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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3 23:14:53

태평광기

太平廣記

(병음)tài píng guǎng jì
(영어)Taiping Guangji
파일:external/bimage.interpark.com/2667099s.jpg

1. 개요2. 편찬3. 내용4. 번역본5. 여담6. 관련 고사성어7. 같이보기

1. 개요

10세기 후반, 북송의 제2대 송태종의 치세때 편찬된 설화집으로, 《태평어람》, 《책부원구》, 《문원영화》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라고 불렸다.

2. 편찬

북송 태평흥국(太平興國, 976~984)[1] 연간에 편찬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태평어람》 역시 동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대주제 92가지에 소주제 150개를 기준으로 이야기 7,000여 편을 수록하여 총 500권으로 완성되었다. 이방, 후몽, 이목, 서현 등 12명이 978년부터 1년에 걸쳐 편찬 작업을 마쳤고, 981년에 목판을 새겨 출판했다.

초판 인쇄 뒤, 양이 양인 것도 있고 후학들이 급히 필요로 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추가로 인쇄하진 않았으므로 민간에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명나라 시기에 들어와서야 다시 세상에 알려졌는데, 1566년에 담개(談愷)가 당시에 전해지고 있었던 필사본을 바탕으로 교열한 뒤 간행한 것이라 《담각본》(談刻本)이라 부른다. 이후에 나온 판본들은 전부 《담각본》에 의거해 간행한 것이다. 현전하는 판본으로는 《명가정담각본》, 《명활자본》, 《명만력허각본》, 《명심씨야죽재초본》, 《청건륭황각본》, 《청가경방각본》, 《민국필기소설대관본》, 《민국소엽산방석인본》(民國掃葉山房石印本), 《왕소영점교본》 등이 있다.

3. 내용

내용으로는 당나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남북조시대가 어느 정도 비중이 있지만 당나라와는 분량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책에 수록된 일화나 야사, 인용된 항목 등은 후대 사람들이 고치거나 추가한 부분이 많은데, 이미 유실된 책을 출처로 끌어오는 일화가 많고 책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낮지만 각종 고전 소설을 모은 데다가 다양한 일화가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헤아릴 수 있게 하므로, 사회상 연구에서 가치가 있다.

고대 문학이나 후대의 문학에 크게 영향을 준 책으로서, 청나라 때의 기윤은 《태평광기》를
'소설가의 깊은 바다'
라고 칭송했으며, 설화인(說話人)[2]들은 반드시 어려서부터 《태평광기》를 익혔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서 이름이 보인다. 경기체가인 <한림별곡> 2장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태평광기》 400여 권을 열람하는 광경이 어떠하냐고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보면 고려 중기의 고종 이전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축약본으로 성임이 세조 때 《태평광기상절》, 성종 때 《태평통재》를 간행했지만 한문이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어, 명종 때 명나라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듯한 《태평광기언해》를 간행했다.

4. 번역본

현재 한국에서 구해볼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학고방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있다. 색인 포함 총 21권, 각권당 약 800 페이지, 각 권 가격 27,000원이라는 위엄 넘치는 형태로 완역되었다. 번역 기간만 3년 6개월 이상 되는 무시무시한 물건으로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개인이 소장할 물건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압박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여담

여담으로 드래곤으로 번역된 최초의 문헌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독룡'이란 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악한 용을 뜻하는 말로 잘만 쓰였다. 나가 항목 참조.

6. 관련 고사성어

7. 같이보기



[1] 송태종 조광의가 사용한 첫 번째 연호이다. 이런 국가 규모의 프로젝트나 판본에는 연호가 붙는다. 아래 언급된 판본들도 마찬가지인데, 《명가정담각본》은 명나라의 세종 가정제 시기에 출판되었다는 이야기이고, 《청건륜황각보》는 청나라 고종 건륭제 때라는 식이다. 민국은 당연히 중화민국의 이야기이다.[2] 옛날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던 사람들이었다. '설화'는 오늘날에는 '평서'(評書)라고 부르는데, '소설 등의 이야기 거리(話本)'를 감칠맛 나게 들려주는 민간 예술이었다. 판소리 사설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