용만 놓고 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다만 비슷한 경우처럼 돈키호테도 지은이 세르반테스가 이 책에 나온 것을 내가 다 쓴 게 아니라 자신이 노예모로코에서 있을 때 아랍인에게 들은 내용(가톨릭 성직자의 위선과 비난에 대한 부분)을 섞어썼다고 밝히고 있듯이 당시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적당한 거짓말을 했던 경우가 있다. 특히 연암은 글쓰기를 전투에 비유하며 전투를 정공법만 갖고 할 수는 없고 측공과 역공을 아울러 써야 하듯, 글쓰기 역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만 쓸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비유하고 때로는 에둘러 쓰고, 때로는 우회적으로 쓰는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냥 읽으면 진의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도록 하고, 깊이 읽어야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하여 사상 탄압에 대한 방어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상당히 신경 쓴 사람이었다.[5] 조선 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해석하고 유교 사상에 맞는 글을 쓰는 게 문학의 으뜸이라고 여겼다. 소설이 '잡스러운 이야기'라는 뜻의 '小說'이라고 명명된 것도 이 때의 영향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경전 해설서를 쓰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평생 1만 5천 권 분량의 책을 썼다는 것은 북곽 선생의 학문적 성취도를 과장하기 위함이거나, 반대로 북곽으로 대표되는 선비들의 연구는 삼십여 년 만에 1만 5천 권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로 속이 빈 강정과도 같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해학적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6] 북곽 선생이 (위선적인) 사대부 계층을 대표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발언이다.[7] 실제로는 맹수들도 동종, 타종 불문 다른 맹수들도 해치거나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유는 먹이다툼의 여지가 있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서로 해치는 이유가 잡아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익 때문이듯이 맹수들도 잡아먹기 위해 동족포식을 하는 게 아니라 이익을 위해 동종을 공격하는 것이다.[8] 얘는 아직 출처미상. 추후에 관련된 내용이 기재된 새로운 고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다.[9] 산해경, 호회, 일주서, 급총주서, 태평광기, 후한서, 음부경, 상림부에 이들이 언급된다.[10] 본 웹툰에서는 추이들이 호랑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만 대장 추이는 호랑이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고, 비위인 녹치는 흰눈썹의 부하로 지내는 동안 입맛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그냥 녹치 본인의 입맛이 처음부터 다른 비위들과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호랑이 고기보단 소고기가 더 좋다고 한다. 황요는 아예 주먹밥에 북어를 곁들여 먹는다.[11] 다만 박은 10화 추이가 수련하는 회상씬에 추이와 싸우는 1컷 밖에 안나왔다.[12] 범이 밥을 지으러 나온 연약한 여자를 덮쳐 여자의 부드럽고 나약한 몸을 유린하여 취하게 하는 것.[13] 호식총과는 별개로 아장살이란 무덤이 있는데 이는 호환이 아닌 병마로 죽은 아기의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